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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Sep 08. 2023

[85호][특집] 언어와 권력

타다

 내 언어는 폭죽같이 뜨겁다. 할 말은 너무 많은데 그게 분출되지 않아서 횡설수설 악에 가득 받쳐 펄펄 날뛴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말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군다. 내가 날뛰면 날뛸수록 사람들은 내게 더 객관적이고 논리적이길 요구하고, ‘점잖고 진중하게 정제된’ 언어로 말하길 바란다. 마치 내 언어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울분을 앞서 말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사람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도 목이 터져라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사람도, 삐뚤빼뚤한 글씨로 맞춤법에 맞지 않은 글을 써내는 사람도,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해 입을 꾹 닫아 버리는 사람도 있다. 이런 언어라도 전부인 사람들이 있다.

 그래, 그런 ‘우리’들이 있다. 성폭력 피해자, 장애인, 트랜스젠더, 국가폭력 피해자, 성노동자, 철거민, 저학력자, 정신병자, 불법 이주민, 기피되는 사람들로 불리는 ‘우리’들.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해, 감정에 대해, 현실에 대해 더욱 객관적이고 논리적이길 요구받고, 우리의 언어는 주관적이고 충동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 이유로 너무 쉽게 무시되고 사라진다. 그러니 나는 내 언어에 대해 이 이상 변명하기를 관두고, 이제 당신에게 묻겠다. 당신이 듣고자 하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는 무엇인가? 그것은 누구의 언어인가?


 # 언어와 권력 

 인간은 언어를 통해 소통한다. 음성, 몸짓, 표정, 글, 기호 등 어떤 방식이든 소통을 위해선 반드시 언어를 거친다. 언어는 구체적인 생각과 인식을 가능케 하고, 그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으며, 동시에 타인에게 의도된 효과를 낳는다. 한마디로 언어는 언제나 의도적이며,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이는 언어가 단지 대상을 반영하는 객관적인 표현물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이자 복합적인 구성물임을 뜻한다. 따라서 인간 사회를 살아가는 당신이라면, 당신은 언어를 통해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어는 인간사회의 시스템을 만들고 제도와 법을 구성하고 이 사회를 직조한다. 더 나아가 당신이 인식하는 그 모든 것과 무의식 저 끝까지, 언어가 미치는 영향은 무궁무진하다. 그만큼 인간이 언어로써 행하는 실천과 인식은 결코 자유롭지 못하며, 언어는 불평등하게 편중된 권력 관계로부터 통제된다. 단지 그러한 사고체계를 자연화하는 언어의 특성으로 인해 권력이 은폐되는 것일 뿐이다.


 # 객관적인 언어는 없다 

 “동생에게 성추행당했던 걸 아빠에게 말했다. 나는 아빠가 적어도 동생에게 꾸중하는 시늉이라도 낼 줄 알았다. 그런데 아빠는 ‘그것도 남자라고’ 말하며 허허 웃었다. 나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숨넘어갈 듯 화를 냈다. 내가 아무리 악을 질러도 아빠는 여전히 웃었다. 아빠와 가족들 모두 변함없었다. 이곳에선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 ‘타다’의 일기 일부 발췌 
▲ 나는 집에서 고립감을 느낄 때 그림을 그리곤 했다.

