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나무가 서로의 그늘 속에서 자랄 수 없는 이유
모처럼 화창하고 맑았던 봄날 주말, 후배 결혼식에 다녀왔다. 대개는 건성으로 흘려듣는 주례사가 귀에 쏙 들어온 건 다음 구절 때문이었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함께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으니.>
순간 나는 작년에 다녀온 레바논 산맥의 마을 브샤레(Bsharri)를 떠올렸다. 본 산문시가 수록된 ‘예언자’를 쓴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의 고향이자 카디샤 밸리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마을이었다. 인근에 자리한 삼나무 숲도 갔었기에 시의 내용이 마치 눈 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며 주례에 인용되었던 시를 쓴 사람이 화제에 올랐다. 어떤 이는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이라고 했고 성경에 나온 말씀 아니냐고 한 사람도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시였지만 지은이나 제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예언자라는 책에서 나오는 구절이야. 저자는 레바논에서 태어난 칼릴 지브란이라는 사람이고.” “우어”하는 합창과 함께 만물박사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괜히 쑥스러워진 나는 작년 여름에 레바논 여행 가서 알게 된 거고 둘러댔지만 사실이 아니다. ‘예언자’는 고등학교 때 우연히 읽게 된 책이었고 문학소녀의 감성을 자극하는 글에 매료되었었다. 저자의 이름에서 풍겨 나오는 신비스러움도 한몫했다.
작년에 레바논 여행을 앞두고 무지 설렜던 이유 중 하나는 칼릴 지브란의 고향방문이었다. 세계적인 인물은 어떤 고장에서 나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궁금했다. 출간된 지 백 년이 다 되도록 단 한 번도 절판된 적 없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꾸준히 지킬 정도로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안겨주는 글의 힘이 어디서 오는 지도 알고 싶었다.
시인이자 작가이자 철학자이자 아티스트였던 칼릴 지브란. 그의 고향인 브샤레는 한 구비 돌 때마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위치한 카디샤 계곡에 있었다. 험준한 레바논 산맥을 타고 이어진 주변 산세는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겼고 걸출한 인물을 배출해 낸 고장답게 성스러운 느낌도 들었다. 붉은 지붕의 집들과 교회를 지나 올라가니 ‘지브란 박물관(Gibran Museum)’이 보였다. 7세기부터 수도원이었던 곳을 개조하여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서니 박물관 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안된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으나 카메라를 내려놓으니 작품에 제대로 몰입하여 감상할 수 있었다. 갤러리는 여러 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칼릴 지브란이 세상을 떠난 후에 뉴욕 지브란 스튜디오에서 옮겨온 가구, 개인 소지품, 서재, 440여 개의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었다. 칼릴 지브란의 글은 읽었어도 그의 그림을 직접 접해본 적이 없었기에 시간 여유를 갖고 천천히 돌았다.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본인의 자화상과 그가 교류했던 친구 예이츠, 카를 융, 로댕의 초상화도 인상적이었다. 컬렉션을 다 둘러보고 나면 지하묘지로 연결된다. 그는 수도자가 수행을 하던 지하 동굴에 잠들어 있다.
지하의 땅바닥은 차가웠지만 나는 묘지 바로 앞에 앉았다. 칼릴 지브란이 그의 묘지에 써달라고 했다는 글을 읽었다.
“나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고, 당신 곁에 서있습니다. 눈을 감고 주위를 둘러보면 당신 앞에 있는 나를 보게 될 것입니다.(I am alive like you, and I am standing beside you. Close your eyes and look around, you will see me in front of you.) ”
** 여행 tip : 방문이 끝난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지브란의 묘지와 1층 기념품 가게에서는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촬영 가능한 지 재확인하고 기념 촬영 하면 됨.
1층 기념품 가게에서 영어판 ‘예언자’와 그가 그린 그림이 인쇄된 엽서 몇 장을 샀다. 박물관에 전시된 오리지널 페인팅과 드로잉 작품을 감상하고 묘지까지 보고 난 후여서 그가 내 가슴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내친김에 칼릴 지브란 생애의 기록도 읽어보았다.
