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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Mar 02. 2023

[84호] 여는 글

 안녕하세요, 교지편집위원회 근맥입니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물든 날 봄 호의 여는 글을 씁니다. 함박눈이 내릴 때 이 추위의 끝을 그리며 쓰는 글이라 그런지 마음이 몽글거립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 될 테니까요. 시작은 언제나 마음을 들뜨게 만듭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면 설렘이든 불안이든 가슴이 두근대는 건 불가항력입니다. 마음이 들뜨면 같은 무게로 불안해져 설렘을 즐기지 못하고는 하는데, 이번에는 설렘을 온전히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또 다른 시작을 앞둔 여러분 또한 저와 같은 마음이기를 바라봅니다.

 어느새 다시 봄입니다. 내내 붙잡고 있던 겨울을 보내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치는 눈송이마저 사랑해버린 탓입니다. 가차 없는 세상에서 정(情)은 얼마나 귀찮은 존재인지요. 앞으로 나아가기도 벅찬데 내딛는 걸음마다 주위를 둘러보기 바쁩니다. 무심하고 싶으나 마음이 쓰이는 걸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제가 하는 사랑은 언제나 마음을 쓰는 일인 듯합니다.


 어린 날의 저는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여느 어린이가 그렇듯 세상만사 사랑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푹 끓인 할머니의 미역국,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 우리가 서로의 웃음이 되어주는 날들은 여전하게도 애정합니다. 세상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저를 아프게 했던 것들까지도 꼬박꼬박 일기에 적어두었는데요. 후에 돌아보는 지금은 그 마음이 잘 가늠되지 않습니다. 오늘의 제가 보기에는 아주 작고 그리운 투정 같아 보일 뿐입니다. 어린 날의 저에게 세상은 겁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랬던 세상이 요즘은 어딘가 비뚤어져 보입니다. 사랑으로도 포용할 수 없는 일들을 어지르며 이런 나라도 괜찮겠어? 라고 묻는 것만 같습니다. 사람들을 서로를 ‘우리’ 밖으로 밀어내기 바쁩니다. ‘나’의 세상이 공고해지자, 순탄했던 사랑에 물음표가 찍히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으나 역설적으로 온전한 정보를 얻기 어려워졌습니다. 교묘하게 편집된 사회를 해석하는 건 개인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유와 과정은 생략되고 결과만이 우리에게 보여집니다. 각자가 추구하는 세상이 부딪히자 사회가 자꾸만 조각납니다. 오려낸 것처럼 반듯하게도 아닌, 손으로 찢어낸 듯 번잡스럽게 부서집니다.  

 

 근맥인들은 사회가 떨군 조각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매번 같은 모양으로 부서지는 조각도, 어제보다는 작은 모양으로 떨궈진 조각도, 한순간 사라져버린 조각도 있습니다. 이렇게 가을 내내 모아온 조각들을 두고 긴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어떤 조각을 근맥에 담아야 하는가를 토론하는 일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피력하는 일과 닮았습니다. 우리 사회의 몇 조각을 추려 한정된 원고 안에 담는 일은 언제나 남겨진 조각들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이번 근맥 84호는 유독 날카로운 조각들이 모인 듯합니다. 분노할 거리가 많은 세상은 떨궈진 조각도 매섭기 그지없습니다. 근맥인들은 퇴고의 시간 전부 치열했습니다. 혹여나 날카로운 활자에 베이지는 않을까, 원고를 다듬고 또 다듬는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그 치열함은 근맥 84호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억겁의 퇴고 끝에 자리 잡은 문장들이 이번에도 학우분들과 오래 함께하기를, 문득 떠오르기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


 우리 사회를 사랑하려면 어느 만큼의 용기가 필요할까요? 사랑은 시작을 알 수 없게 불쑥 찾아온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 편히 우리 사회를 사랑하게 될 날이 올지 궁금합니다. 그때가 오면 근맥은 어떤 조각들로 채워져 있을까요? 근맥이 세상의 곁에서 사랑을 말하는 것처럼, 앞으로의 근맥에도 학우분들이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근맥은 언제나처럼 이곳에 있겠습니다.


우리의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

편집장 김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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