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호][사회] 못 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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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하다. 넷플릭스는 화면만 줄창 구경하다 도로 나와 버렸다. 갈 길이 너무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목표를 이루기까지의 지난한 여정을 지켜봐야 한다. 아, 귀찮아. 대충 클립 영상 몇 개 보면 친구들과 수다는 떨 수 있을 것이다. 책도 유튜브로 보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가 아닌가. 영상 하나면 10분 만에 책 한 권을 ‘뚝딱’ 해치울 수 있다. 잠깐, 추천 영상에 작고 귀여운 얼굴이 보인다. 헤헤. 고양이는 못 참지. 알고리즘 여행에 빠졌더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다. 시간을 좀, 많이 때웠네. 그래서 내가 오늘 뭘 했더라. 왠지 찝찝하다.



‘못 참는’ 사람들


못 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쾌락을, 기다림을 참지 못한다. 자극을 좇으며 과정보다는 결과부터 찾는다. 눈앞의 쾌락에 쉽게 무너지는 일은 도파민 중독으로 설명할 수 있다. 도파민은 쾌락과 자극에 반응하는 신경전달물질로, 분비된 후 뇌에 전달되어 행복감을 제공한다. 즉 도파민 중독은 도파민이 제공하는 행복감에 중독되어 계속해서 자극을 추구하는 상태를 말한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자극거리는 넘쳐난다. 콘텐츠는 사람들의 기호에 무섭도록 빠르게 반응하고, 모든 선택지가 ‘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귀여운 동물 영상, 먹방, 게임, 과격한 콘텐츠와 노골적인 언어로 구성된 인터넷 뉴스 등 원초적 감정을 자극하거나, 개인의 1분 1초를 분석하는 알고리즘이 맞춤형으로 이용자를 자극한다. 거대 소셜 미디어 기업의 내부자였던 이들이 한목소리로 “기업은 이용자가 중독되기를 바란다”며 고발하는 형국이다.¹ 알고리즘은 치밀한 분석과 계산 하에 이용자가 높은 확률로 누를 만한 콘텐츠를 제시한다. 터치 한 번이면 바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환경에서 개인이 자제력을 발휘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과정보다 결과에 주목하는 현상은 데이팅앱과 요약 콘텐츠로 알아보자. 데이팅앱은 이 시대의 사람 사귀는 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 모두에 200개 이상의 데이팅앱이 등록되어 있으며, 2019년 국내 소비자 지출 상위 10개의 앱 중 3개가 데이팅 앱인 것으로 나타났다. 클릭 몇 번으로 원하는 조건의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편리함이 데이팅앱의 인기 요인 중 하나다. 실패의 위험이 적고, ‘불필요하게’ 시간 낭비 할 여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목표 달성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줄이려는 욕구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달리 말해 현재 일상에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에 각종 요약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 역시, 요약하자면 ‘효율’ 때문이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어려운 고전, 2시간 남짓의 영화, 그보다 오랜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드라마까지 모두 10분가량의 짧은 영상으로 정리된다. 배경지식이 필요한 논의를 직접 이해하고, 복잡한 인물의 관계와 서사를 직접 느끼기 위해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못 참을 수밖에 없든 그냥 못 참는 성정이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못 참는’ 사람들은 일단 결론에 주목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일어나는 일들


자극 앞에 무력하고 과정보다는 결과에 주목하는, ‘못 참는’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먼저 자극에 취약하다는 것은 곧 중독의 위험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셜 미디어 이용률은 89.3%로, 세계 평균보다 1.7배 높다고 한다. 특히 요즘에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생활로 그 이용량이 더욱 증가했다. 미디어가 주는 자극에 즉각 반응하는 습관은 중독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중독은 통제력 저하‧불안‧외로움‧수면장애 따위의 생체 기능 장애를 동반하는데, 최근에는 이중에서도 ‘외로움’이 현대인이 체감하는 증상으로서 주목받고 있는 듯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시간을 때우는 용으로 소셜 미디어를 이용할 경우 무력감, 고립감,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² 마치 ‘잉여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 시간을 낭비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무력감과 외로움이 소셜 미디어 중독을 낳기도 했다. 이 경우 중독은 악순환으로 이어져 만성적인 무기력과 쓸쓸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알고리즘을 따라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심지어 보내는 와중에도 기분이 썩 편찮았던 이유가 있었다.

