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책가게를 돌보고 있어요」 프롤로그
메리 포핀스가 우산을 쓰고 내려올 것 같은 날씨네요. 북쪽 지역에는 태풍 경보가 내렸다죠. 북해를 넘어오는 태풍이라니, 말만 들어도 코끝이 시리고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기분이에요. 얼마나 강한 바람과 많은 비가 이 낮은 나라를 휩쓸고 갈까요. 아무도 다치지 않고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글을 쓰고 있는 이곳은 네덜란드의 중간쯤에 위치한 작은 도시입니다. 이 작은 도시의 남서쪽 어느 동네 한 구석에 『아주 작은 책가게』라는 곳이 있어요. 사실은 저희 가족이 살고 있는 작은 집인데, 거실 한편에 마련한 작은 서재 공간이 이 책가게입니다. 이름은 책가게지만 작은 도서관처럼 기능하고 있어요. 책가게의 이런 기능을 「책공유」라고 부르고 있고요.
모서리 하나를 두고 만나는 두 벽 면에 네 개의 책장이 나란히 놓여있어요. 이 네 개의 책장에는 「공유서가」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공유서가에 꽂혀있는 약 천 여 권의 책들은 책가게의 「공유회원」들이 이용하고 계시고요. 공유를 신청하신 책들을 우편으로 보내드리면 「공유기간」 동안 읽으신 후 다시 책가게로 돌려보내시죠. 공유서가의 실물은 저희 집 거실에 있지만 책을 둘러보고 공유신청을 하는 과정은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집니다. 가깝지만 멀고, 멀지만 가까운 존재랄까요. 존재하지만 당장 손에 닿지는 않고 책을 받아 드는 순간 비소로 책가게의 실재를 경험하게 되는 시스템이지요. 무슨 가상현실처럼 들리네요. 하지만 책가게는 진짜 있답니다. 물리적으로 멀긴 해도 심리적으로는 가깝고 싶은, 한계를 가진 책가게의 정체성이자 지향점입니다.
2020년 9월에 문을 열었으니 책가게를 돌본 지 어느새 4년 반 정도 되었네요. 책가게와 소통하는 분들은 저를 이름으로 부르시거나 안 부르시거나 드물게 '책방지기님', '책가게 주인장님' 혹은 '사장님' 등등의 다양한 호칭으로 자유로이 부르시죠. 호칭이 정해져야 대화가 수월해지는 고국의 문화를 생각했을 때 저의 직책 없음이 불편하실래나 잠깐 생각해 본 적이 있기는 해요. 하지만 다들 자유롭게 편한 방식으로 부르거나 부르지 않으면서 다정하게 소통해 주시는 것을 보고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어요. 기능은 있으나 직책이 없는 사람도 있죠. 그게 소통의 걸림돌이 될 이유는 없지요.
저 말고 책가게 가족이 두 명 더 있어요. 큰 짝꿍은 책가게의 재정 업무를, 작은 짝꿍 당근이는 책가게에 맛과 색을 더해주는 당근 같은 역할을 맡고 있어요. 책가게의 '확대 가족'도 있지요. 네덜란드에서 실제로 공유서가를 이용하는 공유회원들이 계시죠. 발전기가 전기를 만들어내듯, 책공유를 통해 책가게의 존재의 이유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어 주시는 중요한 가족입니다. 책가게에 책을 후원해 주신 「후원회원」들도 계세요. 특히, 한국에 계시는 후원회원들은 책가게의 시작이 되어 주셨어요. 오 년 전, 부산항에서부터 로테르담항까지 배로 실어온 천 여 권의 「씨앗책」들은 모두 한국에 계신 후원회원들의 마음과 수고로 모인 것이니까요. 이후 네덜란드에도 후원회원들이 생겼어요. 일부 공유회원들께서 공유를 마친 책을 돌려보내시면서 소장하고 있던 책들을 함께 보내주시는 경우도 있고, 공유회원은 아니지만 책을 후원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시는 경우도 있거든요. 책가게가 고여있지 않고 신선하게 흘러갈 수 있게 해 주시는 분들입니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현재는 한국에서 씨앗책을 모집하고 있지 않지만,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씨앗책 후원 문의를 주시는 한국의 후원회원들이 계세요. 무엇보다, 부산에 계시는 독서왕, 당근이 할머니께서 새로 사서 읽으신 책은 모두 모아 책가게로 보내주시는 덕분에 공유서가는 계속 충전되고 있어요. 응원금을 통해 책가게를 후원해 주시는 「응원회원」도 계세요. 모금 플랫폼을 통해 보내주신 응원금은 새로운 책을 구입하거나 서가 관리에 필요한 물품 비용을 충당해 주고 있어요.
쓰고 보니 책가게는 꽤 대가족 프로젝트네요. 이렇게 많은 손길과 마음이 모여서 만들어진 책가게의 정체성을 꿋꿋하게 유지하면서 닦고 쓸고 가꾸고 돌보는 일이 바로 제가 맡은 역할입니다. 책가게의 정체성은 두 가지예요. 첫 번째, 「공유」입니다. 책가게는 '공유'와 '대여'를 구별하여 정의합니다. '대여'가 남의 책을 빌려 읽는다는 의미라면 '공유'는 우리의 책을 함께 읽는다는 의미입니다. 공유회원도, 후원회원도, 응원회원도, 책가게 가족도 모두 '우리'에 속하지요. 대여는 담보, 조건, 그 조건을 벗어날 시 부과되는 부담금 등 수동적 장치를 통해 운영되지만, 공유는 책가게 모든 구성원 간의 공감, 연대, 배려를 통해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운영됩니다. 가입비도, 보증금도, 연체료도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책가게는 '책 대여점'이 아니라 '공유 책가게'입니다. 두 번째 정체성은 「소통」입니다. 공유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살다 보면 공유기간 내에 책을 다 못 읽을 이유가 얼마나 많겠어요. 그럴 때 책가게 공유회원들은 다정한 이메일이나 메시지 한 통을 보내주십니다. '아이고, 아직 다 못 읽었어요. 연장해 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때맞춰 이토록 다정하게 소통만 해주시면 안 될 이유가 없지요. 《다정한 소통으로 굴러가는 공유 책가게》라는 정체성을 마음속에 커다랗게 써 붙여 놓고 책가게를 돌보고 있어요.
초면에 어느 정도 소개가 되었을까요. 그럼 다시 인사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여기는 네덜란드에 있는 공유책가게, 『아주 작은 책가게』입니다. 어디에도 선례가 없던 프로젝트라 2020년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든 과정이 실험의 연속입니다. 소소하지만 역동적인 책가게의 여정과 일상을 글로 남겨보려고 해요. 타국에서 모국어의 글과 글자가 그리운 분들을 위한 한국책 공유서가를 시작한 이야기, 그렇게 시작된 책가게가 소소하게 '있어 온' 이야기들입니다. 편하게 둘러보러 오세요.
2024년 11월 27일 수요일,
네덜란드의 「아주 작은 책가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