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상투적인 물음이지만 당신의 안녕이 궁금합니다.
지난겨울이 유독 추웠기 때문일까요, 이번 여름도 이전과 비할 바 없이 더우리라 예상되기 때문일까요. 푸르른 강산의 사계절도 이제는 옛말인 듯합니다. 우리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기록은 매년 갱신될 텝니다. 그걸 알면서도 봄의 초입이랍시고 마음이 들뜨는 나날입니다. 싱그러운 녹빛은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게 만드니까요.
하지만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습니다. 시작과 끝이라는 상징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 연결된 양면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조금 바꿔 보기로 했습니다. 교명이 수놓인 학교 점퍼 아래 민주동산이, 겨우내 자란 눈사람 가득한 민주동산이, 물까치가 첼로 언니 곁에 노래하며 머무는 스머프동산이 무성해질 때 슬픔을 곱씹어 보자고요. 고통이 고통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고통의 책임자가 책임에서 벗어나는 날들은 참 많았고, 그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괜찮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하죠. 다만,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분노는 종종 자리를 지킨 이들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애도는 그 사실만으로 무언가를 바꾸기도 합니다. 그것이 기억한다는 것의 힘일지 모릅니다.
물론 도망치는 것도 방법입니다. 집채만 한 파도가 나와 내 곁의 소중한 이들을 덮쳐 너무나 버겁다면, 어디론가로 숨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웅크리고 마음을 다잡아야만 다시 설 힘을 얻을 테니까요. 「근맥」 88호에서는 이럴 때 손을 잡거나 기대도 괜찮다고 말하려 합니다. 아니, 외려 언제든 그렇게 굴어야만 버티는 것이 가능해진다고요. 삶이 기대할 만한 것이 되려면, 살 만해야 합니다. 언제든 찾아올 굴곡 아래 살아남을 단 하나의 계책은 연결이 아닐까요. 근맥이 나와 당신을 연결해 주기를, 우리의 안녕과 상관없이 만날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2025년 2월, 편집실에서 부편집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