 남성 중심 언어로 구성된 세계에서 여성의 언어는 없거나, 들리지 않거나, 왜곡된다. 특히 성폭력에 대한 여성과 남성의 발화를 받아들이는 사회의 태도에서 그 모습이 두드러진다. 여성의 성폭력 피해 발언은 주관적이고 비논리적인 것으로 쉽게 의심받는 반면, 무고를 주장하는 남성의 발언은 진실한 사실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하다. 남성 중심 언어에 있어 여성은 언제나 성녀 아니면 창녀다. 여성이 성폭력 상황을 서술할 때 남성의 언어를 충분히 빌려 사용했는가에 따라 여성은 피해자(순결한 피해자)가 되기도 가해자(꽃뱀)가 되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사회적 ‘분위기’ 정도로만 끝나지 않는다. 남성 중심적 언어로 구성된 법과 제도는 여성이 법정에서 성적수치심 외의 감정을 말하거나 충분히 '피해자'로 보이지 않을 때 피해 사실을 축소한다. 그리고 법정에서 내린 판결은 다시 그 피해 상황을 판단하는 ‘객관적인’ 지표이자 언어로 재생산된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언어가 가진 권력의 정도가 달라진다. 언어의 ‘보편성’과 ‘객관성’은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조건부 특권이다. 한 마디로 ‘보편적인 언어’, ‘객관적인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 지배 언어의 정치 

 - 불리는 사람들 

 “여전히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가해자는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이에 저는 수감 기록으로 증거가 명백하게 남아있는 광주 교도소의 고문 수사와 잔혹 행위를 고발함으로써, 5월 광주시민 민주항쟁의 진실을 찾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합니다.” - 5·18 민주유공자 차명숙 

 ‘어떻게 호명하는가’를 다투는 언어투쟁은 그 언어가 지시하는 대상을 해석, 인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치열한 정치적 경합 중 하나다. 전두환 정부는 국가폭력을 ‘광주사태’로 호명하여 광주시민의 폭동으로 해당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하지만 광주시민은 이를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재호명하여 낙인에 저항하고 민주화의 역사를 담고자 했다. ‘광주사태’로 불리었던 ‘5·18광주민주화운동’이 공식 명칭이 되기까지1) , 그사이에는 해당 사건을 재현하기 위한 주체들의 격렬한 역사적, 정치적 투쟁 과정이 존재한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언어 변화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를 담고 있다. 

 전두환 정부가 ‘광주사태’로 호명하여 광주시민이 오랜 시간 낙인에 고통받아 왔던 것처럼, ‘호명’은 타자를 해당 언어에 종속시켜 대상화한다. 호명은 지배층이 행하는 가장 편리하고 폭력적인 정치적 수단이다. 이처럼 언어는 권력을 만들고, 권력은 언어를 통해 다시 권력을 만들어낸다. 


 - 은폐되는 맥락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이동권 쟁취를 위해 지하철 선전전을 하고 있다. ⓒ비마이너
“시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서울시는 출근길 지하철이 1분만 늦어져도 큰일 난다지만, 장애인에게는 22년 동안 기본적인 이동권조차 보장되지 못한 차별의 역사가 있습니다. 장애인도 지역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복을 나누면서 오늘 선전전을 시작하겠습니다.”2) - 박경석 대표가 지하철 선전전에서 

 지난 1월 2일,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안전안내문자가 발송됐다. “4호선 삼각지역 상선 당고개방면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타기 불법시위로 무정차 통과하고 있습니다. 열차 이용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하철 이동권을 위해 역사 내에 시위를 벌이고 있던 참이었다.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기준’의 발송기준에 따르면 안전안내문자는 지자체 관할 구역에 자연재난 또는 사회재난이 발생할 시에 발송할 수 있다. 서울교통공사(이하 서교공)가 재난대비를 위한 안전안내문자에 시위에 관한 내용을 발송하다니, 대체 그 의중이 무엇일까?

 서교공은 안전안내문자를 통해 장애인의 이동권 시위를 재난 급의 위기로 격상하여, 시위에 대한 불안감을 형성하고 적대적인 여론을 조성하고자 했다. 또한, 이동권을 위한 투쟁을 ‘불법시위’로 호명함으로써 시위의 정당성을 은폐했다. ‘불법시위’는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에 탑승하는 것만으로도 정차하는 지하철 설비의 문제, 장애인이 ‘불법’으로 시위를 진행할 수밖에 없게 하는 구조적 차별의 문제, 집회의 자유를 매우 한정적으로 규제하는 제도적 문제 등의 모든 맥락을 탈락시키고 이동권 시위에 부정적인 인식만을 남긴다. 


