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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근영 Jun 12. 2018

중동의 꽃, 레바논 식탁

내가 사랑한 레바논 음식 15가지


중동 3개국 여행을 앞두고 나는 무엇보다 레바논 음식에 대한 기대가 컸다. 척박한 토양의 중동 국가들과는 달리 레바논은 물이 풍부하고 토지가 비옥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곡물, 채소, 과일 등 식재료가 다양하고 재료 자체의 풍미가 뛰어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중동 식당에서 먹어봤던 음식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신토불이의 맛을 제대로 경험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콩닥거렸다.


레바논은 지리적으로 중동과 지중해가 만나는 지역인 데다 로마시대부터 오스만 제국까지 이어진 식민지 시절을 거치면서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나라이다. 다양한 문화의 특색이 요리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중동의 어느 지역보다도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레바논에는 페니키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랜 전통을 지닌 음식도 많다고 한다. 레바논 음식은 종류도 다양하고 맛깔스러워 지중해 연안의 고급 요리로 손꼽힌다. 레바논은 흔히 미식의 나라라고 불리며 레바논 음식은 중동 음식의 꽃이라고도 한다.  


메쩨(mezze)라고 불리는 애피타이저 음식
주머니처럼 얇고 납작하게 생긴 피타 빵(pita bread)


레바논 음식의 대표주자인 메쩨(Mezze)는 애피타이저를 모아놓은 요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러 가지 종류의 음식이 작은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스페인의 타파스 또는 우리나라의 반찬처럼 다양하다. 대개는 식사 때마다 얇은 주머니 같이 생긴 피타 빵(pita bread)이 따라 나온다. 빵에 메쩨 요리를 싸서 먹거나 빵으로 음식을 집어 올려 먹기도 한다. 나는 음식이 나올 때마다 일단 하나하나 맛을 본 후 피타 빵에 싸서 먹는 것을 좋아했다. 한국에서는 어느 채소에 밥을 싸서 먹느냐에 따라 밥맛이 달라졌다면 레바논에서는 피타 빵에 어떤 메쩨를 넣어 싸 먹는지에 따라 빵맛이 달랐다.  


레바논 산 주변에서만 재배되는 마운틴 토마토와 껍질이 얇고 당도가 높은 포도.
새콤한 맛과 단맛이 풍부한 유기농 레몬과 즙이 많고 시원한 수박.


레바논에서는 싱싱한 채소, 허브, 과일을 많이 먹고 해산물 요리 또한 다양하며 양고기를 주로 먹는다. 버터는 거의 쓰지 않고 신선한 올리브유, 직접 만든 요구르트, 레몬, 병아리콩 등 건강 식재료를 많이 사용한다. 양념이나 소스가 과하게 들어가지 않아 음식은 재료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허브와 향신료는 레바논 음식의 풍미를 살려주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특히 이탤리언 파슬리와 민트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레바논 여행을 하며 먹었던 많은 음식 중에 꼭 소개하고 싶은 음식을 모아보았다. 사진 속의 음식이 기억의 촉수를 건드렸는지 글을 쓰면서도 입 안에 고여 드는 침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산양 치즈 마누쉬와 양고기 마누쉬
자타르를 올려 구운 마누쉬


1. 마누쉬(Manouche)  : 얇고 납작하게 구운 레바논식 피자라고 보면 된다. 주로 아침이나 점심 식사 때 먹는 음식이다.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반죽을 동글동글하게 빚은 후 방망이로 얇게 밀어 뜨거운 철판에 노릇하게 구워낸다. 토마토, 치즈, 자타르 등을 얹어 반으로 접어서 다시 한번 구워내는 방법도 있고, 반죽을 피자 도우처럼 밀은 후 토마토소스, 치즈, 간 고기 등을 올려 그대로 굽는 방법도 있다. 얇은 도우에 한 가지 재료만 올려 구운 마누쉬는 담백해서 좋았다. 짭조름한 산양 치즈 마누쉬, 신선한 풍미를 자랑하는 토마토 마누쉬, 향신료와 섞여 양고기 향을 솔솔 풍기는 독특한 라헴바진(Lahembajin). 모두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다 맛났지만 자타르를 얹어 구워낸 마누쉬를 나는 제일 좋아했다. 


* 자타르(zataar) : 말린 타임(thyme) 잎을 곱게 가루로 빻은 후 참깨와 소금을 섞은 양념을 말한다. 자타르는 중동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이며 올리브유를 섞어 빵이나 야채를 찍어먹기도 한다. 


 

2. 키베(Kibbeh) : 레바논의 대표 요리이다. 물에 불린 벌거(bulgur)와 다진 양파, 잣, 양고기 그리고 다양한 허브를 넣고 버무려 오븐에 구워낸 요리이다. 키베는 동그란 공 모양 또는 패티처럼 넓적하게 만들어 굽는다. 묽은 요구르트를 곁들여 먹으면 맛이 잘 어우러지고 소화도 잘 된다. ‘키베’는 고대 아랍어로 ‘공’을 뜻한다고 한다. 

