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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행 중 겪은 토막 이야기들 2

런던 밤거리의 여우 / 제임슨 위스키

by 다이퀴리


1. 런던 밤거리의 여우


얼코트 (Earl's Court)라는 동네의 가스트로펍에서 여행 마지막 저녁 만찬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미슐랭을 받은 가스트로펍이라 궁금해서 예약 후 방문했는데, 메인 식사보다는 애피타이저가 더 인상적이었다.) 길을 걷다 2차선 도로를 건너기 위해 반대편 차선 쪽을 바라보는데 웬 고양이 같은 게 유유히 걸어 다니는 게 아닌가. 하나 고양이 발걸음보다는 뭔가 더 씩씩하고 당찬 느낌이었다. 런던 고양이들 걸음걸이는 한국 고양이와 다른가?라고 생각하다 뭔가 '몸집'과 '몸짓'이 고양이의 날렵함 보다는 큰 느낌이었다. 다시 한번 보니 그 물체는 여우였다.

"어? 여우다."

라고 내가 말하자, 옆에 있던 아내는,

"뭐라고?"

"여우 있다고 저기..."

"...?"


하긴 말하고도 좀 이상했다. 세계 4대 수도 중 하나인 런던의 밤거리에 갑자기 여우라고? 놀라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을 생각도 못했다. 여우는 우리보다 양 옆에 차가 오는지 확인한 후(진짜로) 능숙하게 길을 건너고, 한 건물 화단 쪽으로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아내는 내가 너무 태연하게 "저기 여우다"라고 말해서 상황을 인지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고 말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런던에 3년 정도 거주했던 친구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본 건 여우가 맞고, 한국의 고양이처럼 가끔씩 밤거리에 나타난다고 했다. 하긴 요즘 서울 거리에서 너구리가 자주 출몰한다고 하는데 여우라고 나타나지 말란 법은 없다. 그 아이들도 서식지가 파괴되고, 먹을게 부족해져 도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터전에 적응하는 중이리라. 모든 건 인간의 잘못. 지구 생태와 미래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인간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한국의 길고양이들에게는 '길냥이'라는 귀여운 애칭이 있는데, 런던의 길여우들에게도 그런 애칭 비슷한 것이 있을까?




2. 제임슨 위스키


평소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중 주락이월드라는 채널이 있다. 각 위스키 증류소의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아이덴티티, 마케팅 수단 등 위스키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채널이다. 그중 아일랜드 위스키를 주제로 한 콘텐츠가 업데이트되어있는 걸 발견하여 얼마 전에 시청했다. 여기서 알게 된 사실은 대표적인 아이리쉬(Irish) 위스키인 제임슨(Jamseon) 위스키를 영국 사람들은 '제머슨'이라고 읽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수입원에서는 제임슨이라 표기하기 때문에 사실 어떻게 읽어도 크게 상관은 없다고 하지만, 왜 하필 '제머슨'이라고 읽는 걸까.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그제야 이해가 되는 영국에서의 일화가 떠올랐다.

영국의 펍에서 제임슨 위스키를 주문할 때마다 바텐더들이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Jamson, Jamson... 별로 어려운 발음도 아닌데, 나의 제임슨 발음이 그렇게 이상한가?' 하며 자책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제임슨'이라는 발음보다 '제머슨'이라는 발음에 익숙해서 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토트넘 축구경기장의 인파가 몰린 복잡한 펍에서, 아내에게 '제임슨 더블샷에 콜라를 타달라고 주문해 줘'라는 오더를 시켰으니... 어쩐지 피자를 사들고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바텐더와 한참이야기(?) 또는 실랑이를 벌이는 아내를 보고 있었다. 답답한 표정을 지으면서.

실로 미안하구먼요...(바텐더와 아내 둘 모두에게 다)




3. 런던지하철의 인터넷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 후 시내까지 언더그라운드(지하철)를 이용했다. 낯선 이국의 땅에서 처음으로 탑승하는 대중교통은 언제나 기분 좋은 설렘을 유발한다. 특히나 지하철 안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있고, 역 플랫폼의 분위기도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다. 짧은 거리일지라도 지하철을 타고 움직이며 사람들과 역을 구경하는 재미는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이다. (일단 내가 경험한 지하철 중 최고의 시설과 청결도는 역시 한국 전철이라고 자부한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라인(Elizabeth Line)을 탑승했다. 딱 봐도 세월의 흔적이 여기저기 묻어있었다. 스크래치 투성이의 외관, 언젠가 커피를 잔뜩 쏟았으나 제 때 세탁하지 않아 그대로 색이 변해버린 좌석 등... 내부는 또한 굉장히 좁아서 좌석과 좌석 사이의 통로 폭에 큰 캐리어 가방을 두고 있으면,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불편하다. 소음도 심하며, 어딘가 지붕이 뚫려있는지 바람도 무척 세게 들어왔다. 마치 오픈카를 타는 느낌이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풍경은 영국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왜 저렇게 다들 멀뚱멀뚱 가만히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내가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검색하려 시도를 하니 바로 이해가 되었다. 영국의 지하철에선 인터넷이 거의, 아니 아예 잡히지가 않는 수준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영국인들은 지하철에서는 아예 폰을 쳐다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하고 싶어 스마트폰을 붙잡고 아등바등 거리는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런던에 처음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일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독서를 하는(심지어 서서)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만약 나도 런던에서 거주했다면, 나의 가방에는 항상 읽을거리를 하나씩은 들어있었을 것 같다. 하드 커버로 된 무거운 소설이나 인문학 책보다는, (무게가) 가벼운 에세이, 잡지 정도가 적당하겠다. 음... 근데, 소음이나 청결도를 생각하면, 독서도 역시 한국 지하철에서 하는 게 백배는 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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