 그러나 ‘불법시위’라는 언어가 가진 편리성에 문득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장애인도 시민이다”, “장애인도 지하철을 탈 권리가 있다”는 당위적 명제를 전제하는 이동권 시위가 ‘불법시위’라는 언어 앞에서 너무 쉽게 정당성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대중은 ‘불법시위’에 대해 단순히 사전적 의미만을 떠올리지 않았다. 대중은 공공성의 개념마저 경제적인 이익으로 환원시키는 ‘자본주의적 논리’와 집회를 불법화하여 대항적 실천을 무력화하는 ‘법치주의의 논리’를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권력 집단은 언어 행위에 제도적·조직적·상징적·인적·재정적 자원을 동원함으로써 지배기능을 행사한다.3) 따라서 언어는 제도, 법, 국가, 언론, 교육기관 등 매우 실물적인 권력 체제이며, 우리가 인식하는 사회 그 자체다.


 # 부재한 언어 

“내게도 일상은 있다. 눈을 뜨고 눈을 감을 때까지 특별하지 않은 삶을 견뎌낸다. 꿈이 있고, 삶의 목표가 있으며, 희망이 있다. 그러니 내 삶은 남들에게 확인받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을 가고자 하는 당연한 목표, 그 속의 꿈조차 누군가에게는 의심의 대상이고, 조사의 대상에 불과하다. 또한, 내 삶은 다른 사람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무시되고, ‘반대’를 당한다. 그렇게 나는 일상을 영위할 당연함마저 빼앗겼다. - 20년도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합격생
▲ 2023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집회 모습 ⓒ무지개행동

 언어가 사회를 인식하게 한다는 것은 언어로써 인식의 경계가 설정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상식’ 혹은 ‘보편적 지식’으로 이해되는데, 말하지 않아도 말한 것으로 이해되는 암묵적인 담론을 우리는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이나 권력집단의 이익과 입장을 자연적 질서이자 자명한 진리로 여기도록 한다. 이를테면 인간의 성별이 ‘여성’과 ‘남성’으로만 나뉘어 있다고 여기는 성별 이분법 이데올로기가 대표적이다. 성별 이분법은 인간 사회 체제의 모든 영역에서 구조화된 이데올로기로, 이것의 재현과 작동 과정을 분석할 때 권력이 향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근대 국가 출현 이후, 가부장제는 자본주의를 지탱해주는 효과적인 체계가 되었다. 근대의 가부장제가 존속하기 위해선 혼인제도를 통한 이성애적 관계가 필수적이고, 이성애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성별 이분법적 사고가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근대 국가는 급격한 산업화를 유지하기 위해 규제와 처벌을 통해 국민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한다. 성별 이분법적인 언어로 설계된 사회에서 이분법에 벗어난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경험과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트랜스젠더는 존재에 대한 증명을 요구받을 때 기존의 언어를 빌려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친다. “어렸을 때부터 치마 입는 걸 싫어했다”거나 “인형놀이와 화장을 좋아했다”는 식의 서술은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기존의 젠더화된 언어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또한, “나를 남자로 느낀다” 같은 트랜스젠더의 커밍아웃 언어에 대한 사회적인 반응처럼, 트랜스젠더의 발화는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기존의 언어 체계에 따라 왜곡되어 전달되기도 한다.4) 

 트랜스젠더의 언어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이 나뉘어 있고, 이것을 자명한 진실, 당연한 질서로 여기는 언어로 인해 배제된다. 이처럼 이데올로기는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사회적으로 제도화되어 당연한 규칙처럼 여겨진다. 이것이 사회를 구성하는 인식체계의 기반이 됨으로써 소수자의 언어는 부재하게 된다. 언어가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 것이다.  


