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단짠의 정수, 요르단 디저트에 홀딱 빠지다
“당신의 아름다운 눈은 마치 어두운 밤을 비추는 달빛 같네요.”
중동 여행을 하며 만난 아랍남자들은 입에 설탕물이라도 발라놓은 듯했다. 기회만 되면 달콤한 표현을 서슴지 않았는데 대개는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나 쓸 법한 말들이었다. '나의 심장(my heart)'이나 '나의 눈(my eye)' 같은 표현은 차라리 영혼이 없다고 느꼈지만 '마이 러브(my love)'라니! 처음 본 이방인에게 '내 사랑'이라는 표현을 하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듣기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금방이라도 꿀이 뚝뚝 떨어질 듯 끈적끈적한 눈빛일 경우엔 저절로 시선을 피하게 되었다.
나이 지긋한 숙소 매니저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아랍어로 ‘하비비(Habibi)’라는 말은 ‘내 사랑(my love)’이라는 뜻이긴 하지만 친구사이나 부모 자식 간에 일상적으로 쓰는 표현이며 잘 모르는 이방인에게도 쓴다고 한다. 아랍 남성들 간의 대화를 들어보면 문장의 처음이나 끝에 ‘하비비’가 수시로 들어간다. 그렇다고 그 남성들이 동성연애자인지 의심할 필요가 없으며, 외국 여성에게 하비비라는 표현을 쓴다고 해서 긴장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현지인에게 ‘하비비’라는 말을 듣더라도 친근함을 표시하는 말이니 작업 거는 줄 알고 예민하게 굴 필요는 없단다. 하비비는 모든 이들에게 마음을 담은 이타적 사랑이 아닐까.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 사랑을 표현하는 아랍어는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내 사랑’ ‘내 영혼’ ‘내 심장’ ‘내 삶’ ‘나의 눈’ 등 미사여구는 넘쳐난다. 애정 표현에 서툰 한국 남성들이 갑자기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무슬림 인구가 많아 왠지 애정표현을 자제할 것 같은 아랍국가에서 오히려 사랑의 표현이 풍부하다니. 섣부른 편견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랍남자들의 말이 지나칠 정도로 달콤한 이유는 뭘까. 요르단 암만 시내를 걷다가 가게의 유리 진열장 너머로 수북이 쌓여있는 수많은 종류의 디저트를 보았다. 이렇게 달달한 디저트를 먹고사는 사람들의 입에서 달콤한 말이 술술 나오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는가. 의학적 근거가 없을지라도 음식은 영혼과 연결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요르단 사람들은 단 것을 좋아한다. 달달한 디저트 없이 식사를 마무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영어로 '달콤한 이(sweet tooth)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은 '단 것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요르단 사람들의 말은 달콤한 치아에서 솟아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중동지역의 디저트는 보기만 해도 달게 느껴진다. 꿀이나 설탕시럽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반짝반짝 윤이 난다. 아랍 사람에게 ‘설탕’은 ‘환대’와 ‘후함’을 의미한다. 알코올음료를 마시지 않는 그들에게 설탕은 즐거움을 선사해주거나 재미를 더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암만 시내를 걷다 보면 은빛 쟁반 위에 쌓여 있는 여러 종류의 디저트가 여행자의 발길을 잡는다. 모양까지 이뻐서 먹어보기도 전에 감탄을 자아낸다. 요르단 여행 시 꼭 먹어봐야 할 대표적인 디저트는 ‘크나페(Knafeh)’이다.
요르단의 국민 간식인 크나페는 간단하게 말하면 달콤한 시럽을 뿌린 치즈 페이스트리이다. 짭조름한 치즈와 달콤한 시럽의 조화가 잘 어우러져 단짠단짠 정통의 맛을 선사한다. 치즈를 쭉쭉 늘이면서 먹는 재미가 있어 뜨거울 때 먹어야 제 맛이다. 최소 5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크나페는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등지에서 먹는 음식이지만 사실은 팔레스타인의 도시 ‘나블루스’가 본고장으로 꼽힌다고 한다.
