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수습위원 이은정
작년 12월, 윤석열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북한 공산 세력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라 말했다. 이러한 윤석열의 직접적인 ‘북한’, ‘공산주의’ 언급과 ‘종북 반국가세력’이라는 표현은 야권을 겨냥한 정치적 언어로 해석되며,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고 있다.
전가의 보도(傳家의 寶刀)
1. 대대로 집안에 전해오는 보검.
관용표현으로 쓰일 때는 ‘딱히 답이 없을 때마다 걸핏하면 내세우는 상투적인 말이나 행위’를 가리킨다.
좌절을 통해
여러 매체에서 ‘종북’ 및 ‘멸공’이라는 용어를 통해 북한을 적으로 호명한다. 특히 윤석열의 대국민담화처럼 북한을 ‘공산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를 ‘종북 반국가세력’과 연결하는 발언은 북한을 단순한 외부 위협이 아닌, 내부의 적과 연결된 존재로 설정한다. 이러한 방식은 사람들에게 ‘안보’에 대한 위기감을 심어주고 문제의 초점을 옮기기 위한 시도로, 불법 계엄을 위한 변명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윤석열의 시도는 실패로 그친 반면, 금강산댐 사건1) 같이 성공한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매체와 권력자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고, 왜 대중은 동의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은 ‘역사적 트라우마’로 설명할 수 있다.
역사학자 도미니크 라카프라가 제시한 ‘역사적 트라우마’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들을 공유하는 어떤 집단의 욕망이 좌절-억압되면서 가지게 된 집단적 트라우마를 뜻한다. 그리고 그 범위는 사건을 직접 경험한 자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아무런 체험적 관련성이 없는 자들도 포함한다.2) 그렇다면 한국의 역사적 트라우마는 무엇이 있을까.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한국전쟁이 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난 전쟁과 그로부터 3년 뒤 1953년 7월 27일에 이뤄진 휴전협정은 휴전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북한과 남한, 두 국가로 분단시켰다. 이는 ‘오래된 욕망’이 재차 좌절되는 사건이었다. 오랫동안 종족적 단위와 정치적 단위가 일치했던 한반도는 일제강점기로 인하여 ‘민족=국가’ 욕망의 좌절을 겪었다.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이한 후 다시 한번 독립된 국민국가를 건설해 이를 되찾으려 했지만,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으로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민족=국가’라는 핵심적 국가 정체성은 반복된 좌절을 통해 ‘역사적 트라우마’를 만들어 냈고 그 증상은 좌절의 원인으로써 ‘북한’을 향한 적대감으로 드러났다.3)
생산의 굴레를 통해
‘역사적 트라우마’ 개념은 ‘반공 이데올로기’가 전가의 보도로 사용될 수 있는 이유를 분석적으로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단지 역사적 트라우마의 결과로 이해하는 것은 한계를 지닌다. 북한에 대한 적대적 인식인 ‘반공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역사적 트라우마의 잔재를 넘어 현재의 사회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소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국민의 일상에서 내면화된 자발적 동조의 형태로 재생산된다. 이렇듯 과거의 상처가 현재까지 이어진다는 설명만으로는 왜 이러한 적대감이 특정한 방식으로 촉발되는지, 왜 사람들에게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동조를 끌어내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해명되어야 할 것은 사회 정치적 차원의 적대적 구조뿐만 아니라 그 적대성이 일상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4)
그렇다면 반공 이데올로기는 어떤 매체를 통해 전파되는가? 우선,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형태인 영화를 들 수 있다.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공 이데올로기’를 담는 ‘반공영화’ 장르로 한국 영화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반공 이데올로기’를 전파해 왔다. 대표적으로 ‘연평해전’과 ‘인천상륙작전’이 있다. 두 영화는 한국전쟁이란 역사적 사실의 재현을 넘어, 북한을 폭력적으로 재현하여 폭력의 참혹함과 가시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통해 관객들의 기억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 영화 관람 전과 후 관객에게 시행한 설문조사를 비교해 본 결과, <북한의 체제>, <햇볕정책>, <대북 지원> 항목의 변량이 급격히 감소하였다. 북한에 대한 인식이 관람 전에 비해 부정적으로 바뀐 것이다.5) 이렇게 ‘반공영화’는 일반 개인이 영화 관람 후 ‘반공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게 하며, ‘역사적 트라우마’를 일상에서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언론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가 실재했던 사건을 통해 ‘북한’을 ‘적’으로 상정, 반공 이데올로기를 전파했다면 언론은 ‘북한과 관련 없는 대상’을 ‘북한’으로 상정하는 데 일조했다. ‘정치타블로이드’를 통해 민주적 공론장에서 논의되어야 할 정치·사회·문화적 이슈를 단순화된 이념적 잣대로 평가하고, ‘친북, 좌파’ 담론을 형성한 것이다.6)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시민 사회가 ‘종북세력’으로 낙인찍히는 일은 빈번했고, 노동조합의 정당한 권익 투쟁도 ‘좌파 선동’으로 매도됐다.7) 이런 언론의 영향은 고스란히 시민에게로 이어졌다. 올해 초 발생한 산불 30건을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현재 전국 연쇄 산불은 간첩소행이다’라는 제목의 게시글과 이와 비슷한 음모성 글이 수백 개가 올라오는 결과를 냈다.8) ‘정치타블로이드’는 이처럼 ‘음모론’의 형태로 국민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며 ‘역사적 트라우마’가 일상에서 재생산되게끔 한다.
