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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근영 Jul 24. 2018

사해, 저 바다에 누워

안락의자보다 편안한 사해에 누워 독서하기


“사진에서 본 것처럼 정말 둥둥 뜰까?”

차창 너머로 사해가 보이자 친구가 물었다. “염도가 일반 바닷물보다 10배나 높다니까 당연히 뜨겠지. 난 책도 준비해 왔어. 바다에 누워 독서해야지.” 사해에서 저절로 몸이 뜨는 체험과 피부미용에 좋다는 머드 팩을 할 생각을 하니 어린아이처럼 설렜다. 죽음의 바다로 불리는 사해(死海)의 색은 연한 에머럴드 빛이었다. 의외였다.



1980년대에 유행했던 가요 중에 ‘저 바다에 누워’라는 노래가 있다. 멋진 상상이지만 고무튜브나 구명조끼의 도움 없이 바다에 눕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해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거대한 몸집을 가진 사람도 거짓말처럼 뜰 수 있으니까.


사해는 요르단,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세 나라에 접해있다. 중동 여행 일정을 짜면서 우리는 어느 나라에서 사해를 들를지 결정해야 했다. 요르단에서 페트라와 와디럼 일정이 끝나면 이스라엘로 넘어가기 전에 휴식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요르단 쪽이 비용면에서도 저렴했기에 결정은 쉬웠다.  


암만에서 사해까지는 차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최적의 교통편을 찾던 우리에게 암만 숙소의 투어매니저는 솔깃한 제안을 했다. 그의 패키지에는 모자이크 지도로 유명한 마다바 성당과 모세가 묻혀있다는 니보산(Mount Nebo)을 들르는 일정 그리고 샤워시설이 구비된 사해의 고급 호텔 해변 이용료와 뷔페 런치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돈을 아끼려고 대중교통 수단의 불편함을 감수하기엔 우리는 조금 지쳐있었다. 현지인이 주로 이용하는 암만 비치(Amman Beach)는 지저분하고 샤워시설도 제대로 없다는 말에 우리는 주저 없이 호텔쪽 비치를 선택했다.  


호텔 입구에 도착하니 경비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커다란 부겐빌레아를 한 아름 꺾어 오는 것이 아닌가. 사해에 온 것을 환영하는 뜻이라며 즐거운 시간 보내라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흰색과 분홍색의 부겐빌레아는 하늘거리는 함박웃음을 우리에게 건넸다. 선물한 남자의 환한 미소를 그대로 닮아 있는 꽃잎. 사해에서 만난 사람과 꽃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한자로 쓰면 죽음의 바다를 의미하는 사해(死海). 많은 이름을 놔두고 왜 사해로 불렸을까. 염도가 일반 바닷물에 비해 10배가량 높아 생물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사해의 염도가 이토록 높은 까닭은 무엇일까. 암석에 포함된 무기염은 빗물에 의해 하천으로 운반되고 하천은 바다로 흘러간다. 사해는 북쪽에서 요르단강이 흘러들지만 막힌 바다라 흘러든 물이 빠져나가는 곳은 없다. 이 지역의 기후가 건조하고 기온이 높은 까닭에 들어온 물은 지속적으로 증발한다. 물이 계속해서 증발하면서 염분이 농축되다 보니 세계에서 염도가 가장 높은 바다가 되었다. 어쩌다 요르단 강에서 물고기가 흘러 들어오면 높은 염도 때문에 바로 죽는다고 한다. 죽음의 바다라는 이름에 걸맞다.


점심을 먹은 후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우리는 해변으로 향했다. 여기저기 펼쳐진 파라솔을 지나 경사진 길을 한참 걸어 내려가야 했다. 호텔이 해변에서 멀리 떨어지게 된 이유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농업이 확산되어 요르단강 상류에 대규모 관개 사업이 시행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요르단강을 거점으로 발달하는 농업과 증가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댐을 건설해 나갔고 요르단도 마찬가지였다. 요르단강에서 사해로 흘러드는 수량이 줄어들자 사해의 해수면은 낮아지기 시작했다. 해수면은 매년 1미터 이상 줄어들어 지난 20년간 약 30%가 줄었다고 한다.


사해의 물이 줄어들면서 해변 바로 앞에 지어졌던 리조트에서 해변까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어 코끼리열차를 운행하는 리조트도 생겼다고 한다. 현재 상태로라면 2050년이 되기 전에 사해는 사라진다. 사해의 고갈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 정부는 홍해와 사해를 연결하는 협정을 체결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부디 사해가 두 번 죽지 않기를 바란다.


사해에 입장하려면 규칙을 엄수해야 한다. 다이빙을 하지 말 것, 해변에서 멀리 나가지 말 것, 바닷물이 눈과 입에 들어가지 않게 할 것, 수영을 할 때는 뒤로 누워서 할 것 등의 규칙이 해변 입구에 적혀 있었다. 구조요원이 없다는 말에 슬쩍 긴장이 되었다. 해변 근처에는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응급센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사해에서는 저절로 물에 뜬다는 것만 믿고 방심하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바닷물은 염도가 높아 혹시라도 들이키게 되면 응급조치를 받아야 하고, 눈에 들어가게 되면 재빨리 생수로 씻어내야 한다.