과정보다 결과를 추구하는 일은 ‘~하는 척하는’ 현상과 연결된다. ‘이것만 보면 당신도 아는 척할 수 있다!’라는 식의 광고 문구가 뉴스레터, 책, 유튜브 영상 등 어디에나 붙어 활용되는 현실이다. 읽은 척, 이해한 척, 본 척하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포착되고 있다. 독서율이 떨어지는 와중 인스타그램에서 독서가 언급된 횟수는 많아졌다는 것³ 역시 현상의 단면을 보여주는 분석이다. 현상에 따른 방증과 문제점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평가 역시 다양하겠으나, 여기서는 그중에서도 비교적 명확히 정의할 수 있는 ‘문해력 저하 현상’을 짚어보고자 한다.

문해력 저하는 영상과 디지털이 주요 정보 전달 매체가 되면서 나타난 대표적 현상이다. 문자가 정보를 전달하던 때에는 스스로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짤‧밈‧영상의 시대에서는 의도적으로 텍스트를 읽으려는 노력이 없는 한, 세 줄 이상의 긴 글을 접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문해력 저하로 인한 분별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문해력 저하에 따라 가짜뉴스와 선동 및 날조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 따르면 2018년 한국 학생들은 읽기 영역에서 37개국 중 5위를 달성했지만, 이전 조사 결과들과 비교하면 읽기 점수 자체는 하락하는 추세에 있었다. 특히 글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학생의 25.6%만이 사실과 의견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OECD 평균인 47%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수치다. 학생에 한하는 결과이긴 하나, 다시 말하지만 문해력 저하는 시대적 경향성을 따른 오늘날의 현상이다. ‘요즘 학생들’에 초점을 맞춰 잘잘못을 가리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우리 모두가 강렬함 앞에서 팩트의 힘이 쉽게 소실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애초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관장하는 소셜 미디어 기업들이 팩트 보다 자극을 우선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의 사회는 자극을 인식하고 정보를 선별할 능력이 부족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직 능력을 기를 만큼의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따라서 지금 사회의 과제란 정보와 자극을 가리는 분별 능력을 기르는 것일 테다.

지금 사회의 과제를 정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건강하고 안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다. 건강하고 안녕한 사회를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공론장이 필요하다. 지금의 미디어 현실은 ‘인스턴트 텔레비전’으로 은유할 수 있다. 이는 개인화된 시청으로, 공동체적 경험을 제공했던 전통적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줄었다는 의미다. 예전의 텔레비전은 공간을 가로질러 수용자를 결속시켰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정해진 시간에 제한된 콘텐츠를 봐야 했던 과거와 달리 개인이 시청할 콘텐츠와 시간을 정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와 같은 개인화된 디지털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공동체적 감각은 생기기 어려워졌다.

이전에는 <1박 2일>,<무한도전>,<패밀리가 떴다>처럼 당대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전 국민적인 인지도를 확보한 프로그램이 꾸준히 존재했다. 이것은 독보적인 플랫폼이었던 텔레비전과 각 방송사 브랜드의 힘이었다. 오늘날에는 이같이 한 시대를 정의하는 공통의 콘텐츠 경험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제 주말 저녁을 ‘책임지는’ 프로그램은 없다. ‘안방 예능’, ‘안방 드라마’는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어제 개콘 봤어?”로 스몰토크를 시작했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는 것이다. 거듭 강조했듯,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는 ‘인스턴트 텔레비전’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유행이나 대세가 사라졌음을 천명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것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본인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을 고를 수 있으니, 굳이 ‘대세’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을 챙겨 볼 필요가 없다.

