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Feb 06. 2023

[83호][청년] 젊음의 담보

SK

  

  청년 세대가 힘들다는 것은 더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다. 3포, 4포를 넘어선 그들은 이제 포기해야 할 건 이번 생 하나라며 자신들을 1포 세대라 부른다. 그들은 세상 이곳저곳에 치이며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주거도 생활도 학비도 기댈 곳이 없다. 청년들은 이제 젊음을 담보로 빚을 만든다.      


  청년은 왜 빚이 생겼을까

  23살 청년 김근맥의 본가는 충남이다. 집에서 그가 다니는 서울의 대학까진 약 2시간 30분이 걸린다. 1학년 때는 기숙사에서 살았지만, 학년이 올라가니 이제 그마저도 불가능해졌다. 대학 근처에 보증금 500만 원, 월세 40만 원 원룸을 얻었다. 부모님이 돈을 보내주시지만, 월세에 보태기도 빠듯하다. 국가장학금을 통해 학비를 감면받아도 생활비가 걱정된다. 학교가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와 잠이 든다. 덕분에 과제는 늘 뒷전이다. 졸업 이후 취직도 막막하다. 어서 취업해야 학자금 대출도 갚을 텐데. 고민만 깊어 가는 나날이다.     


  언제부터 청년이 가난하다는 게 기정사실이 된 건지 모르겠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이미 고생은 충분한 것 같다. 독립된 주체로서 인정받게 되는 20살, 스스로 인생을 만드는 첫 단계다. 그러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국의 20살은 대개 대학에 머문다. e-나라지표 <2021년 한국 대학 취학률>은 71.5%로, 대부분의 고등학생은 대학교 진학을 선택한다. 그중에서도 사회가 이들에게 목표로 제시하는 대학은 주로 서울에 모여있다. 한 번쯤 외워본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 등은 소위 ‘인서울 대학’을 지칭하는 말이다. 금융권, 대기업 등 다양한 취업처가 선호하는 대학 순위에서도 상위권은 대부분 수도권 대학이 차지한다.¹ 대학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취직을 하거나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선 수도권 대학에 갈 수밖에 없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공고한 이데올로기다.     


  하지만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당위에 따라 대학교에 온 청년은 정신 차려보면 채무자가 되어있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2021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대학생 한 명이 부담하는 연평균 대학 등록금은 673만 3,500원이다. 4년제 대학의 경우 졸업까지 2,0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학비로 빠져나간다. 등록금은 부모님의 지원, 장학금, 스스로 마련 등 각자의 상황에 맞추어 마련한다. 만약 등록금을 지원받지 못하거나 개인이 충당하기 어렵다면 학자금 대출을 받기도 한다. 학자금 대출은 엄연한 빚이지만 교육을 위해선 지출이 당연하다는 사회 분위기,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얽혀 일종의 투자로 여겨진다.

  비싼 건 대학 등록금만이 아니다. 학비가 해결됐다고 해도 생계 걱정은 여전하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서울 9평 원룸 평균 월세는 51만 원이다. 최저 임금으로 환산해 본다면, 주에 20시간씩 한 달에 80시간을 일해 주휴 수당을 포함 92만 1,203원을 벌 수 있다. 90만 원을 넘게 벌어도 절반이 월세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지하철역과의 거리나 주변 인프라에 따라 비용은 더욱 늘어나기도 한다. 필수적인 생활비 외에 친구들과의 만남, 조별 과제로 들르는 카페, 각종 자격증 접수비는 별도다.

  약 30%의 대학 비진학자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재수와 유학 등 고등 교육 기관 진학 준비를 제외하면 남는 것은 주로 취직이다. 교육통계서비스의 2021년 <직업계고취업통계>²의 「시도별 취업 및 진학 현황」을 살펴봤을 때, 취업자 22,583명 중에서 서울 4,129명, 경기 4,306명 인천 1,557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55.5%가 수도권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학회지 「고졸 취업자의 지역이동 결정 요인」에 따르면, 기대 편익을 나타내는 변수에서는 기존 거주지역 대비 이주 고려 지역의 기대소득이 높을수록, 인구 10만 명당 문화시설 수가 많을수록 지역이동을 선택한다는 결론이 도출된 바 있다. 청년 이주의 가장 큰 목적은 직장이었고 대학 진학이 그 뒤를 따랐다. 청년은 지역을 이탈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가 됐다. 그들은 살기 위해 수도권으로 향한다. 그러나 사회 시스템 속에서 결정된 청년의 이주는 여전히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된다.     


  현재의 청년은

  학교를 졸업한다고 상황이 나아지리라 확신할 수는 없다. 졸업 후에도 그들에겐 학자금 대출이 남아있다. 매달 나가는 월세와 교통비, 공과금도 우리가 취직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대학을 다니며, 졸업한 이후에도, 취직에 성공한다고 해도 돈은 부족하다. 사회에 나온 청년의 재산은 마이너스거나, 0(Zero)일 확률이 높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고자 새로운 대출을 결심한다.

