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나의 직장 생활의 가장 큰 시련기는
워커홀릭 유형의 팀장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멀쩡하던 사업 구조를 바꾸고,
사업은 계속해서 확장되었다.
물론 좋다.
그 사업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다 보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계속 확장되는 사업을
감당해야 하는 인력은
변동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인력은 그대로인 채,
이리저리 바뀌는 팀장의 생각에 따라
우리 팀은 늘 분주했다.
기껏 하나의 방향을 설정하여
잘 준비하다가도,
마음대로 뒤엎고
새로운 방향을 요구하는
팀장 덕분에
나의 한계치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말수가 점점 줄어들게 되고,
내일이 두려웠다.
내일 출근길에 휴직할 정도로만
교통사고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백 번도 넘게 하였고,
퇴사라는 단어를
매일 입안에서 굴리며,
당장 실행할 수 없는 현실을
저주하기도 했다.
결국 인사고충을 쓰기로 결심했다.
물론 인사고충을 써도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관행상 못 버틴 자에게
좋은 부서를 갈 수 있는
찬스는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보다 더 최악일 수도 있고,
여기를 그리워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도 했다.
그래서 갈등했다.
다시 다른 부서에서 만날 수도 있는,
지금의 상사와 완전히 척을 지고,
선택한 인사고충이
좋은 선택이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직장 생활 좀 하다 보니
아예 틀린 말도 아니란 걸
몸소 느껴봤기에,
인사고충에 대한 고민은
한 달 넘게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 겪고 있는 지옥보다
더 큰 지옥을 상상할 정도의 여유조차 없었기에
결국 인사고충을 신청했다.
그리고 받아들여졌다.
인사고충을 써서
부서 이동을 한다는 나의 사정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모두가 알게 되었다.
상사는 차갑게 한 마디를 하고
더 이상 나를 상대하지 않았다.
'일이 많았으면 상의를 하면 되지.'
나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고,
같이 버텨왔던 팀원들에게
묵직한 미안함을 전달하고,
지옥을 빠져나왔다.
정말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었다.
그러나 지옥도 없었다.
새로 발령 난 부서는
업무량은 상당했지만,
인간적인 상사와 팀원들 덕분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비록 도망친 곳이 천국은 아니었을지라도,
최소한 나를 지킬 수는 있었다.
타인으로 인해
가장 최악으로 달려가는 상황은
피했기 때문이다.
그 경험을 통해
한 가지 깨달았다.
버티는 것만큼 떠나는 것 또한
나를 단단하게 해 준다는 사실이었다.
불편하게 떠나는 것도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맞설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2년이 지나가는 지금,
가끔 힘들었던 때를 생각한다.
그때 내가 만약 계속 버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버텨내서 더 단단해졌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거다.
사람은 늘 최악을 견디고 나면,
그다음 일들은 수월하게
이겨내기도 하니까.
하지만 사람마다 버텨낼 수 있는
역치는 모두 다르다.
당장 죽을 것만 같은 현실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결국 나다.
만약 그런 선택을 할 기로에 서 있다면,
너무 자책하지 말자.
그리고 나약하다고 생각하지도 말자.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려고 시도도 해보고,
그것도 안 된다면,
또 다른 플랜b도 실행해 보는 거다.
뭐가 됐든,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하니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진짜 나를 되찾는' 그림 에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