K와 『아몬드』 사이에서

아몬드(손원평) 읽고

by 문수인




몇 년 전 읽은 책을 다시 꺼낸 건, K 때문이었다. 지난주, 수업하다 쉬는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묻게 됐는데 학교 도서실에서 빌린 책을 읽는다고 했다. 뜻밖에 대답이었다. K의 어머님께서는 집에서는 책을 전혀 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말과 달리, 책을 읽는다고 대답한 순간 조용한 기쁨이 마음 안에 잔잔히 고였다.



K에게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인지 물었다. K는 『아몬드』라고 했다. 순간 놀랐지만 -K가 주인공과 비슷한 점이 있는,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진단받았기 때문에- 마음을 숨기고 어떤 부분이 인상 깊었는지 되물었다. K는 유창하게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감정 표현이 어려웠던 주인공이 서서히 변화되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순간 또 한 번, 마음이 부풀어졌다. 이전과는 다른 깨달음의 형태였다.



생각해 보면, K에게 걱정 어린 마음만 가득했던 것 같다. 스스로 책을 보며 공감하는 부분을 찾고 그 안에서 본인의 마음도 들여다볼 줄 아는 아이였는데, 나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아이가 학교라는 사회 속에서 상처받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내면에 자리하고 있었다.


K와 책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다시 책을 꺼냈다. 이전에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부분들이 눈에 보였다. 주인공 윤재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 그들이 윤재를 이해하는 방식들, 사랑과 믿음, 인간의 양면적인 모습(주변에서 일어나는 가깝거나 먼 슬픔 앞에서 외면하는 모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됐다. 그중에서도, 나는 윤재의 어머님이 인상적이었다. 어머님은 사회생활에서 소통하는 부분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약속을 항상 윤재에게 언급하며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어머님의 모습과 조금은 맞닿아있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과 해결 방법들, 비언어적인 신호들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어머님처럼 답을 바로 알려주기보다 K가 스스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질문과 설명 등을 통해 돕는다는 것이었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아몬드 ebook 406p



윤재의 말이 가슴 깊이 박혀 아팠다. 타인의 슬픔을 쉽게 외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내가 있었고, 그 모습을 들킨 것 같아 수치스러웠다. 모든 상황이 아닌 언어치료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K를 마주했던 내 모습이 그의 눈과 마음에 어떤 모양으로 스며들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뻐근해진다. 나는 그를 연민의 모습으로 바라보았을까. 냉소적인 교육자의 눈빛으로 바라보았을까.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아몬드 ebook 205p
"사람들은 곤이가 대체 어떤 앤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단지 아무도 곤이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몬드 ebook 282p



사랑과 믿음은 어떤 면에서 보면 동의어일까. 사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을 온전히 믿는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해하려는 마음만큼 중요한 건 믿는다는 것, 그 사람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나는 K를 내 방식대로 지켜주고 싶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잘 다가서지 못하는 K 옆에서 나는 조용히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걸음 뒤에서, 때로는 나란히, 그렇게 함께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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