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만한 인간>을 읽고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일로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그 가치는 종종 ‘유용함’의 유무로 판단되곤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 앞에 ‘유용하다’는 수식어가 유독 불편하게 느껴졌다. 쓸모의 유무에 따라 가치를 판단하는 건, 상품과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쓸모에 대해 고민한다. 나 또한 그런 고민을 아직도 많이 하고 있고, 여전히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부족한 점만 보이고, 눈에 띄는 재능이 없다는 생각에 자책하는 날들이 많았다. 추구했던 이상적인 내 모습과 현실의 나와의 간극이 너무 커서 벌어진 일이었다. 현실적인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나니, 빼어날 것 없지만 그래도 봐줄 만한 점들이 몇몇 보였다.
배우이자 작가 박정민이 쓴 <쓸만한 인간> 표지를 읽고 처음엔 다소 거리감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책 제목에 대한 첫인상이 편협한 생각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어쩌면 우리는, 각각의 삶에서 연필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스스로가 써 내려가니까 말이다. 그렇게 써 내려가다 보면 예기치 않게, 자신도 몰랐던 쓸모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고, 단순하면서도 생각이 깊은 면모가 있었다. 작가가 랩을 열심히 배우고 연습하면서 영화 ‘변산’을 찍었다고 한 게 특히 기억에 남는다. 몇 년 전 개봉했던 영화지만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민 작가는 마케팅 재능마저 타고난 게 아닐까.
상대의 말 혹은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잘 들어야 한다는 거고, 그것이 연기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쓸 만한 인간 중에서, e-book 261p-
연기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배웠던 것이 ‘잘 들어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연기를 떠나, 요즘 들어 삶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잘 듣는 것’ 임을 자주 느낀다. 잘 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서 듣는 것 그리고 내용을 왜곡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현대 사회에서 잘 듣지도 않고 왜곡해서 판단하는 우리에게 말하는 일침 같아, 더욱 마음 깊이 새기게 됐다.
요즘 들어,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위선은 아닐까 곱씹고 곱씹는다.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겠지만, ‘이 정도면 변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의 얼굴로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중략) 너만 그런 게 아니니까 네가 그렇게 특별한 비극을 겪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쓸 만한 인간 e-book 434p-
물론 나이가 들고, 지킬 것들과 잃을 것들이 많아지면서 위선적이라고 생각되는 일이 많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기적이지만, 그만큼 이타적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본인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반면에, 타인을 헤아리는 사람들은 내 마음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고, 상처가 되는 진실은 드러내지 않으니까. 위선은 어쩌면, 타인을 배려하고 사회 속 나를 관리하려는 마음의 콜라보일지도 모른다.
<쓸 만한 인간>은 내가 오래도록 품고 있던 고민들과 닿아 있었다. 공감은 언제나 좋은 위로가 된다. 쉽게 꺼내기 어려운 마음을 담백하게 말해주는 이 책 덕분에, 한결 가벼워졌다. 이 책은, 나와 닮은 누군가에게 너무 무겁지 않게 말을 건넨다. 쓸모로 자신과 타인을 재단했던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당신이 느끼는 ‘쓸모없음‘마저 따뜻하게 안아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