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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Hysteria)
: 정신적・심리적 갈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신경증으로, 이상 성격을 의미하기도 한다.
‘노처녀’와 한 세트로 자주 묶이는 이 단어는 여성을 비이성적이고 결핍된 존재로 곧잘 규정한다. 히스테리는 자궁을 뜻하는 그리스어 ‘히스테라(Hystera)’에서 파생된 단어다. 오늘날 히스테리는 정신질환이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원래는 ‘성적(性的)으로 만족되지 않은 자궁이 몸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증세’를 가리켰다. 어원을 보니 히스테리의 용례가 저 모양인 이유를 알 만도 하겠다. ‘통제 불가한 짐승’과도 같은 것이 여성의 몸에 있다는 걸까. 피를 내보내기도 하는 이것은 곧 여성의 ‘동물성’과 ‘열등함’의 상징이었다.
“월경하는 여자의 접촉으로 인해 과일이 열리지 않고, 새 포도주는 말라버리고, 풀들은 죽고, 나무는 과실을 잃고, 녹이 철을 망치고, 공기는 어두워진다.”
- 12세기 이탈리아 법학자 파우카팔레아
옛날 사람들은 상상력이 꽤나 풍부했나보다. 이쯤 되면 『월경신화』라 불러줘야 하는 게 아닐까. 문화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는 이 같은 월경에 대한 터부의 보편성을 ‘월경 오염(menstrual pollution)’¹ 개념의 결과라고 봤다. 월경오염은 월경하는 여성을 일하지 못하게 하는 근거로 기능하기도 했다. 가령 과일이 상할 수 있으므로, 포도주 맛이 상할 수 있으므로 여성들은 과일을 재배하거나 포도주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분히 의도적인 신화가 아닐 수 없다. 놀랍지 않게도 수십 세기 전에 탄생한 신화는 21세기까지 그 명맥을 잇는 데 성공한 듯하다. 오늘날까지 삶의 이곳저곳에 의도적인 환상이 침투해 있다. 일단 ‘너 그날이냐?’가 지금도 쓰인다.
모순덩어리 ‘월경’
여성혐오가 반영된 것으로 추론되는 망상은 월경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이 때문에 월경은 사회문화적 현상이 되었다. 동물성, 불결함, 열등함의 상징이자 성숙함, ‘진짜’ 여성으로 거듭난 징표 따위가 되었다. 이름마저 모호해졌다. ‘생리’, ‘마법의 날’, ‘대자연’, ‘그날’ 등 월경을 월경이라 부르지 못한다. 은어가 본래의 단어를 대체하면서 월경은 왠지 감춰야 할 것,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것, 티 나지 말아야 할 것이 되었다. 일상적인 ‘생리현상’이 에둘러 표현되는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월경은 모순이 덕지덕지 붙은 모호한 ‘무언가’가 되었다. 모순이 갖는 양면성은 입맛에 따라 월경의 의미를 새로 정했고 이는 차별을 낳았다.
모순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고 이에 따른 차별 또한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여기서는 편향된 일상성 인정으로 인한 무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월경의 일상성이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무지를 낳았다. 월경인이 월경에 대해 모르고, 여성이 여성의 몸에 대해 모르는 현실이 만들어졌다. 문제는 이 때문에 여성들은 당사자 권리를 행사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자궁에 대한 무지를 예로 들어보자. 자궁에 대한 무지는 월경통에 대한 무지로 이어질 수 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본인 자궁 내벽의 두께나 자궁의 크기를 모른다. 문제는 자궁 내벽과 큰 자궁은 심한 월경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여성들이 자궁벽이나 자궁크기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여성 몸에 대한 무지란 ‘몰라도 되었던’ 게 아니라 ‘몰랐어야 했던’ 사회적 맥락이 작용한 결과가 아닐지 짚어보고자 한다. 무지는 심한 월경통의 생물학적인 원인이 짐작되지도 못한 채 ‘운이 안 좋아서’라는 추측으로 대체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무지로 인해 월경통이 공결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가령 월경통은 자연히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 유별난 꾀병으로 보일 수 있다. ‘운’이라는 불분명한 원인은 업무나 학업 수행을 곤란하게 하는 통증 크기의 존재를 지우곤 한다.
