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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근영 Jul 10. 2018

와디럼 백만성급 호텔에서의 하룻밤

요르단 와디럼 사막 여행기


누구나 사막에 대한 동경 하나쯤은 가지고 산다. 바람이 새겨놓은 모래 물결에 발자국을 내며 걸어보는 것, 베두인 옷차림을 하고 유목민처럼 텐트에서 살아보는 것, 아라비아 대상처럼 낙타를 타고 모래 바다를 건너는 것, 하늘에 떠있는 별을 이불 삼아 잠드는 것을 꿈꿔 보지만 이러한 사막 생활은 도시인에게 환상에 가깝다. 꿈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조금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요르단 여행을 앞두고 호기심 많은 우리는 와디럼 보호구역 내의 베두인 캠프에서 이틀간 묵는 일정을 짰고, 곧 현실로 다가올 꿈에 부풀었다.



암만 숙소의 매니저는 우리의 환상을 한마디로 깨트렸다. 8월의 와디럼은 무덥기 이를 데 없어서 우리가 견디기 힘들 것이라 했다. 암벽 등반이나 트레킹 같은 액티브한 취미를 즐길 게 아니라면 와디럼은 반나절 정도 둘러보고 차라리 홍해에서 다이빙을 해보라고 추천했다. 와디럼을 여러 번 다녀온 현지인의 말이라 우리는 조금 흔들렸다. 페트라의 기념품 가게 주인의 이야기도 다를 바 없었다. 정 원한다면 사막에서 하룻밤 자는 것으로 일정을 줄이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우리는 더 흔들렸다. 꿈을 이루려면 결연한 의지가 필요하다. 


나는 걱정이 되었다. 사막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갖고 갔다가 실망만 하고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아닐 거야. 사막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꿈을 찾아 여기까지 왔는데 사막의 더위쯤은 참아야지. 나는 사막 생활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동행들의 의견을 물었다. 베두인 캠프는 불편할 거라고, 샤워시설도 열악할 거고 매트리스도 청결하지 않을 거라고.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이틀쯤은 씻지 않아도 괜찮다고. 사막에서 별을 보며 잠들 수 있는 기회가 살면서 자주 오는 건 아닐 테니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다고 했다. 마음이 놓였다. 여행은 누구와 하는지가 중요한 이유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의 직감이 옳았다. 와디럼에서의 시간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한 달간의 중동 여행 중 베스트로 뽑혔다. 사막의 은하수에서 길어 올린 샘물은 오랫동안 우리의 영혼이 메마르지 않게 해주었다. 


페트라에서 와디럼까지는 2시간 가까이 걸렸다. 길 중간중간 보이는 낙타와 염소를 몰고 가는 베두인의 모습은 요르단의 전형적인 풍경인 듯했다. 와디럼 방문자 센터에 도착해 간단한 출입등록 절차를 마쳤다. 와디럼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 자연 문화 복합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야 출입이 가능하며(요르단 패스 구매자는 입장료 면제) 도착시간을 알려주면 예약된 캠프에서 픽업 서비스를 해준다. 우리는 친절한 기사 아저씨가 입구에서 멀지 않은 럼 빌리지(Rum Village)까지 태워주었다.


와디럼 빌리지는 와디럼 보호구역 내에 있는 유일한 마을이며 베두인들이 산다. 베두인은 원래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낙타나 염소를 키우며 유목생활을 하는데 와디럼 빌리지에 있는 베두인은 관광객을 상대로 투어가이드를 하거나 캠프 등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정착생활이 답답해 빌리지를 떠나 다시 사막으로 돌아가 사는 베두인도 많다고 한다. 이틀간 우리의 안내를 맡아줄 베두인 압둘라는 눈빛이 선했다. 그가 운전하는 사륜구동 지프에 옮겨 타고 우리는 와디럼 탐험을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사막이라는 단어에서 떠올리는 전형적인 모습은 풍만한 여성의 둔부처럼 물결치는 모래 언덕의 풍경일 것이다. 요르단의 와디럼은 전혀 달랐다. 붉은 모래 위에 여기저기 우뚝 솟아 있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산들은 마치 모래의 바다 위에 떠있는 섬 같았다. 와디럼은 약 3억 년 전 지각변동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평지로 보이는 곳이 해발 1천 미터 정도이고 가장 높은 바위산은 1,700미터가 넘는다. 


