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호][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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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이하 ‘ICE’)’의 이민자 단속 작전 과정 중 한 여성이 ICE 요원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정책인 이민자 대규모 추방·단속 정책을 시행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ICE는 트럼프의 용인과 지원 아래 그 규모가 급격히 커졌는데,1) ‘불법 이민자 단속’을 명목으로 도를 넘는 무력 사용을 서슴지 않던 중 결국 민간인 총격 사망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ICE의 상위 기관인 국토안보부는 ‘요원들의 작전 수행을 방해한 폭도 중 한 명이 차량을 무기화해 요원들을 들이받아 살해’하려 했다고 주장하며, 총격은 ‘테러 행위’에 대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다.2) 그러나, 그가 전혀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으며 차를 돌려 현장을 빠져나가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 사회 전역은 충격에 빠졌고, 이는 반反 ICE 시위로 이어졌다.

1.jpeg ▲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항의 시위에서 한 시민이 ‘ICE 영구 퇴출’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정부가 무력을 동원해 펼치는 강압적인 반이민 정책은 ‘미국의 국익’과 ‘미국인 우선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 사업이다. 이 사업은 이민자를 다음과 같이 전제한다.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미국에 ‘해’를 끼치는 위험한 존재이자, 미국인에게 가야 마땅한 복지와 혜택을 ‘약탈’하는 문제 가득한 존재. 철저히 타자화된 이민자는 쫓아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며, 이는 반이민 정책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민자와 이민 문제를 쉽게 단순화해 버린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은, 전 세계 곳곳에서 이와 유사한 논리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그렇다면, 이 논리의 기저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것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세계는 지금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는 극우 정치 세력의 부상과 파시즘적 경향3)이 강화되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미국의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구호를 내걸고 신제국주의 시대를 열고자 하며,4) 알리스 바이델을 중심으로 반이민·반난민 정책을 펼치며 지지를 얻고 있는 독일의 극우 성향 정당이자 제1야당인 AfD(독일을 위한 대안당),5) 마찬가지로 극우 성향의 정치인이자 최초의 일본 여성 총리로 당선된 다카이치 사나에6) 등을 예시로 들 수 있는데, 이들의 당선과 행보에서는 공통적으로 ‘자국민 보호’와 국익을 위해 이민자·난민·외국인을 배척하는 태도가 드러난다.7)

경제적 불안, 사회 양극화, 전쟁, 이주 문제, 경쟁 사회 등 여러 사회적 대립과 긴장이 심화하는 가운데, 각각의 문제는 저마다의 복잡한 지형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극우 정치는 이를 ‘우리’와 ‘적’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단순화한다. 우리(민족)와 그들(외국인, 이민자, 소수자 등) 사이에 선을 긋고 구분하면서,8)9) 복잡한 문제는 외부에 설정된 ‘공공의 적’이자 타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해결된(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민족이라는 단일한 층위에 머물지 않는다. 특정 인종이나 국적, 남성, 중산층, 비장애인, 비퀴어, ‘능력주의’ 등 기존의 지배적 질서가 선점한 사회의 표준은 곧 ‘우리’의 기준이 된다. 그 바깥에서 균열을 내는 이들에게는 다시 한번 선이 그어지고, 이 편리한 단순함 아래에서 민주 시민의 권리와 다양성, 공존의 가치는 위협에 놓이게 된다. ‘주류’와 힘의 논리, 구분 짓기에 의존한 차별과 배제는 당연해지고,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이러한 기제는 보는 이가 상대의 존재 자체를 향해 분노하게끔 하거나, ‘불안’을 자극하여 자연스럽게 차별을 ‘보호’의 수단으로, 혐오를 ‘권리’의 근거로 둔갑시키는 데 동원한다. 그 대상과는 정서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을 ‘치우는’ 데 큰 이질감은 생기지 않는다. 배타적 성향을 자극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가성비 전략이나 다름없다.

