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직장인이 되고 나서,
마음을 통제할 수 없을 때마다
일기를 썼다.
그러다 일기를 쓰는 일이
어느 순간 루틴이 되었고,
지금은 블로그와
브런치스토리에서
글을 연재하고 있다.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히며
제멋대로 날뛰던
감정과 생각들은
글을 쓰면서
서서히 진정된다.
글을 쓰면 뒤엉켜있던
생각과 감정들이
형식화되고,
명료한 언어로 정리되기 때문이다.
내 감정의 실체를 찾기 위해
단어를 고르고,
내가 느끼고 있는 순간을
가장 명확히 설명할 수 있도록
문장들을 다듬고 고친다.
그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 마음이
조금씩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고,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덜어내야 내가 편할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시야가 생긴다.
글쓰기는
삶을 견고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하루 종일 모니터 속
글자들을 보며,
끊임없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머리는 쉴 틈이 없지만,
정작 내 삶의 방향은 흐릿해지고,
지혜는 말라가고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삶은 너무나도 바쁜데
정말 바빠서 바쁜 건지도
잘 모르겠는,
지금과 같은 혼란의 시대일수록
나는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루 동안 흩어져 있던 생각을
하나로 모으고,
불안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문장을 써 내려가다 보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몇 년 전에 썼던 일기들을
가끔 읽어볼 때가 있다.
그 당시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었고,
어떤 사건 때문에 힘들었는지,
그날의 내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때 버텼던 나를 보며,
혹은
그때 잘 헤쳐나갔던 나를
다시 떠올리며,
지금의 불안과 걱정에 대해서도
잘 이겨내리라 스스로를 격려한다.
생각만 하는 사람은
흔들릴 수 있어도,
생각하며 글을 쓰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가령 '나는 불안하다'와
'나는 오늘 불안함을 느꼈다'는
미묘하지만 매우 다르다.
전자는 불안이 나를 규정하지만,
후자는 불안을 내가 관찰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쓰는 사람은
자기 삶의 관찰자가 되고,
관찰자는 그때부터
더 이상 그 어떤 것에도
손상되지 않은 존재가 된다.
단 한 줄이라도
오늘을 기록해 보자.
스쳐 지나가버리는 오늘을,
오늘의 나를,
우리는 글을 통해
충분히 돌볼 수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진짜 나를 되찾는' 그림 에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