 # 언어의 지평 너머로 

 지배 언어로 설계된 세계에서 소수자는 끊임없이 불화한다. 매 순간 자신과 부딪치고 삶으로부터 쫓겨나며, 언어가 가진 경계의 끝자락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러한 소수자의 ‘언어 없음’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새로운 언어를 생성해내는 이는 세상과 자기 경험이 매끄럽게 일치하는 사람이 아닌, 세상으로부터 탈락되어 찢기고 부딪히는 고통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존의 언어를 따르는 방식으로는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 “아버지의 연장으로 아버지의 집을 부술 수 없다”는 어느 페미니스트의 말처럼5) , 아버지의 집을 부수기 위해선 나만의 연장을 갈고 닦아야 한다. 나의 경험, 나의 감정, 나의 세계를 자원 삼아 나만의 언어를 발굴해야 한다. 


 자신만의 언어를 발굴하기 위한 몇 가지 방식을 소개하겠다. 


- 구술생애사

권용수 : “만약에 이 동네에 계속 정착할 수 있다면 여기서 더 살고 싶어. 쉽게 말하면 재개발을 해야 되면, 철거를 하되 여기 주민들을 딴 데로 보내지 말고 임대 아파트 같은 거를 한쪽에 지으라는 거야. (중략) 그렇게만 되면 딴 데로 갈 필요가 뭐가 있어? 내가 여기서 70년 가까이 산 건데. 사실 나는 내 돈으로 방을 얻기로 한다면 지금도 여기 말고 더 좋은 데로 나가 살 수는 있어. 그래도 여기를 떠나기 싫어서 그대로 이 동네 이 쪽방에 사는 거야.”

(중략)

최현숙·홍혜은 : 인생이라는 삶의 덩어리가 얼마나 입체적이고 분열적인지 드러낼 수 있어서 좋았다. 소위 “착한” 소수자로 기록되고/기록하고 싶은 화자/청자 모두의 허영을 깰 수 있었고, 우리가 소수자들의 삶을 기록하는 이유를 다시 벼리게 했다. 그들에 대한 기록이 고통의 전시가 되어서는 안 되며, 기록의 목적은 화자가 어떤 사회적 위치들을 거쳐 왔는가를 드러내고 그에 연관된 사회 구조를 파악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 『힐튼 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中 권용수씨의 구술생애사  

 구술생애사는 구술자의 삶을 동시대의 사람이 인터뷰해 구술한 내용을 기록한 역사다. 구술생애사의 주인공은 구술자의 언어 그 자체다. 구술자는 웃고 울고 화내며 비정제된 언어로 자신의 삶을 서술한다. 이런 구체적인 생애사를 통해 ‘객관성’이 가려왔던 개인의 삶과 그들이 속한 사회 구조를 재구성한다. 구술생애사는 구술자의 언어를 청자가 어떠한 태도로 경청해야 하고,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지와 같은 ‘듣기의 자세’를 새로이 요청한다. 


- 여성주의 글쓰기

아가씨는 주목을 원하지 않는다. 무시당하거나 지워지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연스러움을 원한다. 자신이 어디에 있든, 어디서 뭘 하든 자연스럽기를, 어느 풍경에 끼어 있던 별스러워 보이지 않기를, 거리를 무심히 걷는 모든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기를. 그게 가능할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아가씨는 시위를 하고 있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시위. (중략) 아가씨는 내일도 거리로 나올 생각이었다. - 김보영 <빨간 두건 아가씨> 中 


▲ (좌) 만화 『지영』의 일부분.*  | (우) 가수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 가사. **

* 만화 『지영』의 일부분『지영』은 성노동자 당사자인 자신의 삶, 일상, 감정 등에 대해 솔직하게 풀어낸 만화다. 그의 말하기 방식은 사회가 성노동자에게 기대하는 언어, 이미지, 감정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 가수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가사“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라는 가사를 제일 좋아한다.


