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여행의 속도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하루에 관광지를 다섯 군데씩 본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지도에 표시된 곳들을 차례대로 방문한다.
유명한 성당, 유명한 광장, 유명한 박물관.
사진을 찍고 잠깐 둘러본 뒤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그렇게 하루 일정을 꽉 채운다.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는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여행한다.
멀리까지 왔으니 최대한 많이 보고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시간도 아깝고, 놓치는 것도 아까워 보인다.
그래서 여행 일정표에는 늘 많은 장소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여행을 조금 더 하다 보니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관광지에 할애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여유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다 나중에는 하루에 한두 군데만 봐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유명 관광지는 사진으로 봐도 충분했다.
대개는 실망스럽기도 하고
전문가가 찍은 사진이 내 사진보다 낫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 대신 어느 광장에 오래 앉아 있기도 하고,
골목을 천천히 걸어 다니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 한참을 앉아 있기도 한다.
이는 처음 가는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이런 시간이 조금 아깝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시간에 다른 곳 하나 더 볼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그런 시간이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느 작은 광장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을 구경하던 시간,
아무 계획 없이 골목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작은 가게,
배가 고파 로컬들이 많아 보여서 들어갔는데
어느 유명 식당보다 맛있었던 현지 식당.
현지인들의 친절한 도움들.
지도나 어느 후기에도 없던 풍경들.
소도시에서는 지도를 보지 않을 때도 많다.
길을 조금 헤매도 좋다.
어디든 어떠하리.
생각해 보면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대부분
계획표에 없던 순간들이다.
그래서 점점 여행의 속도가 느려진다.
많이 보는 여행보다 오래 머무는 여행이 더 남기 때문이다.
시간의 여유가 많으면 유리하겠지만
꼭 시간과 비례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여행의 즐거움은 얼마나 많은 장소를 봤느냐보다
어떤 속도로 그 도시를 걸었느냐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부모님은 여행을 수십 번 다녀오셨으나 여전히 속도전이시긴 함]
By 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