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호][사회] 등잔 밑이 어둡다

티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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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자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근맥(이하 ‘근맥’)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1일, 근맥의 90번째 교지가 발간됐다… 이중 최근 온라인 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파묘' 행위를 다룬 기사는 독자들에게 큰 반응을 얻은 한편,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주제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해당 글을 작성한 티라노 위원은 파묘가 정당한 행위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물의를 일으켰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해 보자…

XXXX.XX.XX. 에브리타임 뉴스 김단죄 기자


보내는 이 : geunmaek@ducksung.ac.kr

안녕하세요. 티라노입니다. 제 글을 소재로 기자님이 집필하신 기사 잘 봤습니다. 다만, ‘파묘’에 관하여 다시 생각해 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메일 보냅니다. 다소 긴 글이 되겠지만 끝까지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파묘요

먼저 파묘라는 단어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근래 온라인에서 ‘파묘’라는 단어를 많이 보셨을 겁니다. 파묘는 본래 묘를 옮기거나, 고쳐 묻기 위하여 파내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콘텐츠나 인물 뒤에 붙어 과거를-그것은 정보, 행보 혹은 단순히 지칭하는 것 그 자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발굴한 행위 자체에 대한 비유적 의미의 신조어로 많이 쓰입니다. 이는 단순히 ‘관심을 주는 것’과 조금 다른 행위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파묘 뒤에 추가로 붙는 단어인 ‘재조명’까지 함께 본다면 보다 쉽게 이해하시라 생각합니다. 지나간 것에 다시 한번 서사를 부여하고, 평가하는 이 행위는 긍정과 부정, 두 가지 맥락으로 함께 쓰입니다. 그러니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제가 앞으로 말하고자 하는 파묘는 부정적인 맥락에서 쓰이는 행위를 특정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온라인, 특히 뉴스 기사에서 ‘파묘’라는 단어를 많이 보셨을 겁니다. 특정 인물의 뒤에 붙어 논란이 있음을 나타내는 뉘앙스는, 기사 전문을 보지 않아도 그 내용이 우호적이진 않겠다는 것이 유추됩니다. 실제로도 현시점에서 발생한 특정 사건이나 주장을 기점으로 그와 얽힌 모든 과거를 들추는 내용이 대부분이지요. 이처럼 과거 행적을 ‘파헤치고 전시하는’ 행위는 어쩌다 일어나는 것일까요. 저희는 지금부터 자세한 이해를 위해 장안의 화제였던 ‘애라이 사건’1)의 타임라인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ㅍ해당 사건의 시작은 한 기자가 올린 기사에서 시작됩니다. 제목은 “날이 갈수록 흐려지는 저작권 의식…인플루언서까지”. 기사의 주 내용은 저작권 침해 이야기를 하며 불법 사이트 이용자 수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스쳐 지나갈 법도 한 사회면의 기사는 SNS에 올라온 글 하나로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익명 1
엥 뭔 인플루엔자2) 불싸 이용자라는디?(사진 첨부)


뭐? 돈도 많이 벌고, 영향력이 큰 직업을 가진 사람이 불법 사이트 이용이라니. 사람들은 분노하며 인플루언서의 정체를 ‘궁예’3)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불법적인 일을 하였고, 이는 ‘지탄’받아 마땅한 불법적인 일을 하였기에 어서 정체를 밝혀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 와중에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단순히 인플루언서라고 뭉뚱그리며 신분을 감추어 주다니. 이제 알 권리는 우리 손으로 찾아야 합니다! 이러한 시민들의 의지는 여러 번의 억측과 피해를 발생시키기도 했지만,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성공적인’ 추측에 도달했기 때문이죠.


ㄴ 익명 5 ㅇㄹㅇ 아님? 걔 전에 라방4)에서 뭐 보여주겠다고 모니터 화면 비추다가 캡박5) 돌았자네
저거 불싸 아니냐고


사람들은 애라이를 향한 원색적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익명 13
얘 지 입으로 시네필6)이라고 하지 않았음? 불싸로 영화 보는 시네필 ㅅㅂㅋㅋ
ㄴ 익명 14
이거임 근데 불싸로 안 봤어도 스스로 시네필 어필한 거 짜치긴 함 애라이=시네필 이거는 불싸 여부가
문제가 아니죠 (동영상 첨부)


