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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방송을 보던 A는 신경질적으로 TV를 껐다. 방송에선 남자 연예인들이 자신의 성 경험에 관해 이야기하며 웃고 있었다. 게스트로 나온 여자 연예인이 자신의 성 경험을 밝히자, 한 남성 패널이 답했다. “xx 씨, 그런 분인 줄 몰랐는데….” 불쾌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런’ 사람이란 게 대체 뭔데? 공개적인 자리에서 성 경험을 밝힐 만큼 ‘발랑 까진’ 사람? 왜 성적 욕구를 드러낸 여성은 다른 수식어로 정의되어야만 하지?
교실에서 성교육 수업을 듣던 B는 생각했다. 왜 성교육은 남자와 여자의 섹스만을 다루는 걸까? 내가 궁금한 건 여자친구랑 섹스하는 법인데. 여자끼리 섹스하지 말란 법 있어? 인터넷을 찾아봐도 연령 인증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뿐이다. 대체 어디서 정보를 얻으란 거야!
‘삽입’ 섹스 = ‘진짜’ 섹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섹스는 남성과 여성의 성기가 접촉하는 행위, 특히 남성의 음경이 여성의 질에 삽입되는 행위를 의미한다.¹ 2015년에 폐지된 간통죄 역시 성기 삽입의 증거가 있는 섹스만을 간통으로 인정했다. 이는 성기 삽입이 행해지는 섹스만을 ‘진정한’ 섹스로 인정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성기 삽입 없이는 섹스가 성립되지 않는 걸까? 어째서 성기 삽입만이 섹스의 기준이 되는 걸까?
남성의 성기를 중심으로 한 섹스의 정의는 섹스의 ‘서열화’²를 보여준다. 관련 표현들을 살펴보자. ‘삽입’ 섹스라는 용어를 넘어 ‘박다’, ‘깔다’, ‘따먹는다’라는 속어에 이르기까지 섹스의 능동적 주체는 남성이다. 섹스와 관련된 용어에서 여성의 주체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성적 쾌락은 음경에서 비롯된다는 믿음 속에서 성적 쾌락은 남성의 특권이 되었다.³ 동시에 ‘음경을 갖는 데 실패한 불완전한 존재’들은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⁴ 남근 중심 사회에서 여성을 대상화하는 시각은 여전하다. 그 예로 ‘성녀’와 ‘창녀’라는 여성 혐오적 이분법을 이야기할 수 있다. 성적 관계에서 여성은 ‘순결한 성녀’ 혹은 ‘발랑 까진 창녀’로 정의된다. ‘성녀’는 흔히 성 경험이 없거나 성적 욕망을 드러내지 않으며, 순종적인 여성을 의미한다. 이들은 ‘올바른’ 여성으로 여겨져 숭배의 대상이 된다. 반면 성적 욕망을 표출하는 여성은 ‘창녀’로 여겨지며, ‘올바른’ 여성에서 벗어난 이들에겐 갖은 비난이 가해진다. ‘성녀’와 ‘창녀’는 대비되는 표현처럼 보이지만, 두 표현 모두 억압적인 성 역할에 여성을 한정시키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시도 속에서 여성은 ‘창녀’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검열하며 성적 자율성을 점차 포기하게 된다. 나아가 이분법적 규범을 내면화함으로써, 성적 주체로서의 능력을 상실하고 성적 대상으로서 행위 할 가능성이 있다.⁵
오르가슴(orgasme)
남성의 음경이 여성의 질에 삽입되어 피스톤질하고, 남성이 오르가슴을 느낌과 동시에 사정하면 섹스는 끝난다. 이는 ‘정상적인’ 섹스의 공식이자 법칙이다. 남근 중심의 포르노그래피는 삽입 섹스가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마냥 삽입 섹스를 추대한다. 여성의 약 65~75%는 질 오르가슴을 느끼는 빈도가 낮거나, 질 삽입만으로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데도 말이다.⁶ ‘오르가슴 격차(Orgasme Gap)’⁷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핵심에는 여성의 성적 쾌락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존재한다.
여성의 오르가슴과 관련하여 어떤 오해들이 자리 잡고 있을까? 먼저 오르가슴의 종류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여성의 오르가슴을 질로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성은 질 외에도 음핵, 항문, 유두 등 다양한 신체 부위를 통해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 오르가슴의 형태에 관한 오해도 존재한다. 오르가슴을 ‘폭죽처럼 터지는 쾌락’으로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모든 오르가슴이 폭발적인 형태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르가슴은 단발적이거나 연속적일 수도 있고, 그 강도 또한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분출⁸ 역시 마찬가지다. 분출과 오르가슴을 동일시하기 쉽지만, 분출이 곧 오르가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둘의 시기가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분출이 오르가슴의 필수 조건인 것도 아니다. 오르가슴의 종류와 형태, 감각은 다양하다. 성기나 손가락, 기구 등을 삽입함으로써 경험할 수도 있고, 비삽입형 기구나 신체 접촉만으로 경험할 수도 있다. 오르가슴을 느끼기 위한 규칙은 없다. 각자가 원하는 상황에서, 원하는 사람과(혹은 혼자서), 원하는 방식으로 경험하면 된다.
