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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Jun 04. 2023

[84호][학내] 모두를 위한 덕성

SR

 평범한 길, 평범한 계단, 평범한 의자. 우리는 ‘평범’이 선사한 일상에서 매끄럽게 살아간다. 울퉁불퉁한 길, 수많은 계단, 높은 의자. 때로는 매끄러운 일상에 가려진 커다란 틈새에서 살아가기도 한다. 틈새는 다양한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와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움직이며, 다르게 살아간다. 이런 다름을 고려하지 않을 때 평범한 일상은 특권이 된다. 그렇다면 덕성은 어떠할까? 덕성에서는 모두의 삶과 일상이 매끄럽게 이어지고 있을까? 덕성의 틈새에서 벌어지는 실질적인 불평등에 주목해보았다.


※정보 전달의 편의를 위해, <장애인·노인임·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덕성여자대학교 쌍문근화캠퍼스 장애인 편의시설 의무 설치 기준을 ‘위반’한 사항은 볼드 처리를 하였으니 참고 바랍니다.※


 1. 

▲ 끊긴 유도 블록

 정문을 지나쳐 캠퍼스로 들어오니 덕성여자대학교의 넓은 평지가 보인다. 덕성여대 부지 대부분은 울퉁불퉁한 자갈길이나 벽돌길이다. 갈라져 있거나 홈이 패여 있는 곳도 부지기수다. 지체 장애인이나 고령자, 어린이, 휠체어 및 유모차 사용자는 낮은 턱이나 작은 구덩이 하나만으로도 이동에 제한이 생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도 블록1) 은 정문에서 시작되지만, 자연관, 덕우당, 약학관, 유아교육관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유도 블록은 건물의 위치나 방향, 위험물 등을 알리는 역할로 시각장애인의 이동과 안전을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학교는 절반 이상의 건물에 유도 블록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시각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렵다.


 2. 계단

 이제 학교 건물로 가보자. 아차, 벌써 난관이다. 이곳저곳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계단이 출몰한다. 계단이 하나라도 있으면 휠체어가 지나갈 수 없다. 높은 벽돌 계단부터 한두 칸짜리 저층 계단까지, 계단에 비해 경사로가 너무 적다. 건물 사이사이를 오갈 수 있는 통로와 출입구 또한 극히 제한적이다. 경사로가 있더라도 대부분 안내가 미흡하거나 건물 구석에 자리 잡고 있어 찾기 어렵다. 그중 예술관이 가장 열악하다. 계단으로 둘러싸인 예술관 건물에 경사로는 단 한 개도 없다. 예술관 외부 계단에 휠체어는 진입조차 할 수 없고, 손잡이도 없어 안전한 보행이 어렵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계단 안내 점자블록이나 점자 안내판도 찾아볼 수 없다.

▲ (좌) 점자표지판이 있는 약학과 계단|(우) 점자표지판이 없는 학생회관 계단

 학교 건물 대부분의 내부 사정도 비슷하다. 계단 손잡이 양끝 부분 및 굴절 부분에 층수와 위치 등을 나타내는 점자표지판을 의무적으로 부착해야 하지만 계단에 점자표지판이 붙어 있는 건물은 극히 드물다. 계단 양 측면에 손잡이를 연속으로 설치하지 않은 건물도 있었다.


 3. 엘리베이터

▲ (좌) 점자블록이 설치된 약학관 엘리베이터 |(우) 점자블록이 미설치된 인사관 엘리베이터

 계단을 지나쳐 엘리베이터로 눈길을 돌렸다. 계단 이용이 어려운 사람이 건물의 층을 오갈 수 있도록, 건물에 최소 하나 이상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학교 건물 중 예술관, 행정동, 덕우당, 유아교육관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있지 않다. 무려 학교 건물의 1/3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셈이다. 이는 휠체어 사용자의 건물 이용이 원천적으로 막히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엘리베이터는 모든 사람을 위한 시설인 만큼 이용이 쉬워야 한다. 휠체어가 오갈 수 있게 승강장과 승강기 사이의 틈이 좁아야 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향신호장치와 호출 버튼 아래 점자블록을 설치해야 한다.


 4. 강의실

▲ (좌) 인사관 촉지도. 건물을 안내하는 음향신호기와 점자가 설치되어있다. |(우) 인사관에 위치한 장애학생전용석. 높낮이 조절 기능은 없다.

 드디어 강의실 앞에 도착했다. 수업이 이루어지는 강의실조차 평등과 거리가 멀다. 시각장애인의 시설이용을 위해서는 건물마다 유도신호장치를 1개 이상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자연관을 제외하면 점자 안내 표지판이 부착된 강의실은 찾기 어렵다촉지도2) 는 건물마다 접근하기 쉬운 위치에 비치되어 있어야 하지만, 아예 없거나 찾기 어려운 위치에 놓여있다.

 강의실로 들어가 보자. 우리 학교는 책상과 의자가 이어진 일체형 책상과 경사가 가파른 계단식 강의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휠체어를 탄 학생이 수업을 듣기 매우 어려운 환경이다. 장애학생전용책상이 있는 강의실이라곤 인사대에 있는 4개의 강의실뿐이며3) , 그마저도 높낮이 조절이 되지 않아 휠체어 사용자의 높이에 맞게 조절할 수 없다.4) 또한, 모든 학생의 수업권 보장을 위해선 물리적 조건 외에도 각각의 장애 유형에 알맞은 강의실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듣기 편한 장소를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자리 선택에 우선권이 있어야 하고, 청각장애인의 경우 교수자의 입 모양을 잘 살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5. 화장실

▲ 인사관 장애인 화장실. 휠체어가 이동하기엔 공간이 협소하다.

