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Jun 07. 2022

[82호][여성] 청소년 성착취

SR

   지난 2020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해외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통해 여성 대상 온라인 성착취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중 피해자의 대다수는 미성년자였다.     


# 아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

   대량의 성착취물과 압도적인 회원수를 확보했던 n번방의 실태는 참혹했다.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온라인 성범죄 방지법 개정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쇄도했고, 온라인 성범죄 예방을 위한 정부의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온라인 성범죄에 대한 논의가 이제야 대두되는 모습이지만, n번방 사건을 포함한 온라인 성범죄는 아주 예전부터 존재해왔다. 실제로 온라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 건수를 보면, 2018년에는 1,315명이었으나, 2019년에는 2,087명, 2020년에는 4,973명으로 피해자는 해마다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2018년 대비 2021년 10대 피해자의 수가 11배 이상 증가하면서 2020년을 기점으로 20대 피해자 수를 넘어섰다. 온라인 성범죄에 대한 해결책이 적극적으로 마련되지 않는 한 피해자의 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n번방 사건의 실태가 드러나면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n번방으로 유인하는 과정 또한 밝혀졌다. 가해자의 주 수법은 ‘그루밍 성범죄’¹였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아르바이트를 알선하는 척 속이거나 친근하게 다가가 피해자의 신뢰를 얻은 후 약점을 만들었다. 약점은 성착취를 위한 협박으로 이어졌다. 이 일련의 과정 모두가 그루밍 성범죄에 해당한다. 그루밍 성범죄로 인한 2차 범죄는 피해자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성행위에 동의한 것처럼 보인다는 특성 때문에 여타 성범죄에 비해 착취적인 면모를 한눈에 알아채기 힘들다. 약 11.1%의 청소년이 인터넷에서 원치 않는 성적 유인을 경험했다고 답했을 정도로 그루밍 성범죄는 너무나 곳곳에서, 너무나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²

ⓒ뉴시스

   n번   온라인 내에서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그루밍 성범죄는 성매매 강요 및 알선으로도 이어진다. 끊임없는 설득과 교묘한 협박으로 청소년을 유도하거나, ‘쉬운 돈’을 벌 수 있다며 유혹하기도 한다. 2019년 기준 청소년이 성매매에 유입되는 경로 중 74.8%가 온라인이었던 만큼 온라인은 청소년을 상대로 성착취를 시도하려는 가해자로 들끓는다.³     


# 사회는 아이를 탓한다

   아동·청소년의 성을 착취하는 가해자가 명백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향한 비난의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선택했다면 청소년이라도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주장처럼 청소년 성매매는 과연 선택의 영역일까?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청소년은 보호가 아닌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걸까? 우리는 청소년의 선택과 자발성을 논하기에 앞서, 이 문제를 넓은 시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상대적으로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미성년자가 법적 보호자 없이 경제적 활동, 주거 문제 등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특히나 가정과 학교에서의 방임과 폭력으로 인해 사회적 보호망이 부재한 상황이라면 청소년 스스로 안전을 보장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청소년이 처해 있는 불안정한 환경과 미성년 여성을 성애화하는 사회 등, 다양한 문제가 중첩되면서 청소년에게 몸은 ‘거의 유일한 자원’이 된다. 청소년이 성매매에 접근하기 쉬운 사회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성매매에 유입되는 청소년의 87.4%가 가출경험이 있으며, 이중 대다수는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매매에 연루된다. 가출이 아니더라도 성매매에 연루되는 청소년 대부분이 빈곤과 부모와의 갈등, 가족 내 방임, 학교폭력, 부모의 알코올 의존 등을 겪는다. 청소년 대상 성매매를 개인의 선택 여부가 아닌 취약한 보호 체계와 사회구조적 문제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청소년에게는 성매매에 유입되는 배경뿐 아니라 그 과정 자체도 위협이다. 성인 남성과 십대 여성 간에 존재하는 분명한 권력 차이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보장받을 수 없게 만든다. 청소년은 합의 과정에서 안전을 위한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조건을 내건다고 해도 성매수자에게 강제할 방법이 없어 부당한 일을 겪기도 한다. 실제로 성매매 과정 중 청소년이 겪은 인권침해의 비율은 80%로 매우 심각하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 2019 성매매 실태 및 대응방안 연구 ⓒ여성가족부

       청소년이 성매매에 유입되는 구조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에서 볼 수 있듯,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는 대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계약이 아니다. 성인인 성매수자가 청소년의 절박한 상황과 자신의 위계를 이용하여 성을 착취하는 명백한 ‘성착취’다. ‘성매매’라는 단어는 청소년과 성매수자가 평등한 관계에서 맺은 계약으로 오인시킬 수 있으며, 청소년이 성매도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했다는 인식을 내포한다. 이는 곧 청소년을 향한 책임 전가와 질책으로 이어진다. 성매매에 연루된 청소년을 향한 부정적인 낙인은 탈성매매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청소년이 필요시에 도움을 구할 수 없도록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성매매 피해를 받은 청소년 64.6%가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고 답했는데, 대부분 청소년에게 따라오게 될 부정적인 낙인 때문이었다. 이러한 낙인은 성매매에 유입되어 사회적·정서적·발달적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을 더욱 고립시킨다.