미국의 극작가 사라 룰(Sarah Ruhl)의 <옆방에서 혹은 바이브레이터 플레이>에서 여성들은 바이브레이터를 통해 자신의 성적 쾌락을 발견한다. 특히 극중 인물 도드리 부인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의무로서 행하던 섹스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한 섹슈얼리티를 겪으며 난생처음 오르가슴을 느낀다. 이러한 성적 쾌락의 발견은 성적 욕구의 해소인 동시에, 타인과의 (특히 남성 중심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육체와 욕구를 마주하는 계기가 된다. 사회적 강요에서 벗어난 쾌락을 통해 자신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자각하는 것이다. 모든 개인은 사회의 강요와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의 성적 쾌락을 탐색해 나갈 권리가 있다.
‘이상한’ 섹스
여기 ‘이상한’ 섹스가 있다. 과체중, 동성, 노인, 장애인 등과 같은 ‘이상한’ 몸을 가진 사람들의 섹스다. 이들의 섹스는 ‘정상성’, 다시 말해 ‘젊고 건강한 이성애자’의 섹스와는 거리가 멀다. ‘정상신체중심주의(Able-bodyism)’⁹로 정의되는 ‘온전함’에서 벗어난 이들의 몸은 과잉 성애화되거나 무성애화되며, 이들의 섹스는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섹스로 여겨진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에서 등장인물 아이작과 메이브는 몸의 감각에 대해 긴밀히 소통한다. 아이작은 사지마비로 인해 신체 특정 부분에 가해지는 자극만을 느낄 수 있다. 아이작은 메이브에게 자신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을 말하고, 메이브는 아이작의 가슴과 얼굴을 애무한다. 이들은 서로의 쾌락을 탐색해나가지만, 이러한 섹스는 사회의 ‘정상성’에 포함되지 않는다. 삽입이 행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가 장애인을 섹스의 주체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는 장애인을 무성적(asexual)이어야 하거나 타인의 성적 욕망을 이끌어낼 수 없는 존재로 여김으로써, 이들을 성적 관계에서 밀어낸다.¹⁰
특히 장애여성은 여성인 동시에 장애를 가진 존재로서 이중소외되기 쉽다.¹¹ 장애인의 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장애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단정 짓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장애여성은 자신의 몸을 감춰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¹² 또한 사회적·성적 관계에서 일방적인 도움을 받는 존재로 묘사됨으로써 무조건적인 만족을 강요받고 자신의 욕구에 대해 침묵하게 된다. 극단적 보호주의와 사회적 편견이 장애여성의 성적 욕구와 쾌락을 박탈하는 것이다.
장애여성과 연애하는 사람은 존재만으로 ‘온갖 부담을 감수한, 착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하면 ‘장애여성인 네가 그깟 자존심은 버려야 하지 않냐’고 말한다. 관계 회복을 바라는 좋은 마음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파트너는 장애여성인 너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조건이니 이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미 사회적으로도 조건적으로도 평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그깟 자존심’은 너무나 중요하다.
- 진은선, 「아무도 묻지 않는 ‘장애여성의 섹스’를 말하다」 中
동성 간의 섹스는 어떨까? 레즈비언의 핑거링¹³ 역시 ‘정상적인’ 섹스가 될 수 없다. 남성의 성기가 삽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게이의 삽입 섹스가 ‘정상적인’ 섹스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당연하게 성적 욕구를 인정받던 남성들도 그들의 성적 욕망이 동성을 향하는 순간 가차 없이 ‘정상성’에서 낙오된다.
레즈비언의 섹스에 대해 조금 더 논의해 보자. 여성과 남성이라는 기존의 젠더 위계에서 벗어난 이들의 섹스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남근 중심의 성적 억압을 탈피함으로써 더 쉽게 친밀감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고, 서로의 욕구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여성이 성적 욕구의 주체가 되는 섹스는 다양한 쾌락에 접근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성적 욕구와 쾌락은 비장애인 이성애자 남성의 특권이 아니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다양한 섹스와 쾌락을 인정하는 것이다.
같은 성이기 때문인지 서로의 욕망에 민감했고 같은 감정에 빠져드는 때가 많았으며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며 서로에 대한 배려도 어디까지나 동등하게 주고받는 편이었다. (중략) 적어도 ‘누가 누구를 범한다’는 굴욕적인 표현은 전혀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만 해도 대단하잖아.’ 은명은 감탄하였다.
