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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릇 Jun 20. 2021

안정의 반격

안정적 직장에서의 무기력이라는 해류에 휩쓸려 좌초된 나는, 방향을 올바로 돌려보고자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해보기로 한지 2달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아보자는 용단을 내린 뒤, 운 좋게 그 업계에서 일을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사실 운이 좋았다기보다는, 직장인으로서 올리기에도 모자란 연봉을 되려 깎고, 복지를 모두 반납하는 과감한 출혈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한창 주가가 높아야 할 대리급이었던 나는, 사회초년생 때의 월급으로 회귀했고, 철저히 보장되었던 나의 저녁과 주말도 없어졌다.


내가 생각해도 무모한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몇 년을 일해도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얻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분야의 일을 하는 것이란 이런 것이구나. 어떠한 허드렛일을 해도 아무렇지 않고, 내가 이 일을 앞으로도 더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무너지는 워라벨이 좋았다.


예전까지의 회사 생활에서는 일과 삶은 철저히 표리 된 관계였다. 도살장에 끌려가듯 업무를 하고 도망치듯 퇴근하는 삶은 행복하지 않았으니까.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권태와 무기력은 어느새 사라지고, 퇴근 후의 시간에도 나는 무언가를  에너지를 가지게 되었다. 뒤늦게 뛰어든 만큼 필요한 공부를 병행하고 얼마 전엔 자격증 시험도 쳤으니까. 변화된 업무 환경에 몹시 체력적으로 힘들기는 했지만, 나는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 이것이 옳았음을 너무나도 증명하고 싶기에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중이다.


마음이 온전히 편해질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은 않다. 그렇게 일정의 행복을 얻어가고 있지만, 무기력의 빈자리는 어느새 불안감이 차지해 버렸다.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 한 두 달 차,

이상을 좇기에는 현실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순간들이 이제는 또 보이기 시작했다.


앞자리 수가 바뀐 월급은 어딘가 모르게 나를 쪼그라들게 만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달리던 친구들에 비해 낙오된 느낌을 들게 했다. 괜스레 친구 만나기를 꺼리게 된다.


당연했던 주말과 저녁을 빼앗기고 보니,

어쩌면 이런 선택이 아직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철없는 투정과도 같은 것이었을까 싶어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하고 말이다. 일터는 죽을 것 같이 싫었지만 저녁과 주말으로의 도망은 꽤나 달콤했던 것들이었기에.


불안한 나의 마음을 신은 알고 있었던 것인지,

갑자기 요즘 들어 신이 나를 시험하기 시작했다.


이전 직장동료가 이직을 한 회사에 이전 나의 Role을 해줬으면 한다는 오퍼를 받지를 않나,

모교의 은사님께서 기간제를 해보지 않겠냐며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주시지를 않나.


갑자기, 안정적인 일자리들의 유혹이 나를 흔들었다.

그리고 나약한 인간인 나는 또 흔들리기 시작한다.


간사한 나의 마음은  오퍼들을 단박에 내치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애매한 답변으로 지금 또다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왜 고민에 빠지냐 너.

그렇게 해보고 싶다고, 잘 다니던 직장을 박차고 나왔던 그 용기는 다 어디로 갔냐며.

결국 내가 열정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은 충동에 의한 만용이었단 말인가.


세상이 나에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 결국 네 그릇은 여기까지야. 쓸데없는 생각 말고 평범한 삶의 기회를 줄 때 다시 잡아. 이게 내 마지막 배려야."


이번의 용기는 그저 잠깐의 흔들림으로 치부되어 나의 새로운 삶은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일까.


정말 나도 나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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