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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Sep 01. 2023

[85호][특집] 덕성여대의 말말말: 전공 통폐합

교지편집위원회 근맥

 전공이 사라진다?: 전공 통폐합

 지난 3월 20일, 덕성여대신문사가 독어독문학전공(이하 독문)과 불어불문학전공(이하 불문) 폐지를 다룬 기사를 공개하면서 대학본부의 일방적인 학사구조 조정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를 기점으로 전공 교수들과 학생들은 자유게시판 및 공개토론을 통해 학사구조 조정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김건희 총장의 학사구조 조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4월 1일, 교무과는 2023년부터 컴퓨터공학전공, IT미디어공학전공, 사이버보안전공, 소프트웨어전공을 디지털SW학부로 통합한다는 내용의 학칙 개정안을 공고했다. 해당 전공 학생들은 공청회 없이 공고된 학칙 개정안에 혼란을 표했다. 대체 우리대학의 학사구조 조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걸까?


 우리대학 학칙에는 전공 폐지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1) ‘전면 자유전공제’가 전공의 자유로운 운영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대학본부는 타교와 달리 우리대학은 전공을 없애는 게 아니라 전공 신입생을 받지 않는 것이라 설명하며, 전공 폐지 가능성이 가시화되지 않도록 별도의 기준을 만들지 않았다고 밝혔다.2) 즉, 전공 폐지 가능성이 불안감을 조성하여 원활한 전공 운영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대학에서는 신입생의 미배정을 폐과로 정의하고, 구조 조정을 위한 학과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대학 역시 위원회를 조직하고 평가를 시행해야 하지만,3) ‘구조 조정’의 명확한 정의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를 기대하긴 어렵다. 어째서 독·불문은 명확한 정의도,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구조 조정 대상이 되었을까?


강남희 기획처장: 37개 전공에서 35개 전공으로 바뀐다는 게 학칙의 주요 내용이에요. 신입생을 미배정하겠다는 거지, 전공을 폐하는 건 아니거든요. (전공 폐지라는 건) 너무 악의적 여론이죠.


독어독문학전공 교수 H: 교수도 그대로 두고 학생들 수업도 그대로 개설된다면 도대체 어디서 비용이 절감되냐는 거죠. 2030년까지 전공 수업이 차질 없이 개설된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다전공을 장점으로 승화하겠다는 공약을 외치던 총장은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전공과목 개설 규정을 개정하고,4) 독·불문 전공을 폐지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이런 총장의 말을 물론 믿을 수 없습니다.

  전공 신입생을 뽑지 않으면 우리는 2-3년 후면 정상적으로 수업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학생 수가 적으니까요. 그때 교수들은 교양 수업을 하라는 겁니다. 이건 법적 문제를 피하기 위한 얘기에 불과합니다. 우리와 의논한 것도 아니고, 우리를 배려해준 것도 아닙니다.


 총장과 대학본부의 주장은 명료하다. ‘덕성의 생존을 위한 결정이다. 수요가 없는 전공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야 한다.’ 현재 덕성여자대학교는 철저히 자본의 힘에 따라 움직인다. 학생이 단순 “소비자”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덕성의 가치와 목표는 훼손된다. 15년 전부터 전공 폐지를 고려했다는 총장의 말과 전공 쏠림 현상이 없다는 학교의 홍보. 의견 수렴 단계라 폐지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대학본부의 주장5)과 작년 3월에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는 총장의 주장6). 모든 것이 자본이라는 이름 뒤에서 마구 뒤섞인다


▲ 학내 구성원들이 회의장 문밖에 모여 학사구조 조정을 반대하고 있다.

 7월 11일, 대학의 가치는 수요와 자본으로 정해질 수 없음을 증명하듯, 학생들이 학교로 몰려들었다. 이날 대학본부 3층에서는 학칙 개정(안)과 관련하여 대학평의회가 진행됐다. 세 시간가량 심의가 진행되는 동안 학내 구성원의 목소리가 건물에 울려 퍼졌다.

“우리 의견 묵살하는 학칙 개정 반대한다. 민주덕성 파괴하는 독재 총장 물러나라. 기업화된 대학에서 우리 학문 지켜내자. 일치단결 민주덕성 투쟁으로 쟁취하자.”