암만 시내에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줄이 길게 늘어선 크나페 맛집이 있다. 주인의 이름을 딴 '하비바(Habibah)'이다. 크나페의 본고장 나블루스 출신인 하비바 씨는 요르단 암만으로 이주하여 자신의 이름을 딴 작은 가게를 열었다. 오랜 세월 요르단 사람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으며 꾸준히 성장한 하비바는 현재 몇 군데 지점을 두고 있으며 1951년에 문을 연 본점은 늘 인파로 붐빈다. 우리는 한국에서라면 긴 줄에 합류하는 일이 없었겠지만 여행지에서는 예외다. 줄을 선 사람들을 보니 남녀노소 구분이 없어 호기심이 더욱 높아졌다. 테이크아웃으로 먹는 간식이기에 줄이 길어도 금방 줄어들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따라다녔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도 자식과 손자를 데리고 찾아온다는 맛집 '하비바'. ‘하비바’는 주인의 이름이지만 아랍어로 ‘사랑받는’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요르단 국민의 사랑을 받는 맛집의 이름답다. 현지인들 틈에 끼어서 크나페를 먹고 있으니 여행자가 아니라 여기에 사는 사람 같다. 우물우물 먹다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엄지를 들어 보이며 웃는 사람들. 여행지에서 현지인과 동화될 때 느끼는 행복은 소소하지만 확실하다.
* 크나페 만드는 법 : 둥근 철판에 버터와 오렌지빛 색소를 바르고 실처럼 가늘게 생긴 페스트리 반죽인 '카타이피'를 잘라 골고루 뿌린다. 짭조름한 염소치즈를 반죽 위에 얹고 다시 카타이피 반죽으로 덮는다. 가스불에 올리면 반죽이 노릇노릇 익으며 치즈가 녹는다. 철판을 돌려 골고루 익힌 후 뚜껑을 덮어 뒤집는다. 황금빛으로 익은 카다이프 위에 달콤한 시럽을 듬뿍 뿌리고 피스타치오를 잘게 갈아서 뿌려낸다.
요르단의 대표 음식 중 소개하고 싶은 음식이 하나 더 있다. 요르단 국민음식으로 알려져 있는 ‘만사프(Mansaf)’이다. 레반트(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요르단 등이 있는 지역을 통틀어 일컫는 말) 지역의 음식은 대개 비슷하지만 만사프는 요르단에서만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만약 요르단에서 이 음식을 먹어보지 않는다면 한국에 온 외국인이 김치를 먹어보지 않은 것과 같다고 하겠다.
만사프는 쌀이 들어간 양고기 찜이며 염소젖으로 만든 요구르트 소스를 뿌려 버무려 먹는 요리다. 요르단 사람들의 만사프 사랑은 진지하고도 깊다. 졸업이나 결혼식 등의 축하잔치는 물론 장례식 또는 갈등을 해소하는 화해의 모임에서도 만사프를 먹는다. 요르단 문화에서 만사프를 대접하는 것은 관대함과 환대를 나타내는 최고의 상징이라고 한다. 준비하는데만 몇 시간이 소요되는 음식이다.
만사프는 독특한 풍미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양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라도 ‘자미드(jameed)’라 불리는 요구르트 맛이 생경할 수 있다. 자미드는 염소젖을 발효시켜 요구르트처럼 걸쭉하게 거른 후 딱딱하게 말린 것이다. 대개 작은 공처럼 빚어 속까지 바짝 말려 보관하며 딱딱한 돌 같아서 ‘바위 치즈’라고도 부른다.
만사프는 자미드를 녹인 물에 커다란 양고기를 덩어리째 익혀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 위에 얹어내는 음식이다. 자미드 육수는 따로 담아 밥과 양고기 위에 소스로 뿌려서 먹는다. 밥과 양고기 찜만 먹어도 훌륭하지만 짭조름하고 시큼한 자미드 소스와 삼박자가 어우러져야 만사프의 풍미를 제대로 즐기는 것이다.
우리는 요르단에 머문 열흘간 만사프를 두 번 먹었다. 첫 번째 식당이 더 비싸고 맛난 곳이었지만 두 번째 먹었을 때 더 맛나다고 느꼈다. 발효음식의 특성상 먹을수록 익숙해지고 중독성이 생겨서 그럴 것이다. 한번 더 먹고 싶었으나 기회가 닿지 않았다. 요르단에 다시 간다면 포크를 사용하지 않고 현지인처럼 손으로 먹어보고 싶다. 양고기와 밥을 손으로 동그랗게 뭉친 다음 자미드 소스에 적셔 먹으면 비로소 요르단의 참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
내 사랑, 내 영혼, 내 심장! 침샘에 고여 드는 하비비, 나의 크나페와 만사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