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호][사회] 풍자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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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노레 도미에, 가르강튀아, 1831, 석판화, 21.4x30.5cm, 프랑스 국립도서관

1831년 프랑스, 주간지 ‘라 카르카튀르 La Caricature’에 충격적인 삽화가 실렸다. 노동자들의 금화를 박박 긁어모은 바구니들이 한 거구의 남성 입안으로 끊임없이 올라간다. 그의 이름은 ‘가르강튀아Gargantua’.¹ 농민들의 금화를 먹은 가르강튀아가 훈장을 배설하면, 부르주아들은 이를 받아먹으려 난리다. 그림이 발표되자 경찰은 인쇄소를 털어 해당 석판을 몰수했다. 가르강튀아가 루이 필립 1세를 지칭했기 때문이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저 두둑한 얼굴을 봐라. 루이 필립을 희화화하는 서양 배 형상을 하고 있지 않은가.²

그 시각 지구 ‘정면’에서는 봉산탈춤이 한창이었다. “개잘량 ‘양’자에 개다리소반 ‘반’자를 쓰는 양반”은 화를 내다가도 말뚝이의 입에 발린 말에 끔뻑 넘어간다. 지배계급의 허위의식과 무능함은 장터 한가운데 백성들 앞에서 발가벗겨졌다. 이처럼 인류는 풍자와 함께 매콤한 역사를 써 내려갔다. 사람들은 동서양, 시대, 장르를 넘나들며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었다.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뜨거운 감자들과 덕분에 마를 날 없는 서민들의 비꼬기 샘물. 풍자의 시대는 현재진행 중이다.



Welcome to BLACK World


“풍자는 사회의 이상 현상을 알리는 경계 신호이다.”³

▲ 스틸컷 ⓒ엣나인필름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1936)는 산업 혁명에 경고를 날리는 코미디 영화다. 반복되는 단순 노동 속에서 기계화되어가는 노동자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했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생각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 스틸컷 ⓒ쇼박스, 씨네21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은 한강에 나타난 괴물로 재난 상황의 민낯을 들춰낸다. 피해자 가족과 함께 싸워준 이는 누구였나. 진짜 ‘괴물’은 어느 쪽인가.

▲ ⓒPenguin Books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1945)은 우화를 방패 삼아 당대 세계 정치의 흐름을 통렬하게 풍자했다. 읽다 보면 작가의 대담함에 놀라는 한편 용기가 생긴다. 그래, 동물로 치환하면 잡혀가진 않겠다!

▲ ⓒ20th Television

<심슨 가족>은 미국의 대표적인 블랙코미디 애니메이션이다. 노동 계급인 심슨 가족을 통해 미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재치 있게 풀어낸다. 가끔 풍자의 대상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된다. 물론 한국 포함이다.

▲ ⓒKBS

2011년 어느 날의 <개그콘서트>는 시사 개그의 최고점을 찍었다. 한 국회의원이 정치 풍자를 한 개그맨을 집단모욕죄로 고소하자 ‘웃음을 주는 사람들’⁴은 고소 사건을 더 신랄하게 풍자하며 맞대응했다.⁵ 녹화본이 방영된 날 <개그콘서트>는 시청률 25%를 기록했다.




풍자의 민족


풍자는 특정 직업군의 역할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특권이다. 때때로 그것은 민족의 정체성으로 비추어지기도 한다.

7.jpg ▲ ⓒ연합뉴스

누군가 그랬다. 한민족은 ‘깡다구의 민족’이라고. ‘국뽕’이니 과몰입이니 핀잔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위·아래 나라들에 다채롭게(요즘엔 미세먼지와 방사능으로) 치이며 단군 할아버지가 터를 잘못 잡았다고 구시렁대면서도, 금가락지 빼서 나라 부채를 갚고(1997) 집회에 등장한 컨테이너 바리케이드에 당시 대통령 이름을 넣어 ‘명박산성’이라 부르는 걸 보면(2008) ‘깡다구의 민족’이 딱히 틀린 말도 아닌 듯하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깡다구의 민족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풍자를 놓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식 성명 강요(창씨개명)’ 정책에 조소를 날린 선조들의 행보는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

