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파묵 / 민음사)
이제는 신체의 일부같이 느껴지는 마스크를 끼고 출근을 했다. 밥을 먹거나 장을 볼 때도 손 세정제부터 찾는다. 작년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불편하고 낯선 행위가 익숙하고 당연한 생활이 되었다. 낯선 것은 냄새처럼 처음에는 어딘가 자극하지만, 이내 맡지 못할 만큼 익숙해진다.
17세기, 이스탄불로 잡혀온 서양의 포로 ‘나’도 그렇다. 고향을 그리워하던 그는 어느새 낯선 곳의 생활이 편하고 익숙하게 느껴진다. 그는 베네치아의 사람이다. 베네치아에서 나폴리로 가던 중 터키의 함대에게 잡혀, 포로의 신분으로 이스탄불로 끌려오게 된다. 노역을 당하던 포로들과 달리 물리학, 천문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지식이 뛰어나 그는 ‘호자’라는 지식인의 집에 노예로 들어가게 된다. 그는 호자와 거울을 보는 것처럼 외모가 닮았는데, 쌍둥이같이 보이기도 했다. 호자는 서양의 학문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궁금해 하며 책상에 마주앉아 공부하고, 고민하며 그리고 논쟁하며 글을 썼다.
그는 호자에게 내가 왜 나인지에 대해 글쓰기를 강요받는다. 글쓰기로 주변 사람들과의 사소한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두려움, 친밀감, 공포 같은 개인적인 기억과 감정을 꺼내기도 한다. 그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호자는 그 사람뿐 아니라, 그가 태어나고 보낸 낯선 지역의 문화와 종교를 상상하고, 함께 생활하며 다른 사고와 생각에 차츰 익숙해진다. 그도 호자처럼 호자의 모든 것이 익숙해지는데, 처음에는 다르기만 했던 사고와 태도가 일치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엔 뒤바뀌기도 한다. 둘은 함께 일하며 흑사병을 막아내는 등 좋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전쟁을 위한 무기 개발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 실패로 둘은 신분을 바꾸는데, 호자는 베네치아로 돌아가고, ‘나’는 터키에 남아 호자로 산다.
『하얀성』은 터키의 작가 오르한파묵의 작품이다. 동양과 서양, 주인과 노예라는 전혀 다른 배경과 환경을 가진 주인공들이지만 학문이라는 공통의 주제로 함께 논쟁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서로의 학문과 문화 그리고 생활까지 능숙하게 받아드린다. 서로를 향한 그들의 작은 관심은 낯섦과 편견을 넘어 수용과 발전을 이루었다. 우리는 피부색이나 지역 등 배경을 기준으로 ‘낯설다’고 정의하기도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나’와 호자처럼 서로에게 익숙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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