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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스윙 Nov 18. 2020

영국에서 말하는 정신건강이란?

우리 동네에는 작은 공원이 하나가 있다. 풍경이 목가적이고 예뻐서 블로그에도 공원 사진을 종종 놀리는데, 집에서 한 8분 거리에 있는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작고 오래된 아치 모양의 돌다리를 하나 건너야 한다. 원래는 그냥 무심코 지나가던 다리인데, 작년 이후로는 이 다리를 건널 때마다 밑에도 한번 내려다보게 되고, 기분이 뭔가 이상해진다.

작년 요맘때 마을 축제를 구경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돌아오는데 이 다리에 경찰차 한 대와 행인들 몇 명이 모여있었다. 어차피 집에 가는 길이니 뭐하나 슬쩍 보게 되었는데, 20대로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돌다리에 앉아 있다가 뛰어내리려고, 다시 말하면 자살하려고 하는 것을 사람들이 잡아서 경찰도 부르고 하게 된 것이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서너 명이 서럽게 우는 여자를 타이르고, 달래고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도대체 평화로운 이 마을에 뭔 일인가 싶었는데 동료가 말하길 지난 1차 코로나 봉쇄 무렵에도 이 근방에서 10대 청소년 3-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다.


OECD 대비 한국의 높은 자살률이 과로, 스트레스, 압박 등에 의한 ‘초과’에 의한 결과지만, 영국의 자살률은 그 반대에 ‘공허’ 의한 결과가 아닐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영국에서 학교생활과 직장 생활을 해 봤을 때 한국만큼 사회적 문화적 관계적으로 압박이나 부담이 세다고 느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각종 스트레스와 압박이 있는 한국 사람들은 멘탈이 아주아주 강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최근에 주변을 보면 강하다고 보이기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NHS에 따르면 영국 성인 4명 중 1명은 정신질환이 있고, 10명 중 1명의 아동이 정신질환 경험이 있다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신질환은 우울(Depression), 걱정(Anxiety), 조울(Bi-polar), 스트레스, 번아웃(Burn-out)을 포함한다. 한국인이 항상 달고(?) 사는 질병도 영국에서는 정신 질환 (Mental illness)로 분류하여, 적절한 관리가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런 현상은 햇빛이 없고 날씨가 가장 안 좋은 11,12,1월 (Dark night) 사이에 증가한다 하니 지금이 딱 그 시기다.

마침 남편 회사에서는 최근에 정신질환 문제가 있는 직원 설문조사를 했다는데 전체 중 약 20% 정도가 나왔다 한다. 물론 개인마다 역치가 다르고 일을 하며 느끼는 스트레스가 다르긴 하지만, 그냥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아... 이런 일로도 스트레스와 번아웃이 된다고...?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 걸 보면, 어쩌면 우리의 멘탈은 너무 단련돼서 질환을 앓을 시간도 없이 굳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정신관리에 이렇게 관심을 조금이라도 갖게 된 이유는 영국에 살면서 이러한 정보에 자주 노출되는 것도 크다. 봉쇄 기간 동안에도, 혹은 자가격리 대상자라, 재택근무하는데 있어서도 불안함, 외로움, 과한 스트레스 등의 문제가 있을 때 연락해야 할 곳을 알려주고 어떻게 하면 기분이 나아질 수 있는지 정부에서, 카운슬에서, 회사에서, 학교에서 주기적으로 알림을 계속 준다. 가이드라인이나 책자를 보면 사실 엄청 대단한 것은 없다. 다만 정신질환이 결코 사회에서 편견을 받을 만한 일이 아니며,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인지하게 된다. 너무 힘들 때 적어도 어디다 연락해서 도움은 받아 볼 수 있겠구나 알 수 있다.


이러한 정신적 마음의 고통은 주로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개발도상국이나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환자는 거의 없고, 반대로 골절 부상 등의 물리적 신체적 질환이 대부분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많은 물질적 풍요 속에 더 많은 가지고 더 많은 것을 누리려는 경쟁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기본 생활과 욕구에 대한 어떤 결핍이 없어서 그렇다고 뭔가를 하기는 전의를 상실한 어떤 공허함에서 비롯된 것일까.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수 없을 때 발생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 中 -


육체적 건강과 멋진 몸매에는 모두 신경을 쓰는데, 정작 마음건강은 등한시하는 작금 우리의 현실에 한국도 조만간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 그리고 다른 북유럽 국가처럼 정신 마음 질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시기가 도래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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