이런 흐름은 명목상 ‘평화 유지’를 위해서 이루어지지만, 실제로는 계속해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다름없다. 총과 탱크가 동원되어 물리적인 전쟁을 벌이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 언론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북한’을 ‘적’으로 지정하고, 그들은 ‘없어져야 마땅하다’라는 여론을 형성하는 것. 안보를 논하며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상기시키는 것. 국가 권력에 복종하게 만드는 이 모든 요소를 통해 사람들은 결국, 전쟁에 대한 공포에 떨면서도 전쟁불사론(戰爭不辭論)을 주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국가에 대한 혐오를 넘어 국가 내에 존재하는 국민을 향한 혐오로 뻗어간다. 특히 한국전쟁을 통해 전쟁이 어떤 참극을 가져오는지 잘 알고 있음에도, 이러한 혐오는 증오심에 사로잡혀 다시금 고통의 역사를 반복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9) 이렇듯 사람들이 ‘반공 이데올로기’를 활용한 ‘전가의 보도’에 휩쓸리는 것은 ‘폭력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방식 속에서 이루어진다.
판별을 통해
‘역사적 트라우마’는 본질적으로 타자의 타자성을 승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집단의 욕망이 좌절되며 발생하므로 그것의 흐름을 받아들여야 치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10)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에서 북한의 타자성은 승인되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은 미개하고 위협적인 존재로 규정되며, ‘없애야 할 대상’으로 호명된다. 이는 트라우마의 치유가 아니라, 트라우마를 정치적 에너지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더불어 ‘역사적 트라우마’는 본래 치유되어야 할 대상임에도, 한국 사회는 오히려 적대와 증오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다. 특히, ‘잊지 말자 6.25!’라는 표어는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는 대신, ‘북한’이라는 타자에 의해 파괴된 평화와 안보를 강조하며 분노와 원한을 재확산하고 있다.11) 이는 과거의 고통을 되새기는 동시에, 그 고통의 원인을 특정한 외부의 '적'으로 고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는 추모의 과정에서도 반복된다. ‘적’을 무찌른 존재로서 한국전쟁 참전 군인을 향한 추모는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들의 희생은 ‘자유 수호’라는 이름으로 영웅화된다. 이때 여성, 노인, 어린이와 같은 민간인 희생자들은 추모의 대상이 아닌 전쟁의 부수적 피해자이자 수치로만 남는 ‘안타까움’의 대상에 그친다. 또한, 전쟁에 참전했던 유색인종 군인들에 대한 조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약 18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연방군으로 복무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기억하고 추모하는 이들은 백인 중심으로 돌아간다. ‘폭력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특정 집단에 집중하는 추모의 방식이 ‘역사적 트라우마’의 유일한 ‘치유’ 방식이 될 때, 국가 중심의 기억은 강화되고, 그 기억은 다시 적대적 감정을 재생산해 낸다.
이어지던 것을 끊어내자
앞서 살펴본 것처럼 ‘종북’이나 ‘멸공’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역사적 트라우마’의 산물이 아니라, 현재 정치 담론 속에서 전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북한에 대한 인식이 끊임없이 구성되고 조정되는 사회적 서사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체계는 감정적 선동을 통해 타자화된 집단에 대한 혐오를 심어주고, 이성적인 판단을 불가능하게 하여 편향된 판단이 이루어지게 한다. 이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북한에 대한 적대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타자인 비판적 시민과 소수자에게도 동일한 논리를 적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이 정말로 위협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위한 변명으로 사용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변명의 대상은 국민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상기 시켜준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더 이상 과거의 상처가 아니라, 현재의 권력이 활용하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제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전가의 보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경계하자. 진정한 치유는 과거의 고통을 기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트라우마를 권력의 도구에서 사회적 성찰의 계기로 전환할 때 시작될 것이다.