한국 사회의 극우화 또한 예외는 아니다.10) 반공주의와 극단적 보수 개신교 세력이라는 맥락 속에서11) 진보적 가치를 향해 오랫동안 공공연하게 발화되고 방치된 혐오의 언어, 이를 암묵적으로 승인한 정치권 및 언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왔기에 한국 사회에서의 ‘극우’란 우연이나 낯선 개념은 아니었다. 그러나 권력 독점, 자신을 반대하는 ‘반국가세력’ 제거를 시도했던12) 윤석열의 불법 계엄과 탄핵을 거치며 단순하고 극단적인 정서는 빠르게 격화되었다. ‘대통령’이라는 사회·정치적 위치와 권력을 가진 자가 민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합의된 질서와 신뢰를 훼손하는 모습은 그것대로 파괴적이었으며, ‘그래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강력하게 전달된 셈이기도 했으므로. 그렇게 권위주의를 옹호하고 민주적 가치를 위협하는 담론은 곧 현실에서의 차별과 폭력으로 드러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애국, 자유 등의 이름 아래 결집한 ‘우리’들은 법원을 부수거나,13) 대학교에 난입해 학생들을 위협하거나,14)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근거 없는 인종주의적 혐오와 폭력을 재생산했다.15)16) 공론장 안에서 마땅히 충분한 협의와 책임, 이해가 동반되어야 할 문제에는 맥락 대신 왜곡과 자극만이 남았다. 중국인,17) 난민·이주민, 호남인, ‘페미’, ‘빨갱이’, 장애인, 성소수자 등은 한국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저해하는 집단으로 지목되어 공격의 타겟이 되었고,18)19) 이는 SNS나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일상 속 ‘놀이’나 ‘밈’으로 가볍게 소비되거나 가짜뉴스와 음모론의 모습으로 빠르게 뿌리를 내렸다.


극우는 멀리 있지 않다

여기까지의 논의에 따르면, ‘극우’란 극단적인 보수 성향을 지닌 특정 정치 세력이나 그들이 주장하는 강경한 이념 정도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흔히 ‘주류’ 정서에서 벗어난 소수의 ‘위험한’ 생각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사회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는 이 현상들을 과연 특정 세력만의 문제로 ‘분리’하여 바라보는 것이 가능할까? 그들에게 ‘극우’라는 낙인과 도덕적 비난을 가하면 세상은 민주적 가치를 회복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일까?

진정한 위기는 가시화된 극우·혐오 세력의 실체만큼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조금씩 스며들어 있는 ‘극우적 세계관’에서도 기인한다. 일상화된 경쟁과 삶의 불안을 마주했을 때, 그 원인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나 권력층에서 찾는 대신 나보다 약한, 비주류의 존재에게서 찾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능력주의라는 논리 아래, 불평등은 묵인되고 불공정은 단속의 대상이 되어 ‘타자’는 제거하거나 배제해야 할 위험 요소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믿음’은 대개 공동체적 가치에 대해 배워야 할 학교에서 형성되기 시작한다. 비교와 경쟁에 익숙해지며 타자를 밟고 올라서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는 순간 차별과 배제의 논리는 내면화되고 견고해진다. 당연히, ‘공共’의 가치도 교과서 속 이야기에 불과해진다.