주목할 점은 방송사의 기능이 콘텐츠 제공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송사는 뉴스를 전달하는 언론사이자 한 사회의 논의를 이어가는 공론장이다. 따라서 전통적 텔레비전의 존재감이 줄어드는 흐름은 이전의 공론장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워진 현실을 방증한다. 인스턴트 텔레비전 시대에서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무엇을 보고 사는지 모른다. 애초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본인 가족의 유튜브 시청기록을 전부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이전처럼 다양한 경험이 하나의 현실로 모이지 않고 각자가 선호하는 현실과 가장 잘 어울리는 정보가 선별되고 있다. 다른 관점의 의견을 접하고 타협점을 모색하며 중간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은 사라져간다. 한 기사는 지금의 추세를 두고 “모두가 동의하는 하나의 진실과 도덕이 불가능해진 21세기”라 평하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공론장을 복원하는 것이다. 자극과 강렬함에 가려진 쟁점을 짚어, 한쪽에 치우친 서로의 입장 격차를 줄이고 함께 더 나은 논의를 지향해야 한다.



지금 이 시대는


‘못 참는 사람들’. 이 시대를 진단하기 위해 필자가 멋대로 우리 사회의 불특정 다수에게 붙여버린 이름이다. 못 참는다니, 어감부터가 별로다. 이름에서부터 예상했다시피, 앞서 살펴본 ‘못 참는 사람들’의 사회는 역시 반기기 어려우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은 지금과 앞으로의 사회를 걱정하기보다 긍정⁴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그렇기에 여기서는 시대적 흐름에서 ‘못 참는 사람들’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아보기를 제안한다.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의 ‘못 참는 사람들’이 유별나 보이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사회는 여러 표현으로 정의된다. 먼저 짚어볼 정의는 흔하게 들어보았을 ‘지식 정보 사회’다. 이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어제 통했던 길이 오늘은 망하는 길’이라는 표현이 쓰인다. 그만큼 사회는 빠르게 돌아간다. 새로운 정보와 이슈는 넘쳐나고, 알아야 할 지식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며, 그마저도 얼마간이 지나면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기도 한다. 이에 따르면 과정보다 결과를 추구하는 일은 빠른 정보 사회에 발맞춘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성질 급한 게으름뱅이가 별안간 증식해버린 게 아니라 변화한 정보 습득 방식을 따르는 인물이 늘어났다고 분석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역시 많이 들어봤을 ‘능력주의 사회’다. 개인이 결과에 주목하게 된 배경에는 ‘성과주의’가 있다. 많은 지식인들은 지금의 세태를 두고 ‘능력주의 신화’가 지배하는 세상이라 평한다. 능력으로 사람을 줄 세우는 것이 공정함 그 자체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개인의 능력치는 곧 개인이 성취한 결과물로 정해지므로,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는 일단 결과를 내놓는 것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하고 있다. 즉 과정보다 결과를 추구하는 일은 지금 사회의 인간상이 지닌 속성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은 ‘포스트모던 사회’다. ‘근대 다음의 사회’로 직역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앞서 나온 정의들처럼 요즘 시대를 진단하는 데 쓰이는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60-70년대의 멀지 않은 과거에 유행했던 사조로, 지금의 사회를 설명하는 데에도 여전히 유효한 지점이 있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 따르면, 포스트모던의 인간은 타인이나 사회 없이 순간의 욕구를 충족하며 ‘동물화’되었다. 이것의 의미는 근대와 대비되는 포스트모던의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그 특징이란 거대 서사를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인스턴트 텔레비전’ 현상과 같이 공통의 감각을 제공할 서사가 소비되지 않는 일로 해석할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 코제브에 따르면 거대 서사가 사라진 뒤 인간은 동물화되었다고 한다. 그는 인간이 욕망(desire)을 갖는 반면 동물은 욕구(need)밖에 갖지 않는다고 보았다. 욕구란 특정 대상에서 충족을 얻는 단순한 갈망으로, 다시 말해 결핍된 부분을 채워 만족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당연히 동물뿐 아니라 인간 역시 욕구한다. 다만 코제브는 인간과 동물과의 차이가 ‘욕망’하기도 한다는 점에 있다고 말한다. 욕망과 욕구의 차이는 ‘타자의 필요성’에 있다. 욕망은 본질적으로 타자를 필요로 하지만, 욕구는 타자 없이도 충족된다. 예를 들어 식욕, 성욕, 수면욕 등의 기본적 욕구로 일컬어지는 것들은 타인과 사회 없이도 충족하고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욕구와 달리 욕망에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구조가 작동하고 있기에 충족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종합하자면 코제브가 말한 ‘동물화’란 ‘타자’와 ‘사회’가 사라져가는 현상인 것이다. 거칠게 말해 포스트모던의 인간은 타자가 없는 욕구만을 충족하며 즉물적인 경향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자극에 쉽게 반응하는 사람들이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서사보다는 각자의 취향이 주목받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사회의 ‘욕구하는 인간상’으로도 볼 수 있다.

