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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Jun 30. 2023

[84호][여성] ‘파독’ 간호사

B.

 가죽 아래 숨겨진 푸른 혈관을 찾아 노련한 손길로 주사를 놓는다. 生과 死. 그 경계에 서 있는 그들의 좌표는 독일이다.

 파독 인력에 대한 대한민국의 평가는 이러하다.

 ‘외화 유치에 큰 기여’, ‘파독인력의 외화가 한강의 기적을’, ‘한국 경제발전에 이바지’ ….

 스포트라이트는 그들이 벌어들인 외화에 쏟아졌다. 그들의 ‘삶’에는 물음표가 찍히지 않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에
멋들어진 모자를 쓰고 거리를 달릴 때면
휘파람 소리가 거리 곳곳에서 터져나왔제.
흐미, 젊음이 어찌 그리 빨리 지나가는지…
            - 파독 간호사 이묵순, 박경란, 『나는 파독 간호사입니다』 中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애국(愛國), 그 너머

 1950년대 대한민국은 미국 경제 원조에 의존했다. 군사정부가 들어선 1960년대에도 경제 상황이 열악한 건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국가 주도의 급속한 산업화를 진행하고 있었고, 그 속에서 외국자본과 기술 도입, 취업난으로 인한 잉여 노동력 등의 문제를 겪었다.1) 반면 당시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가 급속히 성장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노동력 소실 등으로 고된 육체노동이라는 특성을 지닌 광산과 병원, 양로원과 같은 시설은 인력 부족에 시달렸다. 독일은 이와 같은 노동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노동자 수용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2)

 이처럼 1960년대는 한국과 독일의 경제적·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상황이었다. 대한민국의 잉여 노동력이 독일로 넘어가면서 국제적인 노동시장이 형성되었다.3) 이주노동으로 벌어들인 외화는 한국으로 흘러 들어가 개인적 측면에서는 가계소득의 증대, 국가적 측면에서는 국민소득의 증가와 경제성장 등에 도움이 되었다.4)

 파독 간호사는 ‘한강의 기적’의 주역으로 일컬어졌으며 자타공인 애국자라 불렸다. 그러나 ‘애국자’라는 단어만으로 전문 지식인으로서의 개인적 야망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파독 간호사는 국가에 의해 독일로 파견되었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개인의 선택에 구조적인 영향이 미쳤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이들은 본인의 의지로 독일행을 선택하기도 했다.5) 국가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의 ‘삶’을 조명해보자.


 재독한인간호사6)

 1966년 1월 31일, 128명의 간호사가 독일 땅에 발을 디뎠다.7) 독일행 비행기에 오른 지 23시간만의 일이었다.

▲ (좌) 독일에 도착한 대한민국 간호사들 ⓒ한국일보 |(우) 베를린에서의 파독 간호사 ⓒSBS 뉴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일만여 명의 간호사가 독일로 파견되었다. 해외여행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대에 수많은 20대 여성이 고국을 떠나 새로운 땅으로 향했다. 대부분이 미혼여성이었으나 기혼여성 혹은 아이가 있는 여성도 적지 않았다.8) 우리나라 간호사들이 독일 이주를 결정한 이유는 다양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동기와 바람으로 국경을 넘었다.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거나 학비를 대기 위해 원치 않는 독일행을 선택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적극적 의지를 가진 이들도 있었다. 당시 여성에게 각박했던 한국의 사회상도 한몫했다. 더 넓은 세상, 여성에게 자유로운 환경, 남자 형제에 밀려 미뤄두었던 대학 진학 등 다채로운 이유 속에서 이들은 독일로 향했다.


▲ (좌) 생일파티를 하는 재독한인간호사들 ⓒ연합뉴스 |(우) 재독한인간호사들의 설 명절 ⓒ국민일보

 독일 생활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고국을 떠난 이들에게 독일은 도약의 발판이자 정체성의 혼란을 자아냈다. 새로운 문화를 끊임없이 수용하면서도 꾸준히 갈등했다. 낯선 언어부터 식생활, 나아가 간호사 업무까지 크고 작은 차이가 존재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 생각에 지독한 향수병을 앓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여러 장벽을 헤쳐 나가며 독일에 적응해갈 즈음에는 원치 않는 귀향을 강요받기도 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석유 파동을 시작으로 서구 경제는 장기 불황에 빠져들었다.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자국민 일자리가 부족해지자, 독일 정부는 외국인 간호사를 내보내려 했다. 결국 1977년 남부 독일에서 17명의 한국 간호사가 체류 연장을 거부당해 한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이에 분노한 재독한인간호사들은 한국 간호사들의 체류 연장을 위한 ‘(파독)간호사 송환 반대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9)


▲ 체류권을 위한 서명운동 ⓒ서울역사박물관

 "독일 각 단체와 시민들의 후원을 받아서 이곳 정치인들을 초대해서 심포지엄을 했지요. 그때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는 필요할 때 가져왔다가 필요 없으면 버리는 그런 상품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다.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면 문화적 이질감 때문에 살아가기 쉽지 않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 것이고, 우리가 돌아가고 싶을 때 돌아가겠다.’”10)


 재독한인간호사들은 독일인 동료들과 연대해 서명운동을 펼쳐 무려 1만 명의 서명을 얻어냈다. 그 결과 간호사의 장기 체류 및 국적 취득과 관련한 법안이 통과되며 재독한인간호사의 장기 체류와 영주권 취득이 가능해졌다.


