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고독과 외로움을 이야기 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같은.
요즘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작품이 자주 생각난다. 당시 유럽에서 주인공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는 생소한 전개였다. 작품을 접한 뒤 약 2000여명의 청년이 모방 자살을 했다 하니, 당시 세상이 받은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 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 중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종현’ 이야기가 나왔다. 종현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솔직히 평소엔 아이돌 음악과 소식에 관심이 없다. 물론 그럴 나이가 좀 지나기도 했고. 하지만 왜인지 ‘종현이 죽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너무 슬퍼졌다. 유명인, 팬, 이런 수준에서의 감정이 아니라, 그저 내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가 우울증에 고통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앞에 있던 친구도 같은 생각을 했었단다. 만난 적도 없고, 아는 사이도 아닌 사람의 죽음도 이렇게 슬플 수가 있구나.
정확히 중학교 3학년 때, 자살에 관한 노래를 만들었다. 그 땐 죽음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그런 노래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외로움과 우울의 정서를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을까.
2월에는 참석한, 그리고 참석 할 결혼식이 많다. 결혼식에 초대해 준 이들에게 고마워하며, 예식에 열심히 참석하고 있다. 나의 사고는 반대와 함께 작용하는 버릇이 있다. 반대를 고집하는 청개구리 사고를 가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항상 어떤 상황의 시작을 보면 끝을 보고, 이쪽이 떠오르면 저쪽도 같이 떠오른다. 결혼은 시작과 탄생이다. 시작하는 커플을 보면, 먼저 떠나간 이들의 얼굴도 보인다.
최근의 울적한 기분이 일조량이 많이 없는날씨 때문인지, 갑자기 결혼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져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 기분이 베르테르를 부르는 건지, 베르테르를 생각하다보니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삶은 외로움을 극복하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봄이 되면 일단 해를 구경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