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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May 19. 2023

[84호][사회] 도시를 만든 사람들

SK

 모든 땅에는 이름표가 붙는다. 산, 논, 밭, 모든 땅에 말이다. 단순히 태어났을 뿐인 이 지구에서 너와 나의 것을 나눈다는 개념은 어찌 보면 우습지만, 자본주의 비호 아래 모든 땅은 사유(私有)의 대상이 되었다. 함께 사용하던 목초지엔 어느새 소유주가 생겼다. 땅을 사용하려면 주인의 허락과 적절한 대가가 필요하다. 사용할 권리를 구매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논리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논리이자 규범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 안에서 만들어진 이 인식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자본을 통해 정당화된 논리는 자본을 가지지 못한 자들의 논리를 쉽게 불법으로 만든다.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은 노력하지 않은 결과라는 추측을 낳는다. 반듯한 도시에서 노력하지 않는 자는 비합리적인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라고 불리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자본주의와 도시

 ‘인클로저(Enclosure)’. 공유지의 사유화를 뜻하는 이 단어는 자본주의화를 위한 초석 중 하나였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김용창 교수에 따르면 전통적 의미의 인클로저는 영국에서 15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공유지, 미개간지, 황무지, 개방경지, 교회 토지 등에 울타리를 치고 사유지를 만들어 경작 농민을 내쫓는 과정을 의미한다.1) 자본주의 이전, 봉건제 사회에서 땅을 일구고 가축을 키워 생계를 이어가던 이들이 전부 사라진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공유지는 사유화되었고 양을 키울 목초지와 농사를 지을 땅에서 쫓겨난 이들은 소유주의 노동자가 되었다. 목축업의 자본주의화 이후 국가 주도로 일어난 2차 인클로저2) 가 개인과 생산 수단을 떨어트려 놓는 권한이 제도화되었기 때문이다. 2차 인클로저로 공유지의 절대적 소유권과 토지의 사유재산 제도가 확립되었고 자본가적 농업경영, 근대적 임금 노동자가 탄생했다. 근대 이전 농사와 목축업으로 꾸려가는 삶과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 생존 수단이 없는 노동자는 자본가의 노동 착취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며 노동을 위해 순종적인 사고방식을 습득한다. 이에 따라 노동력이 유일한 생존 수단인 개인은 자본주의 발전의 전제 조건이자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3) 


 인클로저가 만든 자본주의는 인간과 사회 질서, 제도, 규범 등 사회 전반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산업혁명 이후 많은 공장과 건물이 생겨났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지어진 공장 주변에는 노동자가 있었다. 그들은 근처에 집을 얻고 생활 반경을 구축했다. 사람이 모여 생긴 새로운 지역에는 활기가 돌았다. 철도가 깔리고 시장이 들어서며 도시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모두가 함께 만든 도시는 공유재가 아니라 누군가의 소유가 된 공간에 불과했다. 인클로저가 출현한 근대 사회(자본주의 사회) 이후 노동자는 자신의 의지대로 노동할 수 없었다. 생산 수단이 없는 그들은 자본가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4) 되는 것이다. 생산 수단이 부재한 노동자는 자신이 일군 공간과 상품에 관해 어떠한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 위치에 놓인다. 

 자본가는 일정한 지불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갈취하고 부를 축적한다. 그러나 착취를 통해 얻어낸 자본으로 도시의 주인이 되는 과정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는 어렵다. 도시공간이 인클로저의 주 무대가 된 것은 도시공간 자체가 이미 자본 집약적이고 사람의 활동 밀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개인의 개별적인 노력이나 투자가 아니라 집단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재화, 즉 공유자원이 가장 활성화된 공간이라는 뜻이다.5) 자본가는 이러한 공유자원을 독점해 더 많은 재화를 축적한다. ‘합법적’으로 탈취한 재화로 도시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도시 인클로저는 ‘일한 만큼 얻을 수 있다’는 공식을 완성한 도시 규범이자, 이 규범 외에는 노동자가 살아갈 방법을 아무것도 마련하지 않은 규범이기도 하다. 이 규범은 개인이 일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전제조건을 내걸었을 뿐, 대가의 실질적인 의미가 착취의 산물임을 알려주지 않는다. 


