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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Jun 23. 2023

[84호][사회] 울타리 없는 노동자

SK

                                            청년에게 권고하고 싶은 말은 다음 세 마디뿐이다. 

                                                 즉, 일하라, 더욱 일하라, 끝까지 일하라.1)


 현장 실습은 직업적 전문 인력이 되기 위한 교과 학습 과정이다. 주로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이 과정은 사회로 나가는 예비 발판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현장 실습은 실습생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오랜 시간 비난받는 교육과정이기도 하다. 비협조적인 산업체와 허술한 교육과정, 권리 보호가 이뤄지지 않는 제도가 대표적인 문제로 꼽힌다. 이는 1963년 산업진흥법 개정에 따라 정식 도입된 이후 꾸준히 지적받았다.2) 현장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취급되는 그들을 보호해줄 사회적 울타리는 거의 없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추가 근무에 시달리거나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기 일쑤다.


 현장 실습

 청년 실습은 직업계고3) 학생의 현장 실습과 대학생의 현장 실습 두 가지를 의미한다. 직업계고 학생의 경우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실습을 나가지만, 대학생은 학과에 따라 실습 여부가 나뉜다. 2023년 기준 국내에는 총 579개교4) 의 직업계 고등학교가 있다. 이 교육 기관은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취업을 원하는 이들에게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직업계고 학생들은 입학 후 2년 동안 직업과 관련된 전문 지식을 학습하고 3학년이 되면 현장 실습을 나간다. 2017년 정부가 발표한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따르면 현장 실습에 참여한 학교 수는 593교, 참여 학생 수는 60,016명, 현장 실습에 참여한 기업 수는 31,404개다. 용혜인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통계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1년까지 현장 실습생의 산재 인정 건수는 54건이다. 산재 신청을 하지 않았거나 인정되지 않은 수를 고려하면 실제 산재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5)


 2021년 10월 6일 여수에서 한 특성화고등학교 현장 실습생이 바다에 빠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요트에 붙은 해조류와 조개류를 제거하기 위해 바다에 들어갔다가 생긴 일이었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안전 교육 부재 및 근로기준법 위반 사실이 드러났다. 근로기준법상 만 18세 미만이 일할 수 없는 금지 직종에 고압 작업 및 잠수 작업이 포함되어 있으나, 실무 현장은 이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이하 특고 노조)은 여수 현장 실습생 1주기 추모식에서 산재 사망 사건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바뀐 것이 없다고 지적한다. 2022년 7월 여수 현장 실습생이 일하던 요트업체 사장은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고용노동부와 교육부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교육부는 현장 실습 관련 커리큘럼을 논의할 권한만 가질 뿐, 취업 기관에 직접적인 제재 권한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고용노동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근로 감독을 통해 법 위반 사실을 처리할 수는 있으나 구조적 문제 해결은 어렵다는 입장이다.6) 적절한 처벌과 실효성 있는 대책, 그 어떤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와 함께 특고 노조는 “학교에선 노동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이번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 ‘노동’을 명시하라고 요구했는데 (이를) 윤석열 정부가 삭제했다.”7) 며 문제를 심화시키는 교육과정에 염려를 표했다.

▲ (좌) 여수 현장 실습생 추모 리본 ⓒ연합뉴스 / (우) ⓒ한겨레


 노동자가 사는 사회

 현장 실습생 사고 원인을 단순히 고용주의 잘못으로 일축할 수는 없다. 현장 실습 사고는 구조적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다. 2017년 제주 현장 실습생 사망 사건8) 이후 교육부는 현장 실습 제도를 실습이 아닌 학습 중심으로 변경했다. 현장 실습 과정에서 학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하지만 이를 기점으로 현장 실습생이 갖던 ‘노동자’, ‘학생’이라는 두 가지 법적 지위는 ‘학생’이라는 한 가지 법적 지위로 축소되었다.9) 노동자라는 법적 지위를 상실한 학생은 근로계약서를 요구할 수 없으며, 몇 가지 규정을 제외하고는 근로기준법 역시 적용 대상이 아니다.10)