   성매매에 연루되는 모든 과정은 청소년에게 커다란 상처가 된다. 사회의 왜곡된 성 인식과 취약한 보호 체계에 놓인 청소년에게 낙인을 부여할 뿐이라면, 그들은 삶에서 주어져야 할 수많은 선택과 기회를 제한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청소년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부정적인 자아를 갖지 않고 살아가도록 힘쓰는 것이 이 사회의 또 다른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총체적인 책임이다.     


# 청소년 성착취 관련 법률의 변화

    온라인 성범죄 대책 마련을 위한 끊임없는 요구에도 미적지근했던 정부의 태도는 결국 n번방이라는 대형 온라인 성착취 사건으로 돌아왔다. 전문가들이 n번방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온라인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은 너무나도 부실했다. 하지만 n번방 사건 이후 청소년성보호법이 대거 개정되기 시작했다.     


- 온라인 그루밍 법률 마련

    온라인 내에서의 그루밍 성범죄(이하 온라인 그루밍)는 2차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나, 처벌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대부분의 피해를 예방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21년 9월, 청소년성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처벌 영역 밖이었던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의 처벌 근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 그루밍을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착취 목적 대화’로 명시함으로써 온라인 성범죄를 예방할 길이 생긴 것이다.                    


청소년성보호법 제15조의2(아동ㆍ청소년에 대한 성착취 목적 대화 등) 

① 19세 이상의 사람이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아동ㆍ청소년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 또는 혐오감을 유발할 수 있는 대화를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하거나 그러한 대화에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참여시키는 행위

2. 제2조제4호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도록 유인ㆍ권유하는 행위

② 19세 이상의 사람이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16세 미만인 아동ㆍ청소년에게 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경우 제1항과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 개정으로 인터넷에서 성매수자를 효과적으로 단속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법안 또한 마련되었다. 아동·청소년 온라인 성범죄에 한해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피의자를 대상으로 한 위장 수사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전의 온라인 성범죄 수사는 범죄 사후 신고나 웹 모니터링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범행증거의 유실 가능성과 느린 사후 대처에 대한 지적을 받아왔다. 반면 개정된 위장수사 제도는 범행증거를 사전에 즉시 확보하고 피해자 없이 피의자를 검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방에 효과적이다.      


- 대상 청소년 규정 삭제

   지난 2020년 5월, 형법에서 성매매에 유입된 아동·청소년을 ‘성매매 대상아동·청소년’에서 ‘피해아동·청소년’으로 규정했다. 개정 이전의 법체계는 성매매에 연루된 청소년이 자발적이었는지 비자발적이었는지에 따라 ‘성매매 대상아동·청소년’(이하 대상 청소년)과 ‘피해아동·청소년’(이하 피해 청소년)으로 나누었다. 피해 청소년은 피해자로 분류되어 보호와 지원을 받는 반면, 대상 청소년은 성매매자로 분류되어 처벌과 교정이 이루어졌다. 대상 청소년은 국선 변호사의 지원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소년법의 보호처분을 받거나 실제 조사과정에서 범법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청소년은 성매매에 연루된 사실을 신고하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협박의 빌미로 이용되어 성착취의 구조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대상 청소년 규정은 이러한 부작용과 자발/비자발 경계의 모호성, 성매매에 연루되는 과정에서의 심각한 인권침해 등으로 끊임없는 지적을 받아온 결과 개정되기까지에 이르렀다. 현재 우리나라는 성매매에 노출된 모든 아동·청소년을 피해자이자 보호의 대상으로 규정한다.

   2000년 5월 25일, 유엔아동권리협약은 각국에 아동을 성매매로부터 보호하고 이에 대한 조치를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독일, 일본, 프랑스는 성구매 및 판매 청소년 모두를 처벌하지 않는다. 영국과 캐나다는 아동의 성을 구매하는 행위를 아동학대이자 성착취로 보고 형법에서 아동성매매가 아닌 ‘아동착취’로 규정한다. 또한 성구매자와 알선자만 처벌함으로써 성매매에 연루된 아동·청소년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미국은 ‘청소년 성매매’라는 단어를 형법에서 삭제하고 성착취 피해자로 간주해 해당 청소년을 보호할 것을 강조한다. 국제적인 흐름에 따라 여러 국가의 법률 개정이 이어지면서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에 대한 태도 또한 변화하고 있다.


