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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근영 Jul 17. 2018

중동의 폼페이 제라쉬

요르단 제라쉬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법

토끼 두 마리가 눈앞에서 뛰고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 어른들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고 했다. 욕심을 부리다 둘 다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속도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방법을 찾아낸다. 무턱대고 덤비기보다 사전에 계획을 잘 세우면 영 불가능하지도 않다. 요르단 일정을 짜다 보니 자꾸 욕심이 생겼다. 비우자고 떠난 여행이지만 길 위를 뛰어다니는 토끼들을 모른 체 하고 지나치기는 너무 힘들다. 



요르단에서 손꼽히는 볼거리는 페트라와 와디럼이다. 그 외의 유적지는 대개 암만에서 당일치기 또는 반나절 일정으로 다녀온다. 암만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제라쉬(Jerash)는 로마시대 유적이 잘 보존된 곳이다. 레바논의 바알베크에 버금가는 제라쉬는 화려했던 로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적지이지만 인기도 면에서 페트라와 와디럼에 밀리다 보니 많은 여행자들이 들르지 않고 지나치는 도시이기도 하다. 


BC 4세기에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도시 제라쉬는 BC 63년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국제 교역로가 지나가는 거점인 까닭에 제라쉬는 로마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로 발전하게 되었다. 로마시대에는 ‘거라사(Gerasa)’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성경에도 기록된 곳이다.

 

레바논 바알베크 유적에서 받았던 감동이 워낙 강했고, 페트라와 와디럼에서의 시간 또한 인상적이었기에 웬만한 장소는 우리에게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제라쉬를 둘러본 후에 색다른 재미를 찾고 싶었다. 요르단을 떠나기 전에 요르단 음식을 배우는 쿠킹클래스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스케줄이 맞지 않았다. 암만 숙소의 투어 매니저에게 문의했더니 제라쉬에 있는 식당에서 할 수 있도록 연락해 보겠다고 했다. 친구가 운영하는 곳이라 음식 하는 법도 배우고, 만든 음식을 점심 삼아 먹을 수 있을 거라 했다.    


아침부터 날씨는 무더웠고 창밖 풍경도 삭막해서 더 덥게 느껴졌다. 다행히 제라쉬가 가까워질수록 푸른 식물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이 풍부한 제라쉬는 오래전부터 땅이 비옥한 곳으로 유명했다. 길가에는 나무와 식물을 키우는 농원도 많았다. 국토의 80%가 사막지대인 요르단에서 무성한 푸른색 식물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제라쉬 유적지에 입장하기 전, 쿠킹클래스가 예정되어 있는 식당에 먼저 들렀다. 민트가 들어간 차를 얻어마시고 클래스 시간을 정했다. 투어 매니저와 식당에 있는 직원들은 유적지를 둘러보는 데에는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우리의 속도로는 좀 빠듯하다 싶었지만 클래스 시간을 더 미루기는 어려워 두 시간 반 후에 돌아오는 것으로 정했다.  


기념품 가게가 모여있는 작은 수크(시장)를 통과하니 유적지 입구가 있었다. 요르단 패스 소지자는 따로 입장료를 내지 않는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거대한 개선문이 보였다. AD 129년에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제라쉬를 방문한 기념으로 세워져 ‘하드리아누스의 문(Hadrian's Arch)’이라고도 불린다. 


개선문 뒤로는 전차경기장(Hippodrome)이 있다. 히포드롬은 전차 경기가 열리던 장소를 말한다. 그리스어로 ‘말’을 뜻하는 히포스(hippos)와 경주를 의미하는 드로모스(dromos)가 결합된 단어이다. 당시에 15,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였다고 하니 제라쉬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된다. U자로 굽어진 경주 트랙에서 힘차게 달리는 말을 보며 응원하는 사람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 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전차 경기와 검투사 경기를 재연하는 쇼가 펼쳐진다고 하니 시간이 맞으면 구경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전차경기장을 지나면 하드리아누스 개선문과 비슷하게 생긴 문이 나온다. ‘남문(South Gate)’이라 불리는 이 문은 서울의 남대문처럼 고대 제라쉬를 드나들던 남쪽 출입문이었다. 당시에는 도시를 확장하여 하드리아누스의 문을 새로운 남문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제라쉬가 쇠퇴하면서 계획은 완성되지 못했다고 한다.  


고대 제라쉬와 암만을 연결하던 도로의 양쪽으로는 상점들이 있었고, 남문을 중심으로 도시를 둘러싼 긴 성벽이 만들어졌다. 거대한 유적을 따라 걷다 보면 제라쉬의 상징적인 건축물인 타원형 광장(Oval Plaza)이 나타난다. 타원형 광장은 사람들의 모임 장소나 시장으로 사용되던 공간이며 로마 건축에서 포럼(Forum)에 해당된다. 제라쉬의 포럼은 독특하게도 모양이 타원형이다. 균형미가 돋보이는 이오니아 양식의 커다란 돌기둥은 인상적이다. 광장은 제라쉬의 주 도로와 제우스 신전을 연결하여 지어졌다.  


로마시대의 전형적인 도시 건축의 예를 보여주는 카르도 막시무스(Cardo Maximus)는 도시의 남북을 연결하는 주 도로를 말한다. 제라쉬의 타원형 광장 남쪽부터 북문까지 800미터에 달하는 카르도 막시무스의 양 옆에는 거대한 돌기둥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무너진 곳도 있지만 2천 년 가까이 세워진 자리에 그대로 꿋꿋하게 서 있는 기둥들의 모습은 장엄해 보였다. 놀랍게도 도로는 당시 포장되었던 돌길 그대로 남아 있다. 도로 전체에 하수 시설이 설치되었고 가장자리에 나있는 구멍으로 빗물을 하수구로 흘려보내도록 설계되었다.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로마시대의 유적을 만난다는 건 시간과 공간 이동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느낌이었다.


