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암만에서 발견한 나만의 매력
열흘간의 레바논 여행이 끝났다. 산과 바다와 평야가 있는 나라, 매 끼니마다 즐겼던 싱싱하고 건강한 음식, 하지만 무엇보다 따뜻했던 사람들이 좋았던 곳 레바논. 언제일지 모를 앞날을 기약하며 레바논 베이루트 공항을 출발했다. 정든 연인을 홀로 남겨두고 떠나는 것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레바논의 여운이 사라지기에는 요르단 암만까지의 비행시간은 너무 짧았다. 생각보다 크고 깨끗한 퀸 알리아 국제공항. 입국심사대를 통과하기도 전에 내 이름이 적힌 사인보드를 들고 서있는 사람이 보였다. 양복을 잘 차려입은 젊은 청년이었다. 모델 뺨칠 수준의 외모여서 사인보드에 적힌 알파벳이 내 이름인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호텔 예약할 때 공항 픽업 서비스를 요청하긴 했지만 입국심사대 안까지 들어오는 것은 VIP 의전이 아니고는 힘들지 않나. 동행한 친구들이 놀라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우리 특급호텔에 묵는 거냐고.
우리가 입국심사를 마치는 동안 미남 청년은 수하물 찾는 곳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한국인은 도착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입국 수속은 전혀 까다롭지 않았다. 요르단에 도착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요르단 패스를 구입하면 비자 발급비용을 별도로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 여행 팁 : Jordan Pass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우리는 페트라 일정을 이틀로 잡았기에 75 디나르(약 12만 원)인 Jordan Explorer를 구매했다. 도착비자 발급비용이 40 디나르, 페트라 2일 패스가 55 디나르임을 감안하면 당연히 핵이득이다. 요르단 패스가 있으면 도착비자 발급비용뿐만 아니라 페트라, 로마 원형극장, 시타델, 제라쉬 유적지, 와디럼 등 40여 개의 관광지 및 박물관 입장료가 무료이다. 요르단 패스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구매 가능하다.
https://www.jordanpass.jo/Default.aspx
짐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젊은 기사는 영어가 유창했다. 호텔과 협업하는 여행사 직원이며 가이드도 한다고 했다. 아까 의전을 해주었던 미남 청년은 우리에게 인사를 한 후 중간에 내렸고, 우리는 시내로 들어설 때까지 기사에게 요르단에 대한 짧은 브리핑을 들었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내리다 보니 미남 청년에 대해 물어볼 기회를 놓쳤다. 예약한 호텔은 별 두 개짜리 저렴한 호텔이었다. 어떤 연유로 우리가 VIP 대우를 받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았다.
요르단에 온 가장 큰 이유는 페트라를 보기 위해서다. 페트라에 다녀와서 예루살렘으로 넘어가기에 좋은 위치이기에 암만은 꼭 들러야만 하는 도시였다. 몇몇 로마 유적을 제외하면 암만에는 별로 구경할 거리가 없다고 말하는 여행자가 많다. 진정한 여행자라면 다른 사람의 취향을 지나치게 신뢰하지는 말자.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 안에서 여행지를 바라보기보다는 밑그림 없는 나만의 스케치를 해보는 것도 필요하니까.
진한 아랍식 커피를 곁들여 늦은 아침을 먹고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레바논에서 다녔던 소도시와 비교되어 그런지 암만은 대도시처럼 느껴졌다. 비수기라는 8월에도 암만의 길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고 활기가 넘쳐났다. 숲을 먼저 보고 난 후 나무를 하나씩 살펴보듯이 도시를 탐험해 보기로 했다. 첫번째 목적지는 암만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시타델(Citadel)이었다. 어느새 뜨거워진 햇살에 언덕을 오르는 길은 의외로 힘들었다.
길 중간에 나있는 허름한 골목을 기웃거리다 현지인이 살고 있는 집안을 얼핏 보게 되었다. 주인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쳐 미소를 지었더니 아주머니는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셨다. 어디 가냐고 묻는 듯했다. 우리는 ‘시타델’이라고 했는데 아주머니가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말한 단어는 달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타델은 아랍어로 ‘자발 알 칼라(Jabal al-Qala'a)’였다. 아주머니는 우리가 못 미더웠는지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아들을 앞세워 길안내를 시켰다. 우리는 손을 저으며 아니라고, 우리가 알아서 가겠다고 했지만 조그만 아이는 벌써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시타델 입구에 도착하니 탁 트인 전망이 시원했다. 고맙다고 인사를 했더니 아이는 조그만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아이가 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난감했다. 우리가 요청한 것도 아니고 나있는 길을 따라 오르기만 하면 시타델인데 굳이 아이를 앞세워 보내더니 결국 돈 때문이었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그냥 돌아서면 우린 야박한 관광객이 될 판이었고, 이런 방법으로 돈 버는 법을 배우며 자랄 아이가 걱정되어 선뜻 주기도 망설여졌다. 잠깐의 의논 끝에 사탕 사 먹을 정도의 돈을 아이에게 주었다. 우리의 뜻을 이해하기에는 언어의 장벽 너머에 서있는 아이가 너무 어렸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로마 유적을 둘러보기 전에 우리의 시선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암만 시내로 향했다. 건조했지만 땀을 식혀주기에 충분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로마처럼 7개의 언덕에 세워진 도시 암만. 인구가 늘어나면서 19개의 언덕으로 도시가 확장되었다는데 언덕마다 저층의 석조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건물의 외장 색깔은 같은 색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흰색에 가깝다고 하여 ‘백색의 도시(The White City)’라고 불린다지만 내 눈엔 오히려 베이지 톤에 가깝게 보였다.
