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부편집장 조은경
2022년 9월 29일 오전 10시, 대법원은 기지촌 성 산업 제도가 국가가 주도한 구조적 폭력이었음을 공식 인정했다. 기지촌 형성 이후 65년, 여성들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지 8년 3개월 만의 일이다. 그러나 감격은 잠시, 의정부시와 동두천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들은 기지촌의 흔적을 지우는 ‘도시정화사업’을 시작했다. 국가폭력의 증거가 되는 건물들은 철거 위기에 놓였고, 기지촌 여성들을 지원해 온 ‘두레방’은 당사자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강제 이전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가는 기지촌 여성을 역사에서 삭제하고, 시야 밖으로 밀어내며, 반성 없는 미래를 재현하고 있다.
애국자, 창녀, 배신자
전후 한국에는 미군기지가 우후죽순 들어섰고, 이후 그들을 중심으로 한 촌락 ‘기지촌’이 형성되었다. 기지촌은 오랜 시간 그곳을 삶터로 삼아온 사람,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 그리고 다양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였다. 그곳을 단지 미군 기지만을 중심으로 한 공간이라 정의할 수 없지만, 전후의 예민한 공기와 최고조에 이른 안보 열기에 의해 마을은 자연스레 ‘기지’촌이 되었다. 한편, 마을이 미군을 중심으로 구축되고 움직인 것은 일견 예상된 일이었다. 그 기반에 국가의 적극적이고 주도면밀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동맹’과 ‘외화벌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분단 상황에서 정부에게 미군의 체류 여부가 곧 남한의 수명을 결정짓는다는 믿음은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 유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도록 했다.1) 또, 전쟁의 고통을 잊고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야 했다. 국가는 ‘간단명료’한 폭력을 방책삼아 상황을 타개하기로 결심했다. 바로, 미군기지에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배치하고 통제함으로써 동맹을 공고히 하고 외화를 빨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기지촌 여성을 '민간 외교관'이나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애국자'로 호명하면서 그들의 수익을 갈취하고, ‘군기지 정화 운동’이라는 국가폭력으로 그들을 통제했다.2) 군기지 정화 운동은 미군 사이에 성병이 창궐하는 것을 막는다는 명목 아래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고 억압한 정책이었다. 이때 기지촌 여성은 ‘감염원’이자 정화 대상으로 취급되었다. 정부는 성병 진료소를 만들어 기지촌 여성만을 강제로 검진하고, 유효기간이 1주일에 불과한 ‘검진패스’를 배부했다. 이 터무니없이 짧은 유효기간이 만료되거나 패스를 발급받지 않은 여성은, 감염 여부와 무관하게 ‘낙검자 수용소’로 강제 연행되는 부조리를 겪어야 했다. 성병 진료소 내 진료 행위도 온당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료소를 찾은 이의 증상이나 상태는 살피지 않고, 오직 성병 검사에 필요한 검체 채취만을 수행했다. 기지촌 성병 진료소에서 근무한 의사 문정주 씨는 당시의 진료 행위가 “진료라고는 차마 부를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강제적인 행위”였음을 회고한 바 있다.3) 122명의 기지촌 피해 여성이 주장했듯, 국가는 기지촌 여성의 건강을 위해 진료소를 운영한 게 아니라 미군에게 ‘성병에 걸리지 않은 깨끗한 신체’를 상납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를 통제한 것이다.4)
“그래서 저는 뭐 세게 말하면 국가가 포주였다고 생각이 들어요. 보통 사람들은 아프면 병원을 가잖아요. 성병에 걸려도 병이니까. 병원을 보내야 되는데 왜 수용소로 가두냐 이거죠.”5)
성병에 걸린 이들을 수용·치료하기 위한 시설인 ‘낙검자 수용소’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이이곳은 검진패스가 없거나 ‘낙검’ 판정을 받은 여성, 성병에 걸린 미군으로부터 ‘지목’당한 여성을 감금하는 곳이었다. 성병 진료소와 마찬가지로 수용소 역시 기지촌 여성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수용소 건물은 “쇠창살 속 여성들이 원숭이 같다” 하여, 미군들로부터 ‘몽키 하우스’라 불릴 만큼 열악했다. 또, 감금당한 이들은 성병 치료제라는 '벤자딘 페니실린'을 기준치의 10배 이상까지도 강제적으로 투약 당했는데, 이는 성병을 확실히 제거하는만큼 부작용이 극심해 일반 의료 기관에서는 잘 쓰지 않는 약물이다. 여성들은 ‘치료’라는 이름 아래 부작용으로 죽거나 마비되지 않기만을 바라며 불법 감금을 견뎌야 했다. 기지촌 ‘위안부’로 생활했던 박영자 씨는 낙검자 수용소가 엄청난 통증과 부작용을 유발하는 페니실린 주사를 놓았을 뿐, 어떠한 돌봄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게다가, 완치될 때까지 풀려날 수 없었으므로 감금된 이들이 옥상에서 뛰어내리거나 밧줄을 만들어 탈출을 시도하다 사망하는 경우도 잦았다.