이 같은 몸에 대한 무지의 여파는 월경공결제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비자발적 무지는 여성 삶의 질이 개선될 가능성을 제한한다. 일단 통증의 원인을 알아야 약물이나 한방치료 따위의 대응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원인이 ‘운’에 있다면 방법을 찾을 시도조차 무산되기 쉽다. 하지만 공인 받은 지식을 배울 수 있는 학교의 성교육은 월경을 임신실패의 산물로 정의하는 데서 그치는 게 현실이다. 여성들은 사실인지 미신인지 알 수 없는 월경에 관한 소문과 다른 여성들의 경험담을 통해, 또는 직접 겪으며 대강 감으로 월경을 알아갈 수밖에 없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여성은 피를 흘려왔지만, 아직도 ‘감각’이 여성 몸에 대한 앎에 있어 정확한 데이터나 사실을 대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생리대 파동: 무지와 무관심
2017년은 여성 보건에 관한 무지와 무관심이 세상에 드러난 해였다. 그해 이른바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 사건이 일어났다. 2014년 이후 국내 시중에 유통된 월경대 666개 제품 중 약 97%에서의 발암물질 검출 사실이 밝혀졌다. 유기농 표시가 된 137개 제품 중 20개에서는 1급 발암성 물질 벤젠이 검출됐다. 해외직구 제품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유해물질과 월경 부작용의 연관성에 관해서는 학계를 비롯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 식약처와 월경대 제조업계에서는 월경대 제조 과정에서 환경유해물질 자체를 제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일단 부작용 여부는 차치하고 주목할 만한 것은 식약처의 대응이다. 식약처는 2017년 3월 ‘여성환경연대 생리대 유해물질’ 발표 이후에도 별 대응 없이 방관하다 수개월이 지나서야 여론의 뭇매를 맞고 문제의 제품을 조사했다. 이후 “VOCs(휘발성유기화학물) 검출량이 우려할 정도로 위해한 수준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해명요구는 여전히 제기되고 있으나 식약처는 같은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먼저, 여성들이 이 사실을 왜 이제야 알아야 했는지 의문이 든다. 일회용 월경대가 사용된 지 50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기준치를 넘고 안 넘고를 떠나서 소비자 권리와 월경권 보호를 위해 유해물질이 사용됐다는 사실은 진작에 밝혀졌어야 했다. 두 번째 의문은 그걸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다. 환경부가 2018년 12월에 발표한 ‘일회용 생리대의 건강영향 예비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생리통, 외음부 통증, 가려움증, 생리량 변화 등이 일회용 월경대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처’라는 국가기관의 권위에 의지한 믿음마저 흔들리는 조사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하지만 식약처는 여전히 안전성을 입증할 만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화학물질을 제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어쩔 수 없으니 그저 식약처를 믿고 따르라는 것일까. 월경대 안전성은 여성들의 건강권과 맞닿은 사안이다. 그 무게에 적합한 대응이었는지 의문이다.
식약처의 주장 뿐 아니라 안전성의 근거가 된 식약처의 연구자체에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일단 해명 요구에 대한 식약처의 답변이 충격이다. 식약처는 연구 과정에 문제를 제기 받았을 때 '해외논문에도 나와 있다'거나 '자문기구의 검토를 거쳤다'는 답변만을 내놓았다. VOCs 위해평가의 기준 근거가 도마에 올랐을 때는 "개별 VOC에 대해 미국 환경보호청, 미국 독성물질 및 질병등록청, 세계보건기구 화학물질안전국제프로그램(IPCS) 등의 독성연구자료를 토대로 외부전문가 평가를 통해 설정"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권위에 호소할 뿐, 구체적인 검토의 근거와 내용이 없다. 여성들의 안심과 신뢰를 바랐다면 외부전문가들의 평가가 왜 믿음직한지, 그들이 내린 판단의 근거는 무엇이었는지, 어떤 자료를 어떤 원칙에 따라 어떻게 수합하고 적용했는지를 공개해야 했다. 이는 신뢰도뿐 아니라 여성 보건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다.