ⓒ조승래 의원실

 실습 수당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교육부는 교육 수당으로 최저 임금의 70% 지급11) 을 권고하고 있지만, 이는 권고 사항에 그칠 뿐 실제로 이행하는 곳은 많지 않다. 한 현장 실습생은 주 5일 8시간을 근무했으나 그의 한 달 급여는 50만 원에 불과했다. 2018년 조승래 의원이 교육부의 <현장실습생 급여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120만~160만 원의 구간에 2016년 68.5%, 2017년은 70.2%의 월급 수령자가 집중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학습중심 현장 실습 제도가 도입된 2018년은 100만 원 이하의 월급 수령자가 78.6%로 전체 급여 수준이 크게 낮아졌다. 사회는 그들에게 안전도, 급여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

 학교가 재정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도 문제는 드러난다. 재정 지원 심사는 학생 취업률, 교과 과정 이수율 등의 요소를 고려해 평가한다. 이 중에서도 취업률은 재정 지원뿐만 아니라 신입생 모집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12) 높은 취업률을 위해 최대한 많은 학생이 연계된 취업 기관에서 일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취업 기관에 관한 심사가 까다로우면 취업 기관이 적어 취업률 역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 선정 기준을 완화해 많은 취업처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에 따라 실습 기업 선정 기준이 완화되어 취업 기관의 안전성은 중요도가 낮아졌다. 취업률에 초점을 맞춘 실정에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실업계고13) 를 발전시킨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는 과거 정부의14) 의 핵심 공약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으로 이어지는 길을 변화시켜 사회 진출 연령을 낮추겠다는 것이다.15) 그러나 막상 현장 실습을 나가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업무를 맡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2017년 음료 제조 공장에서 사망한 제주 현장 실습생의 전공은 원예과였으며, 같은 해 콜센터 업무 과중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현장 실습생16) 의 전공은 애완동물과였다.


 우리 모두의 외침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현장 실습이 취직에 도움이 된다고 대답한 학생은 전체 응답 수의 77.4%다. 2018년 개정 전까지 현장 실습은 6개월 이내의 조기 취업 형태를 띠었기 때문이다.17) 현장 실습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취업이 어렵다고 여기는 우려 역시 뒤따른다.18) 한 특성화고등학교 교사도 대다수 학생이 현장 실습을 원하고 있으며, 설사 위험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겠다는 학생이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학생들은 현장 실습을 통해 다양한 직무 경험과 고용 기회를 얻는다. 현장 실습이 교육훈련이라는 본 취지와 멀어져도 현장 실습 제도 자체가 폐지되기는 어렵다. 실습은 교육의 연장선이자 취직으로 이어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19)


 사회에 발을 내딛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현장 실습 역시 그 일환이다. 그러나 교육부도 노동부도 현장 실습생에 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직업계고 학생은 사회에서 학생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로 이어지는 트랙 안에서 다른 길을 모색하는 학생은 사회가 재현하는 학생과 거리가 멀다. 사회에서 멀어진 학생은 사회적 안전망에서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회는 학력만을 기준 삼아 굴러가지 않는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인간의 안전은 어떠한 요소로도 평가받을 수 없는 생득적 권리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노동자가 된다. 하는 일은 달라도 당신은 내일이 있는 노동자,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노동자여야 한다. 이 땅에서 살아갈 젊은 노동자들에게 미리 인사를 보내며, 우리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 주기를 소망한다.


참고문헌

고한솔, 「열여덟번째 생일을 나흘 앞두고…제주 현장실습생의 죽음」, 『한겨레』, 2017.11.22.

고한솔, 「“학습 형태 현장실습 좋아” vs “취업 보장 없다면 허울 뿐”」, 『한겨레』, 2017.12.01.

남승현, 「"특성화고 실습생 자살, 예고된 비극"」, 『전북일보』, 2017.03.23.

스브스뉴스, <일은 해도 근로자는 아니라는 직업계고 ‘현장실습생’ / 스브스뉴스>, 스브스뉴스, 2021.12.14.

씨리얼 제작팀, <특성화고 학생들이 정부에 따질 수밖에 없는 이유| 특성화고 이야기| 씨리얼 사회탐구>, 씨리얼, 2020.11.28.

이유진, 「지게차에 치이고, 손톱 빠지고…현장실습 규제 완화 뒤 산재 11건」, 『한겨레』, 2021.10.21.