혹자는 이를 두고 “극우적 체제를 옹호하는 세계관이 극우화의 물결을 만들어낸”다고 보았다.20) 물론, 나와 다르거나 잘 모르는 존재에 대한 불편함과 거리감은 자연스러운 정서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정서가 특정 집단 전체를 향한 일반화와 배척, 낙인으로 이어지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재할 때, 그것은 곧 극단적 정서로 발전할 위험을 내포한다.21) 이민자는 ‘진짜 국민’의 몫을 뺏고 사회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침입자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평범한’ 시민들의 출근길을 방해하는 ‘악의적인’ 행동으로, 페미니즘은 ‘남성 역차별’을 낳는 혐오 사상이라는 논리가 생기는 식이다. 이를 ‘일부’ 극단주의자의 문제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인권·자유·존엄·평등·평화 같은 현대의 근본 가치가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보편주의를 수용하지 않”는 태도는22) 알아차릴 새도 없이 우리 곁에 다가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를 경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세계관은 오늘날 온라인 공간에서 더 빠르고 가볍게, 그리고 ‘덜 딱딱하고 흥미로운’ 모습으로 삶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SNS 등 각종 플랫폼은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소통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만큼 복잡한 맥락이 거세된 채 자극적인 파편만이 ‘밈’과 ‘놀이’의 형식으로 떠다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안에서 분노, 갈등, 혐오 등 부정적·극단적인 감정은 특히 퍼져나가는 속도가 빠르지만, 그렇게 던져진 사안에 대한 교차 검증이나 서로 다른 입장 간의 토론 등으로 잘못된 지점을 ‘바로 잡기’에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게다가 자신의 의견과 유사하거나,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의견만이 반복적으로 모이는 ‘맞춤형 알고리즘’·‘커뮤니티’는 사람을 필터 버블23)에 가둬 다양한 가치관과 맥락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한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극우적 사고방식이 연성화된 채로 일상에 침투하는 현상에 대해, 일각에서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어떠한 정보를 접했을 때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것이 가짜뉴스나 왜곡된 정보는 아닌지, 혐오와 차별은 아닌지를 한 번 더 확인하고, 비교·검증을 거쳐 맥락 속에서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정치·사회적 현안을 자유롭고 ‘안전하게’ 나눌 수 있는 토론의 장까지 마련된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을 근본적인 대안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이미 에코 챔버24) 속에서 안주하고 있는 이들에게 논리적 검증과 비판적 사고는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기에, 개인의 실천과 교육의 제도화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접근을 시도해 볼 수 있을까? 바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과의 만남, 접촉, 교류다. 타자에 대한 무지는 혐오로 번지기 쉽다. 낯섦, 불편함, 이질감은 두려움과 결부되며 타자에 대한 혐오를 탄생시키고, 이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우화는 극심한 타자화의 연장선이기에, 삶의 여러 문제가 ‘외부’에 있는 ‘타자’를 배격함으로써 손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쉽게’ 해결하는 건 ‘나’와 ‘우리’에게 좋은 방식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적절한’ 방식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낯섦과 무지, 두려움이 차별과 혐오를 강화하는 핑계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재하는 타자를 만나 그의 삶을 가로지르는 맥락을 접하게 되는 순간, 무차별적이고 납작한 혐오는 불가능해진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저서 『편견』을 통해 ‘차별과 편견의 해소에는 피상적이지 않은, 지식과 친분을 동반한 긴밀한 접촉이 기여한다’고 언급했다.25) 그저 스치듯 만나거나 자주 만나더라도 대화가 없는 경우, 혹은 미디어로만 접한 모습 대신 친구, 동료, 이웃으로서 만나게 되었을 때 차별, 편견, 혐오는 감소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극우화에 대해 진행한 한 설문조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되기도 했다. “30대에서는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과의 교류가, 70대 이상에서는 낯선 타인과의 대면 접촉이 극우 성향을 완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극우 성향이 일부 연령대에서 사회적 관계의 양상과 연관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사회적 고립이나 제한된 교류가 특정 성향 강화와 관련될 가능성을 시사한다.”26) 우리 사회의 여러 균열도, 서로를 ‘알고 만나는’ 과정을 통해 적어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는 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미래의 ‘우리’를 향한 길

2.png ▲ 청소년 독립언론 ‘토끼풀’ 로고 Ⓒ토끼풀

서울시 은평구 중학생들이 자율적으로 모여 제작하는 청소년 독립언론 『토끼풀』이 2025년 12월에 발간한 사설에는 놀라운 내용이 담겨 있다. 12·3 불법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던 한 학생과 세 시간에 걸친 대화 끝에, 그가 ‘계엄은 내란’임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간 『토끼풀』을 향해 ‘좌파 언론’이라며 비논리적이고 일방적인 공격이 들어오는 경우는 많았지만, 정작 토끼풀 측에서 요청한 만남에 응한 이는 그 학생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결국 그의 벽은 “‘키보드 배틀’이 아니라 마주앉아 나누는 밥 한 끼와 차분한 대화로 깨졌”다.27)

이 사례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극우 세력도 ‘변할 수 있다’? 그보다는, ‘진정으로 공동체를 위한 것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일 것이다. 본인이 어떤 정치 성향을 가졌건, 어떤 사회적 내집단에 속해 있건, 어떤 반향실에 갇혀 있건 간에, ‘내게 익숙한’ 울타리에서 벗어나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나아가는 단계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물론 동등하고 ‘안전한’ 민주적 공론장을 형성하는 과정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할 테다. 그 과정은 절대 빠르고, 쉽고,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며, 세상을 이분법으로 갈라 누군가를 삭제하거나 배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 또한 아니다. 민주주의는 느리고, 복잡하며, 때로는 답답할 만큼 지루한 절차를 거쳐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고 함께 살아가는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는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선을 긋기 위한 정의定義가 아닌, 공존을 위한 정의定義의 이름으로.


1) 배시은. 「이민자 추방 요원들 FBI 요원보다 많아질 것···트럼프 행정부, 반이민정책에 234조 배정」, 『경향신문』, 2025.07.13.

2) 강태화. 「美이민단속국 총에 37세 여성 사망…트럼프 “급진좌파 때문”」, 『중앙일보』, 2026.01.08.

