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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퀴리 Oct 15. 2024

영국 여행 중 겪은 토막 이야기들 1

영국영어 / 서양인의 사진실력

    인생 최고의 여행이었던 2024년 영국여행 중 있었던 기억을 더듬어 짤막한 토막 이야기들을 꺼내보려 한다.


1. 영국영어


    평소 업무를 할 때에도 미국식 영어만 사용하고, 듣는 음악도 거의 미국식 영어인 나의 귀를(이렇게 얘기하면 미국 영어에 매우 유창한 인간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아니고 한글을 가장 유창하게 구사합니다.) 영국식 영어에 적응시키기 위한 방법을 궁리했다. 그중 출근길 차에서 EBS 라디오를 청취하는 방법을 실천해 보기로 했다. 오전 8시에 시작하는 방송인데, 그 방송의 호스트인 최수진 씨가 영국원어민 영어를 구사한다는 걸 알고 나서 채택한 방법이다. 그렇게 몇 개월 동안 방송을 꾸준히 청취하며 단기에 나의 귀를 영국산으로 개조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처참한 실패였다.

    

    현타가 세게 온 에피소드 하나를 풀어볼까? 아일라(Islay) 섬의 라프로익(Laphroaig) 증류소에서 발생한 일이다. 라프로익 증류소에서는 단순히 시설을 돌아보는 투어가 아니라, 다양한 라인업을 맛볼 수 있는 시음회에 참석을 했다. 아일라섬에서 나고 자란 20대 초반의 남자 직원이 시음회의 가이드를 맡았다. 그는 적절한 유머를 구사하며 행사를 매끄럽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끌어 나갔다. (물론 나는 그의 영어를 절반 정도만 이해했다.) 자신의 어렸을 때 일화를 곁들이며, 위스키에 대해 지루하지 않게 설명을 이어나가던 중 갑자기 그 가이드가 돈 얘기를 꺼냈다.

 

    "이 위스키는 17유로(Seventeen Euros...)이며 어쩌고저쩌고~ 저 위스키는 31유로이며 (thirty-one Euros...) 어쩌고저쩌고~"


    아니 지금껏 열심히 위스키 설명을 잘하다가 갑자기 가격을 얘기한다고? 물론 증류소니까 마지막엔 위스키를 판매하는 판촉 활동은 있을 수 있다. 아니, 아주 자연스러운 진행이다. 그러나, 시음회 맥락상 판매활동을 하기에는 아직 다소 이른 감이 있었기에, 그의 타이밍이 당황스러웠다. 스코틀랜드의 20대 청년들 업무 스타일은 원래 이런 걸까? 뭐 어쨌든, 이 증류소에서 괜찮은 위스키 한 병은 구입하려고 계획은 했기 때문에 설명을 열심히 들으려고 노력했다. 음... 근데 조금 이상하다. 여긴 스코틀랜드인데 유로(Euro) 가격을 이야기하는 거지? 스코틀랜드에선 파운드와 유로를 같이 사용하나? 음... 31년 산 위스키가 31유로밖에 안 한다고? 왜 이렇게 저렴한 거지... 음... 아...

    한국인 바보 하나가 아일라섬에 탄생한 순간이었다. 

    Euro는 사실 Years-old를 발음한 것이며, 17년 산 위스키, 31년 산 위스키의 영국식 발음을 내가 잘못 알아들은 것이었다. 물론 그 자리에 있는 외국인들이 내가 잘못 알아듣고 있었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주변의 반응을 그대로 따라 하며, 심각할 땐 심각한 표정을 짓고 모두가 웃을 땐 세상 환한 미소를 계속 보였기 때문에.


    시음회에 한국인이 참석했을 땐, 'R'발음에 좀 더 신경을 써달라고 증류소에 메일을 쓸까 하다 그만두었다.

 









2. 서양인의 사진실력


    아내와 버킹엄 궁전을 구경하던 중 괜찮은 포토 스팟을 발견했다. 궁전과는 좀 떨어져 있으나, 사진에 한 번에 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각도였고, 예쁜 화단도 있었고, 무엇보다 주변에 인파가 없어 한산했다. (대게 사람들은 궁전 앞 정면 대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나와 아내는 각자 서로 찍어 주려다가, 문득 여행 내내 함께 찍은 사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혹시 우리를 찍어 줄 고마운 분이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우리 왼편에서 한 백인 남성이 꽤나 좋아 보이는 카메라로 버킹엄궁전을 향해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고, 그분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흔쾌히 수락한 남성분은 아내의 아이폰으로 우리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에 서 달라, 포즈를 취해달라 또는 1,2,3, (원, 투, 쓰리~!)와 같은 찍기 전의 신호를 알리는 말 따위가 일절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카메라를 머리 위로 들어서 찍으시는 게 아닌가. 머리 위로 카메라를 드는 순간부터 나는 '망했다'라고 단념했다. 일반적으로 키가 커 보이게 찍으려면 카메라를 아래에서 위쪽으로 향하게 각도를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 이건 아내에게 욕을 먹어가며 배운 중요한 이론 중 하나이며, '여자친구 사진 찍어주기 교본' 제1장에 첫 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런 교본따위 없으니 혹시라도 검색하진 마시길) 그런데 이런 중요한 룰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듯한 저 포즈(카메라를 머리 위로 드는 행위)는 마치 '너희의 신체 따위 어떻게 보이든 나와는 전혀 상관없으며, 너희도 버킹엄을 인증하려고 내게 이 일을 맡긴 거 아니니?'라고 반증하는 것 같았다. 

    온갖 불안감이 솟아올랐으나, 사진을 찍어주는 남성분에 대한 예의로 촬영이 끝날 때까지 미소를 유지하며 표정관리를 했다. 찍어준 남성분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하나도 기대하지 않은 촬영분을 확인한 순간 깜짝 놀랐다. 아니 글쎄, 너무 잘 찍어주신 게 아닌가? 카메라를 머리 위로 든 이유는 아마 버킹엄궁전을 비롯해 그날의 푸른 하늘까지 담기 위한 구도였던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신체가 짧게 나왔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정말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사진을 찍어주셨다. (관광지 인증, 경관과 날씨, 신체 훼손 방지. 이 세 가지를 한 장의 사진에 모두 담아내기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흔히 해외여행지에서 사진을 부탁할 땐, 되도록 한국인이나 아시아인들에게 요청하라고들 한다. 뭔가 SNS에 사진을 기재할 때, 아시아인과 서양인의 정서적인 차이는 분명 있는 것 같고, 아시아인들이 보기 좋은 사진은 아시아인들이 더 잘 찍을 거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 같다. 


    그러나 나처럼 사진 못 찍는 동양인도 분명 있다. (나는 누군가 내게 사진을 부탁하면, 사진을 망칠까 봐 심히 긴장을 한다.) 그런가 하면, 사진 잘 찍는 서양인도 있으니 우리 모두 그러한 편견은 버리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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