사진을 찍는 동안 수학여행을 온 요르단 학생들이 몰려왔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꼬마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천진난만하다. 몇 발짝 나아가기도 전에 어디선가 나타난 요르단 남성은 우리에게 마술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호객 행위를 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라 생각했지만 그가 기둥 밑에 동전을 넣고 기둥을 살짝 밀자 동전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기둥 밑 틈으로 손가락 끝을 넣으면 벌어진 공간을 느낄 수 있다며 시범을 보여주었다. 제라쉬의 건축물들은 지진을 방지하기 위해 내진설계가 된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로마의 건축 기술은 정말 위대하다. 


제라쉬 유적지에는 이외에도 제우스 신전과 아르테미스 신전, 대규모 공중목욕탕과 원형극장 등 로마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유적으로 남아있다. 로마시대에 한창 번성했던 제라쉬의 크기는 80만 제곱미터(약 24만 평)에 달했다고 한다.  


AD 3세기경부터 해상운송이 주요 교역로로 부상하면서 기존 육로의 이용이 줄어들었고 타격을 입은 제라쉬도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8세기에 발생한 강진으로 많은 건축물이 무너지면서 제라쉬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쇠퇴는 가속화되었다. 많은 유적들은 모래와 흙더미에 묻히게 되었고, 12세기에 십자군이 점령했다가 떠난 후 도시는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다. 1800년대 초 독일 탐험가에 의해 제라쉬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고 그 이후 시작된 발굴 활동을 통해 수백 년간 모래에 묻혔던 제라쉬는 서서히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흔히 제라쉬를 ‘중동의 폼페이’라고 부른다. 폼페이처럼 화산재에 묻힌 건 아니지만 몇 차례의 지진으로 무너진 건축물들이 오랜 세월 모래와 흙더미에 묻혔다가 뛰어난 보존 상태로 유적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전체 유적지의 20% 정도만 발굴되었다고 하니 제라쉬의 방대한 규모가 짐작된다. 


바람 한 점 없이 뜨거운 날이었다. 유적지 내에는 햇빛을 피해 쉴만한 그늘도 없었다. 케피예(아랍국가에서 사용하는 터번 모양의 스카프)를 쓰기 잘했다. 모자보다 가볍고 시원하며 무엇보다 강한 직사광선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해 준다. 얇은 긴소매를 입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선블록 크림을 발랐지만 노출된 피부가 그대로 익을 것처럼 뜨거웠다. 공기는 건조해서 마치 건식 사우나를 하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한 햇살에도 불구하고 호기심 많은 우리는 유적을 하나씩 섭렵했다. 일일이 사진을 찍고 설명도 읽으며 다니다 보니 유적의 반밖에 못 봤는데 벌써 두 시간 가까이 지나버렸다. 낭패였다. 우리의 속도는 타인의 속도와 다른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현지인이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할 때 우리는 네 시간으로 계산했어야 맞다.  


우리는 아쉬움과 함께 원형극장과 아르테미스 신전 등 주요 볼거리를 남겨두고 돌아 나와야 했다. 식당의 전화번호를 가져오지 않아 연락할 길이 없었고, 시간을 오래 지체하면 재료 준비를 다 해놓고 기다리고 있을 식당 주인에게 제때 약속을 못 지키게 될 상황이었다.  


열심히 걸어왔는데도 약속시간은 조금 지나있었다. 식당 주인은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온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배우기로 한 요리는 중동지역에서 많이 해 먹는 ‘마끌루바(Maqluba)’라는 음식이었다. 


마끌루바는 ‘위와 아래를 거꾸로 뒤집다(upside-down)’라는 뜻이다. 음식 이름이 참 재밌다. 요르단 공항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픽업해줬던 기사가 꼭 먹어봐야 한다고 추천했던 음식이었다. 여행 가는 곳마다 현지 음식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가 요르단에서는 일정이 마땅치 않아 아쉬워하던 터였다.  


마끌루바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아랍의 전통음식이다. 여러 가지 야채와 고기 그리고 쌀을 차곡차곡 얹은 후 육수를 부어 익힌 다음 큰 쟁반 위에 냄비를 뒤집어엎어 완성된 음식을 내놓는다. 야채와 고기는 각자 좋아하는 재료를 넣어서 만들면 되고 주로 토마토, 가지, 감자, 브로콜리, 닭고기, 양고기 등이 사용된다. 토마토, 오이, 파프리카에 레몬즙을 뿌린 샐러드와 곁들이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요리 전 과정에 참여해 직접 완성한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어디에 비할까. 제라쉬 유적을 다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주듯 마끌루바는 환상적인 맛을 선사했다.  


토끼 두 마리를 다 잡으려면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 지나친 여유를 부리다가 시간에 쫓겨 제라쉬는 반밖에 보지 못했고 쿠킹클래스 또한 한 가지 음식만 배워서 많이 아쉬웠다. 중국식당에 가서 짬뽕을 시킬까 짜장면을 시킬까 고민하다가 어정쩡하게 짬짜면을 시킨 것과 다를 바 없다고나 할까. 다음번 여행 계획을 짤 때에는 여유를 더 가지기로 했다. 여유가 늘어나면 체험의 깊이도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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