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내가 이렇게 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내 어릴 적 꿈은 작가였다. 아마 계기는 어릴 때 받은 글짓기 상장. 처음 받아 본 상장이 주는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듯한 기분이 좋았고, 엄마가 잘했다며 사준 피자가 좋았다. 그 나이에는 으레 소득 신고하듯 따박따박 장래희망을 제출하곤 했으니, 자연스레 작가가 내 장래희망란에 적혔고, 가끔 변덕을 부리긴 했어도 언젠가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막연히 꿈꾸곤 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글로 밥벌이할 만큼 재능이 있지 않다는 걸 자각했다. 드라마틱한 효과음도 연출도 없이 그냥 마음에 콕 들어와 박혔다. 그래서 그냥 포기했다. 머릿속으로 반지하 방에서 라면 하나로 삼시 세 끼를 때우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내 마음속에서 조금 먼 곳으로 작가라는 직업을 옮겼다.
돌이켜보면 나는 작가라는 직업보다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흔히 하는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사람들이 박수를 쳐준다는 그 말처럼 박수받는 똥싸개가 되고 싶었다. 내가 뭘 해도 사랑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냥 내지르는 대로 글을 써내면 그 글이 똥이든 금이든 상관없이 박수를 받고 싶었다. 세상에, 이 얼마나 날로 먹는 파렴치한 생각인지. 그때 나에게 있어 글은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수단으로써의 가치를 잃자 가차 없이 버릴 수 있었다. 그 뒤로 이곳저곳 전전하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근 십 년간의 방황 끝에 내가 있는 곳은 서울도 한국도 아닌 시드니. 돈도 벌면서 영어공부도 할 겸 도전했던 시드니행은 내 삶을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180도 바꿔버렸다. 노동과 기술을 중시하는 호주에서는 카페 점원으로만 일해도 삶을 안락하게 꾸려나갈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 세상을 맛 본 철학과 휴학생은 불안한 미래가 기다리는 한국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단한 똥싸개가 되고 싶은 꿈을 접고, 조금은 무모하게도 파티시에라는 직업에 도전했다. 워홀 1년간 피땀 흘려 번 돈과 가까운 친척분들께 빌린 돈으로 뛰어든 유학생활. 빚을 기반으로 시작한 유학생활이 빛날 수는 없는 법. 일주일이 부족할 정도로 일만 했던 것 같다. 나름 치밀하게 준비했던 계획도 막상 현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나는 파티시에 공부에 이렇게 많은 영어 에세이가 필요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비자는 뭐고, 이민성은 뭐고, 아이엘츠는 또 뭐란 말인가. 이곳저곳에서 날아오는 펀치에 겨우 가드를 올리며 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적응력은 무시할 게 못 된다더니, 하루가 멀다 하고 맞기만 하니까 어느 순간 맞으면서 밥도 먹고 멍도 때리고 딴생각도 하고 있더라. 그렇게 맷집을 늘리며 2년 간의 학교 생활을 마치고, 풀타임 일을 잡았을 때는 이제 한 숨 돌리겠거니 안심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가뜩이나 엉망이 된 내 이민 계획에 폭탄이 하나 날아와서 박힌 것이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 걱정과 내 앞날에 대한 걱정을 저울질하기를 몇 날 며칠. 결국 미래에 대한 걱정이 다른 모든 걱정을 때려눕혔다. 경력 하나 없이 졸업장 하나 달랑 들고 한국에서 바닥부터 시작할 자신이 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은 버티기에 들어갔다. 다행히 내가 구한 직장은 코로나의 여파가 강하지 않았고 약속했던 것보다는 적지만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었다. 워낙 변수가 많은 것이 이민이라 비자가 허락하는 한 최대한 많은 돈을 모으겠다는 나의 목표와는 다르게 시간 여유가 넘치는 나날이 시작된 것이다.
2년 간의 치열한 생활 때문인지 처음에는 조금 얼떨떨하게 하루를 보냈다. 수능 끝난 고삼의 기분이랄까. 뭔가 막연히 계속 무엇이든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저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 기분을 애써 떨치며 밀린 잠도 자고, 유튜브도 보고, 영화도 보고 그러다 우울해졌다.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지금도 어렴풋이 예상만 할 뿐 알 도리가 없다. 그냥 어느 날부터 누워 있다가 눈물이 나고, 설거지하다가도 눈물이 나고, 빨래를 개다가 오열을 하고 있었다. 일하는 중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가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울었다. 누군가 내 인생의 나쁜 놈을 콕 집어서 말해주면 그 나쁜 놈을 때리면서 이겨내기라도 할 텐데, 형체 없는 적과 끝나지 않는 싸움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글을 썼다. 그냥 아무 공책이나 들어 글을 썼다. 어떤 날은 그날 만났던 진상 손님에 대해, 어떤 날은 직장 상사와 있던 마찰에 대해, 어떤 날은 아무 주제 없이 생각이 가는 대로. 그렇게 기분이 내킬 때마다 글을 썼다. 한바탕 글을 쓰고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우면 글을 쓰지 않았던 날보다 좀 더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조금 더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글쓰기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비록 너무 날 것 그대로인 그때의 글을 차마 읽어볼 정도로 강한 비위를 가진 게 아니라 한쪽 책장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지만, 글을 썼다는 사실이 내 시드니 삶의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계속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나조차도 읽기 힘든 책장 한편 흑염룡으로 존재할지 아님 남들과 나누고 싶을 만족스러운 글들로 존재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래도 한 번 계속해서 써보려고 한다. 박수받는 똥싸개가 아닌 그냥 똥싸개가 되더라도 내 마음속 먼 곳에서 서성이던 작가라는 직업에 손을 한 번 내밀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