흥미로운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처음에 문제시했던 것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들은 입 모아 외쳤습니다. ‘어쩐지 전부터 싸했어!’ 이제 불법 사이트를 이용했다는 사실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습니다. 그것을 제외하고도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는데, 이 기회에 전부 밝혀져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어느새 사람들은 애라이의 부도덕함을 확인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렇기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애라이의 해명을 들어주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이후 이는 사실이 아니었음이 공식적으로 밝혀졌지만 사과하거나, 반성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미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 뒤였거든요. 시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애라이와 관련된 게시글에는 불법 사이트 이용자 아니냐는 댓글이 달립니다. 사건의 마무리를 아는 사람마저 얼마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앞서 예시로 든 ‘애라이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듯이 파묘는 ‘알 권리’를 표방하며 정당화됩니다. 특정 인물이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거나, 적어도 논란이 있던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과거와 ‘논란’에 대해 시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고 말이죠. 여기서 권리의 대상은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두가 포함됩니다. 그렇기에 ‘공론화’ 과정은 필수가 됩니다. 공론장은 그 즉시 사적 제재의 장으로 변합니다. 그러나 사적 제재로 끌고 올 만큼 잘못이 정말로 존재하였을까요. 그들은 결론 아래 모든 과거 행적을 팝니다. 비판의 대상이 되게 한 원인과 그 후 억지로 짜인 맥락 아래 놓인 그간의 행적 말입니다. 비판이 시작되었던 최초의 원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이때쯤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맥락을 삭제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자르고 붙이며 편집하는 행위를 통해 문제가 될 법한 장면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에는 사실과 거짓이 교묘하게 섞여 있습니다. 거짓은 사실인 것처럼 왜곡하고, 사실은 과장합니다. 이는 타인을 비난하고 싶은 욕구를 정당화하기 위함입니다.


실은

물론 잘못이 있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잘못의 여부는 단순히 파묘 행위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논해지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여기서 질문을 좀 더 확장해 보겠습니다. 왜 잘못한 행위에 성장의 가능성은 포함되지 않나요. 앞서 살펴봤듯 파묘의 모든 과정은 증거 아래 이루어집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때 고려되는 건 의도적으로 편집된 맥락과 증거뿐입니다. 그 증거는 돌이켜 볼 수밖에 없는 시점에 고정된 특정한 순간이 주기적으로 ‘끌올’7) 되는 종류의 것이죠. 누군가 잘못-그저 비위에 거슬리는 모습-을 저지른 순간, 과거는 판결을 위한 증거 자료로서 소환됩니다. 그렇게 다시 사적 제재를 위한 공판이 시작되죠. 그때와 하나도 변한 게 없다고 말입니다. 얼핏 보면 이 말은 성장했음을, 과거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었기를 바라는 기대가 내포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말 그의 성장을, 변화를 바랐을까요? ‘성장’을 논하는 이 말에는 역설적으로 성장을 고려하지 않음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변함없이 나쁜 놈이었네? 그러니 네게 어느 수위의 처벌이 가해지든 그것은 정당하고 감수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모든 게 이미 판단 내린 결론으로 수렴하는 것이 전제됨 속에서 변화 가능성은 쓸모를 잃습니다. 그리고 공격의 좋은 빌미가 되지요.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이때싶’8)도 용인되거든요. 이렇게 ‘순간’은 ‘평생’이 되고, 가능성을 삭제한 평가는 인간을 행위가 아닌 표본으로 환원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변화 없이 ‘나쁜 놈’으로 남아야 비난은 비로소 비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9)

‘대중 여론’에 의해 상대방은 매장당해 마땅한 존재로 규정되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진실’을 검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렇게 진실이 검증되지 않아도 무방한 구조 속에서, 비난은 점차 억지스럽고 자극적인 형태로 변형됩니다. 불법 사이트 이용 여부로 비판을 받다 일거수일투족으로 무분별한 공격을 받은 애라이처럼 말이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억지스러운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좀 웃고 넘길 수 있는 일 아닌가요? 원인제공은 당사자가 했다는 사실은 ‘팩트’이기 때문입니다. 진짜여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입니다. 가끔 정보 프로파일링을 통한 신상 털기도 이루어지긴 하지만,10) 이 또한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개인정보-미약한 정보를 토대로 게시하지 않은 정보까지 끄집어냈다는 것은 중요한 지점이 아닙니다-가 담긴 글을 스스로 인터넷에 올린 그 사람의 문제니까요.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이 모든 과정에서 일어나는 유책 사유는 오로지 당사자에게 있습니다.