* 벌거(bulgur)는 몇 가지 다른 종류의 밀을 굵직하게 빻아 한번 찐 후 말린 곡류이다. 한번 쪄서 사용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우리나라의 찐쌀과 유사하나 식감은 쿠스쿠스와 비슷하다.  


3. 라브네 (Labneh): 발효된 요구르트를 면포에 넣고 짜서 유청을 제거하여 만든 고농축 요구르트이다. 크림치즈 같으나 일반 요구르트보다 질감이 뻑뻑하고 새콤한 맛을 낸다. 라브네는 아직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을 정도로 레바논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이라고 한다. 우리도 여행기간 동안 매일 식사 때마다 먹었던 건강식이다. 빵에 발라 먹거나 고기 또는 채소를 찍어 먹어도 좋다. 피타빵에 스프레드로 바른 후 고기, 채소, 올리브 절임, 민트 잎 등을 넣어 싸 먹으면 잘 어우러진다. 소화가 잘 되고 쾌변에 도움이 되는 이로운 음식이다.


석류알로 토핑한 므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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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므타발(Mtabal) : 결코 잊을 수 없는 레바논 음식 중 하나이다. 가지를 숯불에 구워 부드러운 속살만 파낸 후 타히니, 올리브유, 여러 가지 향신료를 섞어 만든 요리이다. 피타 빵에 발라 먹으면 구운 가지에서 밴 스모키한 훈제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경탄의 신음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바바 가누쉬(Baba Ghanoush)’라고도 불린다.



5. 타불리(Tabouli) : 이탤리언 파슬리의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파슬리, 토마토, 양파, 민트, 마늘을 다져 넣고 벌거(bulgur)를 섞은 다음 올리브유, 신선한 레몬즙과 소금으로 간을 한 샐러드이다. 납작한 피타 빵이나 로메인 상추에 쌈처럼 싸서 먹는다. 아삭아삭 소리와 함께 입안에서 모든 재료가 어우러지며 퍼져 나오는 향은 황홀하기 그지없다. 더위로 달아났던 입맛이 순식간에 살아난다. 한 번 맛본 순간 반해서 사랑하게 된 음식이다. ’타불리’라는 말만 들어도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6. 파투쉬(Fattoush) : 레바논의 또 다른 전통 샐러드이다. 토마토, 오이, 순무를 굵직하게 썰고, 바삭하게 굽거나 튀긴 피타 빵을 부숴 올린다. 올리브유, 레몬즙, 수막, 마늘, 소금으로 만든 드레싱을 듬뿍 뿌린다. 주로 구운 고기 요리의 곁들임 샐러드로 서빙되지만 한 끼 식사로도 훌륭하다. 타불리와 파투쉬를 번갈아 먹다 보면 베지테리언으로 영원히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7. 키베 나예(Kibbeh Nayyeh): 한국에 육회가 있다면 레바논에는 키베 나예가 있다. 생 양고기를 갈아 약간의 벌거와 여러 종류의 향신료를 섞어 만든 요리이다. 올리브유를 뿌리고 민트로 장식되어 먹음직스러워 보였으나 평소에 육회를 좋아하지 않다 보니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고기가 신선하지 않으면 절대로 먹을 수 없는 특별한 요리라고 하여 마지못해 시식을 해 보았다. 피타 빵에 발라서 먹어보니 처음 경험해 보는 맛의 신세계였다. 따라 나온 토마토와 쪽파 등 싱싱한 채소를 곁들여 먹으니 나도 몰래 자꾸 손이 갔다. 육회 싫어한다고 했던 말이 무색해졌다. 


8. 후무스(Hummus) : 병아리콩(chickpea)으로 만든 대표적인 레바논 음식이며 ‘후무스’는 아랍어로 ‘병아리콩’이라는 뜻이다. 중동 지역에서의 후무스는 우리의 김치와 같은 존재로 식탁에 빠져서는 안 될 필수 메뉴이다. 삶은 병아리콩을 으깬 후 타히니(참깨 소스), 올리브유, 레몬즙, 마늘과 소금을 넣어 블렌더에 갈아 걸쭉하게 만든 요리이다. 피타 빵에 발라 애피타이저로 먹거나 채소를 찍어 먹는 디핑 소스로도 쓰인다. 고기나 생선요리 또는 팔라펠 등에 곁들임 음식으로도 따라 나온다. 고소한 맛이 일품이며 최고의 영양식으로 손꼽힌다.



9. 팔라펠(Falafel) : 불린 병아리콩과 누에콩을 블렌더에 갈아 다진 양파, 마늘, 파슬리, 큐민, 고수잎 등과 섞어 반죽을 만든다. 반죽을 작고 동그랗게 뭉쳐서 기름에 튀겨낸 음식이다. 팔라펠은 레바논뿐만 아니라 여러 중동 지역에서 서로 자신들의 전통음식이라고 주장하는데 아직까지 유래가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많은 지역에서 국민 음식이라 여기는 팔라펠은 그대로 먹거나 피타 빵 사이에 야채 절임과 타히니 소스를 같이 넣어 샌드위치로도 많이 먹는다.