 빼앗긴 그들의 도시

 개인이 생산 수단을 마련해도 더 큰 자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여전히 노동자는 자신이 일군 도시에서 소외된다. 그 예로 동서울터미널이 있다. 동서울터미널은 1990년 이래 서울과 경기도 동·북부 지역, 강원도, 충청북도, 경상북도 내륙지역을 이어주는 곳이다. 터미널은 아무도 오지 않았던 쓰레기 매립지를 메꿔 만들어졌다. 해당 부지는 건설 당시 가스 폭발의 위험성을 지적받았지만, 상인들은 당시 서울 아파트 가격6) 과 맞먹는 권리금을 내고 입주했다. 상인의 권리를 보장하겠다던 한진중공업의 말을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2017년 시설 노후화 등을 이유로 ‘터미널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신세계동서울PFV(이하 신세계PFV)7) 는 부지에 45층 오피스 3개 동을 아우르는 복합 쇼핑몰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8) 이 재개발 계획에는 터미널 상인에 관한 고려가 없었다. 재개발 이후 상인들의 거취는 논의 대상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과 유대가 특별하다고 여기며 장사를 해온 상인들에게는 벼락같은 소식이었다. 재개발이 기정사실화된 이후 한진중공업이 재계약 계약서와 함께 내민 화해 조서에는 보상안이나 대안에 대한 언급 없이 ‘재건축을 하게 되면 다른 요구 없이 원상회복하고 나간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한진중공업은 이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2018년 상인들과 재계약을 진행했다.9) 2016년 한진중공업의 요구로 리모델링을 마친 지 5년도 안 되어 일어난 일이었다.10)     

         

▲ (좌) 경찰을 동원해 강제 철거를 진행하는 모습 ⓒ공정 뉴스 | (우) 2022년 동서울터미널 ⓒ한국일보


 도시는 수많은 이들이 머무르며 각자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하는 방식으로 생겨난다. 뉴욕대학교 교수이자 사회학자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공간이나 장소는 단순히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을 통해 재현된다고 말한다.11)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공간환경을 (재)생산하면서 또한 인간의 본질과 사회 구조도 (재)구성하게 된다.12)

 자본주의 내부에서 인간이 만든 사회 구조는 개인의 서사를 쉽게 내친다. 공간에 얼마나 애정을 쏟으며 가꾸었는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고려하는 것은 공간 점유 권리를 구매할 능력이 존재하는가가 전부다. 공간의 점유 권리는 지불과 거래를 통해 이뤄지며 이 절차만이 적법함을 얻는다. 


 함께 살아가는 도시

 도시는 여러 종류의 노동자가 서로의 궤적을 쫓으며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그들은 무언가를 기획하거나 생산할 수도 있으며 누군가를 응대하거나 가르칠 수도 있다. 어디선가는 기계의 부품을 교체하고 또 누군가는 화장품을 팔 수도 있다. 다양한 노동자들이 얽혀 도시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도시의 윤리와 규범은 개인이 가진 노동의 가치를 잘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과 자본가의 의지가 상충할 때, 쉽게 지탄의 대상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임금 인상, 고용 지속, 안전 보장, 편의시설 확장 등의 요구는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뻔뻔함’으로 전락한다. 


 2022년에는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 급식·돌봄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 코웨이 코디·코닥지부 파업, 화물 연대 파업, 대학 청소노동자 파업, 서울교통공사 총파업, 경기도버스노동자 파업 등 수많은 노동자의 목소리가 사회에 울려 퍼졌다. 이들은 삭감되었던 임금 보장, 노동 환경 개선, 업무 지원비 지급과 점검 요금 인상, 성추행 방지 대책, 최소 임금 보장, 고용 안정, 안전 보장을 요구했다. 다수의 불편함을 무기 삼아 압박하는 사회13) 에서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건 어려운 일이 되어만 간다. 그러나 다수의 불편함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역할이 사회를 이룬다는 걸 시인한다. 거대한 자본이 홀로 만든 것이 아니라 아닌 다수의 이들이 모여 만든 공간이 우리가 사는 도시다.  

▲ (좌)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파업 ⓒ경향신문 | (우) 급식·돌봄 노동자 파업 ⓒ뉴시스


 수많은 불빛 아래서 떠도는 개인을 상상해보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점처럼 작은 노동자들이 함께 일군 도시는 자본가의 이름으로 탈바꿈된다. 자본가의 이름표를 달고 세상에 나온 물질과 문화와 윤리는 너무 쉽게 노동자의 입을 막아버리기도 한다. 갈 곳 없는 개인이 도시에 또 한 명 생겨난다. 돈이 없으니 당연한 것이라는 현재의 논리가 인간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돌아볼 때가 왔다. 아주 늦어버린 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물어본다. 과연 당신의 도시는 오늘도 안녕한 게 맞는지. 또 갈 곳 없는 누군가를 만들어버린 공간이 되진 않았는지. 