견자웅손(犬子熊孫, 이누코 구마소): 개자식이 된 단군의 자손
전농병하(田農丙下, 덴노 헤이카): ‘천황폐하(天皇陛下)’와 유사한 발음
남태랑(南太郞, 미나미 타로): 내가 조선 총독(南次郞, 미나미 지로)’의 형이다.
천황족개살랑(天皇族皆殺郞, 덴노조쿠 미나고로시로): 천황일가를 몰살시킬 사내
소화망태랑(昭和亡太郞, 쇼와 보타로): 히로히토 천왕을 멸망시킬 사내
견분식위(犬糞食衛, 이누쿠소 구라에): 개똥이나 처먹어

보다시피 그들은 본래 이름을 순순히 빼앗길 생각도, 왜식 이름으로 쉬이 바꿀 생각도 없었다. 왜식 이름에 자신의 치욕을 드러내거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미끼를 던져두는가 하면, 직접적으로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실제로 관청에는 이러한 이름을 써도 되는지 문의 엽서까지 왔다고 한다. 문의는 핑계고,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한 것 같지 않은가? 뭐가 됐든 그들의 이름에는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이 굳게 자리했다. 힘없는 백성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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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촛불집회 현장 ⓒ한겨례/서울신문

2016년 겨울, 광화문 광장에 촛불이 켜졌다. ‘박근혜 퇴진 운동’은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대규모 집회였다. 그렇다고 현장이 엄숙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필자가 목격한 촛불 행진은 뭐랄까, ‘풍자 퍼레이드’에 가까웠다. 다양한 아이템과 분장, 현수막 등이 총출동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단연 ‘아무 깃발 대잔치’였다. 가상의 모임을 만들어 깃발을 올린 이들에게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패시브 효과⁶, 집회 문턱 낮추기, 토요일을 반납하게 만든 분노, 정치적 논란 비판, 이런 사소한 모임까지 뜻을 모았다는 의미 등. 아무 깃발 아래에 선 사람들은 자신의 유쾌함을 뽐냈고 타인의 기발함을 카메라에 담았다. 집회 현장은 활기찼다. 그러나 그 웃음의 기저에는 분명 노여움과 고달픔이 있었다.



지금이 웃을 때냐? 네


‘Black’과 ‘Comedy’, 명암의 양 끝단에 있는 단어들로 애환을 표현한다. 희로애락이라는 단어를 실현하려는 듯 사람들은 힘든 시기마다 웃음을 찾았다. 웃지 못할 현실에서 우리는 왜 풍자를 고집할까. 여기에는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으로서의 코미디가 존재한다. 그간 풍자는 사회적 문제를 알려야 할 언론 등이 제 기능을 만족스럽게 해내지 못할 때 그것의 역할을 대신하며 대중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다. 고발적 성격이 강한 풍자는 사회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요한다. 웃음에서 굵직한 뼈가 느껴지는 것 역시 재미와 함께 문제의식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사태를 줄줄이 늘어놓기보다 부조리를 응축하여 묵직한 한 방을 날린다. 이러니 예리하게 내리꽂은 유머의 농도가 짙을 수밖에.

가끔은 직설적인 말보다 은유적인 웃음이 더 강한 힘을 갖는다. 풍자는 주목도에서부터 압승이다. 정치판을 비판할 때 사실 그대로를 적시한 제목보다 ‘개콘이 망한 이유’⁷라는 제목이 사람들의 눈길을 더 끌지 않던가. 또한 풍자는 연대의 기능으로도 이어진다. 특정 문제와 관련한 직접적인 담론이 껄끄러울 때 누군가 예리한 농담을 던졌다고 가정해보자. 해학으로 받아들이고 넘길지, 모호하지만 제재를 가할지 애매하다. 그 와중에 대중들은 서로의 웃음를 통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음을 파악한다.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확인함으로써 조용한 연대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터지는 웃음은 몇 번이고 곱씹게 된다. 사람들은 날카로운 웃음의 함의를 되새기며 현재 상황을 직시한다. 불합리한 상황에서 웃음은 서민의 무기가 된다. 경쾌한 무기는 웃음이라는 빛 좋은 탈을 쓰고 도려내야 할 사회를 저격한다.

풍자는 서민의 발언권이요, 웃음은 풍자에 대한 응답이다. 고로 풍자를 통한 희화화는 단순한 개그 소재가 아닌 사회 고발의 수단이라는 정치적 장르로도 해석된다. 분노를 화(火)로만 표출하기보다 웃음이라는 환기 장치를 거쳐 표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인류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부패의 시대로 깨우쳤다.



