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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근영 Jun 05. 2018

전통이 살아있는 인생 최대의 결혼식

축복이 넘치는 레바논 전통 결혼식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결혼일 것이다. 결혼을 한다면 결혼식 또한 치러야 할 과정이다. 결혼식은 하객들 앞에서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하나 됨을 서약함으로써 인정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요즘은 하객 수를 대폭 줄이고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만 초대하는 소규모 결혼식이 많아진다고 한다. 이른바 스몰웨딩은 단순히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점차 자리를 잡아갈 추세인 것 같다. 축의금을 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봉투만 전달하는 경우나 얼굴도장을 찍은 후 식사만 하고 가는 하객이 많은 결혼식보다 주인공인 신랑 신부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자리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의 결혼식은 어떨까. 나는 여러 나라, 다양한 문화권의 결혼식에 초대되어 가 본 경험이 있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유럽 쪽은 가족, 친지와 가까운 친구들만 초대되는 소규모 웨딩인 반면 아시아 쪽은 하객 수가 많은 빅 웨딩에 속한다. 결혼식 규모가 크든 작든 우리나라의 웨딩과 가장 큰 차이는 결혼식에 걸리는 시간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결혼식과 식사 시간을 포함하여 1시간 반정도라면 다른 나라는 몇 시간에 걸쳐 축제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결혼식은 서양식으로 진행되고, 전통문화는 폐백 때만 남아있는데 그나마도 요즘은 생략하는 추세다. 신랑 신부를 축하하는 데 큰 의미를 둔다면 전통을 따지는 것이 구태의연할 수도 있겠지만 결혼식장에 다녀올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1. 레바논 전통결혼식에 가다

작년 여름, 나는 레바논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친구의 지인이 장남 결혼식을 앞두고 친구를 초대했는데 나는 중동지역의 결혼식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생전 처음 가보는 중동지역의 결혼문화가 너무도 궁금했다. 레바논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곳이고 크리스천이 많아 서양식의 웨딩을 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결혼식 참석을 핑계로 중동 여행도 할 겸 우리는 일사천리로 여행 계획을 세웠다.  



카디샤 밸리에서 결혼식이 열리는 안자르(Anjar)까지는 차로 2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거리였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레바논에서 택시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도시 간 이동이 쉽지 않았다. 친구 지인인 모하메드씨는 멀리서 온 우리를 배려해 숙소로 기사를 보내주었다. 레바논 산맥과 안티 레바논 산맥 사이로 넓게 펼쳐진 베카 평원(Beqaa Valley)에 자리한 안자르에 도착했다. 베카 평원은 토양이 비옥하여 레바논 농업의 주산지인 곳이다. 초록색으로 넘실거리는 평야 뒤로 서있는 안티 레바논 산은 멋진 배경이 되어 주었다.  



2. 시리아 난민 캠프를 보다

시내를 벗어나자 갑자기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낡고 허름하여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천막이 즐비했다. 시리아 난민 캠프라고 했다. 레바논은 인구 6백만의 작은 나라인데 시리아 난민 수는 2백만 가까이 된다고 한다. 시리아와의 국경이 가까운 탓인지 안자르에는 심각할 정도로 난민촌이 많아 보였다. 상하수도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천막에 사는 시리아 난민들의 생활상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비참하다고 한다. 레바논 사람이 받는 일당에 비하면 껌값도 안 되는 돈을 받고라도 일을 해야 근근이 버틸 수 있는 난민들. 인구의 1/3 가까이 넘쳐나는 난민들 때문에 레바논 저임금 노동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길어지는 내전과 더불어 늘어나는 난민들로 인해 빚어지는 레바논에서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갈등은 나날이 심각해져 간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레바논에서 만난 사람들은 불평불만을 토로하지는 않았고 한결같이 우리에게 반문했다. 예전에 형제나라였는데 어떻게 그들을 내칠 수 있겠냐고, 시리아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국경을 넘어오는 난민을 어떻게 받지 않을 수 있겠냐고. 레바논의 고급 빌라 앞에 빼곡히 늘어서있는 캠프 앞 공터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자니 마음은 한없이 착잡해지고 무거워졌다.



