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반갑습니다. 교지편집위원회 근맥입니다.
겨울옷을 입고 봄을 씁니다. 글을 쓰는 이 계절에서는 삭막한 것들이 당연합니다. 고요하고 건조한 기분을 만끽하니 초연해집니다. 이 글을 읽는 계절은 한없이 경쾌하겠지요. 숱한 추위를 견뎌온 생물들이 다시 고개를 들 것입니다. 요즘 시국에 다가올 계절을 미리 논한다는 게 부질없어 보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3월에만 느낄 수 있는 설렘과 미묘한 불안은 여전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3월은 푸르르길 바랍니다.
어릴 적 새로운 세상이라 하면 거대한 것들을 떠올렸습니다. 외계인 침공이라던가, 새천년이라던가 하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세상은 생각보다 수시로 찾아오더군요. 멈춰 서 둘러보지 않으면 그냥 흘러가 버려 모를 정도입니다. 그래서 겨울이라는 계절로 한 해를 여닫나 봅니다. 음량이 낮아진 회색 세상은 생각하기 좋은 온도를 만드니까요.
지난겨울 근맥 위원들은 새로운 세상 앞에 선 사람들을 담으며 지샜습니다. 그 흔적은 82호에 고스란히 묻어나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그 세상을 선택합니다. 지난해 덕성여자대학교는 새로운 총장을 선출했고, 올봄 대한민국은 앞으로의 5년을 결정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또 언젠가 우리는 그 세상을 발견합니다. 저 자신을 가둔 알을 깨고 나오기도, 벽인 줄만 알았던 곳에서 손잡이를 찾아 몰랐던 세상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그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부당한 현실을 끝내기 위해, 예견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끊임없이 담론합니다.
‘나는 23세기 사람들이 21세기 사람들을 역겨워할까 봐 두렵다.’ 소설 『목소리를 드릴게요』에 실린 <작가의 말>입니다. 근맥에 몸담은 2년간 수도 없이 느껴 온 불안이었습니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글을 쓰려는 건 억지에 갇힌 허상일까, 기사를 쓸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일곱 명의 근맥 위원이 머리를 맞대도 매일같이 새로워지는 사회는 배울 것투성입니다. 반짝이던 글도 낡은 글로 읽히는 날이 오겠지요? 그날이 온다면 더 나은 세상이 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지금은 그저 퇴고로 헤진 원고들이 오롯이 전달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제 저는 반가운 안녕을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 아쉬운 안녕을 고합니다. 외부인이 되어, 치열한 발행과정 대신 교지라는 결과물로 근맥을 만날 생각을 하니 시원섭섭합니다. 그래도 지나가던 구름은 계속 흘러가야겠지요. 여전하고 새로울 근맥을 기대하며, 한 명의 독자로 돌아가 학우 여러분과 함께 근맥을 응원하겠습니다.
봄호를 만들 때면 유달리 들뜹니다. 새로운 만남이 많아지는 탓일까요? 여러분의 시작에 어김없이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문득 근맥이 학교의 첫인상이었던 저의 신입생 시절이 떠오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근맥이 부디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올봄에는 학교에서 교지를 직접 가져가는 여러분을 볼 수 있겠네요. 부디 아무렇지 않게, 늘 그랬다는 듯 자연스럽게 집어가 주시길 바랍니다.
새로운. 새롭다. 반복할수록 더 싱그러워지는 단어입니다. 한껏 새로운 것들에 대해 떠들었지만 근맥은 한결같을 것입니다. 봄이 오는 기척이 보이면 흥얼대는 노랫말을 빌려봅니다. 근맥은 늘 봄에 서 있겠습니다. 그전까지 안녕하세요.
겨울에 봄을 쓰는 사람,
편집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