 여성주의 글쓰기에 정해진 형식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가부장제 역사에서 남성 중심적 시각으로 연구되었던 학문과 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객관적 글쓰기’에 물음을 던져보자. 이제껏 열등하다고 여겨진 여성들의 맥락적인 공감의 언어가 얼마나 날카롭고, 얼마나 포용적이며, 또 얼마나 민주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언어를 발굴해낼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글, 그림, 만화, 사진, 노래, 춤 등 각자 원하는 방식과 형태로 표현하자. 단지 이것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우리의 언어는 ‘객관’이 가진 기존의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의 위치를 전복시키고 다시 사유함으로써 언어의 공식을 새롭게 써 내려가는 것이다.

 소수자의 언어는 소수자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언어는 서로에게 연루되고 침투하여 언어의 이분법과 경계를 해체한다. 따라서 언어를 갖지 못한 이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주체가 될 때 세계는 근본적으로 재구성된다. 새로운 지식을, 새로운 상상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그러니 세상이 우리의 언어를 귀 기울여 들을 수밖에 없을 그때에, 세계는 새로운 파장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 이것이 우리의 언어다 

“오늘 집회를 준비하면서, 한 종사자분이 카톡 방에 대한민국 헌법 15조를 언급하는 기사를 올렸습니다. 헌법 제2장 제15조,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국민 누구든 종사하는 직업에 관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자유를 갖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우리의 직업도 직업입니다. 우리는 불법이 아닙니다.”6) - 파주 용주골 여종사자 모임 자작나무회 대표 별이
▲ 2023년 6월 8일 용주골 성노동자 시위 모습. 성노동자를 내쫓기 위한 일환으로 시행된 파주시 ‘여행길’ 행진을 막기 위해 성노동자와 시민이 모였다. ⓒIW31 상환

 지난 6월의 어느 날, 파주시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온다. “성노동자의 생존권 보장하라!” “파주시는 성노동자 인권침해 중단하라!” 파주시 성매매 집결지(속칭 용주골)에서 종사해온 성노동자들의 목소리였다. 용주골은 6.25 전쟁 이후 국내 최대 규모의 미군 기지촌 중 하나로, 국가가 외화벌이를 위해 용주골 여성 종사자들을 직접 관리했던 지역이다. 하지만 파주시는 현재에 이르러 재개발과 자본 유치를 목적으로 용주골 집결지를 철거하고 여종사자들을 강제 퇴거시키려 하고 있다. 과거 국가에 의해 ‘애국자’로 호명되던 집결지 종사자들은 그 필요에 따라 ‘불법적인 존재’, ‘성매매 피해자’, ‘가부장제 부역자’로 불리며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용주골 여종사자들은 이에 맞서 그들 자신을 성노동자로 호명하여7) , 용주골에서 노동할 권리, 생존할 권리, 안전할 권리를 외쳤다. 성노동 또한 노동임을 발화함으로써 성노동자에 대한 낙인에 저항하고 근대적 노동관에 균열을 낸다. ‘성판매는 자발인가 비자발인가’,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은 피해자인가 부역자인가’를 논하는 이분법 속에서, 성노동자의 언어는 그 이분법을 넘어 성산업에 언제나 국가와 자본이 얽혀있음을 드러낸다. 용주골 성노동자가 국가의 필요에 따라 달리 호명된 것처럼, 여성의 몸은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국가에 의해 통제되었다. 따라서 합법/불법을 기준으로 성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고자 하는 시도는 언제나 지배집단(지배담론)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지배담론은 성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과 불합리한 처우를 가리고, 성노동자를 피해자 혹은 범법자로 명명함으로써 노동권을 요구할 권리마저 박탈한다. 이런 불합리 속에서 ‘성노동’이라는 언어는 성노동자에게 성노동이 생산수단이자 생존수단임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용주골 성노동자는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성노동에 대한 대항담론을 형성한다. 성노동 담론은 국가와 자본의 통제를 거부하고 가부장제가 제시하는 성녀/창녀 이분법에 균열을 냄으로써 실천 영역으로 확장한다. 용주골 성노동자 시위에는 재생산권 운동, 반빈곤 운동, 성소수자 운동, 이주민 구금 시설 폐지 운동 주체들이 결합하여 함께 목소리를 냈다. 또한 성노동자 권리 투쟁에 연대하는 시민들도 용주골 거리로 나와 투쟁함으로써 성노동자와 일반 시민을 구분했던 허상의 경계를 허물었다. 성노동자의 대항담론은 성노동자 당사자뿐 아니라 모든 개인이 이 사회에 연루되어 있음을 드러냈다.  


