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입니다. 여러분이 이 글을 읽을 때쯤에는 열기가 조금 사그라들었는지요. 혹 차가운 공기에 몸을 웅크리던 참은 아니었는지요. 미래의 수신자에게 보내는 질문이라니, 우주 여행자가 된 기분입니다.
글은 힘이 없다는 걸 깨닫는 날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써야만 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숱한 최면에도 다잡아지지 않는 마음에 책상 앞에 앉는 시간은 늘 괴롭습니다. 성가신 끌림과 남루한 열망, 끈적이는 후회. 절망과 분노로 시작한 글은 늘 도피로 끝납니다. 거듭된 퇴고로 뭉툭해진 활자에 힘이 남아있지 않은 탓입니다. 희망 없는 세상에 대적할 무기가 없다면 도망치는 편이 나을 테니까요. 그런데 어쩐지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며 함께 머물자고 손짓하는 이들 때문입니다.
해야 할 말을 하자는 건 어느새 우리의 돌림노래가 되었지만, 각자의 당위는 엿볼 수 없을 만큼 아득히 멉니다. 아마도 우리는 목소리를 갈망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소리쳐도 닿지 않는 문장과 뚫리지 않는 벽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확성기가 되어 벽을 부수자. 순진하고 눅눅한 희망이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허용된 이 작은 페이지에서도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번 근맥은 필명으로 인사를 건넵니다. 반격을 위한 후퇴인지, 단지 용기가 없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조금 더 솔직할 수 있어, 다양한 사람들을 기록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낯선 음성들이 우리의 이름이 빠져나간 빈틈을 채워준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허전하고도 풍부한 여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러분께 부탁해 봅니다. 우리와 함께 외쳐달라고, 여러분의 목소리를 들려 달라고요.
글에는 힘이 없지만, 글을 쓰고 읽을 때만큼은, 글이 유형(有形)에서 벗어나 무형(無形)이 될 때만큼은, 글도 힘을 가진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글이, 여러분의 목소리가 작은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편집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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