참고문헌

김용창. 「도시 인클로저와 실존으로서 거주위기」, 『대한지리학회학술대회논문집』, 2015, 76-76.

김용창, 「<건설인문학32> 신자유주의의 위대함… 시장경제 메커니즘, 탈취와 인클로저의 합법화」, 『한국건설신문』, 2017.01.19.

나수진, 「임차인 배제한 재개발·재건축 반복…재벌 기업 '현대화 사업'에 내몰린 동서울터미널 상인들, 뉴스앤조이, 2021.06.24.

동서울시민의힘, 「동서울터미널 상인들과 연대해주세요」, 『행동하는지역공동체동서울시민의힘』, 2021.02.23.

박정연, 「화물연대는 왜 총파업에 돌입했을까?」. 『프레시안』, 2022.11.24.

임성빈, 「[단독] 한진중공업 설 연휴 동서울터미널 강제 철거...상생외면 비판」, 『공정뉴스』, 2021.02.12.

최병두, 「‘탈취를 통한 축적’ 도시재개발서 금융위기 예견」, 『한겨레』, 2009.09.18. 

한윤애, 「도시공유재의 인클로저와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반란적 공유 실천 운동」, 『공간과 사회』, 2016, 26(3), 42-76.

한준섭.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생산하는 도시 관계의 복잡함, 갈등, 그리고 모순이 보여주는 정책적 함의- 런던 서덕(Southwark)의 사례를 중심으로 -」, 『 한국정책학회보』, 2021, 30(1), 169-195.  



1)  김용창, 「<건설인문학32> 신자유주의의 위대함… 시장경제 메커니즘, 탈취와 인클로저의 합법화」, 『한국건설신문』, 2017.01.19.

2)  “제1차 인클로저 운동은 15세기 말에서 17세기 중반까지의 시기로서, 곡물 가격보다 양모 가격이 급등하자 봉건영주들이 경작지를 목장지로 전환시키면서 일어났고, 비합법적 과정을 통해 사유화되었다. 2차는 인구증가에 따라 식량수요가 급증하자 농업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18~19세기에 걸쳐 입법과정(parliamentary enclosure)을 통해 이루어졌다. 1차를 ‘민간 주도적 인클로저’라고 한다면 2차는 ‘국가의 정책개입을 통한 인클로저’라고 할 수 있다.” (위의 글).

3)  위의 글.

4)  독일의 경제학자 카를 마르크스의 노동 소외를 인용함.

5)  위의 글.

6)  1990년 서울 아파트 한 채의 가격은 4,000만 원에서 1억 원 사이로 상가 임대료 역시 이 사이에서 결정되었다.

7)  한진중공업은 자금 문제로 인해 신세계동서울PFV와 함께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기로 발표했다.신세계동서울PFV는 신세계 계열 부동산개발사인 신세계프라퍼티와 산업은행, 한진중공업이 출자해 만든 프로젝트 금융회사다. 합작 당시 지분은 한진중공업이 10%, 신세계동서울PFV가 85%, 산업은행 5%씩 갖기로 했다. (임성빈, 「[단독] 한진중공업 설 연휴 동서울터미널 강제 철거...상생외면 비판」, 『공정뉴스』, 2021.02.12.).

8)  나수진, 「임차인 배제한 재개발·재건축 반복…재벌 기업 '현대화 사업'에 내몰린 동서울터미널 상인들」, 『뉴스앤조이』, 2021.06.24.

9)  동서울시민의힘, 「동서울터미널 상인들과 연대해주세요」, 『행동하는지역공동체동서울시민의힘』,

2021.02.23.

10)  나수진, 「임차인 배제한 재개발·재건축 반복…재벌 기업 '현대화 사업'에 내몰린 동서울터미널 상인들」, 『뉴스앤조이』, 2021.06.24.

11)  최병두, 「‘탈취를 통한 축적’ 도시재개발서 금융위기 예견」, 『한겨레』, 2009.09.18.

12)  위의 글.

13)  2022년 11월 22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화물 연대 파업에 관해 “운송거부가 계속되면 국민이 부여한 의무이자 권한인 운송개시명령을 국무회의에 상정할 것”이라고 밝히며 “우리 기업들을 담보로 해서 자신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집단적인 이기주의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박정연, 「화물연대는 왜 총파업에 돌입했을까?」, 『프레시안』, 202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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