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호][여성] 잠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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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심해 속 날카로운 작살을 든 여자들이 헤엄친다. 바다 속에 더 깊이, 더 오래 머물기 위해 무거운 돌들을 매단다. 입가엔 그들이 내뿜는 공기 방울 몇 개만 떠다니고, 그 어떤 잠수 장비도 없다. 바다로 들어가기 전 크게 들이마셨던 숨 한번으로 오래도록 버틸 뿐이다.

잠녀(潛女). 제주도에서는 해녀를 물에 잠긴 여자라고 불렀다.



물에 잠긴 여자들


▲ 해녀의 연철. ⓒ국가기록원 여성기록 전시콘텐츠

해녀가 입는 고무옷은 차가운 물살을 오래도록 견딜 수 있게 도와준다. 다만 옷 안에 들어있는 스펀지 때문에 생기는 부력은 잠수의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해녀는 잠수 중 몸이 위로 떠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7~8kg 가량의 납덩이 ‘연철’을 주렁주렁 매단다.


심해에 오래 머물수록 손에 들린 수확물은 많아지지만, 이명이나 폐질환이 생길 확률도 높아진다. 그들의 건강에도 연철이 달리는 셈이다.







▲ 물질 후 숨 돌리는 해녀들. ⓒ정부기록사진집

16세기 후반, 전복을 포함한 귀한 해산물을 관에 진상¹해야했던 제주도 사람들은 가혹한 수탈을 겪었다. 수많은 제주 남자들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육지로 탈출하면서, 섬에 남은 여자들이 진상을 위해 물질을 도맡아야만 했다.² 현재 물질이 여성들만의 문화로 남은 이유다. 일하는 여성, 경제력을 갖춘 여성. 잠녀이자 가장으로 물질을 하는 여성. 해녀들이 모인 자리에 여성 공동체가 이루어졌다. 이들은 곧 제주 전역에 내려앉은 양성평등사상의 기반이 되었다.

고된 물질을 하고 나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은 모두 막역해 보인다. 그들의 관계는 각양각색이다. 어머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리고 오랜 친구들이다.

그들은 수탈의 역사를 밟고 지나와 생계전선 위에 섰다. 물질은 그들에게 있어 직업이 되었다. 해녀들은 자신의 가족, 그리고 스스로를 먹여살리기 위해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억척스러운’ 여자들이라는 이미지가 생겨난 것은 그 이후다. 새삼 당연한 이야기를 입에 올린 셈이다. 거세고 시커먼 물결일지라도 10m 넘게 헤엄쳐 들어가야 한다. 동료가 위험해보이면 신호를 보내기 위해 목청을 높여야하고, 발목에 엮이는 미역줄기를 떼어내기 위해 다리를 세차게 움직여야한다. 무거운 쇳덩이들을 매달고 쇠낫으로 물질해야한다. 오죽했으면 해녀들 사이에 ‘저승에서 돈 벌어다 이승에서 쓴다’는 속담이 만들어졌을까. 그들은 저승과도 같이 위험한 바닷속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자들이다. 고된 노동자로서 강해졌을 뿐이다.



숨 참는 여자들


▲ 태왁을 든 해녀들. ⓒ정부기록사진집

해녀들은 서로 간의 질서가 상당하다. 물질 기량과 경험에 따라 대상군,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뉜다. 대상군이 해녀 공동체의 우두머리다. 나이가 많다고 대상군이 되는 것이 아니다. 15m 정도의 깊이까지 잠수할 수 있어야 대상군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종종 해녀들은 대상군이 될 사람을 ‘하늘이 점지해준다’고 말하곤 한다.

하군은 5m, 중군과 상군은 10m 정도. 그 이상을 욕심부려도 스스로가 깊이를 감당할 수 없다. 타고난 기량에 노력을 더해가면서 숙련된 해녀로 거듭난다.

물질하는 영역이 나뉘면서 그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질서가 생긴다. 그러나 수직적 관계는 아니다. 상군에 속한 해녀들은 물질에 필요한 지식뿐만 아니라 해녀 문화에 대한 지식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전수한다. 해녀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애기해녀’들은 잠수법부터 시작해서 물질하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가르침을 받는다. 생사가 달려 있어 엄격하지만, 그만큼 걱정이 묻어나는 교육이다. 여성이 여성에게 전래하는 생존의 방식이다.

