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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근영 Jun 19. 2018

로마보다 더 로마다운 도시

레바논 바알베크의 거대한 로마 신전  유적


인류 역사상 로마제국만큼 세계 넓은 지역에 영향을 미쳤던 나라가 또 있을까. 유럽 전역과 중동 지역에 남아있는 유적을 보면 로마제국이 고도의 건축 기술을 갖추었던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남아있는 레바논 바알베크의 신전 유적은 로마제국의 전성기 시대 건축술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이다.  


(사진 : 구글 이미지 참고. polahoda.cz / 바알베크의 로마 신전 유적지)


현존하는 로마제국의 유적 중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다는 바알베크 신전. 레바논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곳이다. 자료를 찾을수록 바알베크 신전은 레바논 여행의 백미일 가능성이 높았다. 스타는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는 법. 바알베크를 레바논 일정의 마지막으로 배정하였다. 결혼식이 열릴 안자르와도 가까운 곳이라 동선도 효율적일 것 같았다.



결혼식 초대를 받아 안자르에 도착하던 날, 모하메드씨 둘째 아들과 친구들은 우리에게 바알베크의 신전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다. 막상 입장을 하고 나자 우리에게 유적을 제대로 설명해 주기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안내를 맡아줄 가이드까지 동원해 주었다. 외국 손님에게 경복궁의 역사와 세부적인 건축 디테일을 영어로 설명하기가 어디 쉬우랴. 그들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던 내용까지도 알게 되었다.  


유적의 규모가 워낙 크기에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돌아보는 데 두 시간은 족히 걸렸다. 우리의 평소 속도로는 사진도 찍으면서 디테일까지 감상하기에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다. 수박 겉을 핥아보니 붉고 달콤한 속살을 음미해 보고 싶었다. 결국 우리는 결혼식 다음날 바알베크 신전을 한 번 더 방문했다. 숙소에서 불러준 택시 기사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문제는 없었다. 바알베크(Baalbek)를 못 알아듣는 현지인은 없었으니까. 다만 a를 길게 장음으로 발음해야 빨리 알아듣는다.


바알베크는 해발 1,170m에 위치해 있지만 한여름의 땡볕은 뜨겁다. 7-8월에는 온도가 35도 이상 올라가는 날도 있어 관광객이 많지 않다. 유적지를 여유롭게 둘러보기에는 오히려 좋은 때이다. 무덥긴 해도 습도가 전혀 없는 날씨라 얇고 시원한 소재의 긴팔 옷과 햇빛을 가려줄 모자 또는 스카프만 있다면 견딜만하다. 입장을 하고 나면 매점이 없기 때문에 미리 생수를 충분하게 챙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바알베크가 자리한 베카 평원은 땅이 비옥하고 물이 풍부해 예로부터 농업이 발달한 지역이었다. 페니키아 시대의 바알베크는 하늘의 신 바알을 숭배하던 작은 마을이었다. 바알베크 명칭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페니키아의 신 ‘바알(Baal)’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바알은 고대 셈족어로 ‘주인’이라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바알베크(Baalbek)’는 ‘베카 평원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베누스 신전은 원형 신전이라고도 불림. 세련미와 독창적인 배치가 돋보임.


바알베크는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되면서 ‘헬리오폴리스(Heliopolis)’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헬리오폴리스는 그리스어로 ‘태양의 도시’라는 의미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에 바알베크는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고 로마인들이 숭배한 신 유피테르(주피터 Jupiter), 베누스(비너스 Venus), 바쿠스(바커스 Bacchus)를 위한 신전이 들어서게 되었다. 거대한 신전 건축물 덕분에 이 도시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몰려드는 성지가 되었다고 한다.  



로마제국은 왜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바알베크에 거대한 신전을 지었을까? 바알베크가 지중해와 아랍세계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로마의 막강한 힘을 주변 세계에 과시하려 했던 것이라고 한다. 신전은 입구부터 보는 사람을 단숨에 압도해 버린다. 종교적이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중간의 커다란 입구를 통하여 드나들었다.


일반 평민들은 커다란 입구 옆에 나있는 작은 문으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작은 문조차 크고 높다.
 


공사중인 유피테르 신전.
유피테르 신전 (사진 : 구글이미지 참고. flickr.com)


로마인들은 이 지역의 토착 신앙을 인정하면서 로마의 종교와 결합시켰다. 페니키아인이 태양신 바알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 제단에 로마인이 숭배하는 최고신 유피테르의 신전을 지어 함께 제사를 지냈다. 거대한 신전을 건축하기 시작한 사람은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였다. 착공 후 70년이 지나 네로 황제 때 완성된 유피테르 신전은 로마제국에서 가장 큰 신전이었다고 한다.