# 아이가 자라면 어른이 된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나라는 청소년 대상 성매매를 범죄로, 청소년은 피해자로 규정한다. 하지만 명시된 규정이 성매매에 대한 논의를 종결하는 것은 아니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매 규정은 성매매 자체가 아닌 청소년 보호주의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성매매는 ‘연령’보다 ‘계급’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연령에 기반한 성매매의 사회적 합의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UN, 여성폭력철폐선언>에 따르면 “여성에 대한 폭력이란, 젠더에 기반한 폭력행위 내지 그러한 행위를 하겠다는 협박, 강제, 임의적인 자유의 박탈로서, 그로 인해 공사 모든 영역에서 여성에게 신체적, 성적, 심리적 침해나 괴로움을 주거나 줄 수 있는 행위를 말한다.” 이는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폭력으로서, 차별을 구조(構造)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 그리고 여성폭력에는 성매매도 포함된다. 청소년이 성매매에 유입되는 배경과 관련한 문제는 성인 여성에게도 맞닿아 있다. 여성을 성애화하고 성의 ‘상품화’를 용인하는 사회 풍조로 인해 취약한 환경에 놓인 여성은 너무 쉽게 성매매로 내몰린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성은 하나의 자원으로 취급되어 매매가 가능한 것처럼 포장된다. 하지만 성매매는 여성혐오(misogyny)를 바탕으로 한 구조적 폭력이다. 성매매의 본질은 위계적인 젠더질서 속에서 상품화된 여성의 성을 억압·착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매매가 여성폭력, 즉 젠더를 기반으로 한 폭력으로 정의되는 이유다. 성매매에 깔린 성차별적 구조를 논하지 않고, 나이에 따라 보호 대상을 구분하는 것은 성매매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듯이, 아이와 어른 모두를 성착취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 세상에 발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과 과거에 아이였던 어른들까지도 모두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 여성긴급전화 1366  ☎ 한국성폭력상담소 02-338-5801  ☎ 십대여성인권센터 010-3232-1318     



¹ 가해자가 피해자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거나, 회유 또는 협박하여 행하는 성적인 가해행위를 통칭한다. (출처-생활법률용어)

²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9 성매매 실태 및 대응방안 연구」, 여성가족부, 2019

³ 장명선, 「아동·청소년 성매매 실태 및 정책개선방안」, 『이화젠더법학』, 10(3), 2018, (114)

 장명선, 「아동·청소년 성매매 실태 및 정책개선방안」, 『이화젠더법학』, 10(3), 2018, (122)

 구차순, 김현옥, 「청소년의 성매매 유입과정과 지속배경에 대한 질적사례연구」, 『한국사회복지학』, 71(4), 2019, (117)

 장명선, 「아동·청소년 성매매 실태 및 정책개선방안」, 『이화젠더법학』, 10(3), 2018, (124)



참고문헌 

구차순, 김현옥, 「청소년의 성매매 유입과정과 지속배경에 대한 질적사례연구」, 『한국사회복지학』, 71(4), 2019

김고연주, 「성매매 경험이 있는 십대 여성들의 인권 침해 사례 연구」, 『민주주의와 인권』, 11(1), 2011

김고연주, 「성매매,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법과 인식: 자발적 선택인가 성적 착취인가」, 『일다』, 2012.05.10

김미라, 「성매매 피해아동·청소년, 법적 보호 강화한다..제재보다 피해자로서 보호와 지원」, 『뷰어스』, 2020.11.19

닷페이스, <성매매에 유입된 청소년이 듣는 말 [H.I.M. #2 어떤 질문]>, 닷페이스, 2017.12.21

민가영, 「청소년 성매매 행위의 ‘자발성’과 그 맥락에 대한 질적연구를 통한 성매매 청소년의 자발성 논쟁에 대한 비판적 검토」, 『한국청소년연구』, 20(1), 2009

박고은, 「법적 보호 대상인 성매매 청소년, 여전히 ‘범법자’ 취급」, 『한겨레』, 2021.12.26

신민주, 「마침내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법정으로 이끌다」, 『오마이뉴스』, 2021.12.13.

이나영, 「성매매는 ‘죄’인가? ‘여성혐오’에 기반한 구조적 폭력인가?」, 『페미니즘 연구』, 16(2), 2016

이세아, 「디지털 성범죄 ‘위장수사’ 두 달...70여 명 검거·구속 2건」, 『여성신문』, 2021.12.05

이하나, 「한국여성변호사회 선정 2021 여성아동인권 법률 분야 5대 뉴스」, 『여성신문』, 2021.12.21

장명선, 「아동·청소년 성매매 실태 및 정책개선방안」, 『이화젠더법학』, 10(3), 2018

조진경 외 1명, <죽어도 안 바뀌는 법을 먹고 자란 N번방>, 씨리얼, 2020.04.03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9 성매매 실태 및 대응방안 연구」, 여성가족부, 2019

황경란, 「성매매 문제를 ‘지불된 성학대’의 문제로 읽어야 하는 이유 : 레이첼 모랜(2019), 『페이드 포(PAID FOR)』, 안서진(역), 안홍사」, 『한국여성학』, 36(3), 202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