베이지색 건물이 만들어낸 스카이라인 위로 우뚝 솟은 요르단 국기 게양대. 127미터에 달하는 암만의 국기 게양대는 시내 어디에서든 눈에 띄며 반경 20km 거리에서도 보인다고 한다. 세워질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컸지만 그 사이 여러 나라에 더 높은 국기 게양대가 만들어지는 바람에 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 1위 자리를 내주고 7위로 밀려났다(비무장지대에 있는 북한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 게양대는 세계 네 번째임). 요르단 국기 안에 그려진 하얀색 칠각별은 암만이 세워진 7개의 언덕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시타델은 암만이 세워진 7개의 언덕 중 가장 높은 언덕에 있다.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철기시대에는 랍바 암몬(Rabbath-Ammon)이라 불렸다. 요르단강 동쪽에 살던 암몬족의 수도 랍바 암몬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암몬’에서 이름이 변형되어 ‘암만’이 되었다고 한다. 성채는 1700미터에 달하는 긴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청동기, 철기시대를 지나 로마, 비잔틴 시대와 우마이야 왕조에 이르기까지 역사가 이어져 왔기에 성채 안에서는 시대별로 다양한 유적을 볼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거대한 기둥은 로마시대에 지어진 헤라클레스(Hercules) 신전의 유적이다. 남아있는 주춧대와 기둥만 보더라도 신전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상상이 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충분한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던 탓으로 우리는 중요한 유적을 하나 놓쳤다. 조각된 헤라클레스의 커다란 손이 유적지에 놓여 있다는데 우리는 암만 시내 전망을 보다가 모르고 지나쳐버렸다. 암만에는 아직 미발굴 상태로 묻혀있는 유적이 엄청나다고 한다. 암만을 다시 가게 된다면 또 어떤 과거의 시간을 마주하게 될까.
시타델에서 시내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암만의 또 다른 랜드마크가 눈에 띈다. 2세기경 암만이 ‘필라델피아’로 불리던 로마시대에 세워진 원형극장이다. 언덕 기슭에 자리한 극장은 가파르게 경사진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6천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북쪽을 향하게 만들어져 관객이 햇빛을 피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극장의 보존 상태가 좋아 아직까지 다양한 문화행사에 이용되고 있다.
원형극장을 내려다보며 시내로 내려오는 길이었다. 길가에 세워둔 트럭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아저씨 한 분이 채소와 과일을 싣고 다니며 판매 겸 배달을 하고 있었다. “싱싱한 당근이 왔어요. 꿀보다도 더 달콤한 복숭아, 즙이 많은 복숭아도 있어요”라고 들렸다. 점심시간을 넘긴 터라 배가 고팠던 우리는 과일을 좀 사고 싶었으나 박스 단위로 파는 듯했다. 트럭에 실린 과일을 보며 서있자 땀을 뻘뻘 흘리며 배달을 하던 아저씨가 복숭아 세 개를 내 손에 쥐어주고 가시는 것이 아닌가. 한국에서는 드문 납작 복숭아였다. 감사의 인사를 제대로 할 겨를도 없이 아저씨는 야채 박스를 어깨에 얹고 어느 집으로 배달을 가셨다.
요청하지도 않은 길안내를 받고 마지못해 동전을 쥐어줘야 했던 꼬마. 달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먹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낯선 이방인에게 싱싱한 과일을 선물해준 아저씨. 동전의 양면처럼 다가온 친절은 맛도 달랐다. 아저씨가 준 복숭아는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나서 먹으면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티라미수 같았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카페에서 인사를 나누게 된 현지인 아저씨는 자신을 학자라고 소개했다. 건조한 기후와 미세한 먼지 때문인지 여행 내내 안구건조증으로 힘들어하는 내 친구에게 안약보다 효과적인 처방을 알려주었다. 아저씨는 따뜻한 차를 주문하더니 티백을 건져내 티슈에 싸서 친구 눈두덩이에 얹게 했다. 10분 정도 지나서 티백을 걷어내자 친구는 눈뜨기가 한결 부드럽다고 했다. 사막에 사는 베두인들이 쓰는 방법이라며 건조한 중동지역을 여행할 때 자주 하면 도움이 될 거라 했다.
요르단 사람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잘 속이기 때문에 그들이 베푸는 친절을 있는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국내 블로거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암만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대가를 바라고 친절을 베푼 사람도 있지만 아무런 요구 없이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눠준 사람도 있었다. 묻고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의 친절은 과연 대가 없이 순수한지.
구경거리가 많은 암만에서는 많이 걷게 된다. 자연히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프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거리마다 싱싱한 야채와 과일에서 짜낸 주스를 파는 가게가 있다. 기름에 팔라펠 튀기는 구수한 냄새와 지글거리는 숯불에 익어가는 양고기 향의 궤적을 따라 골목을 누비다 보면 여행 책자에 나오지 않은 맛집들이 수두룩하다. 암만은 치명적인 단점도 갖고 있다. 누군가는 페트라에 가기 위해 스쳐 지나간다지만 볼수록 매력 넘치는 이 도시에서 한 달만, 딱 한 달만 살아보고 싶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