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 보름달이 눈에 띄었다.
오늘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개기월식을 봤다는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근래 본 보름달 중에서 가장 크고 밝았다. 거대한 보름달의 등장에 구름들이 알아서 자리를 피해 준 것만 같았다. 홀로 빛을 내고 있었다.
밥 먹고 나와 보름달을 쫓았다. 달이 더 잘 보이는 곳으로. 육교 위에서 사진을 찍다가 다시 밑으로 내려와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거룩한 빛 앞에서 한낱 얕은 숨을 쉬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한동안 달을 넋 놓고 보다가 남편 손을 잡고 소원을 빌자고 했다. 나는 어떤 곳에서든 가장 먼저 건강을 빈다. 가족의 건강, 나의 건강, 배우자의 건강. 건강하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쇠약하다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겐 건강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고, 평안도 챙길 수 있는 길이다.
“어떤 소원을 빌었어?”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본인의 건강이 아닌 내 건강을 빌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고였다. 나의 부재가 남편에게 어떤 의미인지, 차마 더 묻진 못했다. 삶이 버겁게 느껴지는 날도 있지만, 심연 끝에는 결국 삶을 이어나가고 싶은 의지가 자리 잡는다. 서로가 서로의 삶의 이유가 되는 것만큼 아름답고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사람들은 어떤 소원들을 비는 걸까. 매년 1월 1일, 용궁사에 가서 사람들이 쓴 소원을 보곤 한다. 대부분 건강을 비는 경우가 제일 많았고, 그다음으로 시험 합격 기원, 재물 등 현재 삶에 필요한 것들이었다. 모두 모아 만사형통을 적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행복을 바라는 소원은 거의 보지 못했다. 모든 순간 행복할 수 없어서일까, 아니면 행복은 이미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아서일까. 어차피 영원한 것은 없는데, 사람들은 당연하게 건강을 빌면서도 행복은 빌지 않았다. 오히려 무탈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탈과 평안은 행복과 닮아있다. 그러나 무탈 속에서 감사함을 깨달아야 진정한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안도 대신, 오늘의 감사함을 찾아보자. 행복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면 삶이 불편해진다.
매일 아침, 하얀 스케치북에 세상을 그려보자. 잘 들여다보면, 세상만큼 아름답고 슬픈 것도 없다. 서로가 서로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