‘못 참는 사람들’의 시대. 성질 급한 K-를 생각하거나, 보고 있으면 썩 편찮은 ‘요즘 애들’을 떠올리며 “좀, 참아!”라고 어디엔가 외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비판하든, 옹호하든, 비관하든, 낙관하든 모두 지금의 사회를 사는 성원들이 만들어가는 오늘이다. 다만 목적의식은 분명히 했으면 한다. 더 건강하고 안녕한 사회를 위하자는 것이다. 목적이 분명하면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진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변화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은 탁상공론으로 빠질 수 있다. 책임 묻기로 귀결돼 불통을 낳는 데 그치기 쉽다. 결국 이 사회의 과제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주목하고 변화의 흐름을 좇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단순하지만 당연한 명제를 제시하고 싶다. 앞으로의 사회는 미래를 그리는 개인들이 만든다.



¹ 구글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한 기욤 샬로는 “알고리즘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제공하기보다 중독되도록 노력한다”고 지적했다.

² 손영준‧허만섭, 「코로나19 확산 후 소셜미디어 이용과 무력감·외로움 체감에 관한 연구」, 『한국디지털콘텐츠학회 논문지』, 21, 2020, (1,957 – 1,971)

³ 김영하 외 3명, <tvN Shift 시즌2>, 1회, tvN insight, 2019.12.13

⁴ 낙관이 아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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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태, 「`인스턴트 TV` 보는 즐거움에 자유를 더하다」, 『매일경제』, 2019.09.06

김주연 외 3명, 「“유튜브 볼 때 통화 거절”…당신 외롭게 만드는 ‘알고리즘’의 비밀」, 『서울신문』, 2022.01.03

손예지, 「[전시 연애 시대] ①“실패 확률 낮추려고”… 데이팅앱 찾는 ‘N포세대’」, 『헤럴드경제』, 2018.11.11

이다솜, 「“이성친구요? 데이팅 앱으로 사귀어요”」, 『이데일리』, 2020.02.20

윤연정 외 3명, 「“우울한 이용자 더 우울하게”…페북 내부 고발이 드러낸 알고리즘 민낯」, 『서울신문』, 2022.01.03

이승한, 「유튜브 전성시대, 사라진 건 텔레비전만이 아니다」, 『한겨레』, 2021.04.23.

이승희, <센터뉴스>, 연합뉴스TV, 2021.06.16

아즈마 히로키, 이은미,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 사회』, 문학동네, 2007

이화섭, 「짤 영상에만 빠져…읽을 줄 알아도 이해는 못한다」, 『매일신문』, 2021.12.30

이화섭, 「'책 보다 짤' 문해력 떨어지는 젊은 세대…디지털이 만든 新문명」, 『매일신문』, 20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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