3) ‘극우’를 정의 내리는 시각은 학자, 또는 국가나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정치적 성향 중에서도 “한 사회에서의 다양성을 거부하며, 사회적 순수성을 강조하고, 내집단이 공유하는 공동의 가치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상적인 공동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을 표적으로 삼아 배척하려는” 극단적 보수·우파 성향 또는 그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세력으로 볼 수 있다. 극우 이념의 토대에는 ‘급진적 보수주의(반자유주의)’, ‘극단적 국가주의(권위주의)’, ‘배타적 민족주의(다양성 배척)’, ‘원리적 종교주의’ 등이 있다.
파시즘은 좁은 의미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특히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나타난 정치 운동과 체제를 뜻하는데, “대중 정치와 대중 동원에 기초하여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주장하며,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독재 정치를 공공연히 주장”한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즘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하며 끝났지만, 인종주의, 인명 경시, 극단적 민족주의와 민족적 차별, 과도한 지역주의와 지역적 차별,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를 이유로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 및 권리 부정 등의 형태로 변형되어 21세기인 현재 세계 곳곳에서 다시금 나타나고 있고,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뉴닉. 극우가 뭐야? 뉴스에서 말하는 극우의 정체[공식 웹페이지], 2025.08.05.
우리역사넷[공식 홈페이지], 발행일 불명.

4) 트럼프는 과거 미국 민권운동의 성과인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정책’을 “능력에 기반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취임과 동시에 폐지했으며, 국제법과 타국의 주권을 대놓고 무시하고, 과거 서구 열강의 식민지처럼 ‘영토 확대’를 강조하거나 힘이 약한 국가를 압박해 이익을 챙기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미향. 「트럼프 정부 ‘DEI’ 폐기 맞춰…글로벌 기업들 여성할당제 폐지 움직임」, 『한겨레』, 2025.05.11.

조준형. 「[트럼프1년] 거침없는 돈로주의…힘 앞세우고 ‘국제법도 없다’」, 『연합뉴스』, 2026.01.14.

5) 아이러니하게도, 바이델은 현재 스리랑카 출신 동성 파트너와 두 아들을 두고 있다.

고동욱. 「나치 판사의 동성애자 손녀…46세 극우 대표, 獨 정치판 중심에」, 『연합뉴스』, 2025.02.24.

6) 홍석재. 「다카이치 ‘일본인 우선주의' 시동…‘체류 외국인 총량제’ 검토」, 『한겨레』, 2025.11.06.

7) 흥미로운 점은, 현대 극우 정치는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친근하고 ‘진보적인’ 이미지를 전유하는 전략을 펼치기도 한다는 점이다. 여성의 권리와 안전을 내걸고 이민자 배척이나 공권력(치안) 강화를 정당화하는 내셔널리즘에 이용되는 것을 뜻하는 ‘페모내셔널리즘(Femonationalism)’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수용하는 듯하면서 이를 국가주의, 민족주의, 제국주의와 결합해 오히려 그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호모내셔널리즘’ 등이 그 예시다.

모리노 사키. 「참의원 선거 약진한 극우정당, 여성 당원이 왜 많을까?」, 『일다』, 2025.11.14.

본지 89호의 「퀴어한 신체의 무기화」 참고.

8) 신광영. 「극우는 누가 왜 어떻게 만드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5.12.24.

9) 가장 자주 표적이 되는 집단은 민족적·종교적 소수자, 성소수자, 이민자, 여성, 장애인 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 등이다.

한미애. 「[기획2] 극우주의와 혐오」, 『참여연대』, 2025.04.01.

10) 2025년 5월, 연세대학교 복지국가 연구센터와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팀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21%가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연세대학교 복지국가 연구센터. 「[기획] 수면 위로 떠오른 극우 – 한국 사회 극우의 현주소」,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2025).

11) 박주연. 「‘동성애 반대’, ‘안티 페미’ 내걸고 세력화한 극우」, 『일다』, 2025.03.27.

12) 김예슬. 「[전문] 내란특검 “반대세력 제거, 권력 독점·유지 목적으로 비상계엄 선포”」, 『동아일보』, 2025.12.15

13) 코트워치. 「[KINN] 서부지법 폭동 재판① : 법원을 공격하다」, 『뉴스타파』, 2025.10.13.

14) 김가윤. 「이화여대생 멱살 잡은 극우 유튜버…“너 페미냐” “나 사랑해?”」, 『한겨레』, 2025.03.01.

15) 윤석열이 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해 중국을 끌어들인 뒤부터 ‘반중’ 정서를 넘어선 중국 혐오 정서가 급격히 확산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조성우. 「중국인 혐오가 정의와 애국?」, 『대학신문』, 2025.06.01.