 지배 언어에 저항하는 이들이 밖으로, 거리로, 광장으로 뛰쳐나와 다시 한번 자신만의 언어로 싸운다. 그 언어는 삶에 대해, 감정에 대해, 현실에 대해 객관적이고 논리적이길 요구받고, 주관적이고 충동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 이유로 너무 쉽게 무시되고 사라지는, 바로 ‘우리’들의 언어다. 나는 성폭력 피해자, 장애인, 트랜스젠더, 국가폭력 피해자, 성노동자, 철거민, 저학력자, 정신병자, 불법 이주민처럼 외친다. 당신이 듣고자 하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는 없다. 존재하는 것은 우리의 언어일 뿐이다. 이것이 나의, 우리의 언어다. 


“이봐요, 대체 여기란 어딥니까. 이 집과 이 삶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다면 말입니다. 내 집에서 누가 나를 나가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내 삶에서 누가 나를 나가라고 할 수 있습니까.” - 희음(멸종반란/기후위기 앞에서 선 창작자들)이 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에서8)   




1)  ‘5·18광주민주화운동’은 현재 정부의 공식 명칭이나, ‘광주사태’와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공식 명칭이 변화한 사이에는 ‘5·18민중항쟁’, ‘5·18민주화운동’ 등의 용어 사용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었다. 해당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명칭이 제시될 수 있다.

2)  복건우. (2023). [승강장일기]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시간, 3분. 비마이너.

3)  신진욱. (2011). 비판적 담론 분석과 비판적·해방적 학문. 경제와사회, (89), 10-45.

4)  ‘생물학적 본질주의’, 즉 생물학적 성이 본질적으로 존재하고 여성과 남성은 고정·결정되어 있다는 사고는 성별 이분법을 지탱하는 테제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 자체가 이미 젠더화된 지표이기 때문에 본질적인 ‘여성’과 ‘남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의 성 정체성에 대한 발화 모두 그 자체로 젠더화된 언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트랜스젠더의 발화만이 끊임없는 해명을 요구받는다.

5)  미국 블랙 페미니스트인 벨 훅스가 말했다.

6)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scarlet_chacha_. (2023.06.30). [발언문 공유] 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 성노동자의 생존은 폐쇄될 수도 철거될 수도 없다> 별이 (자작나무회 대표). 인스타그램.

7)  성노동자는 당사자 중심의 정치적 언어로,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모두가 자신을 성노동자로 정체화하는 것은 아니다.

8)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scarlet_chacha_. (2023.06.30). [발언문 공유] 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 성노동자의 생존은 폐쇄될 수도 철거될 수도 없다> 희음(멸종반란 /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 인스타그램.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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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스미스. (2022). 반란의 매춘부(이명훈, 역). 오월의 봄. (원저작출판, 2018).

복건우. [승강장일기]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시간, 3분. 비마이너.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4516(2023.07.28. 접속).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scarlet_chacha_. (2023.06.30). [발언문 공유] 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 성노동자의 생존은 폐쇄될 수도 철거될 수도 없다> 별이 (자작나무회 대표).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CuGTPf0Bnp9/?img_index=3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scarlet_chacha_. (2023.06.30). [발언문 공유] 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 성노동자의 생존은 폐쇄될 수도 철거될 수도 없다> 희음(멸종반란 /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CuGU3VEhBrm/?img_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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