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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Oct 06. 2023

[85호][학내] 미래의 우리는

미듬


 교지 배포대를 지나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아무도 교지를 읽지 않는 것 같다. 교지 위에는 먼지만 켜켜이 쌓여있다. 이 정도면 근맥이 뭔지 아무도 모르는 게 아닐까? 교지가 외면받는 상황이 답답하면서도, 교지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글자가 나열된 종이를 보고 있으면 무슨 기분이 들더라? 책을 펼쳐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글을 쓰는 건 더 고역이다. 글쓰기 숙제를 받으면 언제나 아우성쳤으니까.

 교지의 위기는 근맥만의 일이 아니다. 세상이 변했다. 전문대의 교지는 대부분 폐간되었고, 교지편집부가 활동 중인 대학은 전국에 1백여 곳뿐이다.1) 교지 발간 후, 가끔 있던 반응도 이제 더는 오지 않는다. 저기요, 아무도 없나요? 교지는 왜 자꾸만 사라지는 걸까? 단지 글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일까? 


다른 교지편집위원회는?

 교지의 어려움은 다양하다. 재정 문제부터 가치관의 충돌까지 교지의 위기는 단일한 형태로 찾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교지편집부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분투하며 자리를 지킨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써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이화교지와 중앙대학교 여성주의 교지편집위원회 녹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녹지

「녹지」는 1967년 한국 대학 최초로 창간된 중앙대학교 여성주의 교지이다. 학내 자치 언론으로, 2010년 미디어센터에서 독립하였다. 편집위원 A, B, C 세 명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녹지 인스타그램

     

 0. 자신을 소개해 주세요.

 녹지A: 여성주의 집단에서 활동하고, 페미니스트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녹지에 들어왔어요. 활동한 지 이제 2학기입니다.

 녹지B: 20대 대통령선거 이후 학내 분위기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여성의 목소리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알고 있는 여성주의 단체가 녹지였기 때문에 들어오게 되었고, 저번 학기부터 2학기째 활동 중입니다. 

 녹지C: 대선 다음 날 녹지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3학기째 활동 중입니다. 


 1. 교지를 향한 관심이 줄어드는 시점에서, 녹지가 계속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녹지B: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학교에 관심을 주지 않고 외부로 눈을 돌리잖아요. 하지만 학생들이 학내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학내의 일을 기록하며 관심을 촉구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며 목소리 낼 수 있는 장소는 있어야 하니까요.

 녹지A: 사실 저도 녹지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굳이 교지를 찾아 읽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교지를 들춰 볼 때면 학교에 어떤 일이 있는지 알 수 있었어요.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이 적더라도,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이슈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2. 녹지는 교내 사안뿐만 아니라 교외 사안도 함께 다루는데요. 교내·외가 연결돼 있다고 깨닫는 순간 있으셨나요?

 녹지C: 처음에는 학내 정치와 사회가 완전히 맞닿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중앙대 서울캠퍼스 장애인권위원회(이하 장인위)가 개편되는 일이 있었죠. 개편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폐지에 가까웠어요. 에브리타임에서는 장인위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같은 거냐는 말들도 있었거든요.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고, 학교에서 장인위가 폐지된 거죠.

이뿐만 아니라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사안이 학교 내 인식을 바꿔놓은 적도 있어요, 학외 사안이 올라온 이후, 학내에서도 시대가 변하며 여성 인권이 향상되었으니 여성가족부가 필요 없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학외 사안이 학내와 밀접하다는 걸 깨달았죠.

 녹지B: 성평등위원회 폐지는 이전에 선행된 여성가족부 폐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어요. 학교 밖에서 일어난 일들이 학교 내부의 인식을 바꿔놓은 거죠. 이전에는 이런 사안에 대해 특별한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일이 있고, 대학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학내에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지 않도록 막아야겠더라고요. 


 3. 녹지가 중앙대학교 타 언론기구와 어떤 차별점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녹지C: 대학 언론은 모두 학내 소식을 전하는 창구지만, 녹지는 중앙대학교의 자치 언론기구라는 차이가 존재해요. 2010년에 학교의 검열 시도가 있었고, 저항 과정에서 미디어 센터에서 독립하게 되었거든요, 또, 발행주기가 상대적으로 긴 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다룰 수 있어요.

 녹지B: 자치 기구인 만큼 학내에 대한 글은 빠짐없이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어요. 이전에는 총학생회 없이 비대위로만 운영되다가, 이번에 총학생회가 새로 당선되었어요. 녹지 구성원끼리 공청회에 참가했는데 총학생회에 문제점이 많은 것 같아 다음 학기에 글을 작성할 예정입니다. 

 

 4. 여성주의 교지로서 추구하는 목표나 특별히 관심 갖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녹지A: 여성주의 교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글 대부분을 여성주의 시각으로 작성합니다. 여성의 글을 싣는 공간이라는 의미도 부여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녹지B: 여성과 소수자 관련 사안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만큼 글을 쓸 때 데이터를 충분히 활용하는 편입니다. 논리적인 오류가 없도록 신뢰할 수 있는 글을 작성하려고 노력합니다.  