8월의 사해는 뜨거웠다. 게다가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한낮이다 보니 햇살은 마치 양궁 연습을 하는 아폴론이 날리는 불화살 같았다. 일 년에 330일이 맑다는 사해는 한겨울에도 20도 이상을 유지한다. 주변 지역보다 사해의 연중 기온이 높은 이유는 사해가 해발 마이너스 400미터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해발 고도가 마이너스인 지역이 여러 군데 있지만 사해는 지구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이렇게 고도가 낮은 곳에 사해가 생기게 된 배경이 흥미롭다. 대륙을 형성하고 있는 여러 개의 판 중에 아라비아판과 아프리카판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사해. 두 개의 판이 서로 벌어지면서 아라비아판이 빠르게 북쪽으로 밀려 올라갔다. 그 과정에서 커다란 단층이 생겨났는데 기후변동으로 상승한 지중해의 물이 유입되었다. 자연스레 생겨난 거대한 호수는 무더운 기후로 인해 증발하기 시작했고 갈릴리 바다와 사해로 나뉘었다.


(지도 사진 : 구글맵 참고) 요르단강에 의해 연결된 갈릴리 호수와 사해.

갈릴리 바다는 민물 호수라 고기가 펄떡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식수를 공급하는 생명의 원천이지만 사해는 작은 물고기 한 마리도 살지 못하는 곳이 되었다. 시작은 같았으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된 갈릴리 바다와 사해.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두 곳을 연결하는 요르단강의 흐름을 보자. 갈릴리 바다는 레바논 헤르몬 산에서 발원한 요르단 강이 흘러들었다가 다시 사해로 흘러나가는데 반해, 사해는 요르단 강물이 들어온 후 다시 빠져나가는 곳이 없어 더 이상 흐르지 않게 되어 죽음의 바다가 된 것이다. 사람의 몸에도 기가 흐르지 않고 막히면 병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리라.


선블록 크림을 바르다가 해변에 있는 한 가족을 관찰하게 되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온 아랍인 부부였는데 엄마는 무더운 날씨에 검은 아바야를 입고 니캅을 쓰고 있었다. 아바야(Abaya)는 중동지역의 전통의상이며 니캅( Niqab)은 눈만 내놓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베일을 말한다. 아바야는 검은색이긴 해도 강한 직사광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니 그렇더라도 니캅을 쓰고 있는 그녀는 보기만 해도 답답해 보였다. 남편의 벗은 상체에 사해 머드를 듬뿍 발라준 후 그녀는 바닷물 가까이 다가갔다. 아바야를 살짝 들어 올리고 종아리를 담그고는 비키니 차림으로 걸어 다니는 서양 여성이 있는 쪽을 응시했다. 노출이 심한 비키니 차림이 해괴망측하다고 여겼을까, 아니면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통의상을 죽은 바다에 내던지고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었을까.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사해가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바다수영 경험이 많은 내가 제일 먼저 들어가기로 했다. 과연 어떤 느낌일까. 먼저 발을 담그고 팔다리를 차례로 적셨다. 염도가 높은 물은 엄청 미끄덩거렸다. 얼굴에 물이 튀지 않도록 얌전히 돌아앉아 등 쪽으로 무게를 실었다. 두둥! 말 그대로 저절로 두둥실 몸이 떠올랐다. 물밑에서 내 몸을 튜브로 밀어 올리는 것처럼 부력이 뛰어났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마술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바다에 누운 상태에서 책을 읽는 느낌은 어떨까. 언젠가 인스타그램에서 본 사해 독서사진 그대로 따라 해 보았다. 몸은 여전히 가뿐하게 떠있었고 뜨거운 햇살만 아니라면 책 한 권을 다 읽어도 될 것처럼 편안했다. 세상의 어떤 안락의자나 침대보다도 푸근했던 사해. 엄마의 뱃속에 있는 것처럼 따스하고 평온했다.



사해가 죽음의 바다라고 하지만 모든 것이 죽은 건 아니다. 수십 가지의 천연 미네랄이 듬뿍 들어있는 사해의 소금과 진흙은 피부염이나 아토피 개선은 물론 근육통, 관절염에도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고대 이집트 때부터 피부 연고제나 크림으로 사용될 정도로 피부 치료와 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와 솔로몬 왕이 사해를 자주 찾았던 이유다.


피부가 건강해지고 주름도 개선된다고 하니 귀가 솔깃해져 진흙을 온몸에 발랐다. 진흙에 들어있는 소금 때문에 피부가 살짝 따끔거렸지만 심하지 않아 버텼다. 진흙이 마르면 다시 바다에 들어가 진흙을 살살 씻어내고 샤워를 하면 된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 했다. 사해 머드팩을 한 이후 약 일주일간 나와 친구들은 매끄러워진 피부에 거듭 감탄했다. 어떤 피부미용실에서 관리받았을 때보다 부드럽고 촉촉했다. 사해 소금의 효능을 제대로 체험한 셈이다.


사해에서 대규모로 채굴되는 소금은 식용이 아닌 가성 칼륨인데 전 세계로 수출되어 비료 생산에 사용된다. 또한 사해의 무기염은 항공, 자동차산업, 제약산업에도 사용될 정도로 효용가치가 높다고 한다.


갈릴리 호수를 거쳐 들어오는 요르단 강물을 그대로 받아들여 품에 끌어안는 바다. 불필요한 것들은 걸러내어 공중으로 날려 보내고 소중한 것은 계속 농축시키는 소금 바다. 사해가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있기에 가능한 일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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