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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릇 May 13. 2021

어버이날의 민낯

나의 자존감은 비트 코인처럼 변동성이 몹시 큰 편이다. 미친 듯이 치솟았다가도, 하한가 없는 폭락을 맞아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


그중 나의 자존감을 상승하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는

부모님에게 무언가 잘해드리는 장면의 주인공이 될 때다. (아, 이것은 K-장녀의 직업병인가)


주로 내가 부모님께 잘하려는 패턴은 아래와 같다.

당신들이 무심하게 필요하다/갖고싶다 하는 것들을 살뜰히 기억해서 사드릴 때.

당신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여행, 휴가 등)

연례행사(생신, 어버이날, 명절)를 챙길 때.

내가 당신들의 자랑할 거리가 되어 줄 때.(대입, 취직 이후로는  없었던 것 같다. 당신들의 기대 소식은 결혼이다. ^^;)


5월은 가정의 달


실제로도 어머니 생신, 어버이날, 동생 생일이 있는 5월은 진짜로 나에게 가정의 달이다.

매년 5월의 출혈은 6월의 내가 갚았기에, 늘 나의 자존감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나는 나의 부모를 살뜰히 챙겼다. 현금 봉투를 내밀 때 부모님의 만개하는 잇몸을 본 다면, 이건 그만 할 수 없는 거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랐다. 5월의 출혈을 감당하기에는 6월의 일하는 내가 없는 것이다.

자존감이 쪼그라든다.


나는 3월 말로 퇴사를 했고, 부모님께는 아직 그 소식을 전하지 못했으니까.


올해 5월은 마치 혹세무민한 달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론 돈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불분명한 수입은 자존감 폭락을 불러왔고 부모님의 말씀도 이제는 예민하게 듣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나는 엄마와 통화를 하다 보면,  언쟁으로 번졌다.  기승전'결혼'으로 번지는 대화. 물론  귀로 듣고  귀로 흘릴 수야 있지만, 한두 번이지. 삼세번이 넘어가면 나도   말을 따박 따박하기 시작한다.


"아니 엄마도, 엄마 남편이랑 금슬 좋게 지내는 모습 보여주면서 나한테 결혼하라고 해!"


K-장녀의 숙명은, 엄마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대리 남편이었다. 시댁/남편을 욕할  있는 대나무 숲이자, 당신의 못다 이룬 로망을 함께 이뤄주는 사람.   역할을 해내며 나는 엄마의 딸임을 자랑스러이 여기고 우리 둘은 참으로 끈끈했다.


하지만, 가끔 그 선을 넘을 때도 있었다. 나도 당신의 자식인데, 가끔 TMI를 들어 마음이 무거워지는 밤도 많았다. 하지만 그 혈맹이 나의 소득원이 끊긴다는 이유로 종료될 위기가 닥쳤다.


퇴사를 저지르고 아직 이실직고를 못했던 나는( 왜냐면, 나는 당신들의 자랑거리여야 하는 강박이 있기에, 이를 일찍 알려야 당신들의 부끄러운 소식으로 들릴 것이 뻔하여, 그 잔소리를 조금이나마 피하고 싶어 말을 아끼고, 연락도 잘하지 않았다.) 끙끙 앓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나는 부모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을까.


나는 부모에게 못난 모습을 보이면 안 되었고, 엄마의 대리 남편이자, 아빠의 자랑스러운 큰 딸이어야만 했다. 이런 강박은 언제부터 자존감의 탈을 쓰고는 나를 기만했나.


그렇게 5월이 시작되고, 어버이 날이라는 것이 다가온다. 내 강박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결국은 한 달 여 동안 부모님께 연락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불안감이 치솟았고, 나는 부모와 연을 끊을 수 없기에, 며칠을 머뭇거리다 5월 초가 되어서야 엄마에게 겨우 카톡을 했다.


"엄마 나, 회사 그만뒀어."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의 내용은 너무 슬프게도 내가 예상한 바에서 다르지 않았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퇴사를 하냐니.


회사 다니며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어디 있나, 네 아버지는 35년을 회사를 다니셨다. 고작 몇 년에 이렇게 튕겨 나올 일이냐. 참을성도 없는 것.


내가 당신을 너무 잘 아는 것이 탈이었다.


이윽고 그날의 통화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갚지는 못할 망정..'으로 흘러갔다.


물론 언성을 높이시거나 하지는 않으셨지만.

그래도 예상과 다르지 않았던 부모님의 반응은 조금 아팠다.


나를 키우다 지나가버린 세월에 바닥이 난 부모님의 인내심. 이제는 불쑥불쑥 날것의 진심들이 새어나오는

걸 목도한다. 오늘도 예외는 없었던 거다.


'퇴사해도 괜찮아, 네 결정이라면 엄마 아빠는 널 믿어. '

나는 단지 그 한마디가 듣고 싶었을 뿐이다.

잔뜩 실망을 한 힘 빠진 목소리엔 나는 더이상 위로를 구할 수 없었다. 이 못난 자식은 졸지에 채무자가 되어버렸다.


언제부터 부모와 나의 관계가 책임과 존경의 선순환의관계가 아닌, 쫓고 쫓기는 채무관계가 되어버렸을까. 나는 당신들의 TMI를 너무 많이 알아서일 거다.


당신들의 책임감을 나는 존경으로 갚고 싶었지만,

우리를 키우는 그 과정이 당신들에게 한편으로는 너무나 괴롭고 번내가 가득찬 일이었음을 더이상 나는 무시 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거다.


나는 또 한 가지의 변명으로 당신들이 자식을 그렇게 고통스럽게 키운다고 하니, "기승전'결혼'"의 통화 때마다, 나는 내 자식들에게 그러한 고통을 알리면서 키우고 싶지 않다며, 결혼을 한다 해도 내 자식을 낳는 것은 생각을 해볼 문제라고 못을 박곤 했다.


당신들의 나약한 모습들.

이는 내가 어느덧 많이 자랐고, 당신들이 노쇠해감을 보여주는 쓸쓸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늘 심장이 떨어지는 충격을 받는다.


어쩌면 부모의 책임은 이를 평생 모르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식은 그 부모의 숭고한 책임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그 부모 자식 간의 균형의 방점이 책임과 존경이 아닌 채무에 살짝 기울어 버렸다.

많이 속상하다.


결국 나는 그 채무관계의 죄책감을 덜어내려 어버이날 고민을 하다 현금과 선물을 결국 드렸다.

 조금 더 존경하는 마음으로 선물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이런 내가 부끄럽고 마음 아팠다.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환상은 5살에 깼지만,

나의 부모도 한낱 인간에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은 삼십 대 중반에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다.


나약한 존재인 우리 부모님께,

그 어떤 걱정도 나는 끼치면 안 되는 거다.


대충 이직을 했다는 말과 함께 나의 퇴직 사실을 얼버무리고는 얼렁뚱땅 괜찮은 체해버렸다.


세상에 혼자인 기분.


 마음이 고단했던 어버이 날.


내년에는 마음을 더 단단히 먹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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