10. 시스 케밥(Shish Kebab) : 고기를 다진 후 뭉치거나 네모나게 썬 다음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구워낸 요리이다. 시스(shish)는 긴 꼬챙이를 말하며 주로 양고기나 닭고기를 사용한다. 사실 꼬치구이는 익숙한 음식이기도 했고 레바논에서 알게 된 새로운 음식을 먹느라 정신이 없어 소홀히 대했다. 피타 빵 사이에 놓여 서빙된 케밥에서 솔솔 풍기는 숯불향이 좋아 한 점 입에 넣었다가 깜짝 놀랐다. 부드러우면서도 육즙이 제대로 살아있는 두툼한 고기는 지금까지 먹어본 그 어느 꼬치구이도 따라올 수 없는 천상의 맛이었다. 천국이 멀리 있지 않았다.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남겨진 꼬치를 그대로 바라만 봐야 하는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안타까웠다. 설마 지옥이 이런 건 아니겠지. 


11. 와락 아리쉬(Warak Arish) : 말린 포도잎을 물에 불린 후 쌀, 간 고기, 레몬즙, 올리브유, 소금, 후추 등 여러 가지 향신료를 섞어 넣고 쌈처럼 돌돌 말아 냄비에 쪄낸 요리이다. 부드럽고 촉촉하며 포도잎에서 퍼지는 은은한 향이 좋아 자꾸 손으로 집어먹게 된다. 포도잎 쌈 요리는 중동 지역뿐만 아니라 그리스, 터키, 아르메니아 등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친숙한 음식이다. ‘와락 아리쉬’는 이름은 발음이 어려워서 그런지 머리에 와락 달라붙지 않는다. 영어 메뉴에는 ’포도잎(grape leaves)’으로 적혀 있다. 


12. 크나페(Knafeh) : 달콤한 시럽을 듬뿍 끼얹어서 만든 치즈 페이스트리이다. 레바논 전통 디저트이며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이다. 빵 사이에 끼워 샌드위치처럼 먹기도 한다. 팔레스타인에서 유래된 크나페는 레바논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과 터키, 그리스 등지에서도 인기 있는 디저트이다. 오후에 피곤하고 당 떨어질 때 먹으면 정신이 반짝 들면서 피로가 바로 회복되는 음식이다.



13. 아락(Arak) : 포도즙과 아니스를 증류하여 만든 술이며 무색이라 투명하다. 단맛은 없지만 포도와 아니스 향이 코끝을 자극하여 마시기 전부터 벌써 기분이 좋아진다. 아락은 알코올 도수가 매우 높아 대개는 물과 섞거나 얼음을 넣어 마신다. 흥미롭게도 아락은 물과 섞이는 순간 색이 우윳빛깔로 변한다. 색깔 변하는 것이 신기하여 자꾸 잔을 비우고 또 따라보고 싶어진다. 건배를 부르는 술이다. 아락을 붓고 잔을 기울여 물을 살살 부으면 물과 알코올 사이에 뿌연 층이 형성되는 마법을 볼 수 있다. 층이 넓을수록 좋은 품질의 아락이며 아니스가 많이 들어갔다는 뜻이라고 한다. 아락은 레바논 음식에 곁들이면 훌륭한 반주가 된다.



14. 레바논 맥주(Lebanese Beer) : 레바논에서 3가지 맥주를 맛보았다. 우리 입맛에 가장 잘 맞았던 맥주는 베이루트 맥주인데 라거 맥주라서 그런 것 같다. 무슬림이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알코올음료를 판매하지 않는다. 여행기간 동안 우리가 식사했던 식당들은 다행히 맥주를 서빙하는 곳이었다. 식복은 타고났다. 


15. 아랍 커피(Arabic Coffee) : 레바논에서 마시는 커피는 터키식 커피와 비슷하다. 주전자에 커피와 물을 붓고 끓인 후 작은 구리 주전자에 옮겨 손잡이가 없는 작은 잔에 따라준다. 대개 아랍 커피는 카다몸(cardamom)을 첨가하여 끓이기 때문에 독특한 향이 난다. 처음에는 카다몸에서 풍기는 향신료의 향이 커피 향과 섞여 낯설었으나 마실수록 중독성이 생겼다. 레바논 음식을 먹은 후에 마시는 아랍 커피는 입안이 개운해져서 좋았다. 잔이 작아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두세 잔은 기본이다.


 



여행 프로그램이나 생생한 다큐멘터리로도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음식의 맛이다. 아무리 해상도 높은 사진일지라도, 실감 나는 먹방 프로그램으로도 먹어보지 않은 음식의 맛을 느끼게 해줄 수는 없다. 현지에 가야만 한다. 가서 두 눈으로 직접 보고, 향을 맡아보고, 실제로 먹어보아야만 알 수 있다. 레바논의 높은 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먹고 자라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레바논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있다.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장 떠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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