 각 전공의 학생대표와 전공 교수들의 발언이 끝난 후, 시위 참여자들의 자유 발언이 이어졌다. 한 학우는 ‘대학은 인간 됨을 가르치는 공간이다. 쓸모로 환원하는 논리는 인간의 역사를 훼손하는 일이다’라고 발언했으며, 다른 학우는 ‘대학은 함께 성장하는 공공재라는 인식을 알리기 위해 여수에서 KTX를 타고 세 시간을 달려왔다’며 참여 동기를 밝혔다. ‘해당 전공의 수업을 들으며 더 다양한 미래를 상상하게 됐다’는 타 전공생 학우의 발언에 많은 학생이 공감하기도 했다. 자유 발언 시간은 전공의 필요성과 영향력이 단순히 전공생의 숫자로 환원되지 않음을 보여줬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학우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학칙 개정(반대 시위에 참여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 글로벌융합대학 A 학우: 학칙 개정은 어느 전공에든 적용될 수 있잖아요. 내 전공의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저는 인문·어문을 배우고 싶어서 덕성여자대학교에 입학했거든요. 그래서 인문대학에 투자를 줄이는 상황에 반대의견을 표출하고 싶었어요.

- IT미디어공학전공 I 학우: 불어불문학전공 교수님과 면담을 신청했다가 시위 날짜가 겹쳐서 해당 시위를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해당 사항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는데, 학생들의 자유 발언을 들으며 분노하게 됐어요. 이전에는 내 전공이라면 어땠을지 상상했었지만, 이제는 학문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고요. 대학은 교육기관으로서, 학사 행정도 교육에 포함된다는 교수의 발언에 공감해요. 이런 교육기관에서 취업을 위한 것이 아닌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의 진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지 의문이에요.


해당 사항과 관련하여 대학에 바라는 사항이 있으신가요?

- 글로벌융합대학 C 학우: 총장이 학생 의견을 듣길 바라요. 총장은 권력을 가진 것이 아니며,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에요. 총장은 학교의 대리자로서 존재함을 인지하고 학생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약속(공약)을 지켰으면 좋겠어요.

- 문헌정보학전공 J 학우: 정확한 사항은 모르지만 학교가 소통을 회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를 교묘하게 피하고 공문을 보내지 않는 것이 충격적이에요. 학생 의견을 진지하게 듣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대학평의회가 끝난 후, 비서실 앞에 모여 2차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그날 저녁, 총장은 자유게시판을 통해 대학평의회에서 학칙 개정안을 부결했다고 전하며, 향후 적법한 절차를 갖춰 학사 구조 개편을 재추진하도록 하겠다고 공지했다.7) 해당 공지에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적으로 불편함을 줬다’라는 문장 외에는 어디서도 사과를 찾아볼 수 없다. 해당 원안이 부결된 이유를 단순 절차적 문제라 설명할 수 있을까? 대체 총장은 어떤 ‘최선의 노력’을 했을까?8)


 김건희 총장은 끊임없이 효율과 능력, 경제성을 강조한다. ‘취업률이 높고 산학연관체계가 잘 확립된 전공을 대표브랜드로 선정해 교육경쟁력을 높이겠다.’, ‘업무 능력 최적화를 위한 체계적인 맞춤형 구조조정’……. ‘효율’이라는 거대한 목적 속에서 대학의 모든 요소는 기업화의 발판이 된다. 학문의 가치는 고유한 특성을 배제한 채 경제적 지표로만 환원된다. 교직원 복지를 위한 제도 및 환경 조성도 그저 업무 효율성의 증진 방안 중 하나일 뿐이다. 캠퍼스 활용 무산, 구성원 차별, 학사구조 조정, 일일이 언급하지 못한 문제들까지. 이 모든 상황을 단순히 시대의 요구와 재정 문제로 설명할 수 있을까? 대학과 자본은 공존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본이 대학의 본질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의 진짜 ‘위기’는 재정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김건희 총장은 총장 후보자 시절부터 ‘소통’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어째 모두가 총장의 소통방식을 비판하는 상황이다. 총장은 오늘도 효율을 위해 전진, 또 전진한다. 구성원들이 아무리 소리쳐도 총장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공동의 가치와 목표를 공유할 논의장 하나 없는 상황에서 각자의 이상(理想)에는 거대한 틈이 생긴다. 대학은 교직원, 학생, 주민, 동식물 등이 부딪히고 뭉치며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 격렬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함께 성장한다. 학내 구성원 간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대학에서 우리는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덕성여대가 학내 구성원들에게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 청소노동자 G: 학교의 중심은 학생이에요. 학생들이 가장 좋은 환경에서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고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학교가 뒷받침해야 해요. 교직원, 교수, 총장, 청소노동자, 시설 노동자, 모든 사람이 다 중요하죠. 우리의 삶도 중요하니까요. 그렇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종사하는 한 그 중심은 학생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희 임무고, 또 그렇게 됐을 때 저희의 삶이 기쁜 거고요.