유피테르 신전의 돌기둥은 높이가 20미터가 넘고 지름은 2미터가 넘는다. 기둥 하나의 무게가 50톤이 넘는다고 한다. 원래 54개였던 기둥은 수차례의 지진으로 무너지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져 현재 6개만 남아있다. 지금은 비록 6개의 기둥만 남아있지만 기둥만으로도 2천 년 전에 존재했던 원래 신전의 위용이 상상되고도 남는다. 로마제국의 유적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바알베크의 신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아쉽게도 유피테르 신전은 공사 중이어서 구글 이미지에 나와 있는 모습을 참고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유피테르 신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그랜드 코트(Grand Court)’에 서면 신전의 규모를 상상하기 수월해진다. 신전 주변은 100여 개의 화강암 기둥으로 둘러져 있으며 돌은 1500 킬로미터 떨어진 이집트의 아스완 지역에서 운반해 온 것이라고 한다.



신전으로 오르는 돌계단은 옆면에서 보아야 한다. 돌을 쌓아서 계단을 만든 것이 아니라 거대한 하나의 돌을 깎아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거석 가공의 기술은 지금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교하다.

 

지진 피해로 땅에 떨어져 있는 사자머리 조각상은 물받이 장식으로 쓰였던 것인데 무게가 750톤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유피테르 신전을 지나면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은 바쿠스 신전이 있다. 길이 66m, 폭 35m, 높이 31m 규모의 신전은 유피테르 신전보다 작아서 작은 신전이라 불리지만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크다.  


바쿠스 신전의 입구에서 고개를 젖혀 올려다보면 로마와 제우스의 상징이었던 독수리 조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2천여 년의 세월이 지났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독수리는 금세라도 날아오를 듯 생동감이 넘친다.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긴 바쿠스 신전 입구의 조각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생명을 상징하는 알과 바알베크 주변이 곡창지대였음을 알 수 있는 풍요의 상징, 밀알 그리고 베카 평원에서 자라던 포도와 포도잎이 섬세하고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포도는 와인을 만드는 재료이므로 술의 신 바쿠스를 위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바쿠스 신에게 바친 신전은 로마 유적의 웅장함을 그대로 보여주며 위엄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신전을 떠받치고 있는 42개의 기둥은 코린트 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기둥 높이가 19m나 된다.


신전 내에서 레바논 커플의 웨딩 촬영이 있어 한참을 구경했다. 평생을 사랑한들 백 년을 넘기지 못하겠지만 2천 년 동안 수많은 시련을 견디고도 굳건히 남아있는 유적 위에서 그들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였으리라. 젊은 신랑 신부의 행복을 기원하며 우리는 외벽 회랑으로 나갔다.


신전의 외벽 회랑으로 나가면 거대한 규모의 돌천장이 인상적이다. 이 지역을 거쳐간 유명인사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도 보인다. 다만 안토니우스는 천정에 붙어있고 클레오파트라는 바닥에 누워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조각상은 지진으로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나일강을 상징하는 물결과 뱀이 클레오파트라를 감싸고 있다. 조각의 정교함과 아름다움에 놀라며 또 한 번 감탄을 하게 된 사실은 이미 조각된 돌을 천정으로 올린 것이 아니라 돌을 올린 후 천정에서 조각을 했다고 한다. 조각이 완성된 돌을 들어 올리다가 떨어뜨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바알베크 신전 유적지에는 이외에도 베누스(Venus) 신전과 메르쿠리우스(Mercurius) 신전의 유적이 남아 있는데 3세기까지 로마 황제들이 계속해서 신전 건축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세기에 들어서면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은 이후 신전 건설은 중단되었고 신전은 교회로 사용되었다.


로마가 쇠퇴한 이후 바알베크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신전의 외벽 안에는 모스크가 건설되었다가 나중에는 요새로 개조되었다. 수세기 동안 반복된 대지진으로 바알베크의 벽은 무너져 내렸고 유적의 많은 부분은 점점 폐허로 변해갔다.  


근래 들어 바알베크의 유적은 다시 한번 위기를 맞이했었다. 2006년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거대한 로마의 유적은 한 줌의 재로 사라질 뻔했다. 로마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세워졌던 유적은 파란만장했던 수천 년의 세월을 지나 오늘을 견디고 있다.


레바논 여행에서 절대로 빠트리면 안 될 바알베크 신전. 충분히 알고 가지 않으면 찬란한 로마의 유적은 한낱 돌덩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함을 느꼈다. 제대로 알고 가면 돌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돌에 새겨진 시간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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