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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스윙 Dec 29. 2021

'정의'를 내린다는 것

요즘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정의'를 내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가장 큰 이유로는, 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 주로 이제껏 선례가 없던 것이라 구글에서 정보를 찾을 수 없을뿐더러 생각하고 가정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어떤 '기준'이라는 것을 잡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코에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도 될 수 있는 발상이 많아서 일을 할 때, 말을 할 때 내 주장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이고 논리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더구나 외국인이니까). 어느 레벨이든 간에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이 서구권 회사에는 넓게 퍼져있다는 것이 요즘 특히나 많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러한 접근 방식이 순토종 한국인인 나한테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다고 느꼈던 것이, 보통 한국 교육방식과 대기업에서 흔히 요구하는, 주어진 것을 하라고 해서 성실히 이행하면 되는 문화에 아주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 크지 않나 싶다. 위에서 대부분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나의 책임소재도 적고, 뭔가 능동적으로 '사고'라는 것을 해본 적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일단 사실 선례가 많은 일들을 하는 경우가 거의 다였다. 어찌어찌 인터넷에서 자료 뒤지고 검색하면 자료들이 많이 나온다. 설령 한국에 선례가 없어도 외국의 사례가 다양하게 있었기 때문에 그 사례를 그대로 카피하면 되었고, 회사에서도 뭔가 새롭게 한다 길보다는 늘 상 그놈의 '선진사'의 시스템을 적용해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않도록) 외쳤기 때문에 그냥 그러면 되나 보다 하고 살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단순하게 '피고용자'의 입장을 생각하자면 노동시간이 긴 단점이 있지만, 한국에서의 '업무'자체가 (까라면 까는 대로 하니까?) 상대적으로 덜 복잡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영국에서 일해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도 그놈의 '선진사'가 도대체 뭔지, 어떤지 경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놈의 '선진사'라는 곳에서 하는 일에 대한 것을 함축적으로 말하자면 무엇인가 '정의'를 내리고 '정립'화하는 데에, 간단하게 말하자면 브레인스토밍 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쓴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단 선례가 전혀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하나하나 찾아보고 토론하고 해야 한다. 초반에는 왜 이렇게 회의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많이 하고 있나 생각했는데, 사실 토론 과정에서 어떤 자그마한 것이라고 도출할 수 있는 것이고 (얘기하다가 아, 그게 좋겠다!라던가), 결국 그런 것들은 단숨에 나오는게 아니니까 계속 토론토론 회의회의를 통해 수정수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비록 시간이 오래 걸려도, 거북이처럼 느려도 (이들은 왜 이렇게 일처리가 느리고 게으를까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아무것도 없던 것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어떤 것의 정의와 어떤 시스템을 구축해 나간다는 것이, 크게 보자면 어떤 ‘진보’ 가 있긴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해진 틀안에서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던 나로서는, 한국 대기업에서보다는 여기서 작은 일이어도 '‘무언가’를 스스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회사가 성장하는 것은 뭐 둘째 셋째 치고, 일단 내가 프로젝트를 끝낼 때마다 디벨롭 되고 있다는 느낌이 훨씬 많이 든다는 것이 크다.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고, 공유하고, 표현하는 것에 상사라고 감놔라 배놔라 하지 않는 (비교적) 평등한 문화들도 이런 환경에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이, 성별, 연차를 떠나 다양한 의견을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고, 무엇인가의 정의(Definition)을 하나씩 구축해 나가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내가 느낀 차이라면 차이랄까.


결국 그렇게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어왔던 ‘선진’ (국가던 회사던)이라는 의미는 퍼스트 무버의 입장에서 무엇인가를 먼저 ‘정의’하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맨땅에 헤딩을 먼저 하여 그 레슨런을 하나씩 축적해나가는 것이 것이 아닌가 싶다. 비단 이런 로직은 앞으로 다가오는 이 세상에도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종일 집에서 밥 먹고 일하고 책 보고 단순하게 사니 별 잡생각이 다 들어 쏟아내니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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