피해와 착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공간
앞서 우리는 기지촌이라는 공간의 암면과 기지촌 여성이 겪은 구조적 피해 및 국가폭력을 살펴보았다. ‘어쩔 수 없이’ 기지촌으로 향한 사람, 끌려온 사람, 감금당한 사람··· 그런데, 그것이 전부인가? 그곳에는 강제력과 비극만이 존재했을까? 평택 기지촌 여성의 구술사를 담은 『영미 지니 윤선』은 기지촌 여성을 오직 ‘국가폭력 피해자’로만 호명하거나 ‘피해자다운 피해자’로만 그려내는 시선에 문제를 제기한다. 서울의 상층 계급 출신 지니는 미국영화를 즐겨보고, 미국 문화와 클럽을 동경하며 기지촌과 가까워졌다고 회고했다. “양놈들 지나가다 막 말 시키면은 좋아갖구! 크럽[clu]에 놀러가자면 오케- 하고 따라 들어가고 그랬단 말이야.”6)
기지촌은 강제와 억압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동시에 여성들이 서로를 의지하고,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나간 생활의 터전이기도 했다. 두레방은 1986년 3월 17일에 의정부 빼뻘마을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기지촌여성운동 단체다. 설립자 문혜림은 옛 성병보건소 건물을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상담소, 영어 및 한국어교실, 어린이 돌봄, 공동식당, 책거리 잔치, 자활사업 등을 운영했다.7)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서로를 ‘언니’라 칭하며 음식을 나누어 먹고 아이들과 서로를 돌보았다. 미군이 철수한 후에도, 두레방은 쉼터이자 둥지로서 그 자리를 지켰다. 2006년부터 성매매 피해 지원 상담소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2009년에는 두레방쉼터를 설립해 국내 기지촌으로 유입된 이주여성을 돕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지촌 내부에서 여성들을 지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군사주의와 가부장제에 맞선 투쟁을 이어왔다.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기지촌 내부의 상황을 알리고, 연대의 초석을 마련하는 ‘기활’(기지촌 체험 활동)을 최초로 기획했고, 여성 명예 회복과 지원을 위한 법률’ 제정을 위해 뛰었다. 한국 여성들이 대다수 떠난 후에도 이주여성을 위한 ‘E-6-2비자대안 네트워크 활동’을 펼쳤다.8) 무엇보다, 2022년 9월 29일에는 대법원으로부터 기지촌 성 산업 제도가 국가폭력임을 인정한 원심 확정 판결을 받아내는 쾌거를 이루는 등 누구보다 앞장서서 기지촌 여성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9)
웃음도 울음도 지워지고
2022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두레방에 위기가 찾아왔다. 의정부시가 빼뻘마을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며 두레방 측에 퇴거를 통보하면서, 퇴거 후 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건물 존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약 40년간 빼뻘마을 사람들과 함께하며 ‘공동체’ 그 자체가 된 두레방은 추방당하고, 중요한 근대문화유산이자 국가폭력의 증거인 옛 성병보건소 건물은 완전히 소실될 위험에 놓인 것이다.10) 이에 두레방은 “고령의 미군 '위안부' 여성들이 빼뻘마을에 단 한 분이라도 살아계시는 한, 곁에서 지속적인 지원과 지지를 담당하겠다”며 의지를 굳게 다졌다. 2025년 6월까지 끈질기게 버텨냈으며,11)12) 두레방 이용자와 활동가들은 ‘빼뻘마을 존치 목요시위’ 등으로 규탄 활동에 힘을 실었다.
여성학자 정희진이 지적했듯 두레방은 여성주의 시각에서 시민들에게 기지촌을 알리는 활동을 해온 탈식민주의 운동의 산실이며, 중요한 근대 문화유산이다.13) 그러나, 의정부시는 ‘낡은 건물’을 보강하여 관광객 유치를 위한 ‘라이브 푸드 팝업스토어’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는 두레방 건물의 상징성에 대한 몰이해를 넘어 노골적인 ‘역사 지우기’ 시도다.14) 특히, 옛 미군기지에 설립된 의정부시 근현대사 기록 공간 ‘기억저장소’를 들여다보면 그 의중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기억은 과거를 이해하는 길이 아니라 미래를 이루는 열쇠”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건물 내부에는 미군의 물품과 ‘재향군인클럽’의 모습이 가득 전시되어 있지만, 기지촌 여성들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존되어 있지 않다.15) 의정부시는 기지촌을 소재로 문화도시 지정과 여성친화도시를 자처하고 있음에도, 역사를 지우는 정책을 공공연히 추진하고 있다.
