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유일하게 보는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가 <유퀴즈>이다.
최근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케이팝데몬헌터스'의 이재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방송 전체를 시청하였다.
이재는 SM 아이돌 연습생 출신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매일 12시간 이상씩
오로지 걸그룹 데뷔만을 바라보며,
끈질기게 노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결과적으로 이재는
걸그룹으로 데뷔하지 못하였다.
그녀는 조금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 시절,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다 포기하고
걸그룹 데뷔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던 그때의 자신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재의 서사를 들으며,
회사에서 치열하게 애썼던
내 과거가 오버랩되었다.
나는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이
속해 있다는 요직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똑같이 힘들게 일해도
사람들에게 더 인정받고,
무언의 보상과 기회를 더 가져가는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나도 열심히 하는데,
언젠가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지겠지.'
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8년을 묵묵히 버텼다.
그러나 내 차례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에게는
그런 순간이 오지 않더라."라고
말하던 이재의 말이
두고두고 내 마음속의
잔상을 남겼다.
그때의 나도 그렇게
스스로를 자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엔 다르게 생각한다.
그때 나에게
그런 운이 없었기에
'지금 내가 회사 밖에서
진짜 원하는 일을 발견하고,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만들어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라고.
만약 그때 원하는 부서에서
일하는 기회를 얻었다면,
나는 아직도 회사의 인정에
도취된 채,
회사 안에서 내가 우월한 존재라고
착각하며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 성격 상....)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진짜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자꾸만 내게서 멀어지기만 할 때,
그 괴로움은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
그런데 인생은 참 묘하고도
언제나 예측 불가능해서,
간절히 원하는 걸 이뤘어도
그게 오히려 호사다마일 수 있고,
불운이라 여겼던 일이
생각지도 못한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수많은 그럼에도
모든 억울함을 억지로 끌어안고서
계속 걸어가 보자.
가지지 못해서 그토록
괴로웠던 일이 사실은,
나를 더 나은 세계로
이끌기 위한 안내자였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진짜 나를 되찾는' 그림 에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