  살면서 가장 많이 접한 은행과 2금융권³을 통해 대출을 알아보지만, 복잡하고 까다로운 조건에 혼란이 밀려온다. 은행 외에도 청년 주거 안정 월세 대출, 햇살론 youth 등 여러 지원보다는 쉽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는 대출 업체를 통해 돈을 빌린다. 2017년 금융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청년 다섯 명 중 한 명은 학자금·생활비 등이 모자라 금융권 대출을 받은 적이 있었고 이 가운데 13%는 캐피털, 대부업체 등으로부터 받은 대출이었다.⁴ 대출 업체의 이자는 은행 이자보다 높은 편이다. 대부분의 대출 업체는 18~20% 정도의 이자율을 내건다. 금리가 15% 이하인 대출 업체를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500만 원을 대출받았다면, 20% 기준, 매월 18만 5,818원씩을 갚아야 한다.⁵ 앞서 말한 월세 약 51만 원을 포함하면 매달 나가는 고정 지출이 70만 원 이상인 셈이다. 이를 감당하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다. 매섭게 쌓이는 빚에 청년은 다시 방법을 찾아 헤맨다.⁶ 인터넷에 ‘소액 대출’이라고 검색만 해도 대출 방법이 적힌 사이트가 즐비하다. 적당히 한 곳에 들어가면, 안전하고 쉽게 돈을 구하는 방법이 있다며 청년을 유혹한다. 그런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칠 대로 지친 청년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출을 신청하게 된다. 불법 대출 늪의 초입이다.

  최근 청년이 많이 휘말리는 불법 대출은 ‘작업 대출’과 ‘나를 구제하는 대출’(이하 내구제 대출)이다. 작업 대출은 정상적으로 돈을 빌릴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브로커를 통해 금융 기관을 속여 돈을 빌리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브로커가 대출금의 50% 이상을 수수료로 가져가, 돈을 빌렸음에도 돈이 부족한 상황에 놓인다. 작업 대출에 연루될 경우, 피해자가 아닌 공범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내구제 대출 역시 마찬가지다. 내구제 대출은 휴대전화나 자동차를 할부로 구입한 뒤, 대출 업체에 이를 넘기고 일정 금액을 현금으로 돌려받는 대출이다. 자신을 구하는 대출이라고 하지만, 엄연한 불법으로 훗날 어마어마한 채무가 되어 청년에게 돌아온다. 휴대전화를 업체에 넘기면 추후 통신 요금, 소액 결제 요금 등이 포함된 수백만 원의 통신 요금을 고지받는다. 통신 요금은 채무 조정 대상이 아니므로 개인 회생 신청 외엔 방법이 없다. 또한 휴대전화가 전화금융사기에 이용된다면, 자신 명의의 휴대전화를 타인에게 넘긴 것이므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취업 빙하기라고 불릴 만큼, 한국에서 청년의 취업은 날이 갈수록 어렵다. 빚을 갚을 방법은 거의 없다는 의미다. 빚을 갚기도 쉽지 않다. 졸업하지 않아도 대출을 선택할 수 있다.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해도 돈이 필요한 상황이 생긴다. 필연적으로 빚이 생기는 사회다. 대학 등록금은 20년 사이에 49.2% 인상되었고 월세와 물가의 인상 또한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사적 영역에서 해결해야 한다. 현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신용보증 제도, 저금리, 무이자 대출 같은 청년 금융 정책이 떠오르지만,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장기화로 인해 인터넷으로 금융 정보를 찾아야 해 이마저도 어려움을 겪는다.⁷ 이 과정에서 고리대금업체 사이트를 정부가 지원하는 금융 정책 사이트로 착각하는 상황도 발생한다.⁸ 청년의 금융 정보 격차가 벌어질수록, 그들이 받는 고통의 폭도 함께 넓어진다.      


  사회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제 청년의 대출은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의 저자 천주희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신학력주의⁹와 빚을 권하는 사회 안에서 작동한 권력관계의 결과라고 말했다. 청년이 빚을 지게 된 이유를 단순히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개인의 경제 사정과 상관없이 우리는 자라면서 대학에 가야 한다고 배웠고 대학에 가면 성공할 것이라 믿었다. 대학이 아니더라도 취직과 일자리 부족 등 다양한 이유로 서울에 와야 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높은 등록금과 생활비에 대해선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사회는 그들을 구제라도 하는 것처럼, 대출을 권했다. ‘높아진 비용은 어쩔 수 없으니 돈을 빌려주겠다.’라고 하면서 말이다. 청년의 선택이 자발적이라고 확언할 수 없다. 경제 보수화, 가정의 불안정성, 사회적 안전망 부재 속에서 개인의 선택은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전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의 인생은 단 한 번의 실패로 무너져 버릴 수 있다. 누군가 그랬다. 돈이 많다는 건 실패할 기회가 많은 것이라고. 도전이 두려워지고 실패가 공포로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곁에서 나를 도와줄 공동체와 울타리는 점차 허술해지고 있다. 다양한 시도와 경험은 꿈 같은 일이 된다. 사회는 청년에게 도전해야 한다고 하지만, 도전으로 생긴 실패는 청년 개인의 몫이다. 실패를 책임지다 생이 끝나기도 한다. 험난한 사회에서 도전할 용기는 자본에 기인할지도 모른다. 노력하는 만큼 성공하는 사회가 아니라 성공한 만큼 노력이 인정되는 사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은 노력하기 싫은 핑계가 된다. 청년의 항변은 세상에 잘 닿지 않는다. 자본과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청년을 괴롭히고 있다.

