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어느 날은 땅굴 속을 파고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
몇 날 며칠 계속될 때가 있다.
그때는 아무리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봐도
요지부동일 뿐이다.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이리저리
헤집어 놔서,
비록 몸은 편할지라도
마음은 심히 불편하고
불쾌하다.
분명히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잘하던 일인데,
하룻밤 사이에
다른 사람의 정신이
빙의를 했는지,
내가 아닌 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한 번만 몸을 일으켜서
저 책상에 앉아 컴퓨터만 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일인데..
그거 하나를 오늘 하기가
왜 이렇게 두렵고
막막할까.
살아보니,
아무 사연 없이
잘 살던 일상에도
슬럼프는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그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주는
자기 계발 책이나
동기부여 영상을 찾아
억지로 마음을
다독여보기도 했지만,
안될 때는
어떻게 해도 안 됐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안다.
애초에 대책이나 해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그 버둥거림 자체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이란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달리던 속도를 줄이고,
현재의 내 에너지에 맞게
잠시 서 있기를 선택한다.
하루로 안되면
내일도 그렇게,
내일도 돌아오지 않으면
모레도 그렇게,
잠시 멈춰있는다.
그런데 그렇게 계속
있다 보면, 서서히 돌아온다.
아예 아무것도 안 하다가,
슬슬 1개를 하기 시작하고,
2개, 3개를 지나서
원래 내가 해오던 루틴대로
돌아와 있는 모습을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깨닫는다.
영원한 것은 없으니
너무 걱정하고
조바심 낼 필요가
없다는 세상의 이치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어쩌면 가장 격렬하게
내가 회복하고 있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완전한 멈춤이 아닌,
내 삶을 다시 잘 살아가기 위한
숨 고르기일 뿐이란 걸.
나는 결국
다시 나로 돌아온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러니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너무 스스로를
다그치지 말고,
잠시 기다려주기를.
그 누구보다도
더 빛나기 위해
단단해지고 있는
필연의 시간일 테니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진짜 나의 삶을 되찾는' 그림 에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