국가폭력은 수많은 궤변으로 변호된다. 전쟁이라는 압도적 폭력, 참사로 점철 되어버린 일상, 국가 재건의 꿈 등이 강변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화는 소수자의 삶과 권리를 대가로 삼는다. 기지촌은 단지 한 시기의 비극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안보와 경제를 이유로 누구의 삶을 거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다. 기억을 보존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애도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권력관계를 직시하고, 다시는 같은 폭력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의 방향을 틀어잡는 일이다. 기지촌 여성들의 역사를 지우는 순간, 그 폭력을 다시 허락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과거를 끝내 삭제할 것인지 아니면 그 기억 위에 다른 미래를 세울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
1) 권은선 외.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휴머니스트, 2025, 82%.
2) 국사편찬위원회. 『‘몸’으로 본 한국 여성사』, 경인문화사, 2011, 346쪽.
3) 나랑. 「기지촌 의사 “주 1회 ‘묻지마 성병검사’했다”」, 『일다』, 2016.03.19.
4) 나랑, 앞의 글.
5) 이재필. 「기지촌 아픈 역사를 지역 관광자원으로」, 『헬로tv뉴스』, 2025.08.01.
6) 이경빈, 이은진, 전민주. 『영미 지니 윤선』, 서해문집, 2020, 126쪽.
7) 고인은 1992년 미국 뉴저지로 가서 한국인 여성 인권보호를 위한 공간 ‘무지개의 집’을 세웠다.
조해람, 김종목. 「모두가 외면했던 기지촌 여성들의 곁에 서다, 두레방 창립자 문혜림」, 『플랫팀 여성 서사 아카이브』, 2022.03.18.
8) E-6 비자는 호텔업시설, 유흥업소에서 공연·연예활동에 종사하는 자(가요, 연주자, 곡예, 마술사 등)에게 주어지는 비자이다. 정부는 한국 기지촌 여성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필리핀, 러시아 등 외국인 여성에게 E-6-2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이들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착취, 처벌, 추방의 위험을 마주하고 있다.
9) 두레방. 소식 [대법원 판결 소감문] 언니들과 함께 춤을 ~, 2025.05.23.
10) 김은진. 「미군 ‘위안부’ 운동의 역사, 두레방은 결코 멈출 수 없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결』, 2024.09.23.
11) 지봉근. 「의정부시, 두레방 건물 존치 논란」, 『경기도민일보』, 2025.07.24.
12) 빼뻘마을 존치 목요시위에 참가한 두레방 이용자는 지난 40여년 간 빼뻘마을에 살고 있는 이유는 이곳에 두레방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천세민. 「빼뻘마을에 아직 우리 언니들이 산다」, 『서울대저널』, 2025.06.09.
13) 정희진. 「의정부시의 ‘기지촌’에 대한 인식」, 『경향신문』, 2024.05.05.
14) ‘역사 지우기’는 동두천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2024년 9월, 동두천시의회는 소요산 개발을 명분삼아 옛 성병관리소 건물 철거 예산을 심의했다. 시민단체의 천막농성과 철거 반대 집회로 약 1년간 철거가 지연되었지만, 동두천시는 여전히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으며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역사 지우기’를 방조하고 있다.
15) 11월 15일, 유엔인권이사회와 특별보고관 3인이 대한민국 정부에 '혐의서한'(letters of allegation)을 보내 성 및 젠더 기반 폭력을 포함한 중대한 인권 침해를 기억하는 장소의 역사적 보존 의무가 있다고 권고했다.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 『‘몸’으로 본 한국 여성사』, 경인문화사, 2011.
권은선 외.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휴머니스트, 2025.
김은진. 「미군 ‘위안부’ 운동의 역사, 두레방은 결코 멈출 수 없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결』, 2024.09.23, https://kyeol.kr/ko/node/582(2025.08.13. 접속).
나랑. 「기지촌 의사 “주 1회 ‘묻지마 성병검사’했다”」, 『일다』, 2016.03.19,
https://www.ildaro.com/7409(2025.08.13. 접속).
두레방. 소식 [대법원 판결 소감문] 언니들과 함께 춤을 ~, 2025.05.23, https://durebang.org/17/?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64282714&t=board(2025.08.13. 접속).
이경빈 외. 『영미 지니 윤선』, 서해문집, 2020.
이재필. 「기지촌 아픈 역사를 지역 관광자원으로」, 『헬로tv뉴스』, 2025.08.01, http://news.lghellovision.net/news/articleView.html?idxno=515102(2025.08.13. 접속).
정희진. 「의정부시의 ‘기지촌’에 대한 인식」, 『경향신문』, 2024.05.05, https://www.khan.co.kr/article/202404302055015/?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2025.08.13. 접속).
조해람·김종목. 「모두가 외면했던 기지촌 여성들의 곁에 서다, 두레방 창립자 문혜림」, 『플랫팀 여성 서사 아카이브』, 2022.03.18, https://www.khan.co.kr/article/202203181047001/?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2025.08.13. 접속).
지봉근. 「의정부시, 두레방 건물 존치 논란」, 『경기도민일보』, 2025.07.24, http://www.kgdm.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58464(2025.08.13.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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