▲ 불턱에 모인 해녀들. ⓒ오마이뉴스

해녀들이 상군, 하군 상관없이 섞여 교류하는 장도 있다. 불을 지펴 몸을 녹일 수 있는 ‘불턱’이다. 그들은 불 주변으로 동그랗게 둘러앉아, 젖은 몸과 옷을 말리며 못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사이로 수많은 질문과 가르침, 위로, 시시콜콜한 농담과 격려가 오간다. 숨을 참아가며 저승에서 돌아온 동지들과 얼음장같은 몸을 부대낀 채 서로의 체온을 나눈다.

추위에 강한 고무옷이 도입된 후로는 불턱에 모여 몸을 녹이는 시간이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한데 섞여 교류하는 문화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2016년, 제주해녀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해녀 공동체만이 가지고 있는 여성 문화와 그들이 표방한 제주도민의 정신력과 정체성을 높이 산 까닭이다. 잠수를 앞둔 해녀들이 바다의 여신인 용왕할머니에게 안전을 기원하며 지내는 잠수굿³의 독특한 문화부터, 어촌계, 해녀회, 해녀학교와 해녀박물관 등 해녀의 역사를 이어가는 것들을 전 세계에 알렸다. 젊은 세대에게 해녀문화를 전승하는 움직임을 유산으로 남기고자 노력한 끝에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숨비소리 내는 여자들


심해에서 거슬러 올라와 바다 밖으로 얼굴을 내밀 때, 돌고래 울음소리처럼 높은 숨소리를 낸다. 해녀들이 물질하고 있는 바다 근처로 가면 들을 수 있는 휘파람같은 소리, ‘숨비소리’다. 빠르게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위해 거센 숨을 내뱉다보니 강한 소리가 나는 것이다. 한계가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만 더, 하고 버티는 순간 생사의 기로에 놓인다. 손 쓸 새도 없이 바닷물로 가득한 물숨을 들이키게 된다. 뿐만 아니다. 깊은 수심에서 수면으로 급하게 올라올 때 정신이 아득해질 수 있는데, 이때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생명을 잃는다. 해녀들의 고질적인 직업병인 잠수병⁴이다. 숨비소리는 그들이 압박으로 가득한 바닷속으로부터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는 신호이다.

잠녀 사진5.jpg ▲ⓒ미디어제주

고되고 위험한 노동을 이겨내기 위해서, 해녀들은 노래를 지어 불렀다. ‘해녀 노젓는 소리’가 대표적인 해녀 노동요이다. 과거에 해녀들은 일반적으로 테우⁵를 타고 노를 저어서 물질할 장소로 갔다. 바다에 뛰어들어 물질을 하고 나서는 다시 테우에 올라 노를 저어 돌아왔다. 두 사람이 노를 잡고 저어 나가면서 선소리와 그 모방창을 해 나가면, 테우에 동승한 다른 해녀들은 태왁⁶을 치면서 후렴구나 추임새를 넣었다.

▲ⓒ한국일보

위험천만한 바닷속으로 뛰어들어야하는 불안감과 걱정을 여흥구로 털어버리려고 했던 해녀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래는 그 가사다. 찬찬히 읽어보면, 그들의 삶을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다. 그들의 존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여싸나 이여싸나
요 넬 젓고 어딜 가리
진도나 바당 항구로 나게
요 네착을 심어사민
어신설움 절로나네
이여싸나 이여싸나
혼착 손엔 테왁 심엉
혼착 손엔 비창 심엉
혼질 두질 저승 길에
저승건 당 말리나 강산





¹ 진귀한 물품이나 지방의 특산물을 윗사람에게 바치는 행위

² 17세기 말까지 제주 해녀들은 미역이나 톳 같은 해초를 땄다. 진상할 전복을 캐는 것은 포작인(浦作人)으로 불리는 남자들의 일이었다.

³ 대표적으로 ‘제주 필머리당 영등굿’이 있다.

⁴ 흔히 감압병 혹은 잠합병이라고도 불리며, 갑작스러운 압력 저하로 혈액 속에 녹아 있는 기체가 폐를 통해 나오지 못하고 혈관 내에서 기체 방울을 형성해 혈관을 막는 증상이다.

⁵ 제주도 특유의 뗏목

⁶ 물질작업을 할 때 몸을 기대는 도구, 전통적으로는 박의 속을 파낸 후 구멍을 막아 사용함


참고문헌

강제윤, 「해녀는 있는데 왜 ‘해남’은 없을까」, 『한겨레신문』, 2010. 07. 21

박초롱, 「"욕심 부리면 죽는다" 제주 최연소 해녀가 말하는 해녀의 삶」, 「30년 해녀도 무섭다는 바다... 해녀 물질은 취미가 아니다」, 『오마이뉴스』, 20. 01. 0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해녀노래」

해녀박물관 홈페이지, 「해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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