- 비정년계열 교수 E: 첫째로,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좋은 사회 구성원으로 살 수 있도록 준비해 주는 공간. 둘째로 자본주의 논리만이 통하지 않는 공간이요. 우리 사회에 자본주의 논리가 통하는 공간은 너무 많은데 자본주의만으로 지킬 수 없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리고 대학이 바로 그걸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 재학생 K: 하나의 커다란 담론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소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요. 서로의 의견과 다양성을 공유하면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간이 되길 바라요.


당신이 꿈꾸는 대학은 무엇인가? 그리고 대학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1)  현재 전공 폐지가 명시되어 있는 경우는 연계전공, 융합전공, 일반대학원 전공뿐이다. 2022년 12월 28일 전체교수회의에서 총장은 정식 안건도 아닌 독·불문 폐지를 구두 인사를 통해 공표했다. 총장은 학칙 제4조를 근거로 제시했지만, 해당 학칙은 각 단과대학의 입학정원과 각 전공의 최대 배정 인원의 평가 및 조정에 관한 규칙이다. 즉, 단과대학이 아닌 전공의 입학정원은 평가 대상이 아니며, 총장의 권한은 평가 시기와 방법에 한정된다.

2)  총학생회가 공개한 ‘학사구조 조정 학생면담 보고’.

3)  학칙 제3편 제2장 제19절 ‘대학자체평가에관한규정’에 따르면 “교육 여건 개선 및 교육ㆍ연구 등의 질적 향상”을 위해 ‘대학자체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규정 역시 구조 조정 관련 내용을 포함하지 않으므로, 전공 폐지의 근거가 될 수 없다.

4)  6월 8일, “수강생 중 재1전공 학생 수가 40% 이상인 과목을 설강한다”라는 조항(제3편 제4장 제7조 제4조(폐강 및 설강))에 “다만 다음번 설강 시에는 10명 이상이어야 설강할 수 있다”라는 단서 조항이 추가되었다. 이 조항으로 인해 소수 전공의 수업 개설이 더욱 어려워졌다.

5)  주세린. (2023). 절차와 기준 없이 전공 폐지 밀어붙이는 우리대학. 덕성여대신문. https://www.dspress.org/news/articleView.html?idxno=11347(2023.05.30. 접속).

6)  덕성여자대학교 자유게시판. 존경하는 덕성 구성원께 드립니다. 덕성여자대학교. https://www.duksung.ac.kr/bbs/boardView.do?bsIdx=85&bIdx=631476&page=1&menuId=1262&bcIdx=0&searchCondition=SUBJECT&searchKeyword=(2023.07.11. 접속).

7)  앞의 글, 존경하는 덕성 구성원께 드립니다.

8)  전공 폐지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과 졸업생이 모여 ‘민주덕성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학내 구성원의 신임을 잃은 총장이 대학을 민주적으로 운영할 거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현재 총장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7월 11일 기준, 총장사퇴 촉구에 서명한 구성원은 800명이 넘는다.



참고문헌

덕성여자대학교 자유게시판. 존경하는 덕성 구성원께 드립니다. 덕성여자대학교. https://www.duksung.ac.kr/bbs/boardView.do?bsIdx=85&bIdx=631476&page=1&menuId=1262&bcIdx=0&searchCondition=SUBJECT&searchKeyword=(2023.07.11. 접속).

주세린. (2023). 절차와 기준 없이 전공 폐지 밀어붙이는 우리대학. 덕성여대신문. https://www.dspress.org/news/articleView.html?idxno=11347(2023.05.30.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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