1) 전두환 정권은 1986년 10월 30일 당시 건설부 장관이었던 이규호를 내세워 북한이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시설 용량 80만 킬로와트 이상의 금강산 발전소 댐이 붕괴하면 수도권 등지가 황폐화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에 대응하는 ‘평화의 댐’ 건설의 필요성을 말하며 국민 성금을 받았고, 총 733억이 모였다.
김덕련. 「원폭보다 센 수공? 금강산댐 ‘공포 사기극’ 전말」, 『프레시안』, 2017.01.23.
2) 김종곤.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철학적 재구성」, 건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ⅲ쪽.
3) 이병수. 「분단 트라우마의 유형과 치유방향. [Type and Direction of Healing in the Trauma of Division]」, 『통일인문학』, 제 52집 (2011), 50~51쪽.
4) 위의 글, 49쪽.
5) “이 말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항목에 대해서, 보수와 중도의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들(보수 및 중도 성향에 국한됨)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영화를 보기 전보다 훨씬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형균. 「분단영화가 한국인의 북한에 대한 인식에 미치는 영향 :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 <용의자>, <베를린>을 중심으로」,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6, 57쪽.
6)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의 일차적 문제는 이른바 가장 원초적이고 낮은 수준의 대중의 관심사와 영합한다는 점, 모든 문제를 심각한 수준으로 단순화시킨다는 점,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킨다는 점, 선정적인 스캔들을 부각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공공담론의 수준을 현저히 떨어트린다는 점 등이다.” 이를 통해 본 저작자는 언론이 정치·사회·문화적 이슈를 단순한 이념 잣대로 재단한다는 점에서 ‘정치타블로이드화’ 되었다고 말한다.
주재원. ‘「민주화 이후 한국 언론의 반공 담론 연대기」’, 『언론과 사회』, 제 25-3호 2017, 213~214쪽.
7) 임준환. ‘「좌파 정부 기다린 듯 … 勞, 빠르고 강하게 ‘밥그릇 챙기기’ 나섰다.」’, 『뉴데일리경제』, 2025.07.03.
8) “이거 누가 봐도 간첩소행이지”, “자연 발생은 절대 아니다” 등의 댓글이 수십 개씩 달렸다. 송현주. 「“산불은 중국 공작”, “북한 지령”…산불마저 억지 주장 ‘황당 음모론’」, 『서울신문』, 2025.03.25.
9) 김종곤, 앞의 글. 1쪽.
10) 위의 글. 130~131쪽.
11) 김종곤. 「분단폭력 트라우마의 치유와 ‘불일치’의 정치」, 『통일인문학』, 제 74권 2018, 49쪽.
참고문헌
김덕련. 「원폭보다 센 수공? 금강산댐 ‘공포 사기극’ 전말」, 『프레시안』, 2017.01.23,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49165(2025.08.12. 접속).
김종곤. 「분단폭력 트라우마의 치유와 ‘불일치’의 정치」, 『통일인문학』, 제 74권 2018, 39-63.
김종곤.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철학적 재구성」, 건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권형균. 「분단영화가 한국인의 북한에 대한 인식에 미치는 영향 :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 <용의자>, <베를린>을 중심으로」,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6.
송현주. 「“산불은 중국 공작”, “북한 지령”…산불마저 억지 주장 ‘황당 음모론’」, 『서울신문』, 2025.03.25,
https://www.seoul.co.kr/news/society/2025/03/25/20250325500215?wlog_tag3=naver(2025.07.06. 접속).
이병수. 「분단 트라우마의 유형과 치유방향. [Type and Direction of Healing in the Trauma of Division]」, 『통일인문학』, 제 52집 (2011), 47–70.
임준환. ‘「좌파 정부 기다린 듯 … 勞, 빠르고 강하게 ‘밥그릇 챙기기’ 나섰다.」’, 『뉴데일리경제』, 2025.07.03, https://biz.newdaily.co.kr/site/data/html/2025/07/02/2025070200362.html(2025.07.06. 접속).
주재원. 「민주화 이후 한국 언론의 반공 담론 연대기」 『언론과 사회』, 제 25-3호 2017, 158–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