잣대

어떤 파묘는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또 어떤 파묘는 비판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답을 확실하게 제시할 수 없을 만큼 기준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잘못이 있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정당한 비판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 잘못의, 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윤리적인 모순은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요? 파묘 하는 사람들은 개인이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처벌을 가하는 행위의 정당성에 관한 문제는 애초에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파묘라는 징벌의 도덕을 왜곡할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입니다.11) 저는 단순히 특정 인물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특정인을 사적 제재의 장으로 올리는 과정과 명목이, ‘파묘’라는 행위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잘못이 존재하더라도 그를 파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둘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파묘에서 가장 심각하게 작동하는 문제는 책임의 실종입니다. 사람들은 파묘를 행한 뒤 특정인을 향해 ‘책임을 져라.’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책임이란 단순한 사과나 공개적인 고개 숙임이 아니라, 자기 행동이 만들어 낸 결과를 끝까지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파묘에 가담한 이들 또한 자신이 문제 삼았던 사안의 끝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삭제되었던 맥락이 복원되고, 왜곡되었던 사실관계가 바로잡히는 때에는 이미 관심도, 클릭할 이유도 사라졌으니 굳이 마무리를 볼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렇다면 책임져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책임져’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파묘에 가담한 자들에게 돌아갑니다. 하지만 무수히 많았던, 그렇기에 집단이 됐던 이들 중 누구도 그 책임을 맡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은 책임을 져야 할 순간 누군가를 다시 파묘할 뿐입니다. 반성은 없고 합리화만 가득한 이 굴레에서 윤리적인 허들은 점점 낮아져 갑니다.


빛은 빚으로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주변을 밝히는 등잔의 밑은 불과 가장 가까움에도 그 빛이 닿지 않습니다. 빛과 대조되는 어둠은 한없이 까매져 모든 걸 가리기 좋고, 그 안에 든 것을 망각하기에 좋은 사각지대로 남습니다. 정말 모든 게 재조명되는 시기입니다. 연예인의 과거, 언행이나 일반인의 과거 게시글까지. 그 조명 밑은, 그러니까 조명이 가능케 했던 비윤리적인 영역까지는 빛이 닿지 않습니다. 저 또한 여전히 무엇이 ‘파묘’에 해당하고, 무엇이 ‘정당한 비판’에 해당하는지, 정확한 답을 내리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압니다. 도덕적 잣대와 무결을 상대에게 들이대며 나는 사각지대로 들어가 그 기준에 넣지 않으려는 것이 창피함을 압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응징보다는 창피함이, 부끄러움이 당연한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1) 필자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만들어 낸 가상의 인물과 가상의 사례.

2) 인플루언서를 지칭하는 말.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인플루엔자, 즉 독감과 같이 끈질기고 해악을 끼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

3) 불충분한 상황에서 개인의 의도를 임의로 추정하고 단정하는 행위를 뜻하는 표현. 드라마 태조 왕건 속 궁예가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고 주장했던 데서 유래했다. 주로 사실 확인 이전에 추측을 확대·재생산하는 행태를 비판적으로 지칭할 때 사용된다.

4) 라이브 방송의 줄임말.

5) 캡처 후 박제의 줄임말.

6) 영화(Cinéma)와 사랑(Phil)이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로 영화광을 나타내는 말.

7) 끌어서 올리다의 줄임말.

8) 이때다 싶을 때의 줄임말.

9) 이진송. 「‘벗방’ 했으면 가짜 레즈비언인가···그 인생을 물어뜯을 자격 있나」, 『경향신문』, 2025.05.08.

10) 서이종, 손준우. 「“신상털기” 현상과 배태된 프라이버시 : 일상화된 정보 프로파일링과 공사의 경계변동」, 『사이버커뮤니케이션 학보』, 제 28-4호 (2011), 57-59쪽.

11) 권하나, 정정주. 「현대판 마녀사냥을 유발하는 기제에 대한 비판적 담론분석 : 배우'고(故) 이선균'사건 언론 및 미디어 보도 중심으로」,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 17-1호 (2024), 138-139쪽.




참고문헌

권하나, 정정주. 「현대판 마녀사냥을 유발하는 기제에 대한 비판적 담론분석 : 배우‘고(故) 이선균’사건 언론 및 미디어 보도 중심으로」,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제 17-1호 (2024), 129-166.

서이종, 손준우. 「“신상털기” 현상과 배태된 프라이버시 : 일상화된 정보 프로파일링과 공사의 경계변동」, 『사이버커뮤니케이션 학보』, 제 28-4호 (2011), 49-87.

이진송. 「‘벗방’ 했으면 가짜 레즈비언인가···그 인생을 물어뜯을 자격 있나」, 『경향신문』, 2025.05.08, https://www.khan.co.kr/article/202505080600051/?utm_source=twitter&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2025.01.15.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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