사진 맨 왼쪽이 신랑 그 옆에 있는 분은 신랑 아버지 모하메드씨


3. 결혼식 전야제에 다녀오다

결혼식 전야제에 초대를 받았다. 신랑 측 가족과 친지들만 모이는 자리라고 했는데 백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대가족을 이루고 있는 모하메드씨는 오래된 친구들도 마치 형제처럼 가깝게 지낸다고 했다. 집 뒷마당에 모여 음식을 나눠먹고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 손에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스텝을 밟는 모습은 우리의 강강술래를 떠올리게 했다.



저절로 어깨가 들썩여지는 신명 나는 풍악소리. 그들의 전통문화가 신기해서 사진과 영상을 찍던 우리도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무슬림 사회여서 그런지 모하메드씨 가족 친지들은 알코올음료는 마시지 않고 아랍 커피를 마셨다. 물담배를 피우는 여성도 많이 보였다. 밤늦게까지 파티는 계속되었고 우리는 내일을 기약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4. 결혼식 아침 신랑집 풍경

결혼식 아침, 숙소로 픽업 와 준 차를 타고 모하메드씨 집으로 갔다. 거실에는 신랑의 예복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가족과 친지들은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멀리 한국에서 온 손님이라고 우리를 반겨주고 미소로 맞아주었다. 이 지역 유지인 모하메드씨 집은 엄청나게 커서 구경하다 길을 잃을 뻔했다. 결혼식 준비는 모하메드씨 누님 댁에서 진행된다고 하였다. 여러 대의 차에 나눠 타고 이동을 하여 전망 좋은 언덕에 자리 잡은 누님 댁에 도착했다. 신랑의 결혼식 준비과정을 지켜보고 축복해 주기 위해 더 많은 친지들이 모여들었다.  

 



미용사가 정성 들여 신랑의 수염을 다듬고 이발을 하는 동안 가족 친지들은 그 앞에 모여 서서 풍악에 맞춰 박수를 치고 춤을 추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박수는 끊임이 없었고 신랑은 빙그레 미소로 화답했다. 집안 어른인 분이 큰 소리로 축원을 해주는 광경도 인상적이었다. 단장을 마친 신랑이 예복을 갈아입고 나오자 박수 소리는 커져갔다. 오전 내내 단장을 마친 신랑과 함께 다같이 식탁에 모여 점심을 먹었다. 모하메드씨와 친지들은 우리에게 차려져 있는 음식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며 계속 가져다주었다.  



점심식사 후 신랑과 가족 친지들은 휴식을 취한 다음 신부집으로 간다고 했다. 휴식시간 동안 우리는 근처에 있는 안자르(Anjar) 유적을 보러 가기로 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안자르 유적지를 놓칠 수 없었다. 신랑의 남동생과 친구들은 유적지까지 우리와 동행하여 안내를 맡아주기로 했다. 좋아하는 음악이라며 신나는 한류 음악을 틀어주었고, 오픈카 안에서 레바논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우리는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았다.





5. 안자르 유적지를 방문하다

안자르(Anjar)는 레바논의 다른 고대 유적지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도시이다. 비블로스(Byblos)나 티르(Tyre)는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를 토대로 이어져 온 반면 안자르는 우마이야(Umayyad) 왕조 시대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칼리프 알 왈리드 1세가 건설한 안자르는 8세기 초 우마이야 왕조의 도시계획을 보여주는 유일무이한 사례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다른 유적지의 역사는 몇 천년에 걸쳐 내려왔지만, 8세기에 건설된 안자르는 약 백여 년 간 존속하다가 우마이야 왕조가 몰락하는 바람에 미완성인 상태로 버려졌다. 버려진 고대 도시는 1940년대 말에 와서야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남북 385미터, 동서 350미터 길이의 사각형 모양의 도시는 두께 2미터, 높이 7미터에 달하는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 안에는 동서와 남북을 직각으로 교차하는 두 개의 대로가 있고, 각 방향의 축으로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엄격한 계획에 따라 구역별로 궁전과 사원 그리고 시장과 공중목욕탕 등을 나누어 배치하였다. 수크라 불리는 시장에는 약 600여 개의 상점이 있었다고 한다.  