- 이남희, 『플라스틱섹스』, 1998 中
섹스의 기능은 단순히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섹스는 누군가를 억압하는 행위인 동시에 온전한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사회 규범을 보여주는 행위가 되기도 하고, 그 규범에 저항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섹스의 의미와 기능은 사회적 맥락과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변화한다. 협소하고 견고한 섹스의 ‘정상성’은 수많은 존재들의 성적 욕구를 지우려고 하지만, 성적 욕구는 결코 타인에 의해 부정될 수 없다. 성적 욕구는 인간의 여러 욕구 중 하나로, 누구든 성적 욕구를 갖거나 갖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섹스의 ‘정상성’이 무너지지 않는 한, 성엄숙주의와 성개방주의라는 이분법적 담론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차별과 혐오뿐이다. ‘비정상’ 혹은 ‘이상함’이라는 이름이 붙어야 할 것은 단일한 형태의 섹스만을 강요하는 사회다. 섹스에 타인의 인정은 필요하지 않다. 당사자들의 상호 존중과 평등, 이해만으로 충분하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모든 사람의 성이 보장받거나 해방될 필요 없이 누구나 다 유일무이한 육체를 통해 사랑과 욕망의 한가운데서 속박이나 족쇄, 죄책감이 아니라 진실한 쾌락을 얻었으면 한다.
- 천차오루(강영희 옮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中
¹ “섹스(성교)”,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² 마르쿠제(1898~1979)의 표현을 인용하였다. 마르쿠제는 문명사회가 섹슈얼리티를 성기 위주의 자본주의적 생산의 관점에서만 파악함으로써, 성적 본능과 쾌락을 서열화시키고 성적 욕망을 억압한다고 비판하였다. (“섹슈얼리티”, 『문학비평용어사전』, 국학자료원, 2006)
³ 이경미, 「여성의 육체적 쾌락은 복원될 것인가?」, 『여성과 사회』, 제8호, 1997
⁴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는 여성의 성기가 밖으로 돌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성은 “불완전하며 태생적으로 불운한 남성”이라고 주장했다. 여성을 불완전한 존재, 나아가 기형적 존재로까지 묘사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한 가지 성 모델(one-sex model)’은 많은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메리 E. 위스너 행크스(노영순 역), 『젠더의 역사』, 역사비평사, 2006)‘
⁵ 손희정, 「‘압구정 가슴녀’를 아십니까?」, 『시사IN』, 2016.07.06.
⁶ 미셸 뷰토, <쾌락의 원리>, 1회차(우리의 몸), 넷플릭스, 2022.03.22.
⁷ 오르가슴을 경험하는 빈도의 격차를 의미한다. 주로 이성애자 여성과 남성의 격차를 통해, 여성이 성적 쾌락에서 소외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다.
⁸ 여성의 사정(射精)을 의미한다. 사정의 사전적 의미는 ‘남성의 생식기에서 정액을 반사적으로 내쏘는 일’로, 남성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본 원고에서는 ‘사정’이라는 표현 대신 ‘분출’을 사용하였다. ‘분출’이라는 단어의 어감상 여성의 분출을 다량의 액을 쏟는 행위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여성의 분출량은 대개 10cc(밥 한 숟가락)를 넘지 않는다. (도날드 도, 「여자의 사정」, 『GQ』, 2021.11.16.)
⁹ 몸의 가치와 의미는 사회가 부여하는 가치에 따라 위계화된다. ‘정상신체중심주의’는 성별, 장애의 정도, 인종 등 사회에 의해 정의되는 ‘정상’인 몸을 중심으로 몸의 위계가 구성되는 것을 말한다. (김은정, 「장애여성의 몸의 정치학 : 직업경험을 중심으로 한 생애사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8)
¹⁰ 이은미,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 『아시아여성연구』, 제44집, 2005
¹¹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장애의 유형과 정도, 해당 여성이 속한 사회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구성된다. 따라서 장애여성을 무성적 존재와 유성적 존재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나누는 것은 옳지 않으며, 모든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단일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¹² 김은정, 「장애여성의 몸의 정치학 : 직업경험을 중심으로 한 생애사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8
¹³ 섹스와 관련된 속칭으로는 ‘손가락을 사용하여 여성의 성기를 애무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참고문헌
김예란, 「섹스의 윤리화를 위한 페미니즘 제안」, 『한국언론정보학보』, 제94호, 2019
김은정, 「장애여성의 몸의 정치학 : 직업경험을 중심으로 한 생애사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8
변재원, 「[서평] 욕망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비마이너』, 2020.02.10.
이경미, 「여성의 육체적 쾌락은 복원될 것인가?」, 『여성과 사회』, 제8호, 1997
이숙경, 「SEXUALITY」, 『여성과 사회』, 제4호, 1993
이은미,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 『아시아여성연구』, 제44집, 2005
이인수, 「여성의 쾌락은 어디에 있는가?」, 『현대영미드라마』, 제26권, 2013
이진희, 「‘발달장애인 섹슈얼리티의 시설화’를 넘어서기 위하여」, 『비마이너』, 2020.11.13.
이진희, 「[서평]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들」, 『비마이너』, 2020.03,10.
진은선, 「아무도 묻지 않는 ‘장애여성의 섹스’를 말하다」, 『비마이너』, 2020.08.24.
도날드 도, 「여자의 사정」, 『GQ』, 2021.11.16.
메리 E. 위스너 행크스(노영순 역), 『젠더의 역사』, 역사비평사, 2006
천차오루(강영희 옮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사계절,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