<칼릴 지브란은 1883년 레바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드로잉에 열정을 보였으며 집에 종이가 없으면 바깥에 나가 하얀 눈 위에 몇 시간이고 스케치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여섯 살 때 엄마가 준 다빈치의 그림에 매료되었으며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성격이 강하고 고압적인 데다 노름과 술을 좋아한 아버지는 칼릴 지브란의 타고난 예술적 감성에 거부감을 보인 반면 마론파 성직자의 딸이었던 엄마는 자식들에게 너그러웠고 많은 애정을 쏟았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레바논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도 들려주었고 마론파의 종교행사에도 아이들을 데려가곤 했다. 그녀의 영적인 감성은 지브란의 삶과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의 초기 작품을 보면 엄마에 대한 깊은 존경과 애정을 표현한 글이 나온다.
세금징수원이었던 아버지가 횡령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자 빠듯한 수입원마저 없어지고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던 칼릴 지브란의 엄마는 네 명의 자녀를 데리고 희망을 찾아 미국 이민길에 오른다. 칼릴 지브란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고, 그의 탁월한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을 만나 예술의 세계를 넓혀간다. 몇 년 후 아버지가 있는 레바논으로 다시 돌아온 칼릴 지브란은 아랍어와 불어를 공부한다.
어느 날 동생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받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칼릴 지브란에게 커다란 시련이 닥친다. 몇 달 사이에 병으로 여동생, 형, 엄마를 차례로 잃고 가족은 여동생 한 명만 남게 된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견디며 글과 그림에 몰입하던 중 그를 평생 동안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준 운명의 여인 매리 해스켈을 만나게 된다.
매리 해스켈은 칼릴 지브란을 설득하여 아랍어에서 영어로 번역하는 형태가 아니라 곧바로 영어로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왔다.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단어와 문장으로 고칠 수 있게 했다. 심지어는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위해 아랍어까지 배웠다고 한다.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과 도움이 있었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킨 글이 탄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칼릴 지브란이 예술활동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프랑스로 보내 제반 비용도 후원하였다.
칼릴 지브란이 매리 해스켈에게 청혼을 했으나 열 살이 많았던 그녀가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이성 관계는 아니었다는 설도 있다. 연인이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예언자를 집필한 이후 지속적으로 술을 마신 여파로 건강이 악화된 칼릴 지브란은 48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는데 그가 세상을 뜨는 날까지 그녀는 아낌없이 그를 도왔고 성장할 수 있게 했다. 심지어는 그의 뜻을 받들어 사후에 그가 남긴 모든 유산과 작품을 기증하여 레바논으로 보냈다. 칼릴 지브란의 여동생과 매리 해스켈은 직접 레바논으로 가서 수도원을 매입하여 지브란의 박물관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칼릴 지브란과 그의 작품은 미국과 레바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지브란 박물관 관람이 끝나고 우리는 백향목 숲으로 갔다. 구약성서에 여러 번 언급되었다는 레바논의 백향목은 흔히 삼나무라고도 불린다. 해충이 꼬이지 않고 잘 썩지 않아 고대부터 귀하고 값비싼 목재로 거래되었다.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의 관을 짜는 데 사용했고 페니키아인들은 선박을 제조했으며 오스만 제국은 철도를 깔 때 사용하였다고 한다.
구약 시대에 레바논 산맥 일대를 울창하게 덮고 있던 백향목은 이제 일부 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목이 되었다. 백향목 숲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으로 지속적으로 벌목되고 파괴되어 왔다. 현재 몇 군데 지역에만 남아있는 백향목 숲은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칼릴 지브란의 고향인 브샤레 지역이 가장 유명하다. 이 곳의 백향목 숲은 ‘신의 백향목 숲’(the Forest of the Cedars of God)이라 불리며 카디샤 밸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해발 1천 미터 이상에서 자라는 거대한 침엽수이며 신의 백향목 숲에 있는 나무는 200년 이상 된 것도 많다. 백향목은 45-50년까지는 급속히 자라다가 70년이 지나면서부터 자라는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진다고 한다. 키는 최고 40미터 까지도 자란다고 하는데 카메라에 끝까지 담기 어려울 정도로 큰 나무가 많았다. 주축이 되는 나무줄기에서 뻗어나간 줄기는 수평으로 자라 멀리서 보면 피라미드 형태로 보인다.
레바논의 상징으로 국기 중앙에 들어가 있는 백향목. 서서히 자라면서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는 백향목은 서로 거리를 두고 심어야 하며 아무리 거센 비바람에도 뽑히는 법이 없다고 한다.
불행한 가정사와 힘든 이민생활을 극복하고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킨 칼릴 지브란의 힘은 그가 나고 자랐던 레바논의 성스러운 계곡과 꿋꿋한 백향목의 기개에서 온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