 화장실은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인 만큼 다양한 사람의 이용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장애인용 화장실은 휠체어 사용자, 임산부, 영유아 등이 다목적으로 이용 가능해야 하므로 활동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학내 장애인 화장실 대부분이 이동 통로가 좁거나 문턱이 있어 휠체어 진입이 어렵다. 인사관의 경우 휠체어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협소하고 대변기로 이동하기 불편하다. 대강의동은 화장실 출입문 폭이 좁아 휠체어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외에도 창고처럼 이용되고 있어 사용할 수 없는 화장실도 다수 있다. 예술관과 유아교육관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설치조차 되어있지 않다.


 6. 도서관

▲ 오랜 시간 관리가 안 되었는지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있다.

 이제 도서관으로 가보자. 도서관은 ‘ㅁ’자 형태의 건물로 도서실, 정기간행물실, 멀티미디어실 등이 있는 도서동5) 과 열람실, 노트북존, 덕성다움, 대학원 등이 있는 열람동6) 으로 나뉜다. 도서동과 열람동은 구조적으로는 이어져 있지만, 동과 동 사이가 벽과 문으로 막혀 있어 사실상 각기 다른 건물처럼 사용된다. 이중 엘리베이터와 장애인 화장실은 도서동에만 있으며, 엘리베이터는 주로 직원용이나 화물용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대출 데스크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엘리베이터의 원활한 사용을 위해 장애인용 직원 호출벨이 놓여있지만, 이마저도 작동하지 않는다.

▲ 열람동으로 가기 위해선 이 문을 통해야만 한다. 도서관 직원의 지문으로만 출입 인증이 가능하다.


 열람동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으므로 열람실을 이용하려면 도서동을 통해 이동하는 수밖에 없다. 만약 휠체어를 타고 덕성다움에 가고 싶다면, 사전에 직원의 허락을 구한 뒤 건물 반대편에 있는 도서동 엘리베이터를 타고 열람동으로 통하는 여러 개의 문을 지나쳐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열람동에는 장애인 화장실도 없으므로 덕성다움에서 화장실이 가고 싶다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면 된다. 기막힌 효율이다.



 7. 학내 편의 시설

▲ 덕성다움 좌석발권기

 좌석발권기, 물품보관함, 식권발권기 등 학내 편의시설 또한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기기의 터치패드 위치와 각도는 휠체어 사용자에게 너무 높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안내나 점자 표지도 되어있지 않다.




 # 모두를 위한 덕성

 덕성여자대학교의 설립자 차미리사 선생은 배움의 기회에서 소외된 여성들을 위해 우리 학교를 세우셨다. 이들의 자립, 자생, 자각을 도와 모든 이가 평등한 사회를 누리는 것이 바로 차미리사 선생의 의지이자 덕성의 뿌리였다.7) 하지만 지금의 덕성은 과연 모두에게 평등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둘러본 덕성은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게 결코 포용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장애시설은 물론 평면적인 장애인식제고 교육8) , 낮은 장애인 의무고용률9) 등 우리 대학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현저히 뒤떨어진다. 이것이 비단 우리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장애인 권리보장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처우는 만연하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포함한 교육권, 노동권, 건강권 등의 권리가 이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침해당한다. 차별과 배제가 스며든 사회에서 모두가 누려야 할 권리는 특권이 되어버렸다. 이런 불평등을 바꿔야 한다면 덕성이 평등을 위한 발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소외된 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고자 했던 과거 차미리사 선생의 뜻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덕성의 일원으로서 다시 한번 외친다. 우리에게는 지금, 모두를 위한 덕성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고병찬. 「덕성여대에서 멈춘 휠체어 “장애인도, 청소노동자도 차별하는 대학”」, 『한겨레』, 2022.10.26.

덕성여자대학교 사회봉사과, 「2022학년도 장애학생 지원계획」, 『덕성여자대학교』, 2022.

「설립자 차미리사 선생」, 『덕성여자대학교 홈페이지』, 2021.12.02., (2023.01.30.).

이화교지편집위원회, 『이화교지 105집 열대야』, 2022.


1) 시각장애인이 보행할 때 발바닥이나 지팡이의 촉감으로 위치나 방향을 알 수 있도록 표면에 돌기를 양각한 블록.

2) 현재 위치와 건물 구조화장실엘리베이터 등을 점자로 표시한 지도.

3) 덕성여자대학교 사회봉사과2022학년도 장애학생 지원계획『덕성여자대학교』, 2022.

4) 학생서비스센터에서 높낮이 조절 책상을 보유하고 있으나단 2개뿐이다.

5) 건물 용도 구분을 위해 임의로 지정한 건물명이다실제 도서관에서는 해당 건물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6) 위와 같음.

7) 「설립자 차미리사 선생」『덕성여자대학교 홈페이지』, 2021.12.02., (2023.01.30.).

8) 재학생 대상 장애인식제고 교육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이루어지는 장애학생 이해 영상 시청뿐이다.(2022년 기준) (덕성여자대학교 사회봉사과2022학년도 장애학생 지원계획」『덕성여자대학교』, 2022.)

9) ‘서울시 소재 종합대학 장애인 의무고용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덕성여대 장애인 고용률(0.61%)은서울 소재 종합대학 32곳 중 꼴찌를 기록했다. (고병찬「덕성여대에서 멈춘 휠체어 “장애인도청소노동자도 차별하는 대학”」, 『한겨레』,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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