‘모래 계곡’으로도 불리는 와디럼(Wadi Rum). 와디는 아랍어로 계곡을 의미한다. 와디는 비가 오면 강을 이루고 비가 내리지 않을 때는 마른 계곡이 되는 땅을 의미하기도 한다. ‘럼’은 바람에 날릴 정도로 가벼운 ‘모래’를 뜻한다.


'로렌스의 샘(Lawrence's Spring)'이라 불리는 곳에 도착했다. 사막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기억났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아랍 연합군에 합세하여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웠던 영국군 장교 로렌스의 실화를 토대로 만든 영화이다. 와디럼을 배경으로 영화가 촬영되었고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와디럼은 더욱 유명해졌다. 로렌스가 이 샘물을 마셨다고 해서 '로렌스의 샘'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실제로 로렌스가 샘물을 마셨는지의 사실 여부를 떠나 사막의 산 중턱에서 샘이 솟는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겨울철에 폭우가 쏟아질 때 사암은 빗물을 흠뻑 빨아들이는데 물이 아래층에 있는 화강암과 만나는 경계에서 샘처럼 다시 솟는다고 한다. 샘과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서 아래쪽 평지에 있는 수조로 물이 흘러 내려온다. 일 년 내내 마르지 않는 이 샘은 사막에서 살아가는 베두인에게 생명과도 같은 존재이리라. 때마침 베두인 꼬마 목동이 염소를 몰고 왔고 목마른 염소들은 실컷 샘물을 들이켰다. 붉은 바위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한 그루 나무를 향해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지는 목동과 염소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자연은 사람과 동물이 공생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지프를 타고 달렸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낯설었다. 지나가는 차들이 없었다면 화성에 착륙한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카잘리 바위 협곡 앞에 내렸다. 협곡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바위에 새겨진 여러 가지 그림과 글들이 나타났다. 와디럼에 남아있는 수천 개의 암각화와 비문은 12,000년 전부터 와디럼에 사람이 살았던 증거이다. 여기에는 페트라를 건설한 나바테아인의 유적도 많다고 한다. 


나바테아인의 사원이었던 유적은 '로렌스의 집(Lawrence's House)'이라고 불린다. 로렌스가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인기 있는 관광코스가 되었다. 그 옆에서 텐트를 치고 기념품을 파는 베두인이 있어 차를 얻어마셨다. 그는 콜(kohl)이라는 베두인 화장품으로 우리의 눈에 아이라인을 그려주었다. 숯이나 천연재료로 만든다는 콜을 사용하여 눈에 라인을 그리면 눈이 커 보이는 미용의 목적도 있지만 모래먼지로 인한 눈병도 없애준다고 한다. 


일몰의 시간이 되었다. 압둘라는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기에 좋은 장소로 안내했다. 우리는 바위산에 걸터앉았다. 사막에서 해가 지는 속도는 도시에서보다 더 빠른 듯했다.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침묵 속에 바라보는 일몰은 황홀경이었다. 하늘을 진홍색으로 물들인 풍경에 압도되어 머릿속에는 아무런 잡념이 끼어들 틈도 없었다.