 디아스포라(diaspora)11)

▲  (좌) 재독한인간호사들의 첫 베를린 시내관광 ⓒ연합뉴스 |(우) 근무하는 병원 앞에서 ⓒ한국일보

 독일이 계절을 갈아입는 동안 재독한인간호사들도 자신의 삶을 그려갔다. 독일에서 본인들의 방식으로 고국의 명절을 맞이했으며, 대학에 진학해 학업과 직장생활을 병행하기도 했다.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자동차를 구매해 여행을 떠나기도, 머리를 한껏 흩트리고 춤을 추기도 했다. 고국에서의 어느 날처럼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하고 싶은 것에 주저 없이 도전했고, 온전한 본인 몫의 선택을 했다.

 재독한인간호사들의 삶을 조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최근 들어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2017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전시가 개최되었다. 해당 전시는 독일, 특히 서베를린에서 활동한 한인 간호 여성들의 정치·문화적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12) 2021년에는 한인 봉사단체 ‘해로’가 베를린 중심가에서 <고국을 떠나온 파독근로자 세대공감 사진전>을 개최했다. 관계자는 “우리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지 사진전을 통해 되돌아 보고, 앞으로 어떻게 가야 되는지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사진전을 기획하게 되었어요.”라고 기획 의도를 전했다.13)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삶을 다큐멘트로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힘들었던 점과 분명히 우리가 독일에 기여한 점도 있고 한국에도 기여한 점이 있지 않을까요? 그런 걸 균형 있게 보여주고 싶은 거죠.”14)  

 ‘있는 그대로의 삶이 균형 있게 다루어지길 원한다’는 그들의 바람처럼 독일로 향했던 한인간호사들의 삶을 조명하려는 움직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그들의 이야기

 독일행을 선택한 이유는 자발적 선택부터 암묵적 강요까지 무수하다. ‘파독’ 간호사들의 경험 역시 ‘하루하루가 눈물의 연속’이었다는 경우부터 ‘전혀 차별받지 않고 좋은 대우 받으며 선진적 환경에서 즐겁게 일했다’까지 다양했다.15) 그들은 수없는 도전과 해내야 하는 것들 속에서도 각자의 삶을 일궜다.

 1960년대에 독일에 뿌리를 내린 재독 한인 1세는 현재 대부분 은퇴 후의 삶을 살고 있다. 대한민국으로 돌아오거나, 독일 잔류를 선택하거나, 제3국으로 이민을 하는 등 다양한 길을 개척했다. 1960년대에 독일로 향했던 여성들은 2023년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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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덕, 「한인 이주민이여, 연대하라」, 『경향신문』, 2008.06.08.


1)  박재영, 「파독 간호사・광부의 독일정착과 삼각이민 연구」, 『다문화콘텐츠연구』, 제15집, 2013, (343쪽).

2)  박찬경·클라우스 펠링, 『독일로 간 사람들』, 눈빛, 2003, (37쪽).

3)  나혜심, 「트랜스내셔널 관점에서 본 독일 한인간호이주의 역사: 양국 간호문화에 대한 영향을 중심으로」, 『의사학』, 제22권 1호(통권 제43호), 2013, (180-181쪽).

4)  정선이 외3인, 「1960-70년대 파독간호사의 문화갈등과 자아정체성」,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제11권 3호, 2017, (72쪽).

5)  신혜정, 「‘두 개의 뿌리’…재독한인간호사의 굴곡진 인생」, 『한국일보』, 2017.07.01.

6)  보편적으로 쓰이는 ‘파독 간호사’라는 단어는 국가의 필요로 독일에 가게 됐다는 수동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당시 모든 여성의 독일행을 포괄하지 못한다. 이에 당시 여성들의 주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본 글에서는 내용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재독한인간호사’로 바꾸어 사용했다.

7)  해당 일자 이전에도 정식 간호사가 독일로 갔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인원이 소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바, 이주규모가 컸던 1966년 이후의 사례들이 주로 역사적으로 주목받는다. (나혜심, 「트랜스내셔널 관점에서 본 독일 한인간호이주의 역사: 양국 간호문화에 대한 영향을 중심으로」, 『의사학』, 제22권 1호(통권 제43호), 2013.)

8)  이애주, 『파독간호 평가사업 최종보고서』, 맑은기획, 2011, (39-40쪽).

9)  권은정, 「독일로 간 '아몬드 눈빛의 천사들', 지금 그들은…」, 『프레시안』, 2010.07.09.

10)  위의 글.

11)  고국을 떠나 타국에 뿌리 내려 살아가는 집단으로서 같은 출신 집단과의 국제적인 유대관계를 이어가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사회정치적 공동체를 의미한다. (정선이 외3인, 「1960-70년대 파독간호사의 문화갈등과 자아정체성」,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제11권 3호, 2017.)

12)  박상훈, 「독일로 간 한국 간호여성들의 삶…'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展」, 『아주경제』, 2017.07.05.

13)  김귀수·이현모, 「파독 간호사 “벌써 50년”…과거와 마주하다」, 『KBS 뉴스』, 2021.11.10.

14)  김학선 외2인, 「파독간호사 삶의 재조명」,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 제18권 제2호, 2009, (180쪽).

15)  이애주, 앞의 책,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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