  타고난 재화의 양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청년을 체념시킨 것은 누구일까. 단순히 수저론을 논하며 자조하는 사회는 최선의 사회가 아니다. 현재 우리의 부채 역시 온전히 우리의 탓일 수 없다. 살기 위한 방법을 요구하는 것은 뻔뻔한 요구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다. 삶에 대한 애착이 우리를 지치게 해도, 다시 사회를 향해 주먹을 뻗고 소리를 높이자. 살고 싶은 사람이,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행복하고 싶은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¹ 남윤서·이후연·함민정 「2021 중앙일보 대학평가」, 『중앙일보』, 2021.11.12.

² 직업계고에는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일반계 고등학교 직업반이 포함되며, 전체 고등학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국가 통계는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영석·송선혜의 「고졸 취업자의 지역이동 결정 요인」(2020)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대비 모든 지역에서 지역이동 가능성이 컸다.

³ 공식적인 단어는 아니나 은행과 금융 회사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어느 업무 권역에 속하는지 나눈 단어. 은행법에 적용을 받으면 1금융권, 은행법에 적용을 받지는 않으나 다른 금융 관련 법이 적용돼 금융당국으로부터 설립 승인을 받은 제도권 내에 있는 금융회사들을 제2금융권, 금융 제도권 내에 속하지는 않지만, 합법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역할을 하는 대출 업체(ex. 러시N캐시)를 3금융권이라 지칭한다. 출처: Naver 비즈니스 금융센터. 2020.12.01.

⁴ 이태명·정지은, 「청년 다섯 명 중 한 명은 1303만원 빚 안고 산다」, 『한국경제』, 2017.11.05.

⁵ 원리금균등상환(대출 원금과 이자를 더한 금액을 만기일까지 균등하게 상환하는 대출 상환 방식)으로 받을 경우로 계산함.

⁶ 신용불량자가 되었을 때, 개인회생을 신청할 수도 있다. 개인회생은 일정한 수입이 있는 급여소득자와 영업소득자로서 현재 과다한 채무로 인하여 지급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거나 지급불능 상태가 발생할 염려가 있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일정한 소득이 없는 청년은 요건 충족이 어려우며, 아르바이트를 구하더라도 지속성을 증명해야 회생이 가능하다.

⁷ 김동인, 「청년이 쓴 빚의 굴레, 기다리는 건 ‘고금리 대출’」, 『시사IN』, 2021.01.14.

⁸ 위와 같음.

⁹ 저자가 규정한 말로 부모는 자녀의 대학 진학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경제가 어려워도 대학 교육까지는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는 문화적 관습을 가리킨다.




참고문헌

곽민주·이희숙, 「학자금대출상환으로 인한 사회초년생의 경제적 스트레스」. 『한국FP학회지』, 2015, 8(3),155-182.

교육통계서비스, 「2021 직업계고 취업 통계」, 2021.

김동인, 「청년이 쓴 빚의 굴레, 기다리는 건 ‘고금리 대출’」, 『시사IN』, 2021.01.14.

류영욱, 「제2금융권에 손벌린 개인회생 청년들 "돌려막기하다 빚폭탄"」, 『매일경제』, 2022.05.04.

박정민, 이기원, 하은솔. 청년 채무 보유의 관련요인. 『한국사회복지학』, 2018, 70(4), 93-116.

안소윤, 「생활비 짓눌린 청년에 ‘빚’만 알려주는 사회」, 『대한금융신문』, 2022.04.20.

오세진, 「[단독] 주거비·학자금 대출 ‘빚뿐인 청년’ 20대 우울증 9만명 ‘빛 잃은 청춘’」, 『서울신문』, 2019.12.15.

이상림, 「청년인구 이동에 따른 수도권 집중과 지방 인구 위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0, 395, 1-9.

이승환, 「4년제 186개 대학 올해 등록금 동결...대학생 평균등록금 연 673만원」, 『e대학저널』, 2021.07.20.

이영석·송선혜, 「고졸 취업자의 지역이동 결정요인」, 『한국노동연구원』, 2020, 20(4), 93-116.

이태명·정지은, 「청년 다섯 명 중 한 명은 1303만원 빚 안고 산다」, 『한국경제』, 2017.11.05.

장윤정·김형민, 「절박한 청년들 ‘작업대출’ 먹잇감으로… 직접 금융사기 가담도」, 2019. 05. 09.

통계청, 「2021년 국내인구이동」,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2.01.25.

통계청, 「지역별 청년고용률」, 2022.

통계청, 「최근 20년간 수도권 인구이동과 향후 인구전망」, 2020.

천주희,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사이행성, 2016.

e-나라지표, 「취학률 및 진학률」, 20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