해가 진 사막은 길을 분간하기 어려웠고 바위산들은 시커먼 음영을 드러냈다. 아무리 자주 다니는 길이라고 해도 베두인들이 길을 잃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어두워진 길을 뚫고 우리는 캠프에 도착했다. 저녁식사가 준비되고 있었다. 베두인 바베큐라고 불리는 자르브(Zarb). 모래 구덩이를 파고 숯불을 피운 다음 고기와 야채를 올린 후 모래를 덮어 익혀낸 요리이다. 야외에 놓인 매트리스에 앉아 하늘을 보며 먹는 저녁은 소박했지만 어떤 성찬도 부럽지 않았다.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낸 우리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낙타 타기 체험을 하러 갔다. 요르단의 낙타는 혹이 하나 있는 단봉낙타이다. 안장에 올라앉아 말을 탈 때처럼 몸의 힘을 빼고 낙타의 걸음에 맞춰 리듬을 타는 것이 중요하다. 힘이 들어가면 몸이 뻣뻣해져 부자연스럽고 자세가 나쁘면 엉덩이가 까져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처음 타보는 낙타라 무서워서 긴장했으나 금방 익숙해졌다. 사막에서도 힘을 빼야 살아가기가 수월하다. 


낙타는 볼수록 신기한 동물이다. 한 달 이상 물을 마시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낙타는 아랍인들에게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한다. 등에 난 혹에 물을 저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수분이 필요하면 혹에 들어있는 지방을 분해해서 사용한다. 몸속의 수분을 보존하기 위해 더워도 땀을 많이 흘리지 않는다고 한다. 낙타의 기다란 속눈썹은 두 겹으로 되어 있어 모래 먼지가 눈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준다. 특수한 구조로 생긴 콧구멍은 날숨을 쉴 때 수분이 방출되는 것을 억제해 준다고 한다. 자동차가 수송의 역할을 대신하는 지금도 베두인에게 낙타는 생명과도 같은 소중한 존재다. 


요르단은 국토의 80%가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사막이지만 와디럼 같은 자연 풍광을 가진 곳이라면 아쉽지 않을 듯하다. 바다였다가 지각활동으로 융기한 바위산, 수백만 년 동안 반복된 풍화와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지형, 자연적으로 생겨난 아치형 다리와 협곡, 바위 절벽 등은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장엄한 풍경이었다. 우리는 뜨거워진 모래 위를 걸으며 사막을 온몸으로 느꼈고 협곡 사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혔다. 네 발로 기듯이 바위벽을 타고 올라가 멋들어진 다리 위에서 자연이 빚어내는 예술품을 감상했다. 독특한 풍광은 외계인이 사는 행성에 앉아있는 듯 초현실적이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압둘라는 비박에 필요한 소품들을 챙겼다. 우리는 캠프를 떠나 커다란 바위산이 바람을 막아주는 곳으로 이동했다. 돗자리를 펴고 매트리스를 깔았다. 압둘라가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피우고 밥을 하는 동안 우리는 서서히 어두워지는 사막을 바라보았다. 숯불에 구운 치킨과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냄비밥은 꿀맛이었다. 주전자에 물을 끓여 베두인 차를 우려 마신 후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압둘라가 켜두었던 촛불을 끄자 눈앞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몇 초의 시간이 흘렀을까 우리의 입에서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수백만 개의 별빛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우주의 바다에 우유빛깔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돗자리를 깔면서 '백만성급 호텔에 온 것을 환영한다'라고 한 압둘라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사막 한가운데 누워 별들이 수 놓인 담요를 덮고 자는 느낌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으리라. 우리도 결국 우주의 바다에 빛나는 작은 별빛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여행을 하는 꿈에서 깨어났다. 해가 뜨기 전인데 아침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하늘을 빼곡하게 수놓았던 그 많은 별들은 어디로 갔을까. 눈을 감으니 어젯밤 반짝이던 별들이 다시 보였다. 은하의 바다에서 별들과 같이 빙글빙글 춤을 추던 여행은 꿈이 아니었다.


캠프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나서 떠날 채비를 했다. 캠프의 여행자들은 어젯밤 별을 보며 비박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 멀찍하게 떨어져 있었는지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었노라고 했다. 묵은 장소는 달라도 다들 환상적인 체험의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와디럼의 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날의 감동이 몇 마디 말로 날아가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비로소 와디럼의 그 밤에 대해 얘기했다. 사진으로 담아낼 수 없었던 와디럼 사막의 별밤을 우리는 우리의 가슴속에 고스란히 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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