 5. 녹지를 향한 학내의 적대적인 분위기2) 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녹지A: 에브리타임에서 녹지가 언급될 때마다 속상해요. 보통 "녹지(교지 대비)를 내지 마라"라는 말이거든요. 그냥 최고의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우스갯소리로 넘기려 합니다. 좋지 않은 이야기더라도, 학생들이 에브리타임을 많이 쓰는 만큼 자주 노출되면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거든요. 그렇지만 다른 학생들이 녹지 구성원들에게 이유 없는 욕설을 할 때면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지가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녹지B: 녹지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적대적인 여론에 무뎌져서 더 이상 상처받지는 않거든요,

 녹지C: 개인적으로 대학을 졸업하면 적극적으로 여성주의 활동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나중에 해야 할 여성주의 활동을 지금 다 해놔야 한다는 마음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화교지

 이화교지는 이화여자대학교 중앙자치언론 교지편집위원회이다. 「이화교지」는 여성, 학내, 사회 등 다양한 챕터를 다루며, 매 학기 발간된다. 편집장 이화A와 인터뷰했다. 


©이화교지


 0. 자신을 소개해 주세요.

 이화A : 3학기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편집장입니다. 저는 교지를 읽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특히 매 교지에 실린 여는 글 부분이 마음에 들었어요. 


 1. 교지가 추구하는 지향점과 목적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이화A: (외부의)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온전한 이화인의 목소리를 담는 것입니다. 교지 내에서 평어를 사용하고 수평적인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이유 역시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기 위해서입니다. 비거니즘 지향과 공동 작업 역시 소외되거나 배제되는 이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고요. 


 2. 발간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이화A:  재정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저희는 교지대로만 운영되고 학교로부터 별도의 지원금을 받지 않는데, 사람들이 교지를 읽지 않으면 자연스레 교지대도 줄어드니까요. 특히 교지대가 크게 줄어드는 2학기가 되면 비용적인 측면에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보통 교지를 2,500부 이상 인쇄했는데, 코로나 이후 교지대도 줄고 교지도 많이 남아서 발행 부수를 많이 줄이게 됐습니다. 


 3. 교지편집위원회 활동을 통해 교지 존재의 필요성을 깨닫거나 몸소 느낀 경험이 있을까요?

 이화A: 교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다는 게 중요한 점이에요. 학교 안팎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는 많지만, 재학 중에 학생들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창구는 많지 않거든요. 대학생들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대학 언론의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해요. 특히 교지는 날 것에 가까운 의견을 다루어요. 그렇기에 이 시대에도 교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공동체에 소속된 분들과 다양한 주제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하는 것 자체가 내적으로 많은 변화를 일으켰어요. 교지에 싣게 될 다양한 주제 덕분에 학교의 많은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학내 자치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4. 이화교지 이름으로 퀴어퍼레이드에 참석하셨잖아요. 단위 이름을 걸고 직접 연대한 것이 생소한데, '실천하는 대학 언론'으로서 활동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화A: 모든 구성원과 논의해서 결정하기 때문에 해마다 방향이 다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저희가 글을 쓰는 집단이라고 해서 글을 쓰는 역할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취재를 많이 나가려고 하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으려고 해요. 인권 감수성을 함양하고자 인권 자치 단위들과 연대하는 일도 종종 있고요. 소수자 권익 보호가 저희가 글을 쓰는 이유기도 하거든요.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자체 단위들과 연대하는 것이 교지의 방향성에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5.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이화A:  교지의 방향성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방향성을 논의하는 이유에는 교지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요. 교지 편집위원 외에도 다양한 분들이 미래의 교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교지의 앞날이 밝을 거라 생각합니다. 


 미래의 우리는

 근맥의 발간 과정은 치열하다. 어떤 방향으로 쓸지, 어떠한 사안을 전달할지 늘 고민이다. 끊임없이 퇴고하고, 논쟁하는 과정을 거쳐 한 권의 교지가 세상에 나온다. 그러나 발행이 교지의 완성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교지는 다양한 의견을 기록하고 누군가와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그러니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사라져가는 글을 붙잡기 위해선 독자가 필요하다. 우리는 타인의 글과 목소리를 통해 더 넓은 세상을 확장하고 경험한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세상부터 모두가 관심을 보이는 세상까지, 다양한 삶을 넘나든다. 읽지 않는 글은 금세 사라진다. 글을 읽지 않고서는 서로의 세상을 볼 수 없다.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서로의 생각을 이해할 때 비로소 연결된다. 연결된 관계 속에서는 타자와 나를 인식하게 되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글이 나와 타자를 만나게 하는 건 여전히 의미 있다. 교지는 이 모든 것을 실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존재할 것이다. 



1)  이지훈. (2011). 대학의 ‘교지’가 사라지고 있다. 경대뉴스. http://www.gnu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695(2023.08.16. 접속). 

2)   2017년, 「녹지」가 쓰레기통에서 발견되는 일이 있었고, 2021년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2022년 7월에는 「녹지」에 압정을 박아두는 등 여성주의 교지를 향한 혐오가 지속되었다.



참고문헌

이지훈. (2011). 대학의 ‘교지’가 사라지고 있다. 경대뉴스. http://www.gnu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695(2023.08.16.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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