이하늬·강한들·이혜리·박용근, 「이름은 교육, 실제론 노동…그 틈새로 사고 반복」, 『경향신문』, 2021.10.14.

장예지, 「‘빛났던 너에게’ 미안해…현장실습 산재 “바뀐 건 하나도 없다”」, 『한겨레』. 2022.10.06.

지준호, 「직업계고 현장실습생 급여 평균 100만원 이하로 낮아져」, 『에듀인뉴스』, 2018.10.11.

최민수, 「직업계고의 몰락」, 『한경』, 2022.05.22.

최서현, 「[지금 바로 진보] 근로기준법도 피해 가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민중의소리』, 2022.07.31.

최홍기,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노동법률』, 2017.12.29.

한국교육개발원, <취업통계조사시스템>. 2023.01.12.



1) 독일의 정치인 비스마르크의 말로 자아실현을 위해서 노동이 필수적이다는 맥락에서 나왔으나, 현재 청년에게는 같은 의미로 다가오지 않음을 이 글에서 명시하고자 한다.

2) 현장 실습 제도는 박정희 정부 시절 기능 교육을 현장에서 완성하자는 취지에서 완성되었다. (허환주, 구사대 동원되고 뇌출혈로 쓰러지고...고등학생 '현장실습'의 역사, 프레시안, 2021.10.09.).

3)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일반고 직업반을 묶어서 부르는 용어.

4) 한국교육개발원, <취업통계조사시스템>. 2023.01.12.

5) 이유진, 「지게차에 치이고, 손톱 빠지고…현장실습 규제 완화 뒤 산재 11건」,『한겨레』, 2021.10.21.

6) 장경주, 홍정아, 죽음을 부른 실습.. 학생들은 아직도 생사의 현장에 서있다. | 그알로 보는 ‘다음 소희’. 그것이 알고싶다, 2022.06.17.

7) 장예지, 「‘빛났던 너에게’ 미안해…현장실습 산재 “바뀐 건 하나도 없다”」, 『한겨레』, 2022.10.06.

8) 2017년 11월 9일 제주의 한 음료 공장에서 현장 실습생이 기계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해당 기계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근처에 실습생을 감독하는 이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직업계고 현장 실습 매뉴얼에 따르면, 실습생은 곁에서 현장을 보조하는 이가 필수 배치되어야 하며 기계 역시 안전 보장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장은 그 어떤 보호도 없었다.

9) 고용노동부의 지침에 따르면 일정 기준을 충족한 현장 실습생은 노동자로서 인정받으며, 근로기준법 역시 적용 대상이다. 그러나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위원장은 현장실습생은 여전히 현장에서 노동자로서의 법적 지위를 갖는다고 보기 어려우며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냈다. (최서현, 「[지금 바로 진보] 근로기준법도 피해 가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민중의소리』, 2022.07.31.).

10) 위의 글.

11) 나머지 30%는 교육부에서 지급한다.

12) 씨리얼 제작팀, <특성화고 학생들이 정부에 따질 수밖에 없는 이유| 특성화고 이야기| 씨리얼 사회탐구>, 씨리얼, 2020.11.28.

13)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는 기존에 있던 실업계고등학교를 발전시킨 교육 기관이다.

14) 2007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핵심 과제 중 하나가 직업적 전문 인력의 양성이었다. (청와대, 「이 대통령 “대학보다 마이스터고 입학 원하는 시대 올 것”」,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09.07.03. (2023.01.27.)).

15) 최민수, 「직업계고의 몰락」, 『한경』, 2022.05.22.

16) 2017년 1월 한 저수지에서 한 실습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가 부모님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에는 콜 수를 채우지 못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콜센터에서 근무했던 현장 실습생은 콜수를 채우지 못하면 퇴근할 수 없었다. 또한 해당 현장에는 업무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소통 창구가 없었으며 실습 현장 점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7) 고한솔, 「“학습 형태 현장실습 좋아” vs “취업 보장 없다면 허울 뿐”」, 『한겨레』, 2017.12.01.

18) 위의 글.

19) 스브스뉴스, 일은 해도 근로자는 아니라는 직업계고 ‘현장실습생’ / 스브스뉴스. 스브스뉴스, 202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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