16) 혹자는 한국 사회의 ‘혐중’ 시위로부터 십여 년 전,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혐오 표현 방지법)’ 통과의 시발점이 되었던 ‘혐한’ 시위와 이들에 대항한 시민 연대를 떠올리기도 한다. 2013년,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들의 모임)’ 등 ‘혐한’ 시위대는 한국을 반대하는 것이 아닌, 일본의 한인 타운을 찾아가 재일한국인을 겨눈 혐오 시위를 벌였다. 이들에 대항하여 ‘반민족주의 행동집단’이라는 시민 연대가 조성되었고, 이들의 적극적·지속적인 행동을 계기로 2016년 5월 일본에서는 혐오 표현 방지법이 통과되었다.

김영화. 「‘혐한’에 맞선 일본인들이 한국의 ‘혐중’을 보며」, 『시사인』, 2025.11.18

17) 한국 사회의 극우 문제를 연구해 온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층의 극우화와 중국 혐오 양상에 대해 “중국에 부정적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건 개인의 선호나 의견에 가깝다. 그런데 최근 극우 세력이 극우적 주장과 개인의 선호로 보이는 주장을 의도적으로 모두 활용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는 극우 집단에 동조하는 심리적 문턱을 낮추고 이에 동조하는 이들이 스스로 정당화할 명분을 제공하는 효과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화빈. 「“우린 극우가 아냐” 이대남과 차원이 다른 대학가 윤어게인」, 『오마이뉴스』, 2026.01.12.

18) 특히 최근 노년층을 넘어 청소년·청년층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지는 ‘극우 유튜브’는 해당 세대에게 익숙한 저격, ‘좌표 찍기’, ‘밈’ 등의 온라인 문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들은 ‘내 편’과 ‘네 편’을 갈라 ‘외부의 적 때리기’ 전략을 펼치고, 페미니즘과 여성을 공격하거나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 관계를 교묘하게 비트는 등 왜곡된 인식을 ‘친근하게’ 주입한다.

송주용. 「페미니즘 때리면 구독자 오른다...10대 파고드는 극우 유튜버들」, 『한국일보』, 2025.09.03.

19) 김영화. 「교문 앞까지 찾아온 혐오… 최전선에 선 구로중학교의 분투기」, 『시사인』, 2025.11.18.

20) 난다. 「[글지음][교육 웹진 민들레] 과연 학교는 극우가 아니었나」,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2025.11.18.

21) 권도연 외. 「[뉴스][청년극우 연속기획②] ‘혐오·차별이 정치 밖으로 번질 때’, 극우 정서의 작동 방식」, 『대학주보』, 2026.01.07.

22) 신진욱·이세영. 「‘태극기’ 극우, 그 섬뜩한 평범성」, 『한겨레21』, 2022.11.18.

23) 구정모. 「[팩트체크] SNS 알고리즘이 극단화 야기?…‘필터 버블’ 실제 존재하나」, 『연합뉴스』, 2025.09.26

24) “밀폐된 시스템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으로 인해 신념이 증폭되거나 강화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조진형·김규정. 「소셜미디어에서 에코챔버에 의한 필터버블 현상 개선 방안 연구」, 『한국콘텐츠학회』, 제 22-5호 (2022), 57쪽.

25) 고든 올포트. 『편견』, 교양인, 2020, 415~445쪽. 참조

26)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연세대학교 복지국가 연구센터. 앞의 글

27) 해당 학생은 인스타그램 등 또래 집단이 많이 사용하는 SNS에서 주로 뉴스를 접하며, 근거 없는 가짜뉴스를 믿고 있는 상태였다. 부모님이 네이버 앱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아, SNS에서 접한 정보의 사실 여부를 검색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문성호. 「‘윤어게인’ 만나 밥 한끼...희망 보였다」, 『토끼풀』, 2025.12.01.




참고문헌

강태화. 「美이민단속국 총에 37세 여성 사망…트럼프 “급진좌파 때문”」, 『중앙일보』, 2026.01.08,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95997(2026.01.10. 접속).

고동욱. 「나치 판사의 동성애자 손녀…46세 극우 대표, 獨 정치판 중심에」, 『연합뉴스』, 2025.02.24, https://www.yna.co.kr/view/AKR20250224073500009(2025.01.11. 접속).

교지편집위원회 근맥. 『근맥』 89호, 퀴어한 신체의 무기화, 2025

구정모. 「[팩트체크] SNS 알고리즘이 극단화 야기?…‘필터 버블’ 실제 존재하나」, 『연합뉴스』, 2025.09.26, https://www.yna.co.kr/view/AKR20250925105900518(2026.01.14.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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