검은 웃음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글이 끝나가는 이 시점에 구태여 풍자의 사전적 의미를 들춰보려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풍자(諷刺)’를 ‘남의 결점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함’ 또는 ‘문학 작품 따위에서,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 따위를 빗대어 비웃으면서 씀’으로 정의했다. 보통의 사람들이 구조와 권력에 대항하여 위를 향해 던지는 묵직한 돌. 그러다 보니 니 풍자를 당하는 자가 풍자를 하는 자를 검열하는 일도 발생한다. 제재가 애매한 풍자는 직접적으로 처벌하기보다 물밑에서 관리되곤 한다. 2016년에 공개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시발점은 국립극단의 연극 <개구리>(2013)였다.⁸ 이를 계기로 국립극단은 지속적인 외압을 받았고, 박근형 연출가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 지원배제명단에 올라 한동안 활동이 불투명했다.⁹

풍자가 아래에서 위로 솟구친다는 명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방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웃음이 무엇으로 뭉쳐져 날아오는가이다. 풍자는 비웃음을 전제로 하는 만큼 약자를 향한 조롱으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따금씩 이 조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한 과정인지, 혹여 풍자를 빙자한 폭력이 되진 않을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우려, 고민에서 시작되는 풍자는 분명 서민이 행할 수 있는 사회·정치 참여 방식 중 하나다. 그 속에서 우리는 분노했고 웃었고 결실을 보았다. 우리의 풍자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돌려서라도 까겠다는 그대들의 용기를 예찬하며, 이 글을 통해 앞으로 근맥이 끌려가지 않을 정도의 수위를 조절해보는 바이다.



¹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속 식탐 많은 거인 왕이다.

² 프랑스어로 과일 배는 ‘바보’를 지칭하기도 한다.

³ 류재화, 『권력과 풍자』, 한길아트, 2012

⁴ 당시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코너에서 개그맨 김원효는 “우리(개그맨)가 범인을 잡아서 ‘웃음을 주는 사람들’이지 우리가 우스운 사람들이야?”라고 말한 바 있다.

⁵ 2011.11.28 기준 그해 최고 시청률이었다.

⁶ 아무 깃발 대잔치의 시발점이었던 ‘장수풍뎅이 연구회(@jangpoongyeon)’는 가상의 연구회 깃발을 통해 적들에게 혼란을 주는 ‘패시브 효과’를 노리기도 했다고 언급했다(2016.11.13).

⁷ 대본이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보다 현실 속 정치판이 더 웃긴다는 풍자적 표현으로, 주로 인터넷상에서 사용된다.

⁸ (2013. 9. 12)에는 본 작품이 “일부 정치 편향적이라 오해될 소지가 존재한다” 라며 구체적인 사례와 조치사항이 명시되어 있다.

⁹ 볼드모트 같던 ‘블랙리스트’는 훗날 훈장이 되어 그를 소개할 때마다 언급된다. 알다가도 모를 우리네 인생사.



참고문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풍자」

김정은, 「[단독] 朴정부 ‘블랙리스트 1호’ 박근형 연출가, 5년 만의 복귀작은…」, 『동아일보』, 2018.05.14

김지현, 「도미에의 정치풍자화 연구」,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43, 2014, 7-32

노형석, 「노무현 미화했다며…문체부, 연극 ‘개구리’ 대본까지 고쳤다」, 『한겨례』, 2017.10.30

류재화, 『권력과 풍자』, 한길아트, 2012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부록 진상조사 결과보고서 2-3 : 공연 2」, 2019.02

「'더 세졌다'…'개콘', 고소 개그로 강용석 맞대응 "어우 고소해"」, 『더팩트』, 2011.11.28

미즈노 나오키, 정선태, 『창씨개명-일본의 조선지배와 이름의 정치학』, 산처럼, 2008

봉산탈출보존회, 「봉산탈춤 소개」

송재철, 「산업보건 in Culture - 산업화, 기계화, 자동화, 모던 타임스...... 그리고 찰리 채플린」, 『산업보건』, 316, 2014, 22-25

이기형, 채지연, 권숙영, 「코미디 텍스트와 ‘풍자의 정치학’」, 『방송문화연구』, 27(2), 2015, 39-83

이기환, 「이누노코(犬の子)와 향산광랑(이광수)…창씨개명의 두 얼굴」, 『경향신문』, 2019.03.21

한병관, 「<개콘>으로 본 우리 시대 자화상」, 『일요신문』, 201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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