물론 파동 이후 대처가 이뤄지기는 했다. 약사법 개정에 따라 식약처는 2018년 10월부터 ‘생리대 전 성분 표시제’를 실시하고 VOCs 저감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처의 실효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먼저 소비자들은 제품에 사용된 모든 성분이 표시된다고 하더라도 안전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각 성분이 일으킬 수 있는, 혹은 성분이 합쳐짐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판매·제조 업체는 성분을 허위 기재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2020년 5월에 한 제품의 성분 허위 기재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 있었다. 해당 제품은 2017년 파동 당시 ‘유기농 월경대’로 인기를 끌었던 제품이었다. 식약처는 해당 제품 업체가 11년간 화학합성 성분을 자연 성분이라고 허위 신고 및 광고했음을 밝혔다. 주목할 점은 허위기재가 식약처의 자체 조사가 아닌 제보에 의해 밝혀졌다는 것이다. 해당 제품 업체는 2006년 최초 품목신고 당시의 기준으로 신고를 허가받았다고 주장했다. 허위기재가 정말 사실이라면, 식약처는 10년이 넘도록 허위기재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 셈이다. 월경대 품목신고부터 유통 이후 관리 및 감독까지 책임진다는 식약처의 책무 수행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이 사건은 여성이 월경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명백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월경인들은 ‘유기농’, ‘프리미엄’이라는 광고 문구나 국가기관의 검토에 안전을 기대기도 어려워진 듯하다. 과연 여성의 보건이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내맡겨져서야 되는 것일까?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월경신화』가 만든 세계관이 아직 건재한 이 나라는 변화보다는 변화의 필요성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보다 앞선 변화가 사회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여성을 위한 다양한 선택지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중 몇 가지를 아래에 소개했다. 이 선택지들이 월경인들의 건강한 월경권 행사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여성 본인을 위한 선택이 당연해진 앞으로의 사회를 기대하면서 글을 마친다.
1. 핸드메이드 탐폰
직접 만들어 재사용할 수 있는 탐폰이다. 재료는 울 또는 면으로, 직사각형으로 펼칠 수 있다. 천을 돌돌 말아 탐폰 크기로 만든 후 질에 삽입하여 사용한다. 면 생리대보다 부피가 작아 관리에 용이하다.
2. 해면탐폰
재사용이 가능한 탐폰이다. 가공을 거치지 않아 인체에 무해하다. 적절한 크기로 잘라 물에 적신 뒤 질에 삽입하여 사용한다.
3. 질 세정기
월경 잔혈이 많을 때 유용한 월경용품이다. 탐폰처럼 용기를 질에 삽입하여 사용한다. 용기 내 젤이 자궁 벽에 있는 혈 찌꺼기와 함께 배출되어 월경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4. 월경컵
질에 삽입해 월경혈을 받아낼 수 있도록 만든 실리콘 재질의 월경용품이다.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화학 성분제가 없어 일회용 월경대보다 안전성이 높다는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¹ 메리 더글러스는 ‘월경 오염’의 개념으로 인해 월경에 대한 터부가 인류 문화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는 자신의 저서 『순수와 위험』에서 월경이 무언가를(특히 성스러운 것을) 오염시키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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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빛나, 「[언박싱] 생리대 유해성분 또 논란…유해물질 없는 생리대 못 만드나」, 『헤럴드경제』, 2020.10.06
김수민・김효숙, 「[생리는 여성인권 ①] '깔창 생리대' 이후 5년…여전히 말뿐인 '지자체'」, 『데일리안』, 2021.06.05
김수민・김효숙, 「[생리는 여성인권 ③] 유명무실 생리휴가…남성 사업주 벌금내고 만다? 인식 개선돼야 제도 안착」, 『데일리안』, 2021.06.09
박이은실, 『월경의 정치학』, 동녘, 2015
이하나, 「"생리대는 필수품"… 여성 청소년에게 무상 지급 확산」, 『여성신문』, 2019.06.24
오마이뉴스 정보공개센터, 「평생 1만4000개 쓴다는 생리대, 왜 논란이냐면」, 『오마이뉴스』, 2021.01.22
윤혜연, 「배가 찢어질 듯한 월경통, 원인은 ‘이것’ 때문?」, 『중앙일보헬스미디어』, 2018.06.27
장수경, 「다시 생리대 논란...식약처, 제보만 받습니까」, 『한겨레21』, 2020.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