대로가 교차하는 도시 중심부에는 4개의 모서리에 각각 4개의 원기둥을 세운 돌받침대가 있다. 테트라필론이라 불리는 유적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아슬아슬해 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안티레바논 산맥과 대조되어 유적은 더욱 아름다웠다.






6. 신부집으로 가다

유적지 구경을 마친 우리는 신랑과 가족 친지들을 따라 신부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에 도착해서는 풍악대의 음악 소리에 맞춰 신랑은 춤을 추었고 가족 친지들은 리듬에 맞춰 박수를 쳤다. 신부집에 도착을 알리고 신부가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하게 해 주는 듯했다. 한바탕 춤판을 벌인 후 우리는 신부집으로 들어갔고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예쁜 신부가 정원으로 나왔다. 딸을 떠나보내는 친정어머니는 계속 눈물을 보였고 신부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세상 어디든 딸을 시집보내는 엄마의 마음은 같은가 보다. 신나게 박수를 치며 덩실거리던 우리는 신부와 친정어머니의 눈물에 괜히 숙연해졌다.



7. 신부를 데리고 다시 신랑집으로 향하다

신부는 친정부모님을 떠나 신랑의 손을 잡았고 잠시 후 둘은 모여있는 가족 친지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웨딩카에 올랐다. 신랑집으로 향하는 웨딩카의 뒤를 따라 우리 모두 이동을 하였고 푸른 하늘을 향해 형형색색의 축포가 수없이 터졌다. 신랑집에 도착한 커플은 현관에서 새 가정을 이루는 의미가 담긴 간단한 의식을 치른 후 안으로 들어갔다.  



8. 저녁에 열린 성대한 결혼식

결혼식은 큰 호텔에서 열린다고 했고 두 시간가량 우리는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결혼식과 더불어 성대한 파티가 열리는 장소로 이동할 무렵 날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도착해 보니 천여 명이 들어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야외 홀이었다. 결혼식은 가까운 가족 친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하객이 초대된 자리였다. 하객들마다 화려하고 멋진 옷차림으로 등장하여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우리도 고운 한복을 챙겨 갔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을 타고 등장하는 신랑, 화려한 불꽃 사이로 꽃마차를 타고 들어오는 신부, 전통무용수들의 현란한 춤과 하객들의 끊임없는 박수소리. 축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신랑 신부가 손을 잡고 하객들을 향해 인사를 하자 댄스타임을 알리는 음악이 울려 퍼졌다. 화려한 옷차림의 하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무대로 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신부 친정부모님도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보니 왠지 마음이 놓였다. 댄스 스텝이 어려워 사진만 찍고 있던 우리도 카메라를 내려놓고 춤의 대열에 합류했다.  



수도 없이 나오는 음식들로 테이블은 휠 지경이었고 대미를 장식하는 불꽃놀이는 지금까지 살면서 본 최대 규모였다. 밤 12시가 넘었는데 파티는 끝날 기미가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긴 하루를 보낸 우리는 녹초가 되어 양해를 구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너무도 피곤하여 침대에 쓰러졌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이틀간 경험한 레바논의 결혼식 문화에 들떠 있기도 했고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신랑 어머니와 신부 어머니



레바논의 모든 사람이 빅 웨딩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모하메드 씨는 부유하기 때문에 천명 가까운 하객을 초대하여 성대한 결혼식을 치를 능력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간소하게 식을 올린다고 한다.


다음날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레바논에서도 모하메드씨가 살고 있는 마을에만 내려오는 독특한 전통과 결혼식 문화가 있다고 한다. 아직도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들이 부러웠다. 결혼식의 규모와 상관없이 주인공인 신랑 신부의 새로운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다같이 어울려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은 신랑 신부의 결혼생활은 더 행복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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