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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근영 Dec 22. 2021

스트라스부르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만난 어린 나

동심의 세계로 향하는 문, 크리스마스 마켓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왜 아이도 어른도 들뜨는 것일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이유 없이 설레고 기분 좋은 건 나뿐만이 아닐 거다. 이젠 어른이 되어 선물 받을 일도 없고 주변의 어린아이들을 챙겨야 할 나이지만 그래도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언젠가부터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기도 어려워지고, 불경기에 코로나까지 겹쳐서 거리 풍경은 예전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코시국에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까지 유럽으로 날아와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고 싶었던 이유는 뭐였을까. 크리스마스다운 크리스마스를 다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코로나 따위는 잊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를 느끼며 지난 2년 간의 코로나 블루를 떨쳐내고 싶었던 것일 게다. 유럽에서 살 때는 11월 중순이 되면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며 계획을 짰다. 유럽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가장 큰 명절이자 축제이기 때문에 한 달 전부터 트리를 꾸미고 빵과 쿠키를 굽고 선물을 준비한다. 그런 틈에서 몇 년간 살다 보니 크리스천이 아닌 내게도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날이었다.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만 올려놓고 바로 시내로 향했다. 집을 떠난 후 28시간이 걸려 도착했지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설렘은 피로를 녹인다. 두 번째 목적지인 뉘른베르크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취소됐으니 이곳에서 최대한 즐겨야 한다는 사명이라도 생긴 듯 발걸음이 날았다. 마지막으로 이곳에 온 건 이십 년도 더 된 일이다. 도시는 익숙했지만 모든 게 새롭게 보였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꿈을 꾸는 듯 비현실적이었다. 




향긋하게 코를 간지럽히는 뱅쇼의 향 덕분에 꿈이 아니란 걸 알았다. 커다란 솥에서 하얀 김을 내뿜으며 덥혀지고 있는 뱅쇼.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오렌지 펀치 등 다양하다. 쌀쌀한 날씨엔 역시 따끈한 뱅쇼가 최고다. 한잔씩 사들고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어느새 몸이 후끈해진다. 클레베 광장에 설치된 크리스마스트리는 여행자의 기분을 북돋아 주기에 충분히 예뻤다. 



스트라스부르 시내 여러 곳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낮과 밤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씩 비교하면서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코로나로 인해 예전보다 부스가 줄어들었고 방문자도 훨씬 적었다. 마켓 입구에서는 방역 요원이 일일이 백신 증명서를 확인한 후에야 들여보내 주었는데 이러한 풍경은 코로나가 완전히 없어지기 전에는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프랑스에도 확진자가 부쩍 늘어나는 상황이라 긴장을 늦추지 못했지만 다행히 크리스마스 마켓은 취소되지 않아 둘러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대성당 근처의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회전목마 타는 곳이 있다. 어린 꼬마들이 신나서 타는 모습을 보더니 동행분께서 본인도 타고 싶다고 하셨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어른은 타면 안 되냐고 하시길래 "왜 안 돼요. 타도 되죠."라고 말하고는 원님 덕분에 나팔 분다며 3장의 티켓을 샀다. 우린 각자 원하는 동물 위에 타고 여러 바퀴를 돌았다. 목마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움직임 속에 활짝 웃는 동행분의 얼굴이 보였다. 

"나이가 이렇게 들어서 회전목마를 타게 될 줄 몰랐어요. 어릴 때 엄마가 안 태워줘서 늘 아쉬움이 있었는데 오늘 여기서 드디어 소원을 푸네요."

일곱 살 어린아이가 천진난만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는 철들지 않은 어린 날의 내가 들어있다. 하고 싶었던 것, 갖고 싶었던 것을 마음에 품고 몸만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사소한 일이라도 어릴 때 못다 한 꿈을 이루는 건 유의미한 일이다. 나이에 얽매어, 누가 흉볼까 봐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여행이 좋은 건 그런 거다. 주변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 볼 용기를 낼 수 있는 것. 내 가슴속에 살고 있는 어린 나와 놀아주기 위해 마음의 빗장을 벗기는 것. 오늘 우리는 스트라스부르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어릴 적 나를 만나 같이 놀았다. 그